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소속 본당. 충남 논산군 강경읍 중앙리 228 소재. 1945년 논산 부창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성심. 관할 구역은 논산군 강경읍 · 성동면 · 채운면 대부분과 부여군 세도면 · 석성면 일부, 전북 익산군 · 망성면 일부. 소속 공소로는 망개(세도면 청포리), 개척(성동면 개척리), 언고개(세도면 가회리), 화수리(세도면 화수리), 석성(석성면 석성리) 등 5개소가 있었지만, 현재는 모두 폐지되고 망개(세도) 공소만이 유지되고 있다. 〔역대 신부〕 초대 박귀훈(朴貴勳) 요한(1946. 8~1948. 6), 2대 베르몽 율리오(1948. 6~1963. 8), 3대 블랑 요한(1963. 8~1965. 6), 4대 전해광 야고보(1965. 6~1969. 11), 5대 윤주병(尹周炳) 베드로(1969. 11~1972. 8), 6대 윤석빈(尹錫彬) 루가(1972. 8~1974. 11), 7대 고일봉(高一峯) 가브리엘(1974. 11~1977. 2), 8대 김영교(金永喬) 베드로(1977. 2~1978. 1), 9대 김기룡(金基龍) 요한(1978. 1~1982. 3), 10대 안상철(安商哲) 미카엘(1982. 3~1985. 8), 11대 조성옥(趙成玉) 요한(1985. 8~1990. 8), 12대 박상옥(朴商玉) 토마(1990. 8~현재).
〔설립과 변모〕 강경 지역은 이미 박해 시대부터 신자들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한국 교회의 순교자들 가운데는 이 지역 출신 신자들이 상당수 있다. 그러므로 신앙의 자유가 이루어지는 1884년 이후부터 이미 강경리, 움뜸(현 사제관 자리), 석교동 등 여러 지역에 공소가 설립되었는데, 이 공소들은 1897년 베르모렐(Vemorel, 張若瑟) 신부가 익산군 망성면 화산리에 나바위 본당(옛 華山本堂)을 설립하면서 여기에 속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강경 지역에는 전교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1899년에 일어난 '강경포 사건' (일명 江景敎案)이 해결되면서 교세가 더 확대되었다. 그 결과 1921년 논산 본당(현 부창동 본당)이 분리되고, 그 초대 주임으로 루블레(Rouvelet, 黃惠中) 신부가 부임하면서 강경 지역의 공소들도 대부분 여기에 속하게 되었다. 강경 지역이 논산 본당으로부터 독립하게 된 것은 이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1945년이었다. 해방을 맞이하면서 본당 인가가 순조롭게 되자 본당의 조인원(趙仁元, 빈천시오) 신부가 신자들의 원의를 받아들여 강경 지역의 분할을 교구청에 요청하였고, 이에 따라 같은 해 본당으로 설정된 것이다. 이때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귀훈 신부는 사제관도 없는 상황에서 한옥을 성당으로 삼아 본당 정착을 위하여 노력하다가1948년 8월에 전임되고, 이어 베르몽(Bermond, 睦世永) 신부가 부임하면서 본당은 안정을 찾고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베르몽 신부는 부임 후 우선 성당 부지를 마련하는 데 노력하였고, 전교 활동이나 신심 단체의 활성화에 노력하였으며, 아울러 본당 묘지도 조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1957년 성 요셉 구호 의료의원을 설립하고, 1959년 사제관을 건립하였으며, 1961년에는 현재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그런 다음 1963년 제3대 주임 블랑(Blanc, 白圭三) 신부에게 본당 사목을 이관하고 생활하다가 1967년에 선종하여 본당 묘지에 안장되었다. 본당의 성장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우선 제4대 주임 전해광(야고보) 신부는 강당(1966년)과 베르몽 신부의 기념비(1968)를 건립하였으며, 제5대 주임 윤주병(베드로) 신부는 1970년 수녀원 및 성모 유치원을 개원하고 인보 성체 수도회 수녀들을 초청하였다. 그리고 제8대 주임 김영교(베드로) 신부는 부임 즉시 강경중앙협동조합을 창설하여 2년 후에 인가를 받았고, 제10대 주임 안상철(미카엘) 신부는 1983년 유치원 · 사제관 · 수녀원을 신축하였으며, 제11대 주임 조성옥(요한) 신부는 성당 수리 및 제대를 개축하였다. 1993년 현재 본당의 사도직 단체 수는 23개, 신자수는 1,915명. (→ 강경포 사건 ; 나바위 본당) 〔車基眞〕
강경 본당
江景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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