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마리아회 고등학교

木浦 - 會 高等學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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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마리아회 고등학교 전경.

목포 마리아회 고등학교 전경.

1974년 12월 마리아회에서 설립한 목포 지역의 유일한 가톨릭계 고등 교육 기관. 목포시 용당동 845번지 소재.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분의 뜻대로 행하며 마리아회의 창설자인 샤미나드(W.J. Chaminade) 신부의 교육철학을 실현하는 데 설립 목적이 있으며, 교훈은 "굳센믿음, 슬기로운 실천" 이다.
〔설립과 변모〕 1954년 광주교구장으로 임명된 헨리(Harold Henry, 玄海) 주교는 전후(戰後) 교구 내의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수도회를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골롬반 외방선교 수녀회, 살레시오 수도회, 천주의 성 요한 의료 봉사 수도회 등 당시 광주 지역에 진출한 수도회들은 교육 활동과 의료 활동 등을 통해서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헨리 주교는 1950년대 후반, 마리아회의 태평양 관구장인 레오나드피(Leonard M. Fee) 신부에게도 광주교구에 수도원과 학교를 개설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헨리 주교의 요청을 받아들인 마리아회는 1960년 9월 20일 3명의 마리아회회원들을 광주에 파견하였는데, 원래 교육 사업을 주요사도직으로 삼아 활동하는 마리아회는 한국에서도 마리아회 학교의 개설을 첫 번째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진출한 지 3년 만인 1963년 10월 목포 지역에 학교 부지 24,484평을 매입하고, 1965년 8월 교지(敎地) 정리및 교사 신축 작업에 착수하였다. 1966년 11월 19일 '학교 법인 목포 마리아회 학원' 의 설립 인가를 받아 토미(James Leonard Thome) 신부가초대 이사장에 취임하였으며, 착공 2년 만인 1967년 말에 교사가 완공되자 이듬해 3월 2학급 80명의 학생으로 '목포 마리아회 중학교' 를 개교하였다. 지역 내에서 좋은 평판을 얻어 4년 후에는 425명으로 학생수가 늘어났으나, 운영상의 문제와 당시 중학교에 비해 고등학교가 적은 지역적인 특성이 고려되어 고등학교로 전환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중학교는 1974년 9월 폐교 인가를 받아 1977년 2월 7회 졸업생을 끝으로 폐교되었다.1974년 12월 27일 고등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이듬해3월 6학급의 학생으로 첫 입학식을 거행한 목포 마리아회 고등학교는, 이후 꾸준히 성장하여 1976년에는 학생복지와 편의를 위해 학생용 기숙사 및 식당을 건립하였고, 1978년 1월에 고등학교 제1회 졸업식에서 239명이졸업하였다. 또한, 1979년 10월에는 24학급으로 증설하였으며, 1981년 7월에는 도서관을 증축하였다. 1996년 현재 30학급에 1,345명이 공부하고 있으며, 중학교는 폐교될 때까지 7회에 걸쳐 775명이 배출되었고, 고등학교는 19회에 걸쳐 7,431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향후 중학교의 병설을 계획 중에 있다.목포 마리아회 고등학교의 역대 교장으로는 초대 구계
선(Joseph Gossenreiter) 수사(1975. 3~1984. 3) , 2대 유진(Eugene N. Frank) 수사(1984. 3~ 1989. 2) 등이며, 1989년3월부터 현재까지 장용운(張龍云, 베네딕도)이 3대 교 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 마리아회) ※ 참고문헌  《마리아의 사도들-마리아회 25년사》, 마리아회, 85/《광주대교구 50년사》, 광주대교구, 1988. [方相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