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과 당신 백성과의 친밀한 관계는 성서의 기본 주제 중 하나이다. 이런 관계는 성서 안에서 '목자' 와 그가 돌보는 '양 떼' 와 비유되어 표현되기도 하였고, 이로부터 발전하여 '잃어버린 양' 을 찾아 나서는 그분의 자비 넘치는 목자적인 모습은 '구원' 을 뜻하는 표상(表象)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백성을 인도하는 '지도자' 들이 따르고 본받아야 할 원형(原型)이 되었다. 본래목자는 목축업을 실제의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를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비유적이고 전의(轉義)적인 의미에서'목자' 라는 말은, 성서 안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은유적으로 적용되어 사회적 지위나 종교적 신원 및 직분을 가리키는 칭호로 뜻이 바뀐 채 사용되어 왔다.
I . 어원 및 정의
서양 여러 나라의 언어들에서 ‘목자’를 뜻하는 낱말들, 이를테면 프랑스어 파스트뢰(pasteur), 스페인어 파스토르(pastor), 이탈리아어 파스토레(pastore), 영어 파스터(pastor) 등은 모두 목자를 뜻하는 라틴어 명사 ‘파스토르’ (pastor)에 어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이 파스토르는 ‘가축을 치다’, ‘가축에게 풀을 뜯기다’, ‘가축을 먹여 기르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 동사 ‘파세레’ (pascere)에서 나온 말이다. 구약성서 안에서,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라아’ (רָעָה)이며, 이 히브리어 동사에서 목자를 뜻하는 분사형 명사 ‘로에’ (רֹעֶה)가 나왔다. 구약성서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쓰이는 낱말은 ‘로에’이며, 그 밖에도 목자를 뜻하는 히브리어로는 ‘보케르’ (בֹּקֵר)와 ‘노게드’ (נוֹגֵד)가 있다. 하지만 구약성서 전체를 통틀어 ‘보케르’는 단지 한 번(욥 7, 14), ‘노게드’는 단지 두 번(욥 29, 3, 4; 암 1, 1) 쓰였을 뿐이다. 신약성서 안에서 ‘파세레’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로는 ‘포이마이네인’ (ποιμαίνειν)과 ‘보스케인’ (βόσκειν)이 있다. 이 단어들은 흔히 히브리어 동사 ‘라아’를 번역할 때 후자가 ‘가축을 먹이다’를 가장 많이 번해, 전자는 그 밖에 ‘치다’, ‘인도하다’, ‘다스리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신약 성서 안에서 목자를 뜻하는 두 개의 그리스어 명사 ‘포이멘’ (ποιμήν), ‘보스콘’ (βόσκοv)은 각각 이 두 개의 그리스어 동사 ‘포이마이네인’, ‘보스케인’과 관련이 있다. 즉 동사 ‘보스케인’ (가축을 치다)에서 현재 분사형의 명사 ‘보스콘’ (가축을 치는, 가축을 치는 이)이 나오는데 반해, 거꾸로 명사 ‘포이멘’ (목자)에서는 동사 ‘포이마이네인’ (목자 노릇하다, 목자이다)이 나온다. '가축을 치는 사람' 을 뜻하는 한자말 목자(牧者)는 그 낱말의 첫 글자인 '목' 자에서 주된 뜻을 취하고 있다. '목' 은, 다산 정약용(丁若鏞)에 따르면, 중국 고대에 벌써 '소나 양 따위의 가축을 기르는 일' 〔牧畜〕이라는 본래의 뜻 말고 '지방 장관이나 고을의 수령이 자신에게맡겨진 백성을 부양하고 다스리는 일' 〔牧民〕이라는 비유적이거나 전의적인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었다. 다산은이에 대한 전거로, 그의 저서 <목민심서>(牧民心書) <자서〉(自序)에서, 《서경》 <입정편>(立政篇)과 <맹자> <공손추 장구 하>(公孫丑章句下)를 들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바로 이 점에 있어 그 개념은 성서적인 개념과 일맥 상통한다. 왜냐하면 성서 안에서 목자라는 말은 소나 양과 같은 가축을 기르는 사람' 이라는 본디의 뜻뿐아니라, '양 떼인 하느님의 백성을 인도하고 다스리는정치 지도자 또는 종교 지도자' 라는 비유적인 뜻 내지전의적인 뜻으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서 안에서 쓰이는 '목자' (pastor)의 뜻과 그 쓰임새는 고대 중국의 고전 안에서 쓰이는 '목' 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다양하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목자라는 말은 본래의 뜻을 넘어,비유적이고도 전의적인 의미로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말은 양 떼인 하느님의 백성을 부양하고 인도하는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를 뜻하며 구체적으로는 사제, 즉 주교와 신부를 가리킨다. 이들을 가리키는 칭호로 또 '고유한 목자' (pastor proprius)라는 용어가쓰이기도 하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르면 지역 교회 또는 본당 공동체를 고유하게 떠맡아 성무를 수행하는 교구 주교나 본당 주임 신부를 의미한다. 더 나아가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 즉 하느님 백성 전체가 '신자들의 공통 사제직' 에 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예언자요 사제, 그리고 목자에 비유되기도 한다.
II . 성서상의 본래 의미
〔넓은 의미에서의 목자〕 한때 방랑하는 유목민이었던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래 땅을 갖게되었고, 이로써 그들의 생활 환경 및 사회 경제적 상황도달라지게 되었다. 이제 한 가족이 약간의 토지라도 갖게되는 경우에는 온 가족이 모두 힘을 합쳐 두 가지 일, 즉 가축을 치는 목축업과 농업을 병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하여 목축업과 농업은 신구약 시대를 통틀어, 팔
레스티나 경제의 기반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대표하는 두 가지 직업이 되었다. 양이나 염소 같은 '작은 가축' 을 기르는 목축업이 순수한 유목민들의 생활기반이었던 데 반해, 목축을 겸한 농업은 반유목민 또는 정착민의 생활 기반이었다. 따라서 유목민은 말할 것도 없고 농사일을 하는 정착민 또한, 목자로서의 삶과 목축에 익숙해 있었다. 그런데 이처럼 달라진 그들의 생활 환경 및 사회 경제적 상황은 그들이 길렀던 가축에서도 드러난다. 그들이 쳤던 가축으로는 양, 염소 말고도 소, 나귀 등이 있었다. 특히 큰 가축인 소는 토지 경작을 비롯한 농사일에 이용되었으며, 따라서 소를 기르는 일은 정착 생활인 농경 생활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넓은 의미의 목자란 말은, 유목 생활 및 농경 생활을 다 함께 고려한 개념으로서, 양 · 염소 · 소 · 나귀 등 가축을 치는 사람 일반(herdsman)을 가리킨다.
하지만 예수 시대에 등장하는 돼지 치는 사람들(루가8, 34 ; 15, 15)은, 이런 '목자' 의 범주에 속해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돼지는 오랫동안 부정한 짐승으로 여겨져이스라엘에서는 가축에서 제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활동하던 당시에 돼지가 사육되고 있었고(루가 8,32 ; 15, 15 ; 참조 ; 마태 7, 6) 아마도 사람들은 그 고기를 먹었던 듯하다. 물론 이런 일은 율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기에(레위 11, 7-8), 돼지를 기르고 잡아먹던 일이 팔레스티나 땅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 경계 지역 및주변 지역에서는 이뤄지고 있었을 것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목자〕 소를 치는 일이 소와 같은 큰가축의 힘을 빌려 농지를 경작하는 정착 생활을 전제로하고 있는 데 반해, 양과 염소를 치는 일은 본디 팔레스티나 농경지의 변두리인 초원 지대와 반(半)사막 지대에살면서 가축 떼를 방목하던 유목민들의 생활을 반영해주고 있다. 따라서 좁은 의미에서의 '목자' 라는 말은,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본래 목축업의 대상으로 삼았던 작은 가축 즉 양과 염소를 치는 사람을 가리키거나,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한 가축인 양을 치는 '양치기 (shepherd)를 가리킨다. 비록 소가 양과 염소보다 훨씬 더 비싼 값에 매매되었지만 양이나 염소를 돌보는 것은 소를 돌보는 경우보다 일손을 덜 필요로 하였고 무엇보다도 양이나 염소는 소와는 달리 건조기인 여름철에 풀이 충분하지 않은 초원 및 반사막 지대에서도 목축이 가능하였기에, 목자를 포함한 이스라엘의 일반 대중이 가축을 치는 데 있어 소보다 양이나 염소를 더욱 선호하였음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고대 팔레스티나에 있어서목자들은 양들과 염소들을 흔히 함께 섞어 쳤다(창세 30,31-32 ; 참조 : 마태 25, 32-33). 이것은 구약성서에서 작은 가축' 을 가리키는 데 쓰이는 히브리어 '촌' (צאן)이양과 염소를 함께 뜻하는 데서도 시사되어 있다. 이처럼목자들이 통상적으로 양들과 그보다 적은 수의 염소들을 함께 목초지에서 방목하였던 까닭은, 양들이 이미 풀을뜯어먹고 남은 빈약한 목초지에서도 그보다 적은 수의 염소들이 양들이 먹다 남긴 풀을 아직 더 뜯어먹을 수가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자가 치는 가축들 가운데 특히 양은, 이스라
엘 서민들의 일상 생활에서 그들의 애환과 직결되는 가장 친근한 가축이었다(2사무 12, 3). 이스라엘에서는 아무리 가난한 집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큰 명절인 과월절이 되면 적어도 두 마리의 양은 사고 싶어하였다. 한 마리는 과월절 의식 및 만찬을 위해서이고, 다른 한 마리는길러서 옷을 해입는 등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양털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뿐 아니라 사무엘 상 25장 2절에 나오는 "양 3,000마리와 염소 1,000마리" 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고대 팔레스티나에서 양은 염소와 함께 가장 많이 길렀던 가축이었고, 무엇보다도 양은 유목 생활을 하던 성조들의 소유 재산인 가축들의 이름을 열거하는 목록 가운데 첫 번째로 언급되어 나올 정도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소중한 재산이었다(창세 21, 28-29 ; 31, 38 ; 참조 : 12, 16 ; 13, 5 ; 24, 35 ; 32, 8 ; 46, 32). 그리고 목자 한 사람이 열 마리 남짓한 양들을 갖고 있으면 양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젖, 고기, 양털 및 가죽과 같은 소산으로 초원이나 반사막 지대에서 혼자 살아갈 수가 있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점에서 양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치고 있는 가축 중 가장 중요한 가축이자 대표적인 가축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가축을 치는 목자라는 말이 좁게는,양을 치는 양치기를 뜻하게 되었고, 특히 비유적이고 전의적인 의미로 쓰일 때 양치기를 뜻하는 좁은 의미의 목자라는 말은 '양 떼' 에 비유되는 '백성' 의 상대 개념으로 성서 안에서 쓰이게 되었던 것이다. 시편 23편에 함축적으로 나타나 있는 '목자' 의 주된 임무는 세 가지이다. '가축' (또는 '양' )을 목초지로 인도하여 풀을 뜯게 하고(23, 1), 물가로 인도하여 물을 마시고 쉬게 하며(23, 2-3), 야수나 뱀 또는 도둑의 위험으로
부터 가축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이다(23, 4).
〔성서적 평가〕 하느님에 의해 부름을 받을 당시의 모세(출애 3, 1)와, 다윗(1사무 16, 11 ; 1역대 17, 7 ; 참조 : 시편 78, 70-71), 아모스(아모 7, 15) 등은 실제로 양 떼를치던 목자였다. 이런 까닭에 구약성서 안에서 목자의 직업은 존중을 받았고 목자의 칭호 또한 비유적인 의미로쓰여 존귀하게 대해졌다. 하지만 예수 시대에 목자의 직업은 유대교의 랍비들에 의해 부정직한 직업으로 여겨져경멸받는 직업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었다. 세리처럼 목자들 또한, 법정에서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았을 뿐더러도둑과 사기꾼으로 취급받았다. 그 까닭은 고용된 목자들이 건조기인 여름철에 가축의 소유주로부터 떨어져 가축 떼를 이리저리 몰고 다닐 때, 가축 떼에게 풀을 뜯기기 위해 남의 목초지에 무단으로 방목하기도 하였고(《바빌론 탈무드》, 산헤드린 25b) 가축이 새끼를 친 경우 이를주인 몰래 팔아 착복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목자들에게서 직접 가축의 새끼나 양털 및 우유를 사는 일이 후기 유대교에서는 금지되어 있었다(《미슈나》, 바바 캄마 10, 9). 그러나 이처럼 랍비들에 의해 부정적인 평가를 받던 목자의 직업 및 그 칭호는, 신약성서 안에서 다시금 구약성서에서와 같이 좋은 평가를 받게되었다.
신약성서 전체를 통틀어, 비유적이고도 전의적인 의미의 목자가 아닌 본래적이고도 실제적인 의미의 목자는,유일하게 루가 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2, 8-20)에 단한 번 등장한다. 여기서 랍비들에 의해 도둑으로 여겨져경멸받던 목자들은 거꾸로 아기 예수의 성탄 소식을 전해 들은 첫 번째 사람들로 등장한다. 심지어 요한 복음에 나오는 '착한 목자의 비유' (10, 11-18) 안에서 예수는 목 자로, 양을 이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자기의 목숨을 내놓는 헌신적인 사람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높은평가는 죄인들이나 경멸받는 직종의 사람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며 그들과 친분을 나누고 함께 생활한 예수의실천적인 삶을 반영해 주고 있다.
Ⅲ . 구약성서에서의 의미
〔하느님 야훼에게 적용〕 구약성서에 목자라는 칭호를 야훼 하느님에게 직접 적용하여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 구약성서를 통틀어, 창세기 48장15절과 49장 24절, 시편 23편 1절, 80편 1절, 도합 네번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이 칭호가 고대 근동에 있어 신에 대한 공식적인 술어가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하나의 좋은 반증이 될 것이다.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함축적으로나마 야훼를 이스라엘의 목자에 비유하는 구약성서의 용법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으며, 야훼에게 은유적으로 적용된 이러한 목자상은 경건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슴 깊이 아로새겨져 구약성서 안에서 지속적으로 생생하게 발전된 바 있다. 하느님은 양 떼에 앞서가시면서(시편 68, 7) 양 떼를 목초지로 인도하고(예레 50, 19)양 떼를 물가에서 쉬게 하며(시편 23, 2) 당신의 지팡이로양 떼를 보호하고(시편 23, 4) 흩어진 양 떼를 향해 휘파람을 불어(즈가 10, 8 ; 참조 : 판관 5, 16) 양 떼를 모으고(이사 56, 8) 어린 양을 당신 품에 안은 채 젖먹이 딸린어미 양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이사 40, 11). 이처럼 당신 백성이 양 떼에 비유되는 것(호세 4, 16 ; 예레 13, 17 ;시편 95, 7 : 23, 1-4 : 100, 3 : 미가 7, 14)과 관련하여 하느님의 행동 또한 목자의 행동에 비유되며, 무엇보다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까지 하느님이 그들에게 행하셨던 일이, 목자의 행동에 비유된다(시편 77, 21 ; 78, 52 ; 95, 7). 그리고 그분의 목자적인 행동은 특히 백성의 탄원시(시편 74, 1 ; 79, 13 ;80, 1) 안에서 끊임없이 현재화되고 있다. 곤궁한 상황에처한 백성들은 이 시편들을 통해 하느님에게 목자로서의의무를 기억해 주실 것을 촉구하고 아울러 신뢰에 찬 고백과 함께 현재 그들 자신의 곤궁한 상황 속에 직접 개입해 주시기를 처절히 호소한다. 그리하여 결국 이스라엘백성은 하느님의 목자적 배려를 현실 안에서 구체적으로체험하게 된다. 이처럼 이 시편들은 양 떼에 대한 목자의배려와 목자에 대한 양 떼의 신뢰를 그 핵심 요소로 하고있다.
한편 개개인의 구원사적 체험이 심화됨에 따라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목자와 전체 양 떼와의 관계가 아닌,목자와 한 마리 양과의 관계에 비유된다. 실제로 목자가양들을 지키고 돌보는 데 있어서는 전체 양 떼에 대한 배려가 통상적으로 한 마리 양에 대한 배려에 우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시편 23편에서 시편 저자는 야훼를 '나의 목자' (23, 1)라고 부름으로써, 더 이상 전체 양 떼의 목자로서가 아닌 시편 저자 자신 한 사람의 매우 친근한 목자, 즉 개별적인 한 마리 양의 목자로서 묘사한다. 비록 시편의 이런 표현이 구약성서(시편 119, 176 ; 참조 : 마태 18, 12-14 : 루가 15, 4-7) 안에 넓게 퍼져 있는것은 아니지만, 하느님과 개별적인 인간과의 관계의 친밀성을 묘사하였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표현임에 틀림없다.
〔왕 또는 정치 · 군사 지도자에게 적용〕 목자라는 칭호는 오래 전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및 그 밖의 다른지역에서 왕에게 적용되어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고, 구약성서 또한 이 용법을 알고 있었다. 예레미야서 25장 34-36절과 나훔서 3장 18절에서 외국의 통치자들인 왕들이 목자로 불리며, 이사야서 44장 28절에서는 하느님이 직접 고레스 왕을 '나의 목자 라고 부르고 계신다. 통치자인 왕 말고도 이스라엘의 정치 및 군사 지도자들이 구약성서(1사무 21, 8 ; 2사무 7, 7 : 1역대 17, 6)에서 목자로 불리며,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못된 정치·군사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일상적 칭호로 이 말을 사용하였다(예레 2, 8 ; 10, 21 ; 22, 22 ; 23, 1-4 : 25, 34-36). 하지만 '목자' 라는 말은 정작, 이스라엘의 통치자인 왕을 비유하여 가리키는 칭호로는 구약성서 안에서 단한 번도 명시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다만 '가축을치다' , : 가축에게 풀을 뜯기다' 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동사 '라아' 가 명사인 '이스라엘 백성' 을 목적어로 취하여 함께 나오는 구절들(2사무 5, 2 ; 1역대 11, 2 ; 시편 78,71-72)에서, '왕' 이 암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에 비유되고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양 떼를 치듯이) 치라" (2사무 5, 2)는 구절에서처럼 다윗 왕이 함축적으로 목자에 비유되고 있긴 하지만 '목자' 의 칭호가 직접 언급되어 있지는 않다. 우리말공동 번역 성서는 이 구절(2사무 5, 2)을 "너는 내 백성이스라엘의 목자···라고 옮김으로써 '목자' 라는 말을 명시적으로 직접 언급하지만, 이것은 히브리어 성서의 해당 본문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메시아에게 적용〕 통치자인 다윗 왕을 비유적인 의미에서 이스라엘의 목자로 암시하고 있는 사무엘 하 5장 2절(병행 : 1역대 11, 2)로부터 발전하여, 구약성서 안에서 목자라는 말은 미래에 오실 구원의 왕, 즉 다윗의 후손을 가리키는 메시아적인 칭호가 되었다(미가 5, 3 ; 에제 34,23-24 ; 37, 24). 그러나 이 구원의 왕은 일상 등장하는 일반적인 왕이 아니라 오로지 임박한 재앙의 때에 나타나는 메시아적인 통치자라는 점에서, 구약성서 안에서 쓰이고 있는 목자의 용법은 고대 근동에서 왕을 뜻하던목자의 용법과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에제키엘은 목자의 칭호로서, 정치적인 통치자인 왕으로 일방적으로 이해되던 '목자' 개념을 탈피하고 있다. 야훼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불충실한 것을 보고 직접 당신의 백성을 찾아오실 것이다. 그때 그분은 친히 목자의 직무를 떠맡아 흩어진 양 떼를 모으실 것이고(에제 34, 11-16; 예레 23, 3 : 31, 10), 당신 백성을 위해 오직 한 목자만을 새로운 다윗으로 세우실 것이다(에제 34, 23-24 ; 예레23, 5-6).
그런데 구약성서 안에서 메시아를 위한 칭호로서의 '목자' 개념은, 신약성서(마르 14, 27-28)의 관점에 입각해 볼 때, 최종적으로 제2 즈가리야에 의해 독특한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유배로부터 귀향한 뒤 야훼는 백성들을 잘못 이끌었던 못된 목자들에게 역정을 내시며(즈가 10, 3 ; 11, 4-17), 끝내 당신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목자 한 사람을 내리치실 것을 선언하신다(13, 7). 이처럼 목자에 대한 구약성서의 말씀들의 끝에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죽임을 당하며 아울러 이로써 결정적인 방향 전환을 가져올 어떤 한 신비스런 목자 에 대한 암시가 들어 있다(즈가 13, 7 ; 참조 : 마르 14,27-28) .
IV 신약성서에서의 비유적 의미
〔하느님에게 적용〕 신약성서에서는 단 한 번도 하느님이 직접 목자로 불리거나 명시적으로 목자에 비유되고있지 않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 (루가 15, 4-7 ; 병행 : 마태 18, 12-14)에서 예수가 하느님을 함축적으로 목자에 비유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비유 안에서 '목자' 라는 낱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유에서 잃어버린 양을 어렵게 찾아낸 후 기뻐하는 사람, 즉 목자는 다름아닌, 최후의 심판 때 회개하는 죄인에게 죄를 사해 주시며 기뻐하실 하느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인간의 구원을 기뻐하시는 하느님의 목자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는 이런 비유로써 예수는, 당신을 비판하는 적대자들을 거슬러, 잃어버린 죄인들을 도로 찾아 집으로 데려오시는 당신 자신의 구원 활동을 정당화한다. 그리하여 구원 활동을 펴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이제 하느님 대신, 목자로서 신약성서 안에 부각된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 공관 복음서 : 공관 복음을 보면 예수는 자신을 구약성서에서 약속된 메시아적인 목자로 소개한다. 그 자신이 몸소 이스라엘 가문의 잃은 양들을 찾아오신 분일 뿐만 아니라 당신 제자들로 하여금 그들을 찾아가도록 파견하시는 분이다(마태 15, 24 ; 10,6 ; 루가 19, 10). 그리고 예수는 즈가리야서 13장 7절에서 약속된 바로 그 신비스런 목자이자 하느님의 동료로서 흩어진 양 떼를 모으는 분이다(마르 14, 27-28 ; 마태26, 31-32). 하느님은 당신의 동료인 그 목자에게 심판을 내릴 것이고, 그리하여 양 떼는 흩어질 것이지만 종말론적 고난의 시작을 암시하는 예수의 죽음과 함께 흩어져 시련을 당하던 양들은, 끝내 목자의 인도 아래 다시 모일 것이다. 이 구절(마태 26, 32 마르 14, 28)에 나오는 '앞서 · 가다' (προάγειν)라는 동사는, 양 떼 앞에서 양 떼를 이끌어 모으는 목자의 행동을 시사하고 있다. 공관 복음은 이 동사로써, 죽으셨지만 다시 오셔서 흩어진 양 떼를 모으시는 참된 목자인 예수의 부활을 함축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더 나아가 종말론적 심판을 묘사해 주는 마태오 복음 25장 31-46절에 따르면 종말론적 통치자인 인자(人子)는 흩어진 양 떼에 비유되는 모든 민족들을 당신의 옥좌 주변에 모을 뿐만 아니라, 이어서 양들과 염소들을 가르는 일에 비유되는 심판을 행할 것이다. 이 구절(마태 25, 32-33) 또한, 낮이면 목초지에서 양들과 염소들을 함께 섞어 치다가 저녁이면 따로 두 그룹으로 분리시켜 우리에 넣는 목자의 행동을 시사해 주고 있다. 그런목자처럼 그렇게 마지막 때에, 장엄한 메시아적인 목자가 세상의 모든 민족들을 두 그룹으로 따로 갈라놓을 것이다.
요한 복음서 : 공관 복음에서뿐 아니라 요한 복음(10,1-18)에서도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적인 목자로 소개한다. 특히 요한 복음 10장 11-18절에 나오는 '착한 목자의 비유' 에는 메시아적인 목자의 참된 표지가 잘 드러나있다. 그 표지란 다름아닌 자신의 생명마저 양 떼를 위해 기꺼이 내놓는 자세이다. 이리가 침입하는 위험한 상황에 양들을 사지(死地)에 남겨 두고 도망침으로써 끝내는
양들로 하여금 이리에게 물려 가게 하고 흩어지게 하는 삯꾼(10, 12)과는 달리, 이 비유에서는 예수 자신이 직접착한 목자에 비유되고 있다. 그분이 착한 목자라는 사실은 그분과 그분의 양들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친밀한 사귐(10, 14)에 의해서 증명될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는 당신의 양 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그분의 전적인 희생(10, 15)에 의해서 증명될 것이다. 구약성서 및 공관 복음서에 나오는 메시아적인 목자상과 비교해 볼때 요한 복음에 나오는 '착한 목자' 상에 나타난 새로운 시각은 그 목자의 죽음이 양들을 위한 자발적인 죽음이자 양들을 대신한 희생적인 죽음이라는 점이다. 이 비유는 10장 16절의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합니다. 그들 역시 내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며 한 목자에 한 양 떼가 될것입니다"라는 내용에서 절정을 이룬다. 예수는 목자로 서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 있어 그 대상의 범위를 이스라엘의 잃은 양들에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모든 민족에게로확산시키며, 그리하여 그분의 목자로서의 사명은 온 인 류를 위한 것이 된다.
서한과 묵시록 : 신약성서 중 바오로 서간에는 목자의 비유 및 목자의 칭호가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어 쓰이는 용례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서간에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들로 '영혼의 목자이며 보호자' (1베드2, 25), '양들의 위대한 목자' (히브 13, 20), '목자들의 으뜸 (1베드 5, 4)이라는 표현들이 나온다. '영혼의 목자이며 보호자' 는 당신의 백성을 부양하며 지켜 주는 분으로 그리스도를 특징짓고, '위대한 목자' 는 특별히 모세를 비롯한 과거의 모범적인 인물들을 능가하는 그리스도의 유일무이하심에 초점을 맞추며, '목자들의 으뜸' 은 자신에게 속한 목자에게 셈을 요구하는 주님의 장엄하심을 표현해 주고 있다. 한편 요한 묵시록에서 그리스도는, 손에 들고 있는 '목자의 쇠지팡이' (2, 27 ; 12, 5 : 19, 15)와 '목자적인 행동' (2, 27 ; 7, 17 : 12, 5 ; 19, 15)으로 써, 함축적으로 목자로 묘사될 뿐 명시적으로 목자로 일컬어지지는 않는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5, 6) 그리스도는 현양받으신 주님으로서 큰 환난을 거친 뒤 모든 민족으로부터 뽑혀 온 수많은 사람들을 양 떼를 치듯이 부양하고 생명의 샘물로 인도하며(7, 17 : 참조 : 14, 4), 아울러 그분은 귀환하시는 주님으로서 손에 목자의 쇠지팡이 를 든 채 모든 민족들을 거느리고 부양하는 통치자이다 (2, 27 ; 12, 5 ; 19, 15).
〔교회의 지도자에게 적용〕 예수에게 적용되는 요한 복음 10장에 나오는 착한 목자상은, 예수의 양 떼를 맡고있는 목자로서 베드로를 비롯한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이따르고 본받아야 할 모범적인 목자상이기도 하다. 베드로 : 당신 자신을 직접 양 떼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착한 목자에 비유한 요한 복음 10장 11-18절에 이어예수는 21장 15-19절에서, '목자' 라는 말을 쓰지 않고함축적으로 베드로를 목자에 비유한다. 부활한 예수는 제자인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들을 돌보는 목자로서의 사명 및 권한을 부여(21, 15-17)함으로써 그분의 양들은 이제 베드로의 목자적 배려에 맡겨진다. 그러나 이처럼 그 분의 양들이 베드로에게 맡겨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양들은 베드로의 양들이 아닌, 여전히 주님이신 예수의 양들일 따름이다. 먼저 예수는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같은 질문을 한다(21, 15-17). "요한의 (아들) 시몬,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까?"라는 삼중의 질문은 베드로의 삼중의 부인 및 배반(요한 13, 38 : 18, 17 : 18, 25-27)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따라서 이 장면은 베드로의 복권을 은연중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이 삼중의 질문에 각각 이어, 비로소 당신의 양들을 돌보라는 예수의 삼중의 말씀이 나온다. 베드로에게 한 이 삼중의 말씀으로써 예수가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들을 돌보아야 할 목자로서의 임무 및 권한을 부여하고 있음이 시사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에 의해 베드로에게 맡겨진 권한이란 세속적인 왕권이 아닌, 양 떼를 사랑으로 돌보아야 할 봉사자로서의 권한으로서 예수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권한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는 양 떼를 돌보는 사명 및 권한을 베드로에게 맡기기 전에, 먼저 그에게 당신을 사랑하는지를 물었던 것이다. 예수에 대한 깊은 사랑에 뿌리를 둘 때에 비로소, 양들을 위해 생명을바쳤던 착한 목자인 예수처럼, 그렇게 베드로 자신도 주의 양 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참다운 목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장로(원로) : 베드로 전서 5장 1-4절에서 이 서간의 발신인인 베드로는 우두머리격의 장로로서, 다른 장로들에게 '목자들의 으뜸' 인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까지 양떼를 돌볼 것을 권고하면서 장로를 목자에 비유한다. 하지만 요한 복음 21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목자라는 칭호가 직접 언급되어 있지는 않다.
베드로 전서 5장 1-4절과 요한 복음 21장 15-19절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이 있다. 왜냐하면 요한 복음 21장에서 베드로는 예수에게서 양 떼를 돌보는 임무와 권한을 받은 목자로서 나타나 있고, 또 베드로 전서 5장 1-4 절에서 장로인 베드로의 초상이 '목자' 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가 다른 하나에 의존하는 그런 유사성이 아니라, 오히려 둘 다 베드로에 관
한 어떤 공통된 전승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유사성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일찍이 베드로가 어떤 지역 교회 공동체나 로마 교회 공동체의 장로로서 봉사했었다는 신빙할 만한 증거는 없다. 짐작하건대 로마에서 베드로가 순교자로서의 죽음을 맞이하였던 일 때문에, 그가 지역 교회의 공동체에서 목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장로들에 의해 양 떼를 위해 생명을 바쳐야 할 그들 자신의 모범으로 떠받들어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베드로전서에서 베드로는, 예수의 고난에 대해 친히 목격한 체험을 증언하며 양 떼를 돌보는 '장로-목자' 의 전형으로 나타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장로의 소임이 곧 목자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일이었음은 사도 행전 20장 18-35절에서 사도 바오로가 에페소의 장로들에게 행한 훈계에서도 잘 드러난다."여러분은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 떼를 보살피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양 떼의 감독으로 세우셔서 당신 (아들)의 피로 얻으신 하느님의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사도 20, 28). 그리하여 에페소를 포함한 소아시아 지역에서 교회의 장로들을 목자에 비유하는 일은 이상적인것으로서 점차 일반화되었을 것이다. 한 공동체 안에서장로가 맡고 있는 임무가 양 떼를 돌보는 목자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일이었음이, 베드로 전서 5장 1-4절에 함축적으로 시사되어 있는 것이다. 공동체의 지도자 : 신약성서에서는 에페소서 4장 11절에서, 단 한 번 종교적인 집회의 지도자들이 명시적으로 목자로 불린다. "또한 그분이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전파자로, 어떤이들은 목자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교회의 직무를 열거하는 이 목록을 고린토 전서 12장 28절에 나오는 또
다른 목록과 비교해 보면, '복음 전파자' 와 '목자' 라는 두 낱말이 교회의 직무를 가리키는 말로 새로이 추가되어 있음이 눈에 띄며, 또 목자를 일컬으면서 교사라는 말을 함께 쓰고 있음도 눈에 뜬다. "투스 데 포이메나스 카이 디다스칼루스" (τοὺς δὲ ποιμένας καὶ διδασκάλους), 즉 ‘목자들과 교사들’이라는 말이 함께 나란히 나오는데, ‘정관사’ (τοὺς)가 ‘목자들’ (ποιμένας) 앞에만 있을 뿐 ‘교사들’ (διδασκάλους) 앞에는 없는 것으로 보여, 문법적으로 정관사에 '목자들과 교사들' 이 함께 걸림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떠돌이 봉사자들이었던 사도·예언자 · 복음 전파자와는 달리 '목자와 교사' 가 하나의지역 공동체에 매여 단일한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에페소서 4장 11절에 새로이 추가되어 나오는 '복음 전파자' 와 '목자' 가 각각 담당했던 역할 및 직무가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 낸다는 것은 어렵다. 복음 전파자들이 하나의 지역 공동체에 매이지 않은 채 복음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지역의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선교함으로써 교회 공동체를 다른 지역으로 넓혀 가는 일을 맡았던 데 반해, 목자는 아마도 기존의 지역 교회에 정주하면서 집회를 주재하고 공동체를 지도함으로써 교회 안의신자들을 보호하고 돌보는 일을 맡았을 것이다. 베드로전서 5장 1-4절에 의하면 장로가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이런 목자의 직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V 교의사적 관점에서의 전의적 의미
〔주교에게 적용〕 현행 교계 제도의 주교(episcopus), , 사제 (presbyter)에 해당하는 신약성서의 낱말들은, 각각 ‘감독’ (ἐπίσκοπος), ‘원로’ (πρεσβύτερος, 장로)이다. 사목 서간인 디도서(1, 5-9)에 따르면 지역 교회의 지도자로 임명되어 '원로-감독' 으로 불리던 이들은 아직 두 계층으로 나뉘어지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 즉 '원로' (디도 1,5)· '감독' (디도 1, 7)의 두 칭호는 상호 교환적인 용어 및 개념으로서, 둘 사이에는 아직 기능적인 구별이나 직무(ministerium)의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사도 행전 20장 28절에 따르면 이들 '원로-감독' 이 함축적으로 목자에 비유되고 있다. 그러다가 2세기 초에 쓰여진 한편지를 보면,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35~107)가 한 공동체에 한 명이던 감독을 목자로 정의함으로써 감독을 명시적으로 목자에 비유하기 시작한다. "목자가 있는 곳에서는 양들이 그를 따라야 한다" (<필라델피아 교회에 보낸 편지> 2, 1). 3세기 초에 이르러 비로소 주교와 사제 사이에 구체적으로 구별된 직무가 있었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주교는 지역 교회의 목자로서 그에게 맡겨진 주의 양 떼에 대해직접 책임을 지고 전례를 포함한 교회의 모든 성무를 주재했다. 215년경에 쓰여진 히폴리토(Hippolytus, 170~236)의 《사도 전승》(Traditio Apostolica)이나 카르타고의 주교였던 치프리아노(Cyprianus, ?~258)의 《편지》(Epsiutula)와같은 작품들이 전해 주는 바에 따르면, 주교는 주의 거룩한 양 떼를 돌보는 목자에 비유되고 있고(《사도 전승》 3), 주교와 일치해 있는 신자들은 목자에게 매달려 있는 양떼에 비유되고 있다(《편지》 66, 8). 이에 반해 사제들은 일차적으로, 주교에게 의견과 도움말을 주는 일단의 고문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었고, 그들은 주교와 함께 하나의 같은 사제직을 공유하면서도 교회의 모든 성무를 직접 주재하는 주교 곁에서 하나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목자적인 활동은 매우제한되어 있었다. 4세기 초에 이르러서도 적어도 원칙에 있어서는 주교가 지역 공동체의 목자였고 전례의 거행자였으며 교사였다.
〔사제에게 적용〕 4~5세기를 지나면서 상황이 바뀌었 다. 즉 신자들이 증가함에 따라 도시와 시골에 세워지는교회의 숫자가 증가하였고, 그리하여 주교가 한꺼번에 모든 공동체에 참석하여 전례를 거행하기란 불가능하게되었다. 주교는 현실적으로 사제들과 성무를 분담하지않으면 안되었고 이제 사제들이 주교의 파견을 받아 점차로 시골 공동체의 집회에 주교를 대신하여 참석하게 되었다. 예배를 위해 모인 그곳 공동체에서 사제가 집회
를 주재하고 세례를 주며 또 병자를 방문하여 도유하는 등 실질적으로 목자로서의 임무를 수행해 나갔다. 그러나 로마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교외에 있는 시골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시내에 있는 여러 교회에서도 사제들이주교를 대신하여 목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왜냐하 면 로마 시내의 전 신자들이 주일에 시내의 한 교회 건물 안에 다 함께 모여 전례에 참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 다(416년경에 교황 인노첸시오 1세가 굽비오의 주교 데천시오 에게 보낸 편지 ; DS215~216)그러다가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 의해, 교구안의 본당들을 분리시키는 데 있어 각 본당을, 본당의'고유한 목자' 인 주임 사제로써 구별 짓는 방법이 보편화되었다(24회기 결의, 13). 후에 '고유한 목자' 라는 용어는 목자의 개념에다 교회법적인 요소를 더한 것으로 이해되었으며, 그 교회법적인 요소란 목자와 그의 본당에거주하는 신자 사이의 안정적이고도 재치권적인 관계를말한다.
〔모든 신자에게 적용〕 그리스도 교회의 역사 안에서 비유적이고도 전의적인 의미에 있어서 '목자' 라는 말은전통적으로, 교회의 지도자인 두 계층 즉 주교와 사제를가리키는 칭호로 쓰여 왔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 성직자뿐만 아니라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에이르기까지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 곧 하느님 백성 전체가 목자에 비유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그 근거란 교역자(minister)를 포함하여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교사(예언자) · 사제 · 목자(왕)의 '삼중의 임무' (triplex munus)를 띠고 있다는 <교회 헌장>(Lumen Gentium)의 가르침(31항)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따르면,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위해 몸소 목자(교회 6항)가 되어 주실 것을 구약에서 이미 예고(이사 40, 11 ; 에제 34, 11-16)하셨고, 성부께로부터 파견된 성자이신 그리스도는 '영원한 목자' (Pastoraetemus, 교회 18항)로서, 세말까지 주교들이 교회 안에목자(교회 18항)로서 있기를 원하셨다. 주교단의 단장인교황은 온 교회의 목자(교회 22항)인 반면, 지역 교회를책임진 주교는 교황의 권위 아래 그가 맡고 있는 교구의"고유하고 통상적이며 직접적인 목자" (pastor proprius,ordinarius et immeddiatus, 주교 8a항)이다. 그리고 본당 주임사제는 주교의 권위 아래 사람들의 영혼을 돌보는 일을위임받고 있는, 한 본당 공동체의 '고유한 목자' (주교 30항)이다.그런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에 따르면교역자인 주교, 신부뿐만 아니라 평신도 또한 세상의 구원과 그리스도 왕국의 확장을 위해, 그들이 살고 있는 세속 안에서 그들 나름대로 수행해야 할 목자직(munuspastorale) 및 왕직(munus regium)을 지닌 사람들이다. 영원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는 자신을 낮추어 온 인류를 위해 겸허히 봉사함으로써 온 세상을 다스리는 왕이 되신분이다. 그런 그리스도의 목자직에 평신도들이 참여하여하느님 백성의 봉사직을 수행할 때 평신도들 또한, 함축적으로 '목자' 에 비유된다. 물론 그리스도만이 진정한의미에 있어 교사(magister)이자 대사제(pontifex)요 목자(pastor)이시며(교회 21항), 따라서 그분만이 유일하고도절대적인 사제직을 갖고 계신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이런 사제직이 그분에 의해 교회에 전달됨으로써 평신도를포함한 하느님의 백성 전체가 "그리스도의 유일무이한사제직" (unum Christi sacerdotium)을 공유하게 되었으니,이것이 이른바 "신자들의 공통 사제직" (sacerdotium com-mune fidelium) 또는 "평신도의 일반 사제직" (sacerdotiumuniversale laicorum)이이다(교회 10항). 이로써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유일무이한 사제직"이 갖는 '삼중의 직무' 에도아울러 참여하게 되는데, 그리스도의 삼중의 직무란 다름아닌, 교사이자 대사제요 목자이신 그리스도가 갖고계신 예언직(munus propheticum), 사제직(munus sacerdo-tale), 목자직(munus pastorale, 사목직)을 가리킨다(교회 21항). 그러므로 평신도들이 그리스도의 목자직 및 그 사목적 권한에 참여하여 수행하는 봉사직이란,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라 평신도들이 자신들의 삶의터전인 세상 안에서 공동체와 이웃을 위해 희생 · 봉사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에게로세상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을 가리킨다(교회 6항, 10~13항, 34~36항). 이런 의미에서 세상 안에서 이웃을 위해 헌신하며 봉사의 임무를 수행하는 평신도 또한, 양 떼를 위해 생명을 내놓으신 착한 목자 그리스도를 따라'목자' 에 비유되는 것이다.
Ⅵ . 목자의 영성
요한 복음 10장에 나오는 착한 목자의 비유가 곧바로예수에게 적용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양 떼를 위해 헌신하는 목자의 영성은,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당신의 생명마저 내놓은 예수 자신의 영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목자의 영성은 또한 예수의 양 떼를 맡고 있는 교회의 모든지도자들이 따르고 본받아야 할 영성일 뿐만 아니라, 세속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그들을위해 또는 서로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해야 할 평신도들의 영성이기도 하다. 첫째, 목자의 영성은 단적으로 예수의 영성이다. 예수는 양 떼를 위해 생명을 바친 '착한 목자' (pastor bonus,요한 10, 11)이자 홀로 '영원한 목자' (pastor aeternus, 교회18항)이시다.
둘째, 목자의 영성은 교회 공동체를 이끄는 교역자, 곧 교회 지도자의 영성이다. 비유적이고 전의적인 의미에 있어서 홀로 고유하게 '영원한 목자' 인 예수는, 당신의양 떼를 돌보는 데 있어 당신 일을 돕고 거들어 줄 봉사자인 일꾼들을 참으로 필요로 하였다(마태 9, 36-38 ; 루가 10, 2). 그리하여 베드로를 비롯한 당신 제자들을 양떼 가운데서 부르시어 그들에게 몸소 당신 양 떼를 돌보는 목자로서의 사명을 맡겼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 자신이 예수에게 속한 양들의 일원(마태 10, 16 ; 루가 10, 3 참조)이면서 동시에 예수의 양들에게 봉사하도록 양 떼 한가운데서 목자로 부름을 받은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이고, 그들이 따르고 본받아야 할 목자의 영성은 다름아닌,양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바친 '착한 목자' 이신 예수의 영성인 것이다.
한편 베드로의 목자상을 담고 있는 요한 복음 21장 15-19절은, 착한 목자이신 예수상을 담고 있는 요한 복음 10장 11-18절에 이어,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이 지녀야 할 목자상을 그려 주고 있다. 요한 복음 10장과 21장사이에는 구조적이고도 내적인 어떤 관련성이 있다. 왜냐하면 예수가 착한 목자의 비유를 말한 뒤 당신 자신의죽으심을 말하는 10장과, 당신 제자인 베드로에게 양 떼를 돌보는 목자로서의 사명과 권한을 맡기신 뒤 베드로가 어떻게 죽을 것인지 말하는 21장과의 사이에 구조적인 관련성이 있으며, 더 나아가 10장과 21장, 양쪽 다참된 목자의 헌신적인 삶과 그 당연한 귀결로서의 죽음사이의 내적인 관련성을 암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10장에 이어 21장은 참된 목자로서의 삶을 살다간 예수의 길을 따른 목자 베드로의 헌신적인 삶과 죽음을 암시함으로써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이 나아가야 할삶의 방향 및 그들의 영성도 아울러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셋째, 목자의 영성은 또한 하느님 백성 전체의 영성으로서, 성직자 · 수도자의 영성일 뿐 아니라 평신도의 영성이기도 하다. 특히 평신도는 세속에 살면서 자신들의형편과 처지에 따라 그들 나름대로 이웃에게 헌신하고봉사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을 영원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야 할 사명, 즉 하느님 백성 전체의 봉사직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런 의미의 봉사직을 수행하는 모든 평신도들이 따르고 체득해야 할 목자의 영성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온 인류를 위해 봉사한'착한 목자' 예수의 영성인 것이다. (-> 착한 목자 ;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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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
牧者
〔히〕 רֹעֶה · 〔그〕 ποιμήν, βόσκων · 〔라·영〕 p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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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과 당신 백성과의 친밀한 관계는 목자와 양 떼로 비유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