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토리, 루도비코 안토니오 Muratori, Ludovico Antonio(1672~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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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도비코 안토니오 무라토리.

루도비코 안토니오 무라토리.

사제. 이탈리아 역사가. 고문서 학자. 1672년 10월 12일 이탈리아의 비뇰라(Vignola)에서 태어나 1685년부터 1689년까지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다녔으며, 1689년 대학에 입학하여 1694년에 시민법과 교회법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듬해 밀라노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무라토리는 사제 직무를 수행하면서도 암브로시오 도서관 관장이며 베네딕도회 수사인 바키니(Bacchini)의 영향을 받아 고문서 연구에 몰두하였다. 이후 밀라노를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많은 학자들과 교분을 맺고 암브로시오 시대에 대해 연구한 그는, 1697년에 보르도의 성 바오로와 관련된 22개의 소논문과 미발간된 그의 4
편의 시를 수록한 《라틴 일화집》(Anecdota latina)을 출판하였다.
1700년에는 모데나에 있는 에스테(Este)의 리날도(Rinaldo) 공작에 의해 에스테 도서관 관장으로 임명되어 공작령에 관련된 문서와 고문서를 담당하였으며, 1716년에는 산타 마리아 델라 폼포사(Santa Maria della Pom-posa)의 본당 신부로 임명되어 본당 사목과 더불어 역사 연구에 전념하였다. 코마키오(Comacchio) 영토의 소유권 문제와 관련하여 《에스테 가문의 유산》(Antichità Estensi, 1717, 1740)을 발표하여 공작령의 기원을 명확하게 밝혔는데, 이 책으로 그는 역사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또한 이탈리아의 연대기를 수집하여 1723~1738년 사이에 전 27권의 《이탈리아 역사가》(Rerum italicarum scriptores)를 출판하였으며, 제28권은 그가 죽은 뒤인 1751년에 출판되었다. 5세기부터 16세기까지의 이탈리아 역사를 기록한 연대집인 이 작품에 달아 놓은 주석으로 비판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는 근대 이탈리아 역사의 사료 편찬에 기초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울러 《중세 시대 이탈리아의 풍습》(Antiquitates Italicae Medii Aevi, 1738~1743)을 출판하였으며, 현대에도 연구 지침으로 유용한 《옛 기록들의 새로운 보화》(Novus thesaurus veterum inscrip-tionum, 1743) 6권을 출간하였다. 이탈리아의 역사를 연대기로 서술한 12권의 《이탈리아 연대기》(Annali d'Italia, 1744~1749)는 이탈리아 역사를 시대별로 구분하여 각 장마다 사건을 개관(概觀)하고 거기에 대한 역사 비판을 하여 전체적인 안목으로 역사를 바라보도록 하였다. 전기(傳記)와 문학을 병행하여 수록한 이 작품으로 그는, 베네딕도 수도회의 마비용(Mabillon)의 연대기와 베네딕도 14세 교황의 역사 개념을 연결시키려고 시도하였다. 무라토리는 역사 연구 외에도 본당 사목자로서의 활동도 열심히 하였는데, 사제 피정을 주관하고 옥수들을 방문하고 병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자선 단체를 만들기도 하였다. 18세기에 중요한 영성 서적인 《첫 번째 사랑과 존재로서 그리스도교의 자선 전통》(Tratato della
carita cristiana in quanto essa e amore del prosimo, 1723)과 《그리스도인의 절도 있는 신심》(Della regolata devozione de'cristiani, 1747)에서 신심과 전례 사이의 알맞는 균형을 강조한 그는, 환상적이고 무질서한 종교 체험을 배제하면서 복음과 전승에 바탕을 둔 절도 있는 신앙을 강조하 였다. 또한 사목적인 관점에서 젊은이들과 공작의 자녀의 교육과 관련된 저서도 저술하였다. 무라토리는 1750년 1월 23일 모데나(Modena)에서 사망하여 산타 마리아델라 폼포사 성당에 묻혔다.
무라토리 단편(Fragmentum Muratorianum) : 1740년 무라토리가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도서관에서 발견하여 자신의 저서 《중세 시대 이탈리아의 풍습》에 수록한 무라토리 단편은 7~8세기경의 라틴어 사본으로, 신약성서의 정경(正經, Canon)을 밝히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작품은 본래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봅비오(Bobbio)의 옛 수도원에서 소장하던 필사본인데 성서의 권수뿐만 아니라 그 사도적 기원까지도 언급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히폴리토(Hippolytus)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첫 부분과 끝 부분이 누락되어 있으며, 히브리서와 야고보서, 그리고 베드로서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 단편의 연대와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는데, 180~200년경 사이에 로마에서 저술되었다고 여겨져 왔으나 최근에는 캄펜하우전(Albert Campenhausen)의 견해에 따라 4세기의 동방(시리아 혹은 팔레스티나) 기원설을 더 타당하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당시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2세기 사도 교부 시대의 작품인 《헤르마스의 목자》(Pastor Hermae)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기 때문에 2세기 후반에서 3세기 초의 작품으로 여기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이다. 또한 <지혜서>를 정경에 포함시키고, <요한 묵시록>과 <베드로 묵시록>을 정경 목록에 포함하는 경향은 서방 교회보다는 동방 교회의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평 가〕 무라토리는 자신의 저서와 출판물들을 통하여 당대 수많은 유럽의 학자들과 교류하였다. 박식하고 근면하며 헌신적인 학자로서 진지하게 진리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었던 그는, 전례법 · 철학 · 법 · 역사 · 과학 · 의학 등 다방면에 걸쳐 60여 권에 달하는 저서들을 출판하였다. 무라토리는 18세기의 위대한 역사가로서 오늘에도 영향을 미치는 역사 연구의 기초를 놓았으며, 연구소인 '애데스 무라토리아나' (Aedes Muratoriana)는 현재에도 그의 책들을 출판하고 있다. (⇦무라토리 단편 ; → 성서 사본 ; 신약성서 ; 교회사학)
※ 참고문헌  R. Darricau, 《Cath》 9, pp. 855~ 858/ H. Jedin, 《LThK》 7, p. 692/ A.G. O'conor, 《CE》 7, pp. 382 ~ 383/ H. Rumpler, 《NCE》 10, p. 81/ J. Schmid, Muratorischess Fragment, 《LThK》 7, pp. 692 ~ 693/ G.A. Robbins, Muratorian Fragment, (ABD》4, pp. 928 ~ 929. 〔姜秉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