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스페인에서 가장 인기를 누렸던 바로크 양식의 화가. 1617년 세비야(Sevilla)에서 태어나 이듬해 1월 1일 세례를 받았다는 것 외에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어린 시절에 고아가 되어 종교화를 그리며 생계를 꾸리다가 1642~1645년 마드리드의 왕립 미술원에서 벨라스케스(D. Velàzquez, 1599~1660)로부터 공부하였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 무리요는 당시 스페인 궁정에 소장되어 있던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루벤스(P.P. Rubens), 반 데이크(A. van Dyck)의 작품 등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마드리드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고향인 세비야로 돌아온 그는, 그 후 마드리드에서 보았던 16세기의 베네치아파와 17세기의 플랑드르파의 작품에서 받은 자극을 바탕으로 점차 자신의 양식을 추구하였으며, 세비야의 귀족 계급에서 유명한 미술가가 되었다. 그는 스페인 바로크 시기에 가장 화려한 화풍을 확립하였으며, 특히 간결하고 감상적인 주제를 사실적으로 잘 표현한 반종교 개혁 운동의 대표적인 작가로 인정받았다.
무리요가 세비야에 정착하여 작업하였던 그림들은 당시의 세비야 화가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어두운 회색조나 엄격한 자연주의가 아니라, 이탈리아나 플랑드르 작가들에서 볼 수 있는 황금색조로 온화하고 부드러운 종교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종교화에서 성모나 예수를 우아하고 자애로운 형상으로 표현하였는데, 1652년에 그린 <원죄 없으신 잉태〉(Immaculées Conceptions)에서 보듯이 부드러운 입체감을 띤 형태, 화려한 색채, 그리고 대담한 붓 놀림은 바로크 양식의 초상화로 위풍당당한 양식이며 실물보다 더 크게 그려져 있다. 무리요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성 안토니오의 환상>(Vision of St. Anthony, 1656)은 베네치아파에서 유래한 이른바 '공상적인' 표현 양식의 초기 작품이다.
1660년 세비야 미술 아카데미를 창설하고 초대 원장이 된 그는, 이후 20년 동안 웅장한 규모의 작품들을 그렸고, 1678년부터는 세비야의 고위 성직자 숙소에 연작을 그렸는데 여기에는 <술트 원죄 없으신 잉태>가 포함되어 있다. 한편 그는 거지나 부랑아를 다른 풍속화도 그렸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어린 거지>(Le Jeune Mendiant, 1650)이다.
젊은 시절에 성직자가 되기를 원하였지만 이루지 못한 대신 그의 딸은 도미니코 수녀회 수녀, 아들은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도자가 되었다. 그런 탓인지 무리요의 작품 주제에는 종교적인 것이 많다. 그의 작품은 격양된 종교적 감정보다는 따뜻하고 친숙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벨라스케스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규모나 깊이는 결여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벨라스케스나 엘 그레코(El Greco)에 이은 스페인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화가이며 소위 '스페인의 라파엘로' 라고 할 만하다. 유럽에까지 널리 명성을 얻은 최초의 스페인 화가였고, 19세기까지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다른 지역에까지 널리 알려진 유일한 스페인의 예술가였던 무리요는 1682년 4월 3일 세비야에서 사망하였다.
※ 참고문헌 H.W. Janson, A Basic History ofArt, New York : Harry N. Abrams, 1971(이일 편역, 《서양 미술사》, 미진사, 1987)/ 一,History of Art, New York : Harry N. Abrams, 2nd ed., 1977(김 윤수 외 역, 《미술의 역사》, 삼성출판사, 1987)/ 《세계 미술 대사전 : 서양 미술사I 》, 한국미술연감사, 1985, pp. 357~359/ R.J. Verostko, 10, pp. 83~84/ Dictionnaire de la Peinture, Larousse, 1991, pp. 626~627. 〔鄭泳沐〕
무리요,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Murillo, Bartolomé Esteban(1617~1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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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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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요가 그린 <술트 원죄 없으신 잉태〉(왼쪽)와 <어린 거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