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

無常

[산]anit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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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근본 가르침은 무상의 진리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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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근본 가르침은 무상의 진리로부터 시작한다.

불교 교리의 근본 개념 중의 하나. 이 세계의 모든 대상들은 고정 불변된 혹은 영원한 본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멸 변화(生滅變化)한다는 진리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항상' , '영원' , '불변' 등의 의미를 지니는 산스크리트어 nitya에 부정을 나타내는 접두어 a가 덧붙어 이루어진 말로 항상적이지 않은' , '영원하지 않은' , '일시적인' 등의 의미를 지닌다.
〔개 념〕 불교의 근본 가르침은 무상의 진리로부터 시작한다. 불교에서 현상 세계의 모든 존재들을 고통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이러한 무상의 진리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그 어느 것도 고정 불변한 본성이 없는 존재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에 대한 집착과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에 인간은 고통의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고통의 존재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와 평화를 얻는 해탈의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무상의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무상의 진리를 깨달았을 때 집착과 번뇌의 대상이었던 현상의 세계가 한갓 환상에 불과하였음을 깨닫고, 탐욕과 거짓에서 벗어나 우주의 본성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무차별적이고 평등한 우주의 본성을 직시할 때, 인간 자신도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무상은 초기 불교 사상을 집약적으로 담고 있는 '삼법인' (三法印)의 하나이다. 삼법인은 제행 무상(諸行無常) · 제법 무아(諸法無我) · 열반 적정(涅槃寂靜)인데, 바로 제행 무상을 통해 무상의 진리가 집중 설명되고 있다. 제행 무상은 모든 것은 변화하므로 무상하다는 것이다. 즉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바뀌어 가며, 영원 불변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도 언제까지나 젊은이로 머물러 있을 수 없고, 언젠가는 한 줌 흙으로 변해 버릴 존재라는 것이다. 즉 목숨이 있는 것은 반드시 죽으며 모든 것은 바뀌어 간다는 사실을 정확히 파악한 뒤에, 유한한 생명에서 무한한 가치를 찾아 내자는 것이 제행 무상의 의미이다.
무상에 대하여 초기 경전인 《중아함경》(中阿含經)에서는, "색(色, 모든 대상)은 무상하고, 무상한 것은 곧 고(苦)이다" 라고 하였다. 또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서는 "우리는 인연법(因緣法)에 의해서 대상 세계의 모든 것이 무상임을 알 수 있다" 라고 하였다. 인연법에 의해 존재한다는 것은 곧 모든 대상들이 고유의 독자성 없이 서로에게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지금의 존재를 받쳐 주고 있는 조건들이 변화하면 존재 자체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무상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유위법(有爲法 : 인연으로 생겨서 생멸 변화하는 物 · 心의 현상과 대상들을 통칭하는 말)은 모두 인연의 법칙에 속하기 때문에 무상이다. 본래 무(無)인 것이 지금 유(有)인 까닭에, 그리고 지금 유인 것도 후에 무인 까닭에 무상인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대지도론》의 다른 부분에서는 "모든 유위법이 무상인 것은 새롭게 생멸하기 때문이고, 인연에 속하기 때문이다. 또한 생겨날 때 그 나오는 곳이 없고, 멸할 때에 그 가는 곳이 없다. 이런 까닭에 무상이라고 이름한다" 고 설명하고 있다.
〔종류 및 특성〕 《대지도론》에 의하면 무상에는 염염무상(念念無常, 혹은 剎那無常)과 상속 무상(相續無常)이있다. 전자는 한 순간순간〔念念〕에 멸(滅)하는 것으로, 모든 유위법은 찰나(剎那)만 현재에 머무르고 곧바로 멸하여 과거로 몰입함을 나타낸다. 후자는 상속(相續)의 법이 무너져 없어지는 것, 즉 사람의 목숨이 다해서 사멸하는 것처럼 모든 유위법은 생(生) · 주(住) · 이(異) · 멸(滅)의 과정을 거쳐 결국 없어짐을 말한다. 이외에 중생무상(衆生無常), 세계 무상(世界無常), 제념 무상(諸念無常)으로 무상을 나누기도 한다. 중생 무상은 인생은 모두 무상한 것으로 결국 변화하여 소멸한다는 것이고, 세계 무상은 세상의 모든 현상은 무상하여 시시각각으로 변화하지 않음이 없고, 마지막에는 소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념 무상은 사람들의 사유 개념은 순식간에 변화함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무상은 만들어진 일체의 존재가 가지는 필연적인 상태이다. 불교에서 무상의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난해한 사상 체계를 설정하거나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끌어들여 이 세상의 문제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만물은 항상 변하며 따라서 영원한 실체로 존속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만물의 분명한 실상을 이 무상이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무상은 불규칙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에서는 어떠한 존재도 상호 관계성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결코 그것만이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다. 인(因)과 연(緣)이 서로 결합하여 생겨난 모든 현상은 무상의 법칙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모든 대상은 인과 연의 상호 결합에 의하여 생겨난다는 것, 모든 존재가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에 자존적인 실체성을 지닌 존재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이른바 불교의 연기설(緣起說)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성(緣起性) 혹은 의타성(依他性)은 바로 불교의 궁극 개념인 공(空)과 같은 내용이다. '공' 이라는 것은 자신의 고유한 존재성〔自性〕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무상의 개념은 "고 · 연기 · 공" 등과 같은 불교의 근본 개념들과 밀접히 연결되면서 불교의 진리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무상과 그리스도교〕 무상의 진리는 피조물들의 세계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성찰에도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사물의 존재 근거가 자신에게 있지 않고 다른 것에 의존한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덧없고 무상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과 서로 연관될 수 있다. 더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무상의 진리를 통해 그리스도교인들이 하느님과 사물들과의 관계를 바로 보고 바로 대하는 지혜를 얻을 수도 있다. 어떠한 사물도 하느님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어떠한 피조물도 숭배하지 말고 절대화하지 말고 집착하지 말라는 그리스도교의 진리는 불교의 무상의 진리와 더불면서 의미가 더욱 빛날 수 있는 것이다. (→ 불교)

※ 참고문헌  《阿含經》 凝然, 《八宗綱要》 上 · 下/ 梶山雄一, 《空의 世界一般若經》, 동국대학교 부설 譯經院, 1979/ 《佛敎의 知識 100》, 民族社, 1988/ 望 《佛敎大辭典》, 東京, 1974. [吳智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