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武器

〔라〕arma · 〔영〕weap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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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활(위)과 합성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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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활(위)과 합성활.

성서에 등장하는 무기류는 그 기능별로 투척 무기, 타격 무기, 이동 무기, 방어 무기 등으로 분류된다. 석기 시대에는 대부분 돌로 만든 도끼, 석퇴, 그리고 돌칼 등이 무기의 주류를 이루었으나, 기원전 4300년 이후의 동석기 시대부터는 구리로 만든 동퇴(銅槌, copper mace-head)들이 제작되기 시작하였고, 기원전 3300년경부터는 구리에 10% 미만의 주석을 섞은 일종의 합금인 청동으로 무기를 제작함으로써 효율적이고도 전문적인 무기들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무기들은 고대 근동에서 출토된 벽화나 부조 등의 자료를 통하여 그 모양이나 사용 방법 등을 알게 되었고, 나아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하여 무기들의 실체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투척 무기〕 돌팔매 (קִּלֹא): 돌팔매는 돌을 감싸는 주머니' 와 이를 양쪽으로 연결한 가죽이나 천으로 된 두 개의 띠로 구성되어 있다. 무기로 사용하는 방법은 오른손으로 두 띠의 양끝을 잡고 왼손으로는 돌이 담긴 주머니를 잡는 준비 자세를 갖춘 뒤 이를 머리 위로 빠르게 회전시킨 후 줄의 한 끝을 놓음으로써 돌을 목표에 날리게 된다. 돌팔매의 장점은 무기의 재료를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고 또한 먼 거리에까지 돌을 날릴 수 있지만,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서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자료는 이집트의 베니하싼에 있는 한 무덤 벽화에 그려진 물매를 던지는 한 이집트인의 모습인데, 기원전 19세기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1세기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에서 다윗이 사용한 무기가 바로 돌팔매였고(1사무 17, 40-50), 기원전 700년경 조각된 니느웨 왕궁 벽의 라기스 전투부조에도 아시리아 군인들이 궁수들 뒤에서 라기스 성벽위에 있는 유대 군인들을 향하여 돌팔매를 던지는 장면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활(קשת) : 활은 시대별로 제작술의 발달에 따라 단순활, 합성활(composite bow), 석궁(cross bow) 등으로 분류된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단순활은 이미 구석기 시대 말기인 기원전 1만 년경부터 동굴 벽화에 등장할 정도로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 하지만 기원전 16세기에 들어와서 나무 · 뿔 · 짐승의 힘줄 등 다양한 재질로 만들어진 합성활의 등장으로 고대 근동의 전술사에 일대 변혁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즉 단순활의 유효 사거리가 100m 이내인 것에 비해서 합성활은 400m나 되기 때문에, 군인들은 전투 중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 합성활의 위력 때문에 갑옷을 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합성활의 가공할 만한 파괴력은 단순활과는 달리 활에 시위를 걸면 활의 굽은 쪽과는 반대편으로 휘어지면서 강력한 인장력이 생기는 데서 비롯된다. 기원전 15세기 이집트의 아멘호텝 2세가 이 합성활의 위력을 시험하기 위하여 두께가 3~4cm 되는 황소 통가죽 모양의 동괴(copper ingot)에 화살을 꽂는 장면이 카르낙의 신전 벽에 부조되어 있다. 신약 시대에 들어와서는 합성활보다 파괴력이 크면서도 위력 있는 굵은 화살도 발사할 수 있는 석궁이 개발되었다. 석궁은 경우에 따라 여러 대를 한꺼번에 발사할 수 있어서 적에게 집중적인 사격이 가능하였다.
단창(חֲנִית, dart, javelin) : 일종의 큰 화살 역할을 하는 단창은 여러 개를 전통에 갖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마다 목표를 향해 던지는 무기로, 화살과 마찬가지로 나무나 갈대로 된 몸체와 청동제의 창 날(spear-head)로 구성되어 있으며, 던지기 쉽게 창 끝에 가죽 끈이나 고리를 매달아 단창의 투척 거리를 늘리기도 하였다. 창 날은 슴베가 있어서 창대에 꽂는 형태와 창대를 덮는 형태가 있다. 단창 뒷부분에는 청동제의 덮개를 씌우기도 하는데 이 창 끝(spear-butt)은 창이 날아갈 때 좀더 빠른 속도를 지니도록 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하였다.
투석기(ballista, catapult) : 투석기는 무게 50kg까지의 돌을 발사할 수 있는 무기로서 오늘날의 대포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투석기의 투척력은 여러 겹으로 된 굵은 짐승의 힘줄 탄력에 의한 것이며, 돌의 무게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운용되었다. 기원전 8세기 유대의 우찌야는 "할을 쏘고 큰 돌을 던지는 무기를 기술자에게 고안시켜서예루살렘 성 망대들과 성 귀퉁이마다에 설치해 놓게 하였다"(2역대 26, 15). 이 복합적인 무기는 전통적인 투석기에다 창이나 활을 발사할 수 있는 일종의 석궁까지도 장착한 훌륭한 무기로 볼 수 있다. 마사다 전투(70~73)에서 사용되었던 투석기의 돌들은 아직까지도 그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다.
〔타격 무기〕 투척 무기가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사용하는 것이라면, 타격 무기는 서로가 근접한 상태에서 치고 때리고 찌르는 무기이다. 타격 무기로서 가장 원시적인 형태는 곤봉인데, 이 막대기 끝에 돌을 고정시키면 좀더 효과적이고도 파괴적인 무기인 석퇴(石槌) 곤봉이나 도끼로 변하게 된다. 처음에는 별로 구분이 잘 되지 않았겠지만 점차 막대기에 둥근 돌을 끼운 곤봉과 납작한 돌을 끼운 돌도끼로 발전되었다. 곤봉이나 도끼는 모두 손에서 잘 빠져 나가지 않게 손잡이 부분을 구부리거나 끝을 약간 굵게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
곤봉(ארָה, club) : 무기로서의 곤봉은 곤봉과 곤봉 머리(mace-head)로 구성되어 있다. 이집트의 상형 문자로는 곤봉을 '헤쥐' (Hedj)라고 불렀으며 그 모양은 끝에 돌멩이가 끼워진 모습이었다. 석기 시대에는 돌로 된 석퇴 곤봉을 주로 사용하였고, 동석기 시대(기원전 4300~3300)에는 구리로 만든 동퇴를 곤봉 끝에 끼워서 사용하였다. 동퇴의 모양은 대부분이 아래위가 약간 긴 타원형이며, 때로는 접시형의 납작한 동퇴도 발견된다. 1961년에 사해 근처 유대 광야에 위치한 미슈마르(Mishmar) 골짜기의 보물 동굴(Cave ofthe Treasure)에서 무게 110~710kg의 동퇴 240개가 발견되었는데, 동석기 시대에 팔레스티나의 고도로 발달된 구리 제련술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 동퇴들의 성분을 분석한 결과 구리 외에도 소량의 아연이 섞여 있었고 아연은 아르메니아 지방에서 수입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곤봉에 잘 결합될 수 있도록 동퇴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이러한 동퇴 곤봉들은 동석기 시대의 유일한 금속제 무기로 제조되고 사용되었다. 기원전 3000년경 조각된 나르메르 팔레트(Namer Palette)에는 이집트의 초대 왕 나르메르가 한 포로의 머리를 왼손으
로 잡고 오른손의 곤봉으로 치려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도끼(גַּרְזֶן, axe) : 곤봉이 주로 치고 때리는 무기임에 비해서 도끼는 쪼개고 자르는 무기일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의 도구로서도 자주 사용되었다. 따라서 곤봉의 머리는 무겁게 되어 있으나 도끼의 머리는 날카로운 것이 특징이다. 금속제 도끼 날은 초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3300~2250)에 비로소 제조되기 시작하였다. 도끼는 용도에 따라서 날이 긴 도끼는 주로 치고 깨뜨리는 데 사용하고 날이 짧은 도끼는 자르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성서 시대의 무기류 중에서,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대에 따른 유형적 변화가 가장 다양한 무기가 바로 도끼이다. 초기의 단순 도끼는 쉽게 만들 수 있고 용도가 다양해서 후대에까지 널리 사용되었지만, 무기로 사용된 좀더 정교한 청동제 도끼들은 시대에 따라 낫(sicle) 도끼, 초승달(cresentic) 도끼, 오리 부리(duck-bill) 도끼, 그리고 쉐프트 홀(shaft-hole) 도끼 등으로 발전되었다. 이들 모두가 초기 · 중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3300~1550)에 주로 제작된 점으로 보아 기원전 16세기의 합성활과 병거의 개발로 무기로서의 도끼의 사용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칼(חֶרֶב), dagger, sword) : 성서 시대 때 일상 생활에서는 금속제 칼보다는 손쉽게 구할 수 있고 날이 매우 날카로운 일종의 돌칼인 플린트(flint) 날이 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무기로서의 칼은 시대에 따라 청동이나 철로 만들어졌고, 용도에 따라서는 찌르는 칼과 치는 칼로 구분된다. 두 종류 모두 손잡이와 칼날로 구성되어 있으며 찌르는 칼은 보통 양날을 지닌 반면 치는 칼은 한쪽 날만있다. 또한 찌르는 칼은 곧게 뻗은 유선형인 데 비해서치는 칼은 낫과 같이 초승달 모양의 날을 지녔으며 바깥쪽의 날로 상대방을 친다. 하지만 치는 칼은 비슷한 역할을 지닌 석퇴나 동퇴, 그리고 도끼로 차츰 대체되면서 그 명맥이 끊어졌다.
장창(דֹכָּה, lance) : 장창의 모양은 단창과 비슷하지만 크기에 있어서 단창보다는 더 크고 길며, 용도에 있어서도 던지는 데 쓰이는 단창과는 달리 찌르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이 점에서 장창은 큰 칼의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단창과 마찬가지로 장창의 끝 부분도 청동제의 덮개가 씌워져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 창 끝을 무기로 사용하기도 하였다(2사무 2, 23).
공성퇴(דְּכַר בַּחִין,battering ram) : 공성퇴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아일 하마초르 (דְּכַר בַּחִין)는 "포위하는 숫양"이란 뜻이 있고, 영어 battering ram' 은 "때리는 숫양"이란 의미이다. 특별히 숫양이 등장하는 것은 숫양끼리 서로 싸울 때 앞발을 들고 일어섰다가 내려오는 강한 힘으로 앞머리와 뿔을 상대방 머리에 가격하는 모습에서 암시를 얻어 성벽을 때리는 긴 통나무의 앞 부분에 숫양 머리 모양의 금속제 덮개를 씌운 것에서 비롯되었다. 성서에서 공성퇴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의 전쟁 기록, 조각, 그리고 벽화 등을 통하여 이 지역에서 기원전 2000년경부터 성벽을 파괴하는 중요한 무기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공성퇴의 발명과 발달은 도시의 축성술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기원전 2000년 이후로 시리아-팔레스티나 지역에는 대규모의 토목 공사를 통한 요새들이 건설되었고, 기존의 도시들도 성벽을 통째로 덮어 버리는 커다란 흙더미로 둘러쌓인 요새 및 그 위에 건설된 흙 벽돌, 또는 돌로 쌓은 성벽으로 보강된 견고한 요새들이 건설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요새들의 성벽을 효과적으로 무너뜨리기 위해서 고안된 무기가 바로 공성퇴이다. 기원전 18세기에 기록된 마리(Mari)의 문서에는 공성퇴를 사용하여 7일 만에 한 성을 파괴시킬 수 있었고 심지어는 하루 만에도 성을 점령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니느웨의 산헤립 왕궁에서 발견된 부조에는 아시리아 군대가 공성퇴를 이용하여 라기스를 공격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당시 아시리아 군인들은 공성퇴의 무게를 견디기 위하여 성벽으로 접근하는 경사로 바닥을 돌판과 나무 판자로 포장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동 무기] 병거(מֶרְכָּבָה, chariot) : 병거의 발명은 말을 이용하여 고속으로 이동하면서 동시에 화살이나 단창을 날릴 수 있는 '화력과 기동' 이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성서 시대 전술사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수메르에서는 기원전 2500년경부터 당나귀가 끄는 수레가 전투에 이용되었다. 마리 문서에도 병거가 등장하는데, 빨리 달리는 말을 이용한 병거는 기원전 16세기경부터 이집트에서 대량으로 제작되어 실전에 배치되기 시작하였다. 이집트 병거의 특징은 바퀴를 두 개만 장착하여서 수메르의 네 바퀴 병거보다는 굽은 길에 잘 적응하도록 하였고 주로 두 마리의 말이 끄는 형태였다. 병거는 고삐
를 잡고 말을 부리는 마부와 활을 쏘는 궁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궁수는 당시의 첨단 무기였던 합성활로 무장하였다. 기원전 1300년경 카데쉬 전투에서의 힛타이트 전차에는 모두 세 명의 전차병이 탑승한 것으로 나타난다. 성서 시대에 불레셋 민족이 전차를 많이 활용하였고, 이들은 전차가 이동하기에 적합한 평야 지대에서 주로 전투를 벌였다. 따라서 팔레스티나 남부 지중해변에 세력권을 형성하였던 불레셋은 전차를 이용하여 북쪽의 샤론 평야를 거쳐 이즈르엘과 요르단 근처의 벳산까지 점령하였다. 솔로몬은 병거 1,400대와 군마 12,000마리를 거느렸는데 말은 길리기아(Cilicia)와 큐에(Cue)로부터 그 리고 병거는 주로 이집트로부터 수입하였다(1열왕 10,26-29). 또한 그는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하솔, 므기또,게젤 등을 증축하여 병거성으로 요새화하였다(1열왕 9, 15).
〔방어 무기〕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받을 수 있는 방어 무기는 상대적으로 무기의 발전에 자극을 받아 개발되었다. 신체 부위 중 가장 중요한 머리를 보호할 수 있는 투구가 가장 먼저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조직적인 전투에 필요한 방패도 개발되었다. 하지만 방어 무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은 바로 갑옷의 등장이었는데 이 갑옷은 합성활의 등장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합성활은 유효 사거리가 400m가 되며 안 보이는 곳에서 날아올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였기에 이에 대비해서 청동 조각판들을 가죽 끈으로 엮은 갑옷(Amour Scale)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11세기 불레셋의 골리앗은 구리로 만든 투구 · 갑옷 · 다리 보호대 등으로 무장하였고, 갑옷의 무게만 구리 5,000세겔(약 50kg)이나 되었다(1사무 17, 5-7). (→ 라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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