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영〕Mongolian People's Re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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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에게 십자가와 복음서를 주는 폴토 형제(위)와 칸의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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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에게 십자가와 복음서를 주는 폴토 형제(위)와 칸의 세례.

중앙 아시아 북부의 중앙 집권 공화제 국가로 정식 명칭은 '몽골 인민 공화국' . 북쪽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남쪽은 중국과 접경하고 있는데, 국토의 5분의 4가 완만한 기복의 초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부와 동부에는 거대한 고원과 사막이 있다. 면적은 156만 6,500k㎡, 인구는 230만 7,000명(1995)이며, 수도는 울란바토르(Uan-Bator)이다. 공용어는 할하몽골어이며 토착 종교는 샤머니즘이다. 13세기경 인구의 약 80%가 라마교 신자였는데, 소련과 중국 공산주의의 지배를 받으면서 혹독한 박해를 받았다.
몽골은 흉노족(匈奴族)이 기원전 3세기에 세운 제국의 중심지였는데, 4~10세기에 오르혼 돌궐족이 세력을 잡았으며, 13세기에 칭기즈 칸(Chingiz Khan, 1162~1227) 이 몽골 부족을 통일하고 타타르족을 무찌른 뒤, 중앙 아시아와 페르시아만 연안 지역 및 카프카스 남부를 차례로 정복하여 몽골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였다. 1234년칭기즈 칸의 후계자 오고타이(1229~124)가 중국 금(金)나라를 정복했고, 칭기즈 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1259~
1294)은 중국에 원(元)나라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원나라가 멸망한 1368년부터 몽골족은 수백 년 동안 자신들의 고향인 초원 지대에 갇혀 지냈고, 내부의 권력 다툼에 몰두하였다. 세력이 커져 가는 만주족에 대항하기 위해 몽골 부족을 통일한 리단 칸(1604~1634)은 부족 통합의 수단으로 라마교를 받아들였으나, 1691년 청(淸)나라에 의해 남부와 동부가 점령되고, 1759년에는 서부와 북부지역마저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 후 몽골은 내몽골과 외몽골로 나뉘어졌는데, 내몽골은 갈수록 중국화가 되었고 외몽골과의 문화적인 차이도 점점 커져 갔다. 외몽골은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난 뒤 독립을 선언하였으나 혼미한 상황이 거듭되다가, 볼세비키 정부의 후원을 받은 러시아 연합군과 합세하여 벨로루시군과 중국인들을 몰아내고 1924년 11월 26일 몽골 인민 공화국을 세웠다. 이때 내몽골과 통일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정치적 혼란과 두 지역간의 불신으로 인해 성공하지 못하였다. 북부 지역을 차지하고 있는 외몽골은 1924년에 소련의 위성 국가가 되면서 독립을 인정받은 반면, 내몽골은 중국의 통치를 계속 받다가1947년 이후 중국 자치구(自治區)가 되었다. 몽골은 1990년 1월에 국가 체제를 중앙 집권 공화제로 변경하였다.
몽골에 그리스도교가 처음으로 전파된 것은 네스토리우스파에 의해서였다. 그 후 13~14세기에 중국을 통하여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들어왔고, 1690년에는 북경교구 관할이 되었으며, 예수회가 1785년까지 복음을 전파한 후 프랑스의 빈천시오회가 그 활동을 이어받았다. 1840년에는 몽골 대목구가 설정되었고, 라마교 신자였던 가루디(Garudi, 1820~1893)가 1854년에 몽골인으로서는 최초로 사제품을 받았는데 그는 베드로 풍(Peter Fong)으로 불렸다. 1865년부터 이 지역의 선교를 담당한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성심회' (Imma-culate Heart ofMary Congregation)의 주요 활동은 내몽골에 사는 중국 이주민들을 돌보는 것이었으나, 몇몇 선교사들은 일부 몽골 부족들을 상대로 선교 활동을 하기도 했다. 선교사들은 무슬림 부흥 시기(1862~1872) 동안에 큰 고통을 받았지만, 1878년에는 심각한 기근을 겪은 오르도스(Ordos) 부족에게 선교하여 특히 큰성과를 얻었다. 천주교로 개종한 몇몇 몽골인들은 유목민 생활을 버리고 1874년에 포로발가손(Pomobalgson)에 최초로 세워진 선교회 주변에 정착해 살았으며, 1904년에는 둠다두(Dumdadu)에 두 번째 선교회 본부가 세워졌는데, 이는 1937년에 카라실리(Kharashili) 독립 선교지가 되었다. 1883년 몽골 대목구는세 개의 대목구로 분할되었으며, 분할된 대목구 중 내몽골의 남서부 몽골 대목구는 1922년에 수이위한(Suiyüan) 대목구와 닝시아(Ningsia) 대목구로 분할되었고, 1946년에 수이위한 대목구는 인근 지역을 관할하는 대교구가 되었다.
1953년경 외몽골에는 그리스도교인이 하나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1950년경까지 내몽골의 가톨릭 신자 15만 3천여 명도 거의 다 중국인들이었고, 그들 중 몽골인 신자는 1,200명에 사제 3명, 수사 1명, 수녀 10명 정도였다. 그러나, 1953년 이후의 반종교 정책 때문에 몽골에는 더 이상 외국인 선교사들이 활동할 수 없게 되었으나, 1992년에 자유화가 된 후 새로운 헌법 개정으로 예배의 자유가 허용되었고, 1992년 4월에는 몽골 정부와 바티칸과의 외교 관계도 정상화되었다. 그리고 몽골 정부는 선교회들이 국가의 발전을 돕는다면 선교회의 입국과 활동을 환영한다고 선언하였다. 1995년 현재 약 300명의 가톨릭 신자가 있으며, 선교회 1개에 수도회 소속 사제 3명과 수녀 3명이 있다. (→ 중국 ; 만주)
※ 참고문헌  J. van Hecken, 《NCE》 9, pp. 1058~1059/ Frangoise Aubin, 15, pp. 678~684/ 《EU》 Les chiffres du Monde 1994, p. 3721 Petit Robert Dictiomaire Universel des Noms Propres 2, Paris, 1988, p. 1230/ 1996 Catholic Almanac, Our Sunday Visitor Publishing Division/ 《동 아 원색 세계 대백과 사전》 13, 동아출판사, 1983, p. 2261 《한국 천주 교회 연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4.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