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스키외, 샤를르 드 스공다 Montesquieu, Charles de Secondat(1689~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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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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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

정치 철학자. 라 브레드(La Brède)와 몽테스키외의 남작(男爵). 1689년 1월 18일에 프랑스 보르도(Bordeaux) 근처의 라브레드 성(城)에서 태어나 일곱 살 되던 해인 1696년에 어머니가 사망하자 라 브레드 남작령을 받았으며, 1700년 파리 근교의 모(Meaux) 교구에 있는 오라토리오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입학하였다. 1708년 보르도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그는, 부유한 프로테스탄트 신자 잔 드 라르티그와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다. 1726년에는 숙부의 사망으로 몽테스키외 남작이란 작위와 보르도 의회 부의장직을 물려받았다. 27세의 젊은 나이에 사회적 · 재정적 안정을 얻어 1722년에 파리로 간 몽테스키외는, 1728년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gaise)의 회원이 된 후에는 외국 여행을 통해 자기 교양을 완성하고자 빈 · 이탈리아 · 영국 등지를 여행하면서 폭 넓은 친분 관계를 가졌다. 말년까지 화려한 명성이 떠나지 않았던 그는 1755년 2월 10일 파리
에서 사망하였다.
〔사회 사상〕 몽테스키외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동시에 계몽 철학자로도 분류되는 학자이다. 그는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회적 법칙에 대해서는 자연주의적이고도 세속적인 입장을 지니고 있었는데, 하느님은 자신의 고유한 법칙을 가지고 이 세상을 통치하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법칙들도 하느님과 그의 지혜와 능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그의 신앙 때문에-초창기의 저서 《페르시아인의 편지》(Lettres Persanes, 1721)가 가톨릭 교회에 던진 냉소적 입장에도 불구하고-몽테스키외는 루소(J.J.Rouseau)나 그 당시의 다른 계몽 철학자들과는 달리 당시의 사회 질서에 긍정적이고도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
자연 과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그는 사회 세계에도 자연 세계와 같은 필연적인 법칙이 존재한다고 믿고 그것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회적 법칙이 자연적 법칙과 그 성격이 다르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으며, 뉴턴(I. Newton, 1642~1727)의 기계적 법칙 개념이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선택의 자유가 있는 특수하고 영리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법칙은 운명론적이거나 결정론적인 것이 아니라, 지혜가 있는 사람들의 의도와 전략을 통해서 수정되므로 극도의 다양성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몽테스키외의 사회 사상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유명한 저서가 《법의 정신》(De I'esprit des lois, 1748)이다. 몽테스키외는 기후 · 종교 · 법 · 정부의 원칙 · 과거의 관례들 · 도덕 관습 · 예절 등 여러 가지 원인들이 사회를 지배한다고 보았고, 이것들은 하나의 체계를 이루며, 각 민족에 따라서 이 원인들 중 하나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여겼다. 예를 들어 덜 발달한 사회에서는 기후 · 물리적 환경 · 인구 구조가 더 큰 강제력을 행사하는 반면에,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사회질서의 합법성이 '법률, 도덕 관습, 예절' 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서 그는 영국, 로마, 아테네, 그리고 프랑스에 관한 비교 사회학적인 연구를 하였다.
몽테스키외는 사회 현상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인은 없다고 하면서, 사회 현상에의 체계적 접근을 강조하였다. 사회 현상을 연결하는 인과적 연결 고리는 아주 복잡하며, 사회적 강제는 아주 다양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방법론적인 섬세한 시각에서 그는 아담 스미스(A. Smith, 1723~1790)보다 한 세대 앞서서 '보이지 않는 손' 의 설명 도식을 사용해서 로마 제국의 몰락을 설명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흔히 도덕 관습의 타락만으로 설명되었던 로마 제국의 몰락을 달리 설명되고 있다. 몽테스키외는 로마 사회의 발전이 이미 그 안에 몰락의 싹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원시 로마의 법률들과 정치 체제는 도시의 성장을 유도하였으나, 로마가 세상을 정복한 후에는 그 위대함에 기여했던 요인들은 역으로 다시 쇠퇴의 원인이 되었다. 곧 로마 사회 초창기 도시의 크기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토의 제한된 성격은 국가에 큰 힘을 부여하였고, 개인들을 애국심이라는 시민적 열정속에 가두어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영토가 확장되고 그것을 보호하는 군인들의 수가 증가하게 되자 장교들은 불복종하게 되었고, 로마 도시는 증가되었으며, 거기에서 비롯되는 생계의 문제는 시민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점점 더 심한 경쟁을 가져왔다. 곧 시민과 군인들 사이에, 그리고 중심 도시와 최근에 정복된 민족들의 도시
사이에 경쟁이 생긴 것이다.
환(換)어음의 등장을 설명하는 몽테스키외의 방식도 아주 신선하다. 《법의 정신》 21권 20장을 보면, 유럽 사회에 무역이 나타나게 된 것은 이민족을 통해서였는데, 그 당시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업은 고리대(高利貸)와 동일시되었다. 그래서 이 일에는 유대인들이 종사하였는데, 인종적 편견과 경제적인 지식의 결여 때문에 유대인들은 모든 왕들과 정부의 수탈 대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은 어디에나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보낼 수 있는 환어음을 발명함으로써 수탈을 피할 수 있었다. 이 환어음의 등장 과정을 설명하면서 몽테스키외는 사회적 강제의 다양성에 대응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자원들을 효과적으로 동원할 줄 아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과 거기에서 새로운 사회 제도가 정착되는 섬세한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몽테스키외는 이러한 방식으로 사회적 통제의 다원적 성격을 보여 주려고 애쓴 선각자적인 사회학자이다. 특히 한 사회의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로 그가 꼽은 기후 · 종교 · 도덕 · 격언 · 법 등의 종합적 요인들은 현대사회학자들도 인정하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정치 이론〕 사회 구조와 정부의 유형에 관하여 몽테스키외는 독창적인 설명을 하면서 정부의 형태를 세가지로 구분하였다. 첫 번째 유형은 공화제(共和制)이다. 공화국은 준법정신과 애국심이라는 덕(德)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이것이 덕인 이유는 개인의 지나친 이익 추구의 욕심에 제한을 가하기 때문이다. 이 공화제는 다시 민주 정치와 귀족 정치로 나누어진다. '민주 정치' 는 평등에 기초한 체제이며, 이 체제에서 일반 시민들은 검소한 삶을 살고 있다. 이 사회는 이기주의를 허용하지 않고 전체 사회를 강조하는 사회이며, 이 사회의 시민들은 외부의 힘에 의해 강제되지 않고도 자연스러운 경향에 의해 공공의 이익을 존중하게 된다. 이 사회에서는 사유 재산이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며,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교역을 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특징은 분업이 발달하지 않아서 사람들은 거의 다 비슷한 산업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몽테스키외가 생각한 공화주의의 대표적 국가들은 고대 로마나 아테네 같은 도시 국가들이다. 현대적 의미의 공화제를 보지 못한 그는 민주주의가 작은 도시 국가에서만 가능한 공화제라고 굳게 믿었으며, 그것과 대립되는 '귀족 정치' 는 모든 시민들의 일치된 의사를 그 이상으로 하는 민주주의가 타락한 체제라고 생각하였다.
두 번째 유형은 군주제(君主制)이다. 이 사회는 모든 공적 · 사적인 사회 기능이 다양한 계급들과 시민들 사이에 나누어져 있다. 그래서 귀족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자신의 역할을 벗어나거나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사람이 지배하는 정치 체제를 군주제로 보았으나, 몽테스키외는 확정된 법률에 의해서 한 개인이 지배하며, 왕이 그 법을 마음대로 수정할 수 없을 때 그 제도가 군주제라고 보았다. 이 제도는 사회 계급의 존재를 전제하며, 이들이 왕의 권력 행사를 제한한다. 군주제를 지배하는 원리는 명예(名譽)로서, 이것은 신분과 지위에 따르는 의무감을 말한다. 그리스와 로마의 도시 국가들이 비록 왕권의 지배하에 있기는 하였으나, 진정한 의미의 군주제는 아니었고, 이 제도가 분명한 형태로 정착된 것은 게르만 민족의 로마 침입 이후이다. 이것은 유럽의 절대 왕권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중간 규모의 국가에서만 가능한 정치 제도라고 하였다.
군주제가 이루어지려면, 사회 계급이나 직업 집단들이 그 자신의 권력을 행사함으로써, 왕권을 견제하고 권력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여러 계급들과 사회 단체들의 권력 행사와 경쟁은 왕권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서로를 제한한다. 여기에서 몽테스키외의 권력 분립 이론이 등장하는 것이다. 곧 서로 다른 기능은 각기 다른 손에 맡겨져야 하는데, 그 이유는 어느 누구도 독주하지 않고 경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에서 계급들과 단체들은 국가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더생각한다. 그런데 군주제의 다양한 사회 조건들은 여러 계급들과 개인들 사이에 야심을 유발시키는데, 이 야심
이 계급과 개인을 움직이고 자극시키며 그들의 사회적 기능을 더 잘 수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곧 그들은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서 행동한다고 믿으면서 무의식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몽테스키외는 스미스가 《국부론》(The WealthofNaions)에서 펼친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인, 보이지 않는 손의 논리를 미리 내다보았다.
몽테스키외는 공화제와는 달리 이 군주제 사회에서 사람들이 도덕적 미덕이 없이도 위대한 일을 하며, 이러한 정치 체제가 잘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군주제에서 분업은 최대 한도로 발전되어 있으며, 여기에서 시민들은 각자의 본성에 따라 행동하면서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불평등에 기초한 사회이면서 동시에 잘 통합되지 않은 다원주의 체제가 군주제인 것이다. 이 군주제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개인의 이익을 방어하고, 지위를 방어하며, 의무의 규칙을 지키는 것이다. 이 체제에서는 국가의 법보다 귀족들간의 협의가 더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군주제는 도덕적 정당성을 결여 한 체제이면서도 역설적으로 자유로운 인간들을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체제이기도 하다. 이것이 몽테스키외가 본 유럽의 근대 국가들이며, 그가 공화국보다 군주제를 현대의 이상적인 정치 체제로 지지한 이유이기도 하다.
세 번째 유형은 '전제 정치' (專制政治)이다. 이 사회에서 분업은 존재하지 않고, 국왕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원리는 공포이며, 이 전제적 통치자에 대한 유일한 제한은 종교밖에 없다. 이 사회의 대표적인 예가 동양 사회이다. 이 사회에서는 계급은 없고 사람들은 노예 상태에서 평등하다.
몽테스키외는 유럽의 군주 국가가 시민적 자유를 허용하는 사회적 조건이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였는데, 이 모델을 영국의 입헌 군주제에서 찾았다. 그는 하나의 권력이 다른 권력을 견제할 때에만 그 국가가 자유 국가가 된다고 보면서, 영국에서 행정권은 국왕이, 입법권은 상원과 하원이 가지고 있는 점을 들었다. 그는 이 사회에서 계급들간의 갈등과 중간 단체들의 역할 속에서 사회적 균형이 이루어지며, 이 가운데에서 시민들의 정치적 자유가 보존된다고 하였다.
〔평 가〕 몽테스키외의 저작들은 사회학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첫째, 어떤 사회에나 그 국민과 사회 구조에 어울리는 사회 제도와 법률이 있다. 따라서 입법가나 사회 과학자의 역할은 그 사회에 어울리는 법률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가 소규모의 인구 집중 사회를 공화국으로 분류하고, 아주 분화된 대규모의 사회를 군주국으로 분류하며, 지나친 영토를 가지고 국왕이 임의로 통치하는 사회를 전제국으로 분류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둘째, 몽테스키외는 실증적 연구를 통해서 유럽의 여러 사회와 아시아 사회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그는 당시의 실증적 방법이 자연 과학에서나 역사학에서도 아주
초보적인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연구와 여행 기록의 검토 등을 통해서 비교 사회학적인 연구를 한 것이다.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다양한 사회를 유형(類型)과 종(種)으로 나눔으로써 각각의 종에 해당하는 사회에 있어서 정상적인 사회 생활이 어떠한 것인가를 기술하는 현대적인 형태학적(morphological) 설명을 하고 있다. 셋째, 몽테스키외 이전의 철학자들이 모든 사회 현상이 인간의 의지에 의존하기 때문에 철학자의 역할은 완벽한 사회의 이상을 제시하고, 가장 훌륭한 형태의 사회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보았던 반면에, 몽테스키외는 사회적 사실들(법, 관습, 종교)이 그 자신의 고유한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설명하는 것이 사회 과학자의 역할이라고 보았다는 점에서 사회학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사회의 법칙은 자연의 법칙과는 구분되며, 이 법칙은 인간의 본성에서 연역될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 또는 사회적 삶의 조건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밝혀 낸 것은, 사회 과학 분야에서 그가 남긴 커다란 공헌이다. → 계몽주의 ; 스미스, 아담 ; 사회)
※ 참고문헌  R. Aron, Les Etapes de La Pensée Sociologique, Paris, Gallimard, 1967/ L. Brunschvicg, Les Progrès Dans La philosophie Occidentale, Paris, F. Alcan, 1953/ E. Carcassone, Montesquieu et Le Problème de La Constitution Frangaise Au XIIIe Siècle, Paris, P.U.F., 1927/ E. Cassier, La Philosophie Des Lumières, Paris, Fayard, 1970/ Durkheim, Contribution de Montesquieu à La Constitution de La Science Sociale (1892), in E. Durkheim, Montesquieu et Rousseau, Paris, Librairie Marcel Rivière, 1953/ A.O. Hirschman, The Passions and the Interests. Political Arguments for Capitalism before its Triumph, Princeton, Princeton Univ., 1977/ W.G. Runciman, Social Science and Political Theory, Cambridge Univ. Press, 1969/ R. Shackleton, Montesquieu : A Critical Biography, New York, Oxford Press, 1961. [閔文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