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타누스주의

主義

〔라〕Montanismus · 〔영〕Mont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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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 중엽 소아시아의 프리지아(Phrygia)에서 몬타누스(Montamus)에 의해 시작하여 동서방 교회에 급속도로퍼져 나갔다가 5~6세기에 사라진 이단. 몬타누스는 본래 이교도 출신이었으나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다음155~160년경 프리지아에 나타나 예언자로 자처하면서자신은 성령의 대변자이며, 요한 복음 14장 26절과 16장 7절에 약속된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 성령)가 자기 안에 육화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 자신의 추종자인 프리쉴라(Prsicilla)와 막시밀라(Maximilla)라는 두여인과 함께 종교적인 체험과 환시를 통해 방언과 예언을 하면서 성령의 신탁(神託)을 받아 전한다고 하였다.이들의 주장은 소아시아 전체로 퍼져 나갔고,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따르게 되었다. 그들은 초대 교회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 뽑힌 영적 사람, 즉 '비추임을 받은 사람들' (Iluminati)이라 자처하면서, 자기들의 집회에서 초기 교회에 넘쳤던 은사와 특은들을 새롭게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몬타누스는 물론, 프리쉴라와 막시밀라도 성령의 말씀을 직접 전하기 때문에 누구나 자기들의 명령을 조건 없이 믿고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성령이 자신안에서 말씀하신다고 자처한 몬타누스는 교회의 어떠한교계적 권위도 부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권위가성서의 권위보다 우위에 있다고 하였다. 또 막시밀라는 자기가 죽은 후에 곧바로 세상 종말이 올 것이라 예언하면서, 아우렐리우스 황제(161~180) 치하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 전쟁들은 이에 대한 예표(豫表)라고 설파하였다. 나아가 하늘에서 내려올 것이라고 요한 묵시록 21장에 예언되어 있는 새로운 예루살렘과 천년 왕국이 프리지아에 있는 페푸자(Pepuza)라는 마을에서 실현될 것이니 거기에 모여 종말을 잘 준비하고 재림하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엄격한 극기와 윤리적 생활을 하라고 설파하였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성령이 발현한다는 소문이 퍼져나갔으며, 그들의 집회에서는 무아경과 경련과 집단 히스테리 같은 비이성적이며 기이한 현상들이 일어났다.초창기의 몬타누스주의는 성령이 내려오심과 그 은사들을 강조하였을 뿐 아직 이론적 정립을 하지 못하고 다만몇 가지 행동 규범을 제시하는 일종의 성령 쇄신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그들은 동정 생활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여 결혼을 금하고, 부부라 할지라도 별거할 것을 권장하였으며, 엄격한 단식과 자선을 하고, 박해자들을 피하지 말고 신앙을 위해 용감하게 순교할 것을 권하였다. 막시밀라의 사후(179)에 세상 종말이 일어나리라는 예언이무위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몬타누스 운동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종말에 대한 광적인 기다림만 점차 감소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몬타누스주의는 로마, 갈리아, 카르타고 등 서방 교회에 전파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들은 세상 종말이나 성령의 예언에 대한 언급보다는 윤리적 엄격주의를 강조하였다. 한 세대가 지난 다음, 206년에 카르타고의 대신학자 테르툴리아노가 몬타누스주의에 빠져 들었다. 엄격하고 극단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테르툴리아노는 뛰어난 필치로 몬타누스주의의 이론을 정립하였는데, 윤리적인 엄격주의는 보존하면서 비이성적인요소들은 과감히 제거하였다. 평신도였던 그는 극단적인윤리 생활을 강조하면서, 한 배우자가 사별한 후에 재혼 하는 것은 간음과 같고, 박해 중에 피신하는 것도 배교와같은 큰 잘못이며, 배교와 살인과 간음을 저지른 죄인의경우에는 교회도 사해 줄 수 없다고 설파하였다. 또 그는 신자 공동체의 보편적인 사제직을 강조하여 반교계주의(反敎階主義)를 부르짖었다. 그러나 테르툴리아노는 몬타누스주의 이단을 개혁하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의 교단을 만들어 나갔기 때문에 이후부터는 '테르툴리아노 주의 이단' 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몬타누스주의가 신앙을 해친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소아시아의 주교들은 177년경에 교회 회의를 열어 몬타누스를 따르는 추종자들을 파문하였다. 그러나 이들이사라진 것은 유스티아누스 1세(527~565) 황제가 몬타누스주의를 금지하는 법을 공포한 뒤였다. 서방에서는 5세기의 아우구스티노 시대까지 카르타고에 테르툴리아노주의 추종자들이 존속하였다고 하지만, 5세기 후에는 사라졌다. (→ 테르툴리아노 ; 천년 왕국설 ; 이교)
※ 참고문헌  《DSp》 10, pp. 1670~1676/ P. de Labriolle, Les sourcesde l'histoire du Montamisme, Fribourg, 1910/ -, La crisi Montaniste,Paris, 1913/ H. V.Campenhausen, Die Entstehung der christlichen Bibel,Tübingen, 1968, pp. 257~268/ A. Strobel, Das heilige Land derMontamisten, Berlin, 1980/ 이형우, 《테르툴리아누스 그리스도 육신론》, 분도출판사, 1994, pp. 18~20. 〔李瀅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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