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행동 본당

牧杏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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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소속 본당. 충북 충주시 목행동 672-1 소재.1971년 9월 15일 야현(현 교현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신설되었으며, 주보는 사도 성 베드로. 관할 구역은 충주시 목행동, 용탄동, 중원군 엄정면, 산척면, 동량면, 소태면 전역과 금릉동, 중원군 가금면 일부 지역이며, 관할공소는 엄정, 동량, 산척, 소태, 가흥, 야동 등 6개소.
〔교 세〕 1971년 1,124명, 1974년 1,295명, 1979년 1,056명, 1983년 1,256명, , 1988년 1,477명, 1991년 1,597명, 1994년 1,877명. 〔역대신부〕 초대 김광혁(金光赫) 베드로 (1971.9~1973.11), 2대 김유철(金有喆) 필립보(1973. 11~1975. 2), 3대 경덕수 (應惠秀) 레오(1975. 2~1976. 5), 4대김원택(金元澤) 프란치스코(1976. 5~1979. 5), 5대 김광명(金光明) 아우구스티노(1979. 5~1983. 5) , 6대 윤기국(尹起國) 요한(1983. 5~1987. 2), 7대 박기현(朴基賢) 실베스텔(1987. 2~1988. 6), 8대 곽동철(郭東喆) 요한 (1988. 6~1990.5), 9대 김영환(金泳煥) 프란치스코(1990. 5~1991. 11), 10대 박청일(朴靑一) 에바리스트(1991. 11~1995.2), 11대 유근배(柳根培) 예로니모(1995.2~현재).
〔설립과 발전〕 1950년대 초까지만 해도 충주시에서 북쪽으로 약 6km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던 목행동은 충주(현 교현동) 본당의 관할 구역이었다. 6 · 25 동란으로 이 지역 주민들이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자 충주 본당에서는 가톨릭 구제위원회(C.R.S.)를 통해 지급되는 구호 물자를 분배해 주었으며, 1955년 3월에는 성심농맹아(聾盲啞)학교를 설립하였다. 1961년 4월 충주 비료 공장이 준공됨에 따라 많은 인구가 이주함으로써 이지역의 교세는 크게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야현 본당의 9대 주임 킨(A. Keane, 김인선) 신부는 성심농맹아학교의 박 비안네 수녀에게 목행동으로 이주한 충주 비료 공장 기술자들의 어린 자녀들에게 교리 및 첫영성체교육을 담당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며, 10대 주임 주노 (M. Zunno, 주은로) 신부는 교세가 계속적으로 신장하자이곳에 본당 신설을 계획하고 전교 회장 이재후(안드레아)에게 성당 부지를 물색하는 한편 전교 활동도 하도록하였다. 야현 본당의 11대 주임 경덕수 신부는 현 성당부지 1538.5평을 분할 성당의 부지로 매입하였으며,이에 교구에서는 1971년 9월 15일 청주교구의 23번째본당으로 목행동 본당을 설정하였다.
〔성장 및 변모〕 본당 설정시 매입했던 62평 규모의 초가집을 임시 성당 및 사제관으로 사용한 초대 주임 김광혁 신부는, 1972년 1월 사목 협의회를 조직한 데에 이어 각종 평신도 단체들을 발족시켰으며, 3월에 상지(尙志)유치원을 개원하면서 신자 및 예비자들의 교리 교육과 유치원의 운영 등을 위하여 4월 3일에 영원한 도움의성모 수녀회 수녀들을 초청하였다. 한편 같은 해 4월 5일 착공되어 7개월 후인 10월 31일에 완공된 총면적595.04평의 성당이 완공되어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같은 해 12월 10일에는 본당 주보(週報)인 <상지의 옥좌성당 주보>가 창간되었고 도서관이 개설되었다. 본당 설정 당시 '상지의 옥좌' 였던 목행동 본당의 주보 성인은,1970년 이후 설정된 성당의 경우 마르코 복음 3장 16-19절에 언급된 열두 사도의 순서대로 정하기로 한 청주교구의 결정에 따라 '사도 성 베드로' 로 변경되었다.2대 주임 김유철 신부는 구역별 반상회를 열고 본당예산을 체계적으로 편성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빈천시오 아 바울로회를 조직하여 불우 이웃 돕기 운동을 전개하였고, 충주 시내 3개 본당 공용의 교회 묘지 조성을 위해 충주시 호암동 일대의 임야 2,000평을 매입하기도하였다. 3대 주임 경덕수 신부는 각 공소를 방문하여 직접 교리를 지도하고, 보안등과 보도 블럭 설치, 성당 내부 공사 등 성당 안팎의 각종 시설 공사에 주력하였으며,4대 주임 김원택 신부는 부임 직후부터 본당 내 전 신자들을 대상으로 신앙 연수회와 성지 순례, 체육 대회, 야외 미사 등을 개최하였다. 한편 1976년 9월에는 영원한도움의 성모 수녀회 분원이 철수되고 이듬해 3월 거룩한 말씀의 시녀회 분원이 설치되었다.신자 재교육에 주력하여 대림 시기와 사순 시기에 전신자 또는 각 단체별 특별 피정을 실시한 5대 주임 김광명 신부는, 1979년 8월 132 23평 규모의 성당 부속 건물을 완공하였으며 주일학교 교육을 활성화하고, 중 · 고등학생을 위한 하계 수련회를 개최하였다. 1979년 11월에는 <목행 주보>를 재간하였는데, 본래 이 주보는 1972년 대림 주간에 창간되어 얼마 후 휴간되었다가 1976년부터 충주 지구 6개 본당의 합동 주보로 흡수되어 발간되어 왔었다. 한편, 1980년 5월에 거룩한 말씀의 시녀회가 철수하였으며, 1981년 10월에는 본당 설정 10주년을 맞아 본당의 역사를 담은 《목행 10년사》(牧杏十年史)를 간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관내의 금가면 하담리공소에서 정약전(丁若銓, 바오로)의 묘 지석을 발견하였다.
6대 주임 윤기국 신부는 부임 직후인 1983년 9월 4일 충주 비료 공장의 폐쇄로 교세가 감소하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적극적인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다. 사목 위원 ·반장 · 공소 회장 · 신자 대표 등이 모여 본당 사목 전반에 관해 논의하는 본당 총회를 매년 개최하였으며, 연도대회 · 성지 순례 등을 실시하였고, 관할 구역 내에 거주하는 불우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하였다. 8대 주임 곽동철 신부 때에는 레지오 마리애가 특히 활성화되어 1990년 4월에 '평화의 모후 꾸리아' 가 창단되었으며, 10대 주임 박청일 신부는 1993년 3월 수녀원 및유치원 건물의 신축 기공식을 거행하고 이듬해 1월 마리아의 종 수녀회 분원을 설치하였다. 11대 주임 유근배 신부는 원아 감소로 1986년 1월부터 무기한 휴원에 들어갔던 상지유치원을 1995년 2월 26일에 재개원하였으며, 신앙 강좌를 개설하고 성지 순례 · 체육 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실시하였다. 또한, 소공동체 모임의 활성화를위해 구역별 모임을 강화하고 많은 단체를 발족시켰다. 현재 레지오 마리애 1개 꾸리아에 14개 쁘레시디움을비롯하여 60세 이상의 할머니들로 구성되어 본당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인 '소사 체칠리아회' , 남성 신자들의친목 단체인 '신우회' 등과 같은 많은 평신도 단체들이 각종 봉사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한편 1996년에는 본당 설립 25주년을 맞이하여 《목행 본당 25년사》를 편찬하였고, 수녀원과 유치원 건물의 신축 및 성당 부속 시설 등의 보수 공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또한 본당설립 30주년이 되는 2001년에는 관할 공소 중 규모가 큰 엄정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 청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목행동 교회, 《牧杏十年史》, 1981/ 천주교 청주교구청, 《청 주교구 연감》, 1995/ 천주교 목행동 교회,《목행 본당 25년사》, 1996.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