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세라트

〔스〕Montserr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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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세라트의 베네딕도회 수도원.

몬세라트의 베네딕도회 수도원.

· 스페인 동북부 카탈루냐(Cataluña) 주에 있는 산지(山地)로, 산 중턱 723m 지점에 베네딕도회의 산타 마리아데 몬세라트(Santa Maria de Montserrat) 대수도원이 있고순례자가 많은 순례지이다. 만레사(Manresa)시 남쪽, 요브레갓(Llobregat)시 동쪽에 위치한 몬세라트 산은 지중해 연안 산악 지대의 전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해발 1,235m의 성 예로니모 봉이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몬세라트는 '톱니 모양의 산' (Mons serratus)이라는 뜻으로 첨봉(尖峰)이 연이어 있고 톱으로 썰은 듯한 거대한바위 기둥들이 기묘한 형상을 이루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역 사〕 몬세라트에 대한 가장 명확한 기록은 888년십자군 전쟁 때 이 산에서 아랍인들과 전투를 벌인 위프레도(Wifredo) 백작이 산타 마리아 데 몬세라트 은수처에대해 기록한 것이다. 그 후 1023년 위프레도 백작의 증손자 리폴(Ripoll) 신부가 은수처를 확장하여 수도원을 설립하였으며, 12세기에는 목각(木刻) 성모상을 모신성당이 건축되었다. 성모상은 어두운 얼굴색으로 인해
'흑인 성모' 라는 별명이 붙여졌는데, 전설에 의하면 이 성모상은 루가가 조각한 것으로 사도 베드로가 스페인으로 가져왔다고 하며, 무어인이 지배할 때 동굴 속에 감춰져 있다가 880년에 우연히 발견되었다고한다. 12세기경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성모 발현과 기적이 있었다는소식이 당시 스페인 서북부에 있는 야고보 사도의 묘소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의 순례객들에게도 알려진 이후 남유럽 각지에서 많은 순례객 들이 찾아왔다는 기록이 전해 오고 있다. 13세기 이후카탈루냐 지방을 지배한 아라곤(Aragon) 왕국이 지중해유역의 해상 패권을 차지하자, 몬세라트의 성모는 아라곤 왕국의 전 영토 내에서 국가의 수호자로 받들어졌으며, 1409년에는 몬세라트 수도원이 대립 교황 베네딕도 13세 교황에 의해 독립된 수도원이 되었다. 15세기 들어 카탈루냐 지역의 정치 상황이 혼란스러워지자 몬세라트 수도원은 카탈루냐 독립군을 지원하였는데, 카탈루냐독립군을 진압하고 스페인을 통일한 이사벨(Isabel)과 페르난 (Fernando) 국왕 부처는, 1493년 이 수도원에 거주하던 카탈루냐 출신 수도자들을 축출하고, 수도원을왕립 발라돌리드(Valladolid) 수도원의 관리하에 두었다.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수도원은 정치적 갈등의 영향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네로스(García Jiménez deCisneros) 같은 뛰어난 수도원장이 배출되어 수도원은 더욱 번창하였고, 순례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자 국왕은 몬세라트의 성모에 대한 신앙을 스페인의 새로운식민지를 통치하는 구심점으로 활용하였고, 특히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자 몬세라트 출신의 보일(BernardoBoil) 신부를 그곳에 파견하여 신앙 전파에 힘쓰게 하였다. 보일 신부는 중남미에 파견된 첫 선교사였으며, 이후몬세라트 수도원은 중남미를 선교하는 중요한 거점 중의하나가 되었다.
1811년 프랑스의 나폴레옹군이 스페인을 침공하였을때 저항 거점이었던 몬세라트 수도원은 파괴되고 말았는데, 이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파견된 문타다스(Mun-tadas) 수도원장에 의해 오늘날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1936년 스페인 시민 전쟁 때에는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약탈되면서 다수의 수도자들이 살해당하기도 하였는데,수도원의 기능이 정상으로 회복된 것은 1939년 1월 공산당이 패망한 뒤였다. 다시 옛 영화를 되찾은 몬세라트수도원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와 사라고사의 필라르(Pilar) 성당과 함께 스페인의 3대 순례지로 손꼽히고 있다.
몬세라트 수도원을 거쳐간 성인, 국왕, 그 외의 유명한역사적 인물들은 수없이 많다. 대부분의 스페인 국왕들이 이곳을 순례하였고,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오스트리아의 페르난도 3세 등이 다녀갔으며, 카탈루냐 출신의대학자 룰리오(Ramé n Llullus)와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 그리고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그 외에 괴테, 실러, 바그너 등 예술가들도 몬세라트의 성모에게 참배하였다. 그중에서 수도원과 가장 깊은 인연을 맺은 사람은 성 이냐시오 데 로올라(Ignacio de Loyola)이다. 그는전쟁에서 부상당한 후, 이곳에 와서 차논(Juan Chanón)신부를 만나 고해성사를 받은 뒤, 세속의 기사도를 버리고 성모의 기사가 되기로 맹세하였다.
〔부설 기관〕 몬세라트 수도원의 수도자들은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인 '기도하며 일하라' (ora et labora)에 충실하여 수도와 학문을 병행하였다. 초기부터 도서관이 설립되었고, 경전을 필사(筆寫)하는 수사가 양성되었으며,수도원의 모든 역사가 기록되었다. 1499년에는 필경(筆耕) 작업과 병행하여, 유럽의 수도원 중에서 가장 일찍만들어진 인쇄소 중의 하나인 수도원 부설 인쇄소가 문을 열었다. 인쇄소 개설로 수도원의 학풍은 크게 진작되었고, 수도원을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는데, 초기에 인쇄된 책으로는 성 보나벤투라의 《그리스도의 생애》(Vita Christi)와 다수의 카탈루냐 역사서가 있다. 수사들은 신학뿐만 아니라 기타 학문 분야의 책들도 출판하여,몬세라트 수도원은 카탈루냐 지역의 문화적 · 정신적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카스텔(Castel) 수사는 《약학론》(Tratado de Phammacologia)을, 블랑코(Blanco) 신부는 《농학론》(Tratado de Agricultura)을 출판하였으며, 세네카, 치체로, 보에치오(Boecio) 등의 고전(古典)과 소호(Gonzalo deSojo)의 언어학 서적도 간행되었다. 인문학 서적도 많이발간되었는데, 브레나크(A. Brenach)의 오비디우스풍의라틴어 서사시 《삭시아》(Saxia)가 특히 유명하였다. 16세기 스페인 문화의 황금 시대가 도래하였을 때 몬세라트 수도원도 다수의 작가들을 배출하였는데, 고전 문학자 피게로아(J. de Figueroa) 신부, 종교 극작가 트루히요(Alfonso de Trujillo) , 시인 아메트예르(Ametller) 신부 등이대표적이다.
1514년에는 부르고스(Pedro de Burgos) 수도원장이 몬세라트의 역사를 집필 · 발간하였고, 이 책은 곧 프랑스어 · 이탈리아어 · 독일어로 번역되었다. 도서관장이었던솔소나(Solsona) 신부는 분석 역사 기술법에 의한 《베네딕도회사 문헌 자료집》을 편찬하였고, 게린(DeJ. Guerin)수사는 16권의 전기(傳記)를 펴냈으며, 《몬세라트 어록집》과 《카탈루냐 수도원사》도 출간되었다. 비알바(Mar-cosdeVilalba)의 지도 아래 복음 연구서 시리즈가 발간되었는데, 이 가운데 빌라(Benito Vila) 수사가 시편을 의역한 《다윗의 수금(竪琴, 하프)》이 가장 유명하다. 16세기말에는 몬세라트의 석학 요레트(Jeronimo Lloret)와 그의제자 카페야데스(Capellades) 신부와 산체스(FranciscoSánchez) 등이 몬세라트 신학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영성신학 서적들도 많이 출판되었는데, 시스네로스 수도원장의 《영성 수련》, 비스카야(Alfonso de Vizcalla)의 《영적 혼례》(1508), 후안 데 산 후안(Juan de San Juan)의 《성령론》(1540), 그리고 차베스(Pedro de Chaves)의 《막달레나의개종》(1553) 등이 발간되었다.
수도원 미술관에는 미켈란젤로, 그레코, 카라바조, 레니(G. Reni), 조르다노(L. Giordano), 리베라(J. de Ribera)를비롯하여 수도원 출신의 대표적인 화가 리치(Juan AndresRicci)의 작품 등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몬세라트 수도원은 도서관과 인쇄소 외에도 유명한 신학교와 성서 박물관 그리고 고고학 박물관을 부설 운영하였다. 특히 신학교를 중심으로 몬세라트의 성모를 공경하는 종교 음악이 크게 발달하였는데, 그중 16세기 종교 음악계를 대표하는 마르크(Juan March)가 유명하다. 현재 몬세라트 수도원은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 학교(Conservatorio)를 운영하고 있으며, 성서 박물관에는 성서의 배경이 된 각지역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현재 수사들의 학문 활동은 성서학 · 수도원학 · 신학사 · 전례학에 집중되어 있지만, 신구약 성서의 스페인어 · 카탈루냐어 번역 사업도 계속되고 있고, 격주간 기관지 《교회지》(敎會誌, Documento de Iglesia) 등 각종 잡지도 펴내고 있다. 1925년과 1965년에는 국제 전례학 대회가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개최되었다. 몬세라트 수도원의 다채로운 문화 역량은 이 수도원이 지난 10세기 동안 정성 들여 모은 도서관의 역할에 힘입은 바 큰데, 현재 상당수의 필사본 서적을 포함하여 주로 신학에 관련된 20만 권이 넘는 책을 소장하고 있다. 역대 교황들은이곳을 방문하여 '예술과 학문의 요람' , '영성 신학의 중심지' '카탈루냐의 고향' , '스페인의 빛' 이라고 칭송하였다. (→ 스페인 ; 베네딕도회)
※ 참고문헌  Enciclopedia de la Cultura Esparñola/ Encioclopedia Laroussel Breve Historia de España. 〔金洪根〕((Referenc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