신체를 청결하게 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부정을 피하는 것. 청결이나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종교적 · 신비주의적인 의미와 그 밖의 다른 여러가지 의미도 지닌다.
목욕은 신체를 정결하게 하는 수단인 동시에 종교 의식의 일부이다. 재계는 종교 의례를 올리기 전에 심신을깨끗이 하고 금기(禁忌, taboo)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일을 말한다. 무속을 비롯한 한국의 민간 신앙 일반에서 공통적으로 이루어지는 목욕 재계는 물로써 심신을 깨끗이하여 몸과 얼을 정화시킴으로써 정성을 다하여 신령과통교(通交, communication)하려는 마음가짐의 표현이다.
〔역사적 의미〕 우리 나라 문헌 중에 목욕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유사》 혁거세왕(赫居世王)조에 나오는 기사이다. 이에 따르면 박혁거세는 "모든 사람들이놀랄 만큼 모습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는데, 동천(東泉)에서 목욕을 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고, 새와 짐승이 따라춤추며 천지가 진동하고 일월이 청명하였다" 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의 왕비 알영(閼英)에 대해서도 "알영정(閼英井)가에 나타난 계룡(鷄龍)이 자태가 고운 동녀(童女)를 나았는데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았다. 이에 북천(北川)에서 목욕을 시키니 그 부리가 빠졌다" 고 하였다.이로써 고대부터 목욕이 초자연적인 정화를 통하여 인간의 완성을 이루어 주는 종교 의식의 수단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삼국유사》 죽지랑(竹旨郞)조에 의하면, 신라 제32대 효소왕(孝昭王) 때에 신라의 관리인 익선(益宣)이하급 관리인 득오(得鳥)를 데려다가 자기 집안의 사사로운 일을 시킨 뒤에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에 화랑(花郞)을 관장하는 화주(花主)는 익선을 벌주고자 하였는데,이를 눈치챈 익선이 도망하자 그의 아들을 대신 붙잡아 한겨울에 성(城)안의 못〔池〕에서 목욕시켜 죽게 하였다.여기서도 목욕의 종교적인 정화 기능과 관련된 고대 신라인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는데, 신라인들은 목욕을 통하여 신체를 깨끗이 하고 더럽힌 마음까지 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다가 목욕 재계를 계율의 일부로 삼는 불교가 전래됨으로써 목욕 재계는 민간 신앙의 맥락에서도 더욱 강하게 종교적인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고려 시대에는 청결 관념의 확산으로 목욕의 중요성이더욱 강조된 듯하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따르면 고려인들은 하루에 서너 차례나 목욕을 하였으며, 개성의큰 냇물에서는 남녀가 한데 어울려 목욕하였다고 한다.더구나 제례 전에는 반드시 목욕 재계해야 한다는 계율과 흰 피부를 선호함으로써 목욕은 더욱 성행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물의 약리적인 효능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생명력을 상징하는 물의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효과를 염원하였다. 이에 질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온천욕과약수욕이 성행하였다.
〔민간 신앙에서의 실제〕 집안에 문제가 있어서 비손을 하거나 치성을 드리고 또는 본격적으로 굿을 하게 되면,그 준비 단계에서 기주(祈主)나 집전하는 제관들 혹은무당들은 목욕 재계를 한다. 이러한 의식은 오늘날 한국의 민간 신앙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경상남도 통영 지방의 치리섬 풍어제(豊漁祭)에서는 제관과 무당이 바닷가에서 손끝과 발목을 적시는 정도의 목욕 재계를 하며, 충청남도 부여 지방의 은산 별신제(別神祭)에서는 신령이 굿을 받아들일 때까지 무당과 제관이 냇가에서 반복적으로 손과 발을 씻는 약식의 목욕 재계를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실제로 발가벗고 온몸에 찬물을 끼얹으며 목욕을 한다. 전라남도 완도의 장좌리 당산제(堂山祭)에서는 온 마을 주민이 목욕 재계를 하며, 10년마다 마을 굿을 지내는 경상북도 문경의 오야골 별신제의경우 제사를 집행하는 제관들과 제물 준비를 책임지는별신당주(別神堂主)는 동제(洞祭)를 지내기 직전에 샘물에서 영하의 혹한 속에서도 발가벗고 목욕을 한다. 온마을의 무사 태평과 풍년을 기원하는 절실한 마음이 이러한 초인적인 정성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이와 함께 음력 6월 보름에 동쪽으로 흐르는 계곡과 냇가에서 창포로 머리를 감으며 목욕을 하고 물맞이를 하는 유두(流頭)날의 민속도 물로 정화하고 새 생명을 기원하는 민간 신앙적인 요소가 강하다.
무당들이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거행하는 진오귀굿에서 구송하는 '바리데기' 신화는 신령스러운 물에 대한신앙을 잘 나타내 준다. 후사(後嗣)로 왕자를 바라던 어느 임금에게 딸만 태어나자 화가 난 임금은 막내딸을 내다 버린다. 이렇게 버려진 천덕꾸러기 바리데기는 영약(靈藥)을 구하여 부모에게 효도하기 위하여 신령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바리데기는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은 후에야 영약을 얻어 돌아올 수 있었는데, 이때 부왕(父王)은 이미 죽어 장례를 치르는 중이었다. 바리데기가 다가가서 부왕의 주검 위에 "숨살이는 숨에 넣고, 뼈살이는뼈에 넣고, 살살이는 살에 넣고, 일영주는 눈에 넣고, 약려수(藥麗水)는 입에 흘려 넣으니 (죽은 임금이) 한날한시에 회춘하였다"고 한다. 죽은 시체까지도 신비한 물을 흘려 넣음으로써 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신령한 약수가 인간의 죽음까지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신령스러운 물에 대한 민간의 믿음이다. 특별히 죽은이를 위한 진오귀굿에서 바리데기 신화를 구송하는 이유는 이러한 종교적인 의미 때문이다. 즉 죽은 이가 다시살아나도록 기원하고, 죽은 사람의 영혼이 구원받기를비는 마음에서 신화를 재연하는 것이다.
진오귀굿이나 씻김굿 등 죽은 이를 위한 사령제(死靈祭)뿐만 아니라 모든 굿에서 물로 씻는 정화의 의례가거행된다. 굿이 시작되는 단계에서 거행하는 부정치기는물로 부정(不淨)을 씻는 의례이다. 깨끗한 맹물, 향물,쑥물로 이중 삼중으로 씻고 또 씻어 냄으로써 제장(祭場)인 굿판을 정화한다. 물리적으로 세척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세속성으로부터 신성성으로의 본질적인 변환을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한국 민간 신앙에서 물의 정화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표적인 의례는 전라도 진도 등지에서 볼 수 있는'씻김' 이다. 죽은 영혼을 씻기는 상징성이 강한 씻김굿에는 진 씻김' 과 '마른 씻김' 이 있는데, 전자는 사람이 죽은 직후에 행하는 사령제이고, 후자는 죽은 지 일년 이상이 지나서 행하는 의례이다. 씻김굿의 순서 중 절정에 해당하는 '씻김' 은 먼저 죽은 이의 옷을 돗자리에말아 세우고 죽은 이가 생전에 쓰던 밥그릇에 넋전을 담아 그 위에 얹어 죽은 이의 머리와 몸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솥뚜껑을 덮어 갓으로 여긴다. 그런 다음 죽은 이의 식기(食器) 등 상징적인 물건들을 물로 씻는 것인데, 이렇게 함으로써 죽은 이의 혼을 씻겨 저승으로 갈 수 있게 한다고 믿는 것이다. 씻김굿과 비슷한 민간 습속으로는 '씻골' 〔洗骨葬〕이 있다. 이는 서남 도서지방에 잔존하는 장례 풍속으로 사람이 죽으면 가묘를만들어 두었다가 살이 다 썩어 뼈에서 떨어져 나가면〔肉脫〕, 시체의 뼈를 원래 위치대로 거두어 향물과 쑥물로잘 씻어서 다시 장례를 지내는 이중 장례이다. 이러한 장례의 습속도 역시 물의 신비스러운 영력을 가지고 종교적인 정화의 바람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목욕 재계와 일맥 상통하는 민간의 신앙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의의〕 목욕 재계라는 민간 신앙의 모습에서 찾아낼 수 있는 물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물은 단순히 자연 사물의 일부가 아니고 인간의 문화적인 특성을 반영한다고할 수 있다. 물은 신체의 수분을 유지하기 위하여 마시거나 외모의 더러움을 씻어 내기 위하여 사용되는 물질만이 아니라, 신성한 요소를 갖춘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민간의 홍수 설화 등에서 보이듯이 물은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재창조의 활력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여겨진다. 즉 물은 파괴와 창조의 힘을 동시에 가진 대상이었다. 물의 생명력에 대한 신앙은 생명의 기〔生氣〕가바람과 물을 타고 흐른다는 풍수(風水) 사상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지만 목욕 재계에도 이러한 물이 주는 재생의 의미가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묵은 인간의 허물을 벗고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바로 물로 씻음으로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는 그리스도교 세례의 구조와도 일맥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 정화)
※ 참고문헌 三國遺事》 《高麗圖經》 秋葉隆, 〈藥水〉, 《朝鮮民俗誌》, 六三書院, 1954/ 김태곤, 《한국 민간 신앙 연구》, 집문당, 1983/최창조,《한국의 풍수 사상》, 민음사, 1984/ 김인회, 《한국 무속 사상연구》, 집문당, 1988/ 최길성, 《한국 민간 신앙의 연구》, 계명대학교 출판부, 1989/ 박일영, <민간 신앙을 통해서 본 한국인의 종교성>, 《효성 여자 대학교 논문집》 49집, 1994. [朴日榮]
목욕 재계
沐浴齋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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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두날 목욕을 하고 물맞이를 하는 민속( 왼쪽)이나 물로 부정을 씻는 부정치기도 목욕 재계와 일맥 상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