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無記

〔산〕avyakrtavast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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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가 그의 제자로부터 받은 세계의 상(常) · 무상(無常), 유한(有限) · 무한(無限), 영혼(靈魂)과 신체의 동이(同異), 사후 세계의 유무(有無) 등 열 가지 혹은 열네가지의 형이상학적 질문에 대해 침묵한 것을 일컫는 불교 용어. 본래의 어의는 '기술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것,' 즉 '기술하는 것도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 이라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불교에서는 형이상학적인 것은 경험을 초월한 것이므로, 어떠한 판단 · 단정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 논의는 석가가 형이상학에 대한 당시 사상계의 견해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한 것으로, 불교를 특징짓는 중요한 용어의 하나이다. 이 용어는 남방 상좌부(上座部, Theravada) 불교의 아비달마(Abhidharma) 교학에서 마음[心]을 도덕적 성질에 따라 선(善), 불선(不善, 즉 惡), 무기(無記,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것)로 나눈 경우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세밀한 불교 교의이므로 본론에서는 제외하기로 한다.
〔내 용〕 무기의 내용이 나타나는 경전은 《중부경전》 (中部經典, Majjhima Nikaya)의 <마룬캬숫타>(malun-kyasutta)이다. 이에 따르면 석가의 제자 마룬캬푸타(Malunkyaputta)는 당시 사상계에서 즐겨 논의하던 형이상학적 질문들을 제시하고, 만약 석가가 이 문제에 대하여 대답하지 못한다면 불교 교단을 떠나 세속의 생활로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석가는 '침묵' 하고 대신 독화살의 비유를 들고 있는데, 이때 마룬캬푸타가 제기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① 세계는 상주(常住)하는 것인가, 혹은 무상(無常)한 것인가. 또는 상주하면서 무상한 것인가, 상주하는 것도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닌가? ② 세계는 유한(有限)한 것인가, 무한(無限)한 것인가. 또는 유한하고 무한한 것인가, 유한하지도 않으며 무한하지도 않은가? ③ 여래(如來)는 사후(死後)에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또는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④ 영혼(jiva)은 육체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주요 논의 및 주장〕 불교에서는 이러한 물음에 대해 석가가 침묵하고, 대답하지 않았다고 하여 특별히 무기' (혹은 十無記, 十四無記)라 부르며, 이에 대한 많은 해석과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초기 불교에서는 이것을 물음에 대한 거부(拒否, denial)로 간주하였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각 학파 및 학자들은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특히 '아' (我, atman)와 '열반' (涅槃, nirvana) 그리고 '세계의 존재' 에 대하여는 매우 다양한 해석이 발견된다.
무기에 대한 이러한 논의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입장에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실천적(實踐的, practical) 입장에서 석가가 침묵하였다는 주장이다. 즉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은 불필요하고 관심도 없었으며, 심지어 수행에 방해가 될 뿐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석가가 침묵하였다는 해석이다. 둘째, 불가지론적(不可知論的, agnostic) 입장이다. 석가의 가르침과 수행 등을 고려할 때,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석가는 대답해서도 안되고, 또 대답할 수도 없었다는 주장이다. 셋째, 부정적(否定的) 혹은 전멸적(全滅的, annihilistic) 입장으로, 이러한 논의는 석가의 사유 체계에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었기 때문에 침묵하였다는 해석이다. 첫 번째의 입장이 소극적이라면 이는 매우 적극적인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어떠한 입장이 옳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다만, 이 논의가 보다 종합적으로 이해되기 위해서는 석가 당시의 사상계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와 단정들이 분분했다는 사실(불교의 입장에서 당시 異端邪說을 총망라한 62見), 불교가 이들에게 지녔던 입장(斷見, 常見, 懷疑論이라는 불교 나름의 판단), 그리고 불교 자체의 주장이 종합적으로 심층 분석되고 평가될 때, 비로소 '석가의 침묵' 이 지니는 의미가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비평 및 평가〕 '석가의 침묵' 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최소한 석가 및 초기 불교에서는 초경험적(혹은 형이상학적)인 논의 자체를 희론(戱論, prapanca)이라 하여 배척하였다. 이것은 석가 자신과 초기 불교의 기본 입장이었고, 이러한 의미에서 석가의 가르침 및 이에 기초한 초기 불교는 실천적 · 현실적인 성격을 견지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불교 고유의 특성은 '석가의 침묵' 에서 그 근원적 전형을 확인하게 한다. 석가는 분명히 형이상학적인 논의 일체에 대하여 침묵하였다. 이 침묵이 긍정인지, 부정인지, 긍정과 부정인지, 또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지는 석가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 '침묵' 을 근거로 불교를 무신론(無神論, atheism) 혹은 반신론(反神論, anti-theism)으로 규정하는 이해에는 문제가 있다. 불교의 '공' (空)이 존재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견해 및 인식에 대한 부정이라는 무르티(T.R.V. Murty)의 말처럼, '석가의 침묵'도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견해 및 인식에 대한 부정이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불교 ; 석가모니)

※ 참고문헌  Abe Masao, God, Emptiness, and the True Self, Eastern Buddhist 2, 1965, pp. 15~30/ Walpola Rahula, What the Buddha Taught, London, 1978/ E. Conze, Buddhism, its Essence and Development, Oxford, 1953/ 一, Buddhist Thought in India, London, 1962/ D. Kalupahana, Buddhist Philosophy : A Historical Ananlysis, Honolulu, 1976/ E.J. Thomas, History of Buddhist Thought, London, 1933/T.R.V. Murti, The Central Philosophy of Buddhism, London, 1960/ Yamakami Sogen, Systems of Buddhistic Thought, Callcutta, 1934. 〔吳將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