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안에 성체를 모셔 둔 곳. 구약 시대에 사람들이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던 초막을 뜻한다. 감실 안에는 성체를 모신 성합(聖盒)이 있으며, 그 밑에는 성체포가 깔려 있다. 성체를 모셔 두는 장소와 방식은 각 시대와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데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성체를 안전히 보호하기 위해 집 안에 모셨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테르툴리아노(Tertullinus, 160~?)는 박해 시대에 교우들이 성체를 집으로 모시고 가서 필요할 때 영하였고(Deoratione, n. 19) , 성 치프리아노(Cypianus, 200~258)는 교우들이 성체를 모셔 두기 위한 성궤를 가지고 있었으며(De lapsis, n. 26), 성 암브로시오(Ambrosius)는 항해자들이 여행 중에 파선의 위험을 당할 경우 혹시 영성체를 못하고 임종할까 두려워서 성체를 모신 함을 가지고 승선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도 임종 위험에 있는 환자들이 반드시 성체를 영하고 임종하도록 하였고, 만일 사제가 없을 경우에는 부제라도 영해 줄 수 있도록 규정하여(13~14항) 성체를 따로 모셔 두는 곳이 계속 요구되었다.
성체를 성당에 모셔 두는 관습은 4~5세기부터 시작되었는데 주로 성물 안치소(sacristy) 또는 제단 가까이에, 이동할 수 있는 용기에 모셔 놓았다. 그 후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에서는 성체의 안전을 위해 열쇠로 잠그도록 했고 만일 소홀히 했을 경우 책임자는 3개월 간의 성무 집행 정지 처벌을 받도록 규정하였다. 16세기가 되면서 감실을 성당 중심 제단(mainal 위에 두는 것이 일반화되어 1863년 예부성(Cangregation of Rites)은 이 외에 모든 방식을 금지하였다. 현 교회법에 의하면 감실은 성당이나 경당 안,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아름답게 꾸며져 기도하기에 적합하게 설치되어야 하며(938조 2항) 모독의 위험을 최대한 예방하기 위하여 견고하고 불투명한 재료로 만들어 고정시키고, 잠그며(938조 3항) 감실 열쇠도 최대한 안전히 보존하도록 한다(938조 5항). 또한 감실 앞에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표시하고 현양하는 등불(성체등)을 항상 켜두도록 한다(940조)
미사 후 성체를 감실에 모셔 두는 목적은 첫째, 병자들에게 영성체를 시켜 주는 데에 있고 둘째, 미사 때 외에도 성체의 형상 속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흠숭토록 하는 데 있다. 때문에 감실 안에 성체를 보존하는 성당은 매일 적어도 몇 시간 동안 신자들이 성체 앞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야 하고(937조) 또 성체의 신비를 더욱 깊이 묵상하고 경배하도록 매년 적당한 기간 동안 비록 연속적은 아니라도 장엄한 성체 현시를 권장하고 있다(942조). 신자들도 성체가 모셔진 감실 앞을 지나갈 때는 깊은 절을 함으로써 존경을 표시해야 한다. (→ 전례 미술)
※ 참고문헌 《교회법전》/ 《NCE》 13/ 《DL》. 〔邊宗燦〕
감실
龕室
〔라〕tabernaculum · 〔영〕taberna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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