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녀(福女) '모든 어머니의 주보.' 1922년 8월 4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마젠타(Magenta)에서 매우 신심 깊은 가정의 13형제 중 열 번째로 태어난 진나 베레타는 부모로부터 가난한 이에 대한 사랑과 열정적이면서 겸손한 성격을 이어받았다. 그녀의 오빠 주세페(Giuseppe)와 알베르토(Alberto)는 신부였고 언니 비르지아니(Virgiani)는 의사 수녀였다. 이러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면서엄격한 신앙 교육을 받은 그녀는, 가톨릭 청소년 단체 등에서의 활동을 통해 신앙을 더욱 돈독하게 지니게 되었다. 밀라노 의과대학에서 공부한 후 1952년 소아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여 의사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가톨릭 여성 청년회 회장직을 맡아 피난민을 위한 구호 사업 등에도 심혈을 기울였으며, 1955년에는 피에트로 몰라(Pierto Molla)와 결혼하였다.
가톨릭 의사로서 평소 그녀는 "생명은 인간에게 신성하고 불가침적인 것이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두 생명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때, 또는 두 가치가 대치되는 상황에서 보다 나은 가치를 위한 선택이 필요하다. 그런데 제3자가 누가 더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겠는가? 아기의 생명권은 어머니의 생명권과 똑같은 것이다.의사 자신도 결정할 수 없다. 가톨릭 의사는 더욱 그렇게할 수 없다. 태중의 아기를 직접 죽이는 것은 치료 목적상의 낙태라도 중죄"라는 소신을 지니고 있었는데, 40세가 되던 1961년에 그녀는 네 번째 아기를 임신하였다가이때 자신이 자궁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망설임 없이 태아의 생명을 염려해 달라고 담당 의사에게 요청하였고, 결국 그녀는 자신을 위한 수술을 포기하였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아이가 희생되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새 자녀가 세상에 태어나도록' 하는 고귀한 선택이었다. 주변의 극심한 반대를 극복하고 1962년 4월 21일 밀라노 몬자 병원에서 딸진나 엠마누엘라(Ginna Emmanuella)를 출산하였다. 출산후 몇 시간 동안 암에 동반된 합병증이 나타났지만, 그녀는 평온하게 그 고통을 감내하였다. 4월 28일 임종의 고통 속에 자신의 집으로 옮겨진 진나 베레타 몰라는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평신도로서, 직업인으로서, 그리고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는 신앙과 삶과 직업 사이에 훌륭한 조화를 실천하였고, 죽음 이후 출생지인 밀라노 교구뿐만 아니라 전세계 신자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받아 왔다. 그녀의 고귀한 정신은 역시 자궁암을 앓던 가를라 레바티(Garlla Levati)라는 이탈리아 여성이 태아를살리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값진 결실을 맺게 하였다.레바티는 "자신과 똑같은 처지에서 기꺼이 죽음을 택하고 아기의 생명을 구한 진나 베레타 몰라의 모범에 감화되어 아기를 낳기로 결심"한 여성이었다. 의사는 암 재발로 아기를 낳을 경우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그녀에게 낙태를 하고 특수 치료를 받아 생명을 보존하든지 아니면 생명을 잃을 위험을 안고 아기를 출산하든지 양자 택일을 제안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아기를 포기할 수 없음을 간곡히 호소하였고, 그녀의 이 고귀한 선택으로 1993년에 아들 스테파노가 태어났다.
진나 베레타 몰라는 1994년 4월 29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모든 어머니의 주보' 로 복녀품에 올랐으며, 세계 교회 지도자들은 그녀의 시복에 대해 "교황이 '어머니의 주보' 로 진나 베레타 몰라를 시복한 것은 이세상에서 생명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없음을 재삼 천명한 것" 이라고 평하였다.
※ 참고문헌 tutti mi spingono ad abortire, Il Nostro Tempo, 1993. 1. 10; 2. 71 Vatican Information Service, 1994. 4. [李潤子]
몰라, 진나 베레타(192~1962)
Molla, Ginna Bere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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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