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절(週間節), 초막절(草幕節)과 함께 옛 이스라엘의 3대 순례 축제 가운데 하나. 본래 무교절은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먹으며 지내던 농경민들의 순례 축제였으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급 사건이라는 역사적 구원 체험을 예배를 통해 재현해 나가면서 이 축제와 거의 같은 시기에 거행되어 온 유목민들의 과월절(過越節) 축제와 연계되어 거행되었다. 이로써 무교절은 과월절과 함께 희망과 구원에 대한 중요한 축제가 되었으며, 이스라엘의 종교 생활에 핵심적인 구원 체험 축제로 자리잡았다.
〔어 원〕 구약성서에서 누룩 넣지 않은 빵들' 이라고 흔히 번역하는 히브리어 '마초트' (מַצּוֹת)는 예외적인 단 수형을 제외하고는(레위 2, 5 ; 8, 26 ; 민수 6, 19) 항상 복수형을 취하며(50번), 이 가운데 절반(24번)이 사제계 문헌에서 발견되나 그 어원은 분명하지가 않다. 이 용어는 히브리어 '마차' (מָצָה, 짜내다)나 '마차츠' (מָצָא, 빨아먹다, 비우다), 또는 아랍어 '무츠' (muzz, 시다)나 '마차 (mazza, 빨아내다), 이집트어 '마다다' (madada, 신 우유를 마시다)에서 그 어근을 찾을 수 있다. 그 어원이 어떻든 통상 누룩이나 효모(酵母)와 같은 발효 성분을 넣지 않은 빵을 의미하며, 흔히 사막 유목민들의 음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칠십인역 성서는 이 단어를 같은 의미를 지닌 '아쥐마' (ἄζυμα)로 번역하고 있으며, 라틴어 성서는 이를 음역하여 옮겨 놓았다.
〔기 원〕 무교절 축제는 보리 추수 시기 초, 정확하게는 아빕(Abib) 월(Nisan 달) 보름부터 일주일 동안 거행되었으며, 주간절 축제는 바로 이때부터 즉 "낫이 이삭을 자르기 시작할 때부터"(신명 16, 9) 7주간을 셈하여 정하게 된다. 7일 동안 사람들은 햇곡식으로 만든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는데, 이는 곧 예년의 수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온전히 새로운 출발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축제는 햇곡식들 가운데 첫 수확이라는 특성을 지니며, 이 점은 후대의 제의(祭儀)가 첫 곡식단에 대한 제의를 세분하여 규정하게 될 때 보다 분명해진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햇곡식 축제는 밀을 추수하던 시기의 말에 거행되던 주간절이었으므로 무교절은 그 예비 축제에 불과 하였다. 결국 이 두 축제는 보리와 밀 추수 시기를 포괄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본다면 무교절은 농경 축제임이 분명하며, 첫 곡식단에 대해 레위기 23장 10절이 설명하고 있는 바와 같이 가나안 정착 후에야 가능했던 축제로 여겨진다. 이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사람들의 봄 축제를 본 뜨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사무엘 하 21장 8-9절은 기브온 사람들이 그들의 성소(聖所)에서 사울의 후손들을 처단한 사실을 전하고 있는데 그 시점이 보리 추수 시기 초, 즉 라스 샤므라(Râs Shamra)의 시(詩)가 암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비(非)이스라엘 제의 시기로 되어 있으나, 시기의 일치에도 불구하고 상호 제의 사이에 공통점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스라엘의 무교절은 늘
주간절과 연계되어 있으며 한 주간(출애 23, 15 ; 34, 18) 즉 안식일부터 다음 안식일까지 이어진 축제였다(출애 12, 15 ; 신명 16, 8 ; 레위 23, 6-8). 이는 또한 출애굽기 34장 21절이 말하는 무교절법 다음의 안식일법은 후에 삽입된 법임을 입증해 준다. 안식일법과의 이러한 관계는 그러나 이스라엘 인접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이 어떤 축제를 성대하게 지내기 위한 일정 기간뿐만 아니라, 주간과 연계되어 있는 축제라는 점을 강조함에 그 목적이 있다. 이는 무교절 축제로부터 7주간 후에 주간절 축제가 있다는 사실로 확인된다(레위 23, 15 : 신명 16, 9). 주간이나 안식일 개념이 이스라엘 밖에서는 발견되 지 않는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무교절은 비록 그 기원을 가나안 축제에 두고 있다 하더라도 도입 초기부터 이스라엘적인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구약성서〕 이스라엘 축제법에 관한 본문들은 일반적으로 모세 오경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그 전승 또한 다양하다는 점에서 모세 오경 안에서 이미 축제의 변천 과정을 엿볼 수 있으며, 이는 역사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간략한 언급이나 성서 외적인 문헌들을 통해서 입증된다. 오래된 본문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옛 종교력(宗敎曆) : 구약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력을 담고 있는 출애굽기 23장 15절과 34장 18절은 과월절이 아니라 무교절만을 언급하고 있다. 무교절 축제를 위해 사람들은 아빕월에 7일 동안 누룩 넣지 않은 빵들을 먹었으며, 이 축제는 '하그' (חַג)라고 불리는 3대 순례 축제 가운데 하나였다(출애 23, 14 ; 34, 23 참조) 열왕기 상 9장 25절은 솔로몬이 일년에 세 차례 제물을 바쳤다고 전하며, 이와 병행 문구인 역대기 하 8장 13절 (신명 16, 16 참조)은 그 세 차례를 무교절, 주간절, 초막절이라고 명시하였다. 출애굽기 34장 25절이 물론 과월절을 언급하고 있으나 이미 종교력 범위를 벗어나 있으 며, 출애굽기 23장 18절 또한 과월절을 암시하고는 있으나 이 역시 3대 순례 축제가 명기된 다음이다. 다만 이두 구절이 '하그' 를 언급하고 있음은 과월절이 '하그' 로 승격된 후의 신명기계 편집 결과로 추정된다.
신명기계 문헌 : 신명기 16장 1-8절은 그 어느 본문보다도 과월절과 무교절을 밀접하게 연결시켜 놓고 있다. 신명기 16장 1-2절과 4b-7절은 과월절 축제가 아빕월에 열렸다고는 하나 정확한 날짜가 명기되어 있지 않다. 과월절 제물로 크거나 작은 가축을 초저녁 해질 무렵 잡아바쳤으나, 아무데서가 아니라 "야훼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고르신 장소"(16, 2) 즉 예루살렘에서 이 일을 집행하여야 했다. 바로 이곳 성전에서 희생 제물을 구워 먹어야 했으며 아침이 되면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했다. 이와는 달리 16장 3-4a절과 8절은 7일 동안 펼쳐진 무교절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은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했다. 축제 마감일인 이렛날은 모든 생업에서 손을 떼고 종교 집회를 가져야 했다. 신명기는 이처럼 가족 단위의 축제였던 과월절을 국가적 축제로 격상시키고 있으며, 출애급 사건과 연결하여 누룩 넣지 않은 빵을 이집트 땅을 떠나올 때의 기억을 생생하게 하기 위한 쓴 빵' 즉 비탄의 빵으로 설명하고 있다. 과월절은 이렇게 해서 무교절과 병합되며, 이 두 축제는 이후 출애급 사건, 즉 핵심적 구원 사건을 기념하는 축제로 이어진다.
신명기계 역사서들은 이와 같은 신명기의 제의 정신에 따라 과월절과 무교절을 설명하지만 과월절에 점차 비중을 두기 시작하였다. 여호수아 5장 10-12절은 길갈 성소에서의 과월절 거행에 이어 가나안 땅의 소출을 언급하였다. 이로써 과월절은 땅의 풍요로움과 묶여 나타난다. 한편 신명기계 학자들이 그들의 문학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던 요시아 시대에 관한 열왕기 하 23장 21-23절은 무교절에 대한 언급이 없이 일찍이 어느 시대에도 거행된 적이 없었던 예외적인 과월절 축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요시아 시대의 과월절 축제에 대해 보다 상세히 보도하고 있는 역대기 하 35장 1-18절이 간략하게 나마 무교절을 언급하고 있는 점과 구분된다.
사제계 전승 : 구약성서 가운데 과월절과 무교절에 대한 가장 중요한 자료는 이 두 축제를 상세히 진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신학적 의미를 설명해 주는 출애굽기 12-13장일 것이나, 이 장은 사제계 전승(P) 이외에 여러 전승(J, E, D)이 섞여 있고, 몇몇 편집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작품이다. 출애굽기 12장 1-20절은 과월절과 무교절의 축제 시기와 그 구체적인 방법을 서술하고 있고, 12장 21-28절은 과월절 제정 및 의미 설명과 함께 이 축제를 세세대대로 이어져야 할 축제로 강조한다. 이어서 12장 29-51절은 과월절의 종교적 배경 또는 구원적 결과와 직결된 열 번째 재앙 사화를 소개한 후, 이집트 탈출 이야기와 함께 축제에 관한 세칙으로서 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 예배 공동체의 자격에 대해 밝혀 준다. 끝으로 13장 1-16절은 맏아들과 맏배 봉헌 지시, 무교절에 관한 세칙, 맏아들과 맏배 봉헌에 관한 세칙을 잇따라 전해 준다. 이 가운데 과월절과 무교절에 관한 본문들만을 떼어 본다면 성서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출애굽기 12장 21-27절은 야훼계 전승 내지 이 전승에 기초한 신명 기계 편집 결과로 보며, 13장 3-10절은 신명기계 편집으로, 그리고 12장 1-20절과 28절은 사제계 문헌으로 분류한다.
사제계 문헌인 출애굽기 12장 1-20절은 과월절(2-14절)에 이어 무교절(15-20절)을 소개한다. 과월절은 한 해의 첫 달 보름에 이루어졌으며, 이를 위해 각 집안은 이달 초열흘부터 흠이 없는 일년 된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를 마련해 두었다가 열나흗날 해질 무렵에 잡아 그 피를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上引枋)에 뿌려야 했다. 사람들은 이 희생 제물을 불에 구워 그날 밤에 먹어야 했으며, 이러한 종교적 식사 후 남은 것은 불살라 버려야 했다. 또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사람처럼 서둘러 먹어야 했으며 이때 누룩 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야 했다. 이튿날 15일부터는 무교절이 시작된다. 우선 누룩이
나 누룩 든 빵을 말끔히 치우고서 열닷새부터 스무하루 까지 이레 동안 '누룩 넣지 않은 빵들' 을 먹어야 했으며, 첫날과 이렛날은 생업에서 손을 떼고서 거룩한 모임에 참여해야 했다. 이 본문에 의하면 과월절은 무교절과는 달리 집안 축제로 거행되었음이 분명하며, 과월절 예식 중 쓴 나물과 함께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한다는 규정으로 말미암아, 즉 과월절 안에 무교절의 핵심 요소를 자리하게 함으로써 이 두 축제는 더욱 긴밀히 결합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축제의 구원사적인 가치 또한 강조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축제 및 축일 목록을 담고 있는 레위기 23장과 민수기 28-29장 또한 과월절과 무교절의 상이성을 간과하지 않으며 특히 무교절의 농경 사회적 배경을 강조한다(레위 23, 4-8 ; 민수 28, 16-25). 같은 사제계 전승을 담고 있는 에제키엘서 45장 21-24절과 에즈라서 6장 19-22절 역시 유배로부터의 귀환 이후 거행된 두 축제를 언급하면서도 이제는 이집트 탈출이 아니라 제2의 이집트 즉 바빌론으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축제로 이 해한다. 특이한 점은 이 두 본문의 경우 과월절과 무교절이 예루살렘 성전과 연계되어 있으며 가족 단위의 축제가 아니라 신명기 16장 1-8절에서처럼 국가적 축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출애급 사건 속에 역사화되어 병합된 과월절과 무교절의 구원사적인 의미는 이처럼 유배시대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가족 축제가 아니라 국가적 축제로 거행된 신명기와 요시아 시대의 과월절이 과연 전대미문의 축제였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본문은 오히려 "판관 시대 이후" (2열왕 23, 22) 또는 "사무엘 시대 이후"(2역대 35, 18) 오랫동안 경시되어 왔던 옛 관례를 되살리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여기서 과월절과 무교절의 병합 문제와, 과월절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거행해야 한다는 규정 문제를 분리시켜야 할 것이다. 이 두 축제의 병합에 관한 오래된 본문은 여호수아서 5장 10-12절에서 발견된다. 이 구절은 길갈 성소의 개별 전승으로서 과월절과 무교절은 출애급 사건의 마감과 약속의 땅 진입
을 기념하는 축제로 제시된다. 그러나 여기서의 무교절은 다른 전승들과는 달리 '이삭' 을 언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7일' 이라는 기간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으로 미루어, 이를 가나안 정착 초기에 과월절과 무교절 두 축제가 병합되었다는 증거로 내세우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가장 오래된 종교력은 과월절이 아니라 무교절만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 두 축제의 병합은 신명기 편집 초기까지 발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요시아의 종교 개혁 사화 역시 과월절만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과월절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지내야 한다는 규정에 관해서는 열왕기 하 23장 22절과 역대기 하 35장 18절이 언급하 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축제가 왕정 제도 이전에는 부족 동맹체의 중앙 성소에서 거행된 공동 축제, 또는 가나안 정착 이전에는 각 지파 축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파간의 유대 관계가 느슨해지고 예배의 중앙화가 소멸되어 나가면서 과월절은 점차 가족 축제로 변모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출애굽기 23장과 34장의 종교력이 과월절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음과 출애굽기 12장 21-27절의 오래된 야훼계 제의가 이 축제를 강조하고 있음에서 입증된다. 그러나 무교절은 주간절, 초막절과 함께 지방 성소를 향한 순례 축제로 이어져 내려왔으므로 신명기와 요시아의 종교 개혁은 과월절을 국가적 순례 축제로 되 살림과 아울러 무교절과 병합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연계시켜 놓았다. 과월절과 무교절이 거의 같은 시기에 열렸을 뿐만 아니라 과월절에 누룩 넣지 않은 빵을 먹도록 명하는 오래된 규범과, 여호수아서 5장 10-12절의 길갈 성소와 같은 지방 성소의 제의로부터 영향을 받아 기원이 서로 다른 이 두 축제가 쉽게 합쳐지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스라엘의 종교는 역사 종교이며, 이스라엘의 신앙은 당신 백성의 역사 안에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구원사에 기초한다. 아마도 이스라엘의 역사 시대 이전에 과월절이라는 하나의 유목민 축제가 있었을 것이며, 가나안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결국 이스라엘의 축제가 된 무교절이라는 농경민 축제 또한 있었을 것이다. 이 두 축제는 거의 같은 시기에 거행되어 온 축제였다. 이스라엘의 이집트로부터의 해방은 하느님의 놀라운 구원 사건이며, 이 사건은 하나의 백성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역사의 출발점이 되고 약속의 땅에 정착함으로 마감되는 사건이었다. 유목민들과 농경민들의 축제였
던 과월절과 무교절은 이렇게 구원사의 핵심 사건인 출애급 사건을 기념하는 축제로 승화되어 이스라엘 최대 축제로 남아 있다.
〔구약성서 이외의 증언〕 과월절과 무교절에 대한 언급은 구약성서 이외의 작품 속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이는 특히 유배 시대 이후 그리스도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의 축제 상황을 부분적이나마 소개해 준다는 점에서 이 두 축제의 중요성과 변천 과정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엘레판틴(Elephantine)의 파피루스 : 이스라엘의 과월절에 대한 후기 역사는 기원전 419년에 필사된 파피루스에 의해 밝혀졌다. 1906년 엘레판틴 섬에서 발견된이 파피루스는 이집트의 아르삼(Arsam) 태수 궁전에서 유대인들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유대인 관료 하나니야가 엘레판틴 섬의 유대인 공동체 책임자인 야데니야에게 다리우스 2세(423~404)의 훈령을 전하는 편지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훈령 속에서 왕은 당시 엘레판틴 섬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과월절과 무교절을 지내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비록 문헌이 훼손된 상태이기는 하나, 과월절은 열나흗날에 그리고 무교절은 열닷새부터 스무하루날까지 거행되었음을 보여 주며, 이 축제 동안의 각종 금기 사항 즉 부정(不淨), (첫 날과 이렛날의) 생업, 음주, 누룩 넣은 빵 섭취 등은 성문화된 법규가 아 니라 관례상의 규범으로서 사제계 법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희년서》(禧年書, Jubilees) 49장 : 기원전 2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희년서》는 49장에서 무엇보다도 과월절 축제 제물 봉헌에 지대한 관심을 쏟으며, 정확한 제물 살육 시기를 명시하였고, 함께 먹고 마시고 기도할 때의 기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출애굽기 12장이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제물을 통한 구원이라는 면에 초점을 맞추면서 과월절을 올바르게 지내는 사람만이 이집트에서처럼 다가올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 《희년서》는 또한 누룩 넣지 않은 빵의 축제인 무교절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으나 그 기원을 가나안 농경 사회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선조들의 삶 속에서 찾고자 하였다.
쿰란(Qumrân) : 쿰란 공동체(기원전 2세기~서기 1세기경)가 사용하였던 전례력이 일반 유대인들의 전례력과사뭇 달라 각종 축제의 날짜 파악에는 어려움이 많으나, 제11 동굴에서 발견된 "성전 두루마리"(11QTample) 17장이 과월절 제사(17, 6-9)와 누룩 넣지 않은 빵의 축제(17, 10-16)에 대해 전해 준다. 이 두루마리의 특징적인 사항들, 예를 들어 제물 준비와 봉헌을 위한 시기 지정, 20세 이상의 이스라엘인에게 제사법 적용, 성전 안뜰에서 밤에 거행할 것 등의 규정은 《희년서》 49장과 일치하고 있으면서도 몇몇 난해한 용어 및 예배 개념은 전문가들의 해설을 필요로 한다. 두루마리 17장 9절은 신명기
16장 7절의 내용을 인용하여 과월절 축제법을 설명하며, 이어서 둘째 단락인 무교절에 대한 내용(17, 10-16)이 레위기 23장 7절과 민수기 28장 26-31절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무교절은 이 달 보름부터 7일 동안 펼쳐지며, 매일매일을 위한 제물 언급에 이어 첫 날과 마지막 날은 거룩한 모임을 위한 날이므로 생업을 금해야 한다고 이 두루마리는 전하고 있다. 한편 이 두 축제의 이상적인 역사적 기원 즉 출애급 구원 체험에 대해 침묵하고 있음이 특이하나, 이는 이 두루마리가 이스라엘이 완벽한 모습으로 하느님을 섬길 때에만 가능한 미래의 구원 즉 메시아 시대를 갈망하고 있음에서 비롯된 결과일 것이다.
미쉬나(Mishna) : 사제계 법전은 성전에서의 과월절 희생 제물 살육과 가족 단위의 식사를 연계시키고 있는데, 바로 이와 같은 방법으로 70년의 성전 파괴에 이르기까지 과월절이 거행되었다. 성전 파괴 이후는 제물이 더 이상 성전에서 살육될 수 없었으므로 과월절 희생 양은 일상적인 식사로 대치되었다. 그리짐 산 정상에서 40일 동안 천막 생활을 하면서 과월절을 지내는 사마리아 인들만이 오늘날까지 유목민들의 옛 관례를 그대로 지속시켜 오고 있다. 한편 유대인들은 가족 단위의 옛 제의(祭儀) 구조를 존중하며 과월절 식사를 지켜 오고 있으나, 몇몇 새로운 요소들이 삽입되기에 이르며 이러한 사정은 유대인들의 규범서인 미쉬나의 페사힘(Pesahim)에서 발견된다. 이 규범서는 성전 파괴 이후 편집된 것이 분명하나 구전 또는 문서로 되어 있던 자료의 수집은 훨씬 이전부터 전개된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이 규범서에 의하면 성전은 아직 서있으며 그곳에서 전례가 거행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기에, 이 규범서는 그리스도 시대에 일반 유대인들이 지냈던 과월절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매우 소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이외에도 《솔로몬의 지혜》라는 작품과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학자 필로(Philo, 기원전 13~서기 54)와 역사가 요셉푸스(37~100)의 작품 속에서도 과월절과 무교절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으나, 분명한 것은 이들 작품들이 두 축제 사이의 연관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성서에 대한 비평적 연구 결과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월절은 여기서도 무교절에 병합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으나 그 고유 바탕을 결코 잃지 않으며 무교절을 공동체 축제로 열어 주는 축제로 등장한다. 또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이 두 축제를 거룩하게 지내기 위한 세부 규칙이 첨가되고, 본질적 내용은 불변한다 하더라도 축제를 통해 강조 하고자 하는 점이 조심스럽게 변화되어 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약성서와 초대 그리스도 교회〕 과월절과 최후 만찬: 신약성서는 과월절과 무교절 축제를, 특히 과월절을 '최후 만찬' 이야기와 연계시키며(마르 14, 1-51 ; 마태 26, 1-46 : 루가 22, 1-53 : 요한 11, 55 ; 12, 1 ; 13, 1-38) 그리스도를 과월절 희생 제물로 제시하고 있으나, 과월절을 무교절의 일부로 취급하거나(마르 14, 2. 12) 또는 과월절을 설명하기 위해서 무교절을 언급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루가 22, 1. 7 ; 마태 26, 17 ; 참조 : 사도 12, 3-4
; 요한 13, 1. 4 ; 18, 28). 즉 과월절과 무교절 축제 사이의 구분이 사라져 버린 듯하다. 신약성서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과월절(무교절) 축제가 되면 유대인들은 이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들었으며 친척끼리 제물을 음복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축제 시기에 대하여 공관 복음서와 요한 복음서가 상호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대다수의 성서 비평가들은 최후 만찬을 과월절 축제 전날의 만찬으로 보도하고 있는 요한 복음서를 따르고자 한다-복음서는 결국 예수의 제자들과 초대 그리스도 교회 신자들이 최후 만찬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예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이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새로운 파스카 : 복음서에 의하면 최후 만찬은 출애급 사건을 기념하는 과월절 제의 중의 식사라기보다는 이별을 눈앞에 두고 나눈 식사로 보인다. 다만 예수는 회식 전후의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라 빵을 자르고 포도주를 축복하는 이중 몸짓을 보일 따름이다. 예수의 최후 만찬은 당신 제자들과 함께 나누기를 간절히 원하였던 옛 파스카를 대신함으로써(루가 22, 15) 옛 파스카의 변형으로 마련된 새로운 파스카로 자리한다. 이 새로운 파스카는 '주님께 대한 기념' (ἀνάμνησις, 루가 22, 19 ; 1고린 11, 25 =דִּכְרוֹן, 출애 12, 14)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여기서의 '기념' 은 마음속에 머물러 있는 습성상의 회상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자기 마음속에 두고 기억하는 행위로서의 기념, 즉 이 무엇인가에 대한 전례적 재현을 말한다. 파스카의 희생 양이 된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 그분을 믿는 자들을 위한 "우리의 파스카"가 된다(1고린 5, 7). 예수가 바치신 성체는 '주어진' 당신의 몸이며, 성혈은 새로운 계약을 맺기 위하여 '흘린' 그분의 피이다(루가 22, 19-20 ; 1고린 9, 24-26). 이 신비를 기념하는 예를 행하면서 신앙인들은 또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분의 죽으심을 선포한다"(1고린 11, 26). 역사적 사건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구원 업적에 신비롭게 참여하게 함으로써이 새로운 파스카는 그 종말론적인 완성과 보증에 대한 희망을 일깨운다.
이처럼 신약성서에서 무교절은 그 축제 기간에 대한 중요성 이외에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나, 십자가 상에서 당신 자신을 새로운 파스카 제물로 바칠 그리스도가 최후 만찬 때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던 중 '빵과 포도주 를 축성하여 당신의 '몸과 피'로 남겨 주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무교절 축제의 핵심 음식이었던 '누룩 넣지 않은 빵' 과 함께 기쁨의 음식이었던 '포도주' 를 다시 만난다. 무덤에서 벗어나 온전히 새로운 삶을 열어 주는 무교절 축제는 이렇게 신약성서와 신약의 교회 안에서 모든 민족을 위한 구원 축제로 자리하며, 미사 성제를 통해 이 기쁨의 향연은 영원히 재현되어 나갈 것이다. (→ 과월절 ; 주간절 ; 초막절)
※ 참고문헌 P. Grelot, Études sur le Papyrus Pascal d'Elephantine, 《VT》 4, 1954. pp. 349~384/ H. Haag, Pâque, 《SDB》 4, pp. 1120~1149/ R. de Vaux, Les sacrifices de I'Ancien Testament, Gabalda, Paris, 1960, pp. 5~27/ 一, Les institutions de I'Ancien Testament, Tome 2, Cerf, Paris, 1967, pp. 381~395/ B.S. Childs, Exodus, OTL, SCM, London, 1982, pp. 178~214/ D. Kellerman, מָצָה, 《TWAT》 4, pp. 1074~1081/ B.M. Bokser, Unleavened Bread and Passover, 《ABD》 6, pp. 755~765/ A. Schenker, Studien zu Opfer und Kult im Alten Testament, FAT-3, J.C.B. Mohr, Tübingen, 1992. 〔金建泰〕
무교절
無酵節
〔히〕חַג הַמַּצּוֹת · 〔그〕ή έορτή τῶν ἀζύμων · 〔라〕Sollemnitas azymo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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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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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유목민들의 과월절 식사 모습(왼쪽)과 누룩 넣지 않은 빵을 굽는 오늘날 팔레스티나 지방의 화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