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말하는 근본 번뇌. 무지(無知)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데, 참된 진리를 올바로 보지 못하고 미혹함을 일으키게 하는 근본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개념이다. 불교의 여러 경전과 사상 체계 안에서 각기 다른 의미와 방식으로 설명되고 있지만, 현실적인 인간의 고통과 악(惡)의 근원으로 지적되고 있다.
〔개 념〕 불교의 진리는 세계의 본래 모습 자체가 진리의 세계이고 평화의 세계라고 주장하는 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진리를 진여(眞如)라고 표현한다. 있는 그대로가 곧 진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새로운 진리를 찾는다든가, 저 멀리에 있는 어떤 형이상학적인 이상(理想)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런 추구들은 인간의 고통과 갈등을 심화시키는 헛되고 부질없는 시도들일 뿐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진리의 세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현상의 차별적인 모습에만 집착함으로써 세상의 온갖 번뇌와 미망(迷妄)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모든 고통과 악은 세계의 진정한 모습인 '진여' 를 올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고, 진여를 올바로 보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과 번뇌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 욕망과 번뇌의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무명' 이다.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번뇌라고 설명되는 무명은 원초적 무지 혹은 욕망과 의도적인 행위를 유발하는 원초적인 충동 · 습관 등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무명이 생겨나는 원인에 대해서는 불교에서도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그저 '홀연히' 일어난다고 한다. 일종의 습관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는 무명의 작용으로 세계의 참된 모습을 보지 못하는 미혹의 연쇄 작용이 시작되는 것이다. 따라서 참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무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 무명의 발단을 막는 방법은 스스로가 무명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존재들이 서로 상대적인 의미만을 지니는 무상(無常)한 존재들임을 깨닫는 지혜의 빛을 통해 무명의 어두움은 제거될 수 있다.
무명의 개념은 초기 불교의 12연기설(緣起說)에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불교의 12연기설은 '고(苦)로서의 인간 존재는 원인이 있다' 는 석가모니의 근본 진리로부터 나온 것으로, 동시에 그 원인의 연쇄 과정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인간의 고통도 해결할 수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원인이 있는 것은 그 원인을 제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므로, 인간의 문제도 어찌할 수 없는 영원한 숙명과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구원론적 진리를 담고 있다. 이 12연기의 순환 고리에서 '무명' 은 가장 첫머리로 설명된다. 그러나 12연기설의 본래 뜻은 고(苦)로서의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여러 측면(요소)들이 우연히 무질서하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인 규칙성 내지 법칙성을 가지고 상호 연관성 속에서 생멸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요소들이 상호 연관성 속에서 생기(生起)하기 때문에, 어느 것도 궁극적인 최초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따라서 반드시 무명으로부터 윤회(輪廻)의 과정이 시작할 필요는 없으며, 어디서 시작하든 꼭 같은 양상으로 생사(生死)의 과정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다만 12연기설에서 무명을 순환 과정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그것이 보다 근본적인 조건이며, 동시에 그것을 제거해야만 다른 것들도 따라서 제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전에 나타난 무명의 의미〕 초기 경전인 《아함경》(阿含經)에서는 불교의 진리(四聖諦)에 대한 무지라 하면서 갈애(渴愛)와 표리(表裏)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또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는 "무명을 연(緣)으로 하여 행(行)이 있게 되고 그로써 모든 고통과 집착이 쌓이게 된다. 무명이 멸(滅)함으로써 행이 멸하고 그로써 모든 고통과 집착도 멸하게 된다" 고 설명하고 있다. 가장 유력한 초기 불교 교파였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는 12연기를 과거 · 현재 · 미래 즉 삼세(三世)에 대한 설명이라 하고, 무명을 과거의 번뇌(煩惱)라고 해석하였다. 다시 말해 무명은 인간이 윤회의 영향으로 현세에 태
어나면서부터 지니게 되는 근원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번뇌 중에서 이 무명의 작용이 가장 무겁고 돋보인다고 설명한다.
《본업경》(本業經)에서는 "무명은 일체법(一切法)을 밝게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고, 《대승의장》(大乘義章)에서는 "진리를 요달(了達)하지 못하는 것이 무명이다. 무명은 어리석고 어두운 마음이며, 그 본체에는 지혜도 밝음도 없다" 고 하였다. 또한 《구사론》(俱舍論)에서는 "무명의 모습은 사성제(四聖諦, 苦 · 集 · 滅 ·道)와 삼보(三寶, 佛 · 法 · 儈), 그리고 업(業)의 결과와 원인을 모르는 데에 있다" 고 하였으며, 《유식론》(唯識) 論)에서는 "무명은 모든 사물과 이치에 대해 미혹하고 어리석은 것을 본성으로 삼고, 지혜를 결박하여 일체를 잡되고 물들게 하는 것으로 업을 삼는다" 고 하였다.
대승 불교의 교리를 통괄적으로 서술한 《대승 기신론》 (大乘起信論)에서는 무명을 불각(不覺)이라 하고, 이것을 다시 근본 무명(根本無明)과 지말 무명(枝末無明)으로 나눈다. 근본 무명은 근본 불각(不覺) 혹은 원초 일념(元初一念)이라고도 하는데, 진리에 어둡게 된 최초의 생각을 의미한다. 곧 진여평등의 진리에 통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홀연히 차별 · 대립의 생각이 일어나며, 이것을 원초라고 하는 것은 모든 번뇌와 미망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지말 무명은 지말 불각이라고도 하며, 근본 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게 또는 거칠게 일어나는 모든 허망한 생각들을 의미한다.
천태종(天台宗)에서는 무명을 삼혹(三惑)의 하나로 설명하였다. 무명은 모든 생사의 근본인 미세한 번뇌로서 일법계(一法界 : 천태 사상에서 말하는 唯一絶對의 세계로 眞如와 같은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존재의 본성이 모든 차별적인 相을 초월해서 絶對의 하나라는 진리)의 뜻을 알지 못하고 법성(法性)의 장애가 되는 미혹이라고 한다. 이 무명의 혹(惑)은 보살(菩薩)만이 끊는 것이므로 별혹(別惑)이라 하고, 외계(外界)의 생사를 받는 번뇌이므로 계외혹(界外惑)이라고도 한다. 그리하여 천태종의 4단계가르침인 화법 4교(化法四敎) 중에서 가장 높은 단계인 별교(別敎) · 원교(圓敎)의 보살만이 이 무명의 미혹을 끊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무명을 42품(品)으로 나누어 보살의 각 수행 단계에 따라 차례대로 무명을 끊어 나가는 과정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에 따르면 제51위(位)인등각(等覺)의 최후심(最後心)에 의해 묘각지(妙覺智) 곧 불지(佛智)가 나타나고 이에 의해 비로소 무명이 완전히 끊어진다고 한다. 이 최후의 무명을 원품 무명(元品無明) · 무시 무명(無始無明) · 최후품 무명(最後品無明)이라 한다.
〔선종(禪宗)의 무명〕 이처럼 무명의 개념은 초기 불교의 교설로부터 대승 불교의 심오한 교리 체계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인 개념으로 중시되었다. 이와 함께 무명을 2종 · 5종 · 15종으로 세분하는 등 다양한 설명이 시도되기도 하지만 그 기본 의미는 같다. 그러나 중국의 선종(禪宗)에서는 무명의 개념에 대해서 새로운 차원의 이해를 시도하였다. 이른바 '무명 법성 일체설' (無明法性一體說)이 바로 그것이다. 이전까지는 무명을 대략 진리 자체와는 구분되는, 진리를 가리거나 방해하는 어느 정도 개체적인 성격의 것으로 이해해 왔다. 이에 비해, 선종에서는 독자적인 개체로서가 아니라 세계의 본성 혹은
진리 자체를 뜻하는 법성(法性)과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것을 얼음과 물의 예를 들어 "무명이라는 얼음의 본성은 본래 물이다. 얼음에 미혹한 사람은 물을 가리켜 얼음이라 하고, 물에 미혹한 사람은 얼음을 가리켜물이라 한다. 법성에 미혹하다 함은 곧 무명을 가리키는 것이고, 무명에 미혹하다 함은 곧 법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만일 이 뜻을 잃어버리면 그 법에 모두 미혹하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무명의 법성을 모를 뿐 아니라, 법성의 무명도 모른다" 고 하였다. 여기서 얼음은 얼음이라고는 하지만 물로서의 본성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사람의 심성도 본래 얼음이 아니라 법성으로서의 물 이 얼어서 얼음이 된 것뿐이다. 따라서 무명은 곧 근본 깨달음인 본각(本覺)의 법성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무명 법성 일체설' 은 우리 나라 선종에도 뿌리를 내려 무심선(無心禪)을 정립하기에 이르렀고, 번뇌와 고통을 피하려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생활하라는 실천적 규범을 낳기도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원효(元曉)는 일심(一心) 이외에 다른 법이 없으나 무명으로 말미암아 일심이 미혹되어 갖가지 번뇌를 일으키게 된다고 하면서, 무명을 일종의 잠재적인 충동력과 같은 것으로 설명하였다. 즉 무명은 일심을 동요하게 하는 원초적인 힘으로, 이 무명의 충동력이 계속해서 일심의 바다에 물결을 일으킬 때 인간의 고통도 이어진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러한 불교의 무명 개념은 흔히 그리스도교의 원죄(原罪) 개념과 비교된다. 무상(無常)한 현세의 인간 존재로서 지니는 근원적인 한계, 또는 인간은 왜 끊임없이 악에 연관되면서 고통을 당하게 되는가 등 무명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무명은 양자를 연결시키기에 타당한 면이 많다고 할 수 있고, 모든 종교의 근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악의 문제와 그 원인에 대한 고찰에 있어서도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 불교)
※ 참고문헌 《阿含經》 《八宗綱要》/ 馬鳴, 《大乘起信論》 李箕永, 《元曉思想一世界觀》, 弘法院, 1967/ 《佛教大辭典》, 弘法院, 1988/ 望 月 , 《佛教大辭典》, 東京, 1974. [吳智燮]
무명
無明
〔산〕avidy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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