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 無神論 〔라〕atheismus 〔영〕athe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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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종교가 사회적 착취의 다양한 형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의 방패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말살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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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종교가 사회적 착취의 다양한 형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의 방패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말살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신(神)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학설과 생활 태도를 총칭하는 용어. 무신론이란 낱말은 라틴어로 아테이스무스(atheismus)라고 하는데, 이 말은 그리스어의 아테오스(ἄθεος)에서 유래하였다.
I . 철학적 측면의 무신론
〔개념 및 구분〕 근대에 와서 명백해지고 체계화된 무신론은 신성(神性) 혹은 신적(神的)인 것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위격적(位格的, personal) 존재이며 인간과 우주와 구별되는 초월적인 존재이자, 창조주이며 섭리의 존재인 신을, 인간에게 자기를 나타내고 인간이기도 하고 희생을 바쳐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신을 거부하는 사상을 말한다. 이런 무신 사상은 그리스도교적 신을 믿지 않는 사상이다.
무신론은 그리스도교적 신 사상이 체계적이었기 때문에 '체계적 무신론' 으로 나타났다. 또한 여기서 '실천적 무신론' 이 나타나는데 사실 무신론은 매우 복잡한 양상을 지닌다. 실천적 무신론은 신을 인정하지만 실천 생활에서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생활 태도를 말한다. 체계적 무신론에는 '절대적 무신론' 과 '상대적 무신론' 이 있다. '절대적인 체계적 무신론' 은 신의 존재도 신성도 인정하지 않는데, 이는 세분화되어 '소극적 무신론' 과 적극적 무신론으로 나누어진다. 소극적 무신론은 신과 신적인 것을 무지에 의해 거부하는 경우(J.J. Rousseau)와 무관심에 의하여 신을 거부하는 형태(M. Heidegger, B. Croce)가 있다. '적극적 무신론' 은 어떤 이유를 제시하여 신과 신적인 것을 거부한다(Epikuros, J.O. de La Mettrie, L.A. Feuerbach, K. Marx, F. Nietzsche, M. Stirner). 이런 적극적 무신론에 '전투적 무신론' 이 첨가된다. 전투적 무신론은 마르크스주의의 무신론을 지칭하는 것으로, 마르크스주의가 종교를 아편으로 규정하면서 종교 말살을 주장하고 실천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상대적인 체계적 무신론' 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지만 신성과 신적인 것은 인정한다. 이런 무신론에는 불가지론자, 범신론자(B. de Spinoza), 이신론자(理神論者) 즉 자연신론자 등이 속한다. 이 밖에도 인간은 신을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을 창조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자만 자족적 무신론' 과, 인간의 자유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신을 부정해야 한다는
'요청적 무신론' , 신의 문제는 제기할 필요조차 없다는 '무관심적 무신론' , 악 또는 불행의 존재 때문에 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무신론 등이 있다.
〔역사적 고찰〕 무신론의 기준에 따라 무신론의 범주도 달라진다. 전통적 그리스도교 신관에 근거한다면 불교·유교 등을 비롯하여 자연주의, 범신론, 불가지론, 실증주의, 실용주의 사상 등과 그리스도교적 초월 사상을 거부하는 모든 주의와 사상이 무신론의 범주에 든다. 그러나 신관을 더 폭 넓게 본다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고, 시대적 양상 여하에 따라 무신론의 양태가 달리 나타나기도 한다. 여기에 무신론의 모호성과 난점이 있다.
고대와 중세 : 무신론의 형태는 그리스 철학 초기에 나타났으며 그 후에도 무신 사상은 계속되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그리스 초기의 원자론자(原子論者)들과 소크라테스 이후의 견유(犬儒)학파, 에피쿠로스주의자 등이었다. 그리스도교가 지배하였던 중세 서유럽 사상의 흐름 속에서도 무신론적 요인은 깊이 잠재해 있었는데, 이는 형이상학의 파괴와 인간 각자의 지성 부정, 인과 원리 부정, 그리고 감각적 경험 직관만을 수용하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흐름의 주도적인 역할은 아베로에스주의(Averoism), 특별히 라틴 아베로에스주의(Latin-Averroism)와 사르트르 학파, 유명론(唯名論)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여기에 플라톤주의가 더해져 범신론적 학설도 대두되었다. 이런 사상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아베로 에스, 브라반트의 시제 (Siger de Brabantia) , 니콜라우스 데울트리쿠리아(Nicolaus de Ultricuria), 알마리쿠스 데 베네(Almaricus de Bene), 다비드 데 디난토(David de Dinanto) 등이었다. 비록 이들의 주장은 교회로부터 단죄를 받았으나, 이들의 학설은 근대의 감각 경험론적 유물론적 무신론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 사람인 캄파넬라(Thomas Campanella) 역시 무신론자 계열로 여겨진다.
근대와 현대 : 근대에 이르러 무신론의 적극적인 양태는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R. Descartes)의 사상에서 그 영향을 받았다. 그는 명석 판명한 이념을 추구하여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to, ergo sum)는 명제를 정립시켰다. 이렇게 그는 진리의 근거를 자명성과 사고하는 주체의 사유에서 인정하였다. 이런 내재(內在)로의 사고 특히 '코지토' (cogito)는 그 후 3세기 동안 합리론, 경험론, 관념론, 실증주의, 유물론, 현상론, 실존주의, 분석 철학, 해석학, 구조주의 등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의 무신 사상을 산출하였다. 그래서 데카르트의 학설은 세계에 대한 그의 기계론적 인식 때문에 무신
론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모든 자연적 현상을 물질과 운동과 그 법칙으로 설명하였다. 이때 처음으로 명시적 무신론' 을 주장한 사람이 베일(P. Bayle)이었는데, 이런 사상적 흐름은 이신론과 경험론에도 영향을 미쳤다. 영국 경험론은 실체에 대해 불가지론 내지는 거부의 입장을 취하며 물질계에 지각하고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가정을 세웠다(J. Locke) 이러한 사상의 흐름은 프랑스의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Voltaire)와 영국의 자유 사상가 톨런드(J. Toland)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물질적 질료에 생기(生氣)를 인정하여 물질적 질료의 자체 충족성을 인정하게끔 시대 사조를 이끌어 갔다. 이런 사고는 계몽주의 시기의 무신론의 핵심이었다.
18세기의 무신론은 '요청적 무신론' 의 형태를 지니며 이런 무신론은 프랑스 계몽주의자 라 메트리(J.O. de La Mettrie), 돌바크(P.H. D Holbach) 등에 의해 체계적이고 아주 명시적으로 표현되었다. 돌바크는 무신론자를 '인류에게 해로운 환상과 망상적인 존재를 파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유물론적 체계를 형성하고 모든 것을 원자와 원자의 운동으로 환원시켰다. 즉 신(神) 사상은 무익하고 해로운 가설에 불과하며, 무신론은 인간 행복의 기초라고 생각하였다. 라 메트리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원리를 인간에게 적용하여 인간의 영양 생활, 감각 생활, 더 나아가서는 심리 생활 등 인간의 전 생활을 신경 계통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하였다.
독일 계몽주의는 초자연주의를 반대하여, 즉 관찰할 수 있는 우주를 넘어선 존재에 대한 믿음을 부정하고 자연의 자족성만을 인정하였다. 선험적 혹은 비판적 관념론의 창시자인 칸트(I. Kant)도 계몽주의적으로 생각하여 신의 존재는 순수 이성에 의해 증명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다만 신은 실천적인 면 즉 윤리적인 면에서 요청될 뿐이다. 무신론적 사상은 18세기에 이르러 더욱 강력하고 완전하게 표현되었으며, 이런 흐름은 결국 근대의 사상을 인간 중심주의로 이끌어 갔다. 야코비(F.H. Jacobi)는 무신론자라는 비난에서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무신론은 17세기의 합리론자인 스피노자(B. de Spinoza)에게서 영향을 받은 학설이라고 비난하였다. 또한, 그는 피히테(J.G. Fichte)와 셀링(F.W.J. von Schelling)도 무신론자로 비난하였는데, 그것은 셀링이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아 신의 개념을 세계의 절대적 산출성과 신성한 근원적 힘으로서의 자연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스피노자의 영향은 19세기의 관념론자인 헤겔(G.W.F. Hegel)에게 핵심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헤겔의 사상에는 무신론의 두 가지 요소가 이미 내재해 있었다. 첫째는 종교와 종교
적 진리의 속성을 순수 개념 즉 철학과 비교하여 보다 낮은 표상이나 과정에 귀속시킨 것이고, 둘째는 자연과 역사의 양태에 신의 내재를 이루어 놓은 것이었다. 신은 세계 내의 모든 것 안에서 자신을 제시한다. 따라서 신은 세계 없이 신이 아닌 것이다. 헤겔 좌파에 속한 포이어바흐(L.A. Feuerbach)는 적극적 무신론의 창도자였다. 그는 모든 인식의 근원을 감각적 직접성에서 설명하였다. 그리고 신에 대한 인식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본질을 무한화한 것 외의 다른 것이 아니며, 그것을 종교의 대상으로 삼는다. 종교는 논리적이거나 존재론적 실재를 가진 것이 아니라 순전히 심리적 실재성을 가질 뿐이며 환상적 인 것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한 것이며 인간은 환상으로 신을 창조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포이어바흐의 신관은 "사람이 사람에게 신이다"로 표현된다. 이 밖에 독일의 실증주의자와 19세기의 일원론자들인 뷔히너(L. Büchner) , 몰레스호트(J.Moleschott), 헤켈(E. Haeckel) 등도 무신론자 계열이다.
포이어바흐의 인간학적 무신론이 정적(靜的)인 감각주의에 국한되어 있고 종교와 신 개념의 발생에 관한 설명이 관념적이며 심리적인 반면에, 마르크스주의는 순전히 물질적 구성체로서의 인간에 주목하면서 종교를 물질적 조건과 사회적 실재의 기초 위에서 고찰하였다. 포이어바흐는 헤겔의 주장과 같이 종교를 의식의 내면성에서 설명하였기에 종교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은 종교의 기원과 사고 일반의 기원을 사회적 관계 혹은 자본주의의 경제적 압력에서 고찰하였다. 즉 사고는 역사적 산물이며 사고 형태의 다양화는 사적(史的) 특수 조건에 의 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사실 종교는 인간 생산 활동의 발전 과정에 있어 보다 낮은 단계에서 역사적으로 제약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종교는 원(原)사회의 형태를 지닌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종교가 사회적 착취의 다양한 형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의 방패 역할을 한다는 측면에서 말살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종교는 인간 본질의 환상적 실현이며 인간 본질은 종교 안에서 어떠한 참된 실재도 갖지 못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종교적 소외를 사회적 성격으로 보았다. 그래서 종교는 불행으로 눌린 피조물의 탄식이며, 마음 없는 세계의 심정이며, 정신 없는 시대의 정신인 동시에 인민의
아편이다. 인민의 환상적 행복인 종교의 탄압은 참된 행복의 요청이다. 종교의 비판은 법의 비판, 신학의 비판, 정치의 비판 등이 된다. 그는 이런 비판의 결과를 인간 해방이라고 하였고, 결국 종교는 생산 관계의 한 현상 즉 상층 구조의 한 현상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다원(C. Darwin)은 자연사(自然史)의 과학적 체계를 발전시켜 유대-그리스도교적인 창조주 하느님 교의에 크게 도전하였다. 또한 프로이트(S. Freud)는 정신 분석학에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는데, 그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유년기로의 후퇴를 가져온다고 여겼으며, 이런 상태에서 무력한 인간은 위안을 주는 아버지상을 원한다고 주장하였다.
니체(F. Nietzsche)는 신의 부재를 이론적으로 논증하지는 않았다. 그는 신 존재 개념은 가장 유해하고 인간의 생명력에 치명적인 작용을 하며, 신의 비존재는 인간 생명의 요청이며, 신(神) 신앙은 자연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런 신앙은 생명의 적이며 신 신앙은 인간의 절대적 독립성에 위배된다고 생각하였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표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논리 실증주의도 역시 하느님의 존재 유 · 무(有無) 명제는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 사상은 흄(D.Hume), 헉슬리(T. Huxley), 밀(J.S. Mill)과, 의미 있는 지식은 경험과 관찰에 유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특히 에어(A.J. Ayer)는 검증할 수 없는 하느님을 논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하였다. 사르트르(J.P. Sartre)에 따르면, 자유는 '코지토' 의 존재를 선행하며 그런 존재에 기초를 제공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은 무신론적이며 인간 존재가 신을 거부하는 것은 본연의 자유로 성립된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나는 내가 자유롭다는 것을 안
다. 그러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는 자기 존재의 무화(無化)로서 자기를 실현한다. 무화로서의 근본적 혹은 본래적 자유는 신을 배제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신은 자체의 기초가 되는 존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무신론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실존주의란 일관된 무신론적 입장에서 모든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실존주의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로 무신론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신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아무런 변화도 없다는 것을 선언한다··· 우리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에 대한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며 또 신의 존재의 유효한 증명이 있을지라도 아무것도 인간을 인간 자신에서 구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시켜야 한다."
듀이(J. Dewey)는, 신은 종교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은 존재론적 실체가 아니라, 여러 가지 양태의 이상적 가치의 통일을 나타내는 개념이라고 하였다. 이런 통일은 사유와 상상의 작용이 행위에 수반하여 생기는 것이므로 본질적으로 사유와 사상에 관련된다. 결국 듀이에게 있어서도 신 관념은 인간 사유의 산물인 것이다.
구조주의 : 실존주의가 그 자체로 무신론과 유신론 중 어느 한 쪽이 아닌 것처럼 구조주의도 구조라는 핵심 사상 자체가 무신(無神), 유신(有神) 중 어느 한 쪽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의 구조주의를 대표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좌익 사상가들이기 때문에 구조주의가 무신론적 성격을 지닌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서 레비-스트로스(C. Lévi-Strauss)와 알튀세르(L. Althusser) , 푸코(M. Foucault) 등 무신론적 구조주의자들과 해체론자인 데리다(J. Derrida) 그리고 구조주의 이후라 할 수 있는 들뢰즈(G. Deleuze), 가타리(F.Guatan) 등을 들 수 있다. 데카르트 이후 서유럽 사조는 신의 존재를 외부 세계로부터 설명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내면적 인간에서 신의 존재를 설명하려 하였다. 그러나 구조주의는 인간 자체가 세계와 같은 구조에 불과한 것이며 객관적으로 설명되기 때문에 신에 의해 인간을 설명하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며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였다.
① 레비-스트로스 : 생각하는 주체인 '나' 의 내면적인 의식에서 출발하여 인식 체계를 형성하고자 하였던 데카르트와는 달리, 레비-스트로스는 '나' 에서 출발해서는 '나' 에서 탈출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오히려 그는 철학자의 의식에 의한 인식을 과학자의 인식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의식을 배제한 조직 체계로 성립되었다. 왜냐하면 사회의 다양한 체계 근저에는 무의식의 사유가 흐르고 있어 사회의 하부 구조를 형성하고 있으며, 과학은 객관적으로 사물 안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런 레비-스트로스의 구조 사상에는 신도 인간도 사회 창조에 있어 주체적 구실을 하지 않는다.
② 알튀세르 : 네오마르크스주의자(Neo-Marxist)인 알튀세르의 무신론은 마르크스를 구조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에서 성립하였는데, 알튀세르와 그의 동료들이 《자본론을 읽음》(Lire le capital)에서 마르크스를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시도되었다. 마르크스의 역사 개념은 헤겔의 전체적 개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마르크스적 사회적 전체성의 개념에서 구성해 내야 한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의 전체는 법원의 각 심리급(審理級)과 같다. 경제, 정치, 미학, 이데올로기 철학 등으로서의 비교적 자율성을 지닌 각 심리급은 복합성의 구조적 통일성 안에 공존하며 각기의 고유한 결정 방식에 따라 서로 결합된다. 이러한 구조적 통일성을 알튀세르는 '구조론적 인과 관계' (causalifé structurale)로 설명한다. 구조론적 인과 관계는 구조가 자기 요소들을 결정할 때, 구조 내 요소들의 관계와 그 관계의 결과를 구조 안에서 결정할 때, 지배적 구조와 종속적 구조를 결정할 때 쓰이는 개념이다. 이러한 결합 방식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경제 수준 혹은 경제적 심리급이다. 그런데 경제를 최종 심리급으로 가정한 이유는 비합리적이다. 왜냐하면, 모든 집단 사회가 최종적으로 경제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실증적 유일 증거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③ 푸코 : 푸코는 구조주의 후기에 이르러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의 성향을 지녔다. 절대적 시스템(systéme)을 주장한 푸코는 '의미' 의 구조주의적 부정에서 출발하였고, 지금까지 철학이 의지해 온 용어의 질서를 뒤엎고 의식의 자주적 행위를 부정하였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생각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해지는 것이다. 내가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행동해지는 것이다. 모든 것은 언어에서 출발하고 언어로 돌아간다." 푸코는 언어를 근거로 인간 중심주의, 더 나아가서는 근대의 합리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하였다. 그는 모든 존재를 언설(言說, discours) 안에서 파악하였다. 이때의 언설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장(場)에서의 언어 표현이며 언어의 한 형태이다. 이런 언설을 통해 모든 존재가 파악되며 모든 것은 존재하게 된다. 언어를 통해서 파악되는 시스템은 인간의 주인으로 선언되며 이름도 없이 구속력을 갖는다. 그것은 어떤 시대의 특징일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기본 조직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고에는 인간의 주체성이나 신(神)의 주체성이 설 자리가 없다. 이와 같은 구조주의는 반(反)인간주 의적이며 무신론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 푸코의 사고 핵심은 개인 사고에 대한 집단 언어의 우월성과 그 시스템이며 '인간은 죽었다' 로 표현된다.
구조주의는 그 특유의 방법 때문에, 현대의 모든 학문에 영향을 미친 독특한 사상이며 효과적인 면 또한 크지만 풀 수 없는 여러 근본적 난점을 드러냈다. 알튀세르에게서와 같이 구조주의는 과학과 철학의 영역을 혼돈하여 그 한계를 명백히 하지 못하였으므로 근본 문제에 있어서 모호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알튀세르의 모호한 인과 관계 설명인데, 이는 무리한 형이상학의 거부와 유물론에 근거한 무신 사상 때문이다. 또한 구조주의의 논리대로 우리가 주체적으로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 시대의 문명 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또 어떻게 한 구조에서 다른 구조로 옮겨 가는지를 설명할 방법이 없
다. 사실 구조주의자들은 어떤 근거에서 기존 체제에 항거하여야 하는지, 어떻게 기존의 질서를 바꿀 것인지를 설명하지 못하였다. 사실 시스템은 발생하는 사건에 반대하여 만들어진다. 인간의 주체성과 역사성을 거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무신론적이며 반인간주의인 구조주의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닌 인간의 고차원적 정신 요인을 설명하지도 못한다. 즉 인간의 자유, 윤리성, 책임성, 미적 평가(美的 評價), 의식의 주체성, 인격의 품위, 인간 존재의 의미와 가치, 인간의 운명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한다.
해체론 : 데리다는 로고스 중심주의(logocentrisme)의 형이상학을 전면적으로 거부하였다. 즉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헤겔, 후설의 현상학을 비롯하여 로고스 중심의 모든 체계의 해체를 시도하였다. 그런 로고스 중심주의의 기본 사상은 현존(現存) 혹은 현전(現前)에 최고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즉 실물(實物)이 현전하는 데에는 궁극적 진리 형식이 있다. 로고스 중심주의의 해체 작업은 저작(text)들에 대한 독해(lecture)로 이루어진다. 여기서 텍스트의 의미의 주체(signifié, 所記)는 해체된다. 저자의 주관성과 텍스트의 의미의 체계도 해체된다. 텍스트는 주관에 종속되어 고 정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독립된 시그니피앙(signifiant能記)으로 변한다. 텍스트는 저자와 의미로부터 자유롭게 읽혀져야 한다. 이렇게 자유로운 시그니피앙들은 다른 텍스트들의 시그니피앙들과 자유롭게 교류 · 유희하여 경쾌하고 생명력에 찬 유희의 세계가 전개된다. 이러한 주장에서는 주체, 자아-그것이 개체적 자아이든 순수 자아, 절대 자아, 관념적 주체이든 더 나아가 신의 주체이든-등 로고스 중심의 자아와 주체가 완전히 해체됨을 알 수 있다.
구조주의 이후 : 대표적인 인물이 들뢰즈와 가타리이다. 들뢰즈는 특유의 기계론을 전개하면서 가타리와의 공저인 《자본주의와 정신 분열증》 제1부 '반(反)오디푸스 와 제2부 '천(千)의 고원(高原)' 에서 지(知)의 유목민화를 시도하였다. 그들은 실재하는 모든 것이 욕망하는 기계라고 하면서 토지의 사회적 기구에 대해 설명하였다. 인간은 토지와 관련해서 즉 지역에 근거하여 생활한다. 토지라는 테레토리가 근친 상간의 금지에 의해 인간화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이 토지의 사회 기구라고 한다. 또한 그들은 전제 군주의 사회적 기계에 대해 언급하였다. 돌연 토지의 사회적 기계 안에 정복자가 나타나 오디푸스의 원망(願望)을 실현한다. 정복자는 어머니와 자매들과 근친 상간을 한다. 이렇게 정복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회 구조를 만든다. 그는 그때까지의 토지 사회 체제 즉 사회적 신체를 그대로 유지하여 이중 구조를 만든다. 전제 군주는 지금까지의 코드(법전, 규준)를 규제할 초(超)코드를 만드는데, 이것이 전제 군주의 사회적 기구이다.
자본주의의 도래와 더불어 자본주의 기계론이 제기되었다. 자본주의에 있어 자본의 사회적 기계는 이전의 코드를 해제 탈(脫)코드화하여 욕망을 자유롭게 흐르게 한다.
파라노이아(paranoia, 편집병, 망상증) : 인간 경험의 근원에는 우주적 생명의 개체, 세계와 주체가 분리되지 않는 '배종(胚種, 胚芽)적 소용돌이의 흐름' 이 있다. 이런 흐름은 여러 단계를 거치며 자본주의 기계 시대가 된다. 이런 사회 체제는 욕망을 흐르게 함으로써 성장한다. 자본주의는 식민지나 개발 도상국 등의 시장을 통해 성장하며 그런 장소 자체도 이전하며 성장한다. 완전한 제도도 완전한 자유도 주어진 표상에 불과하다. 욕망하는 질서가 실현될 때 사회 체제는 '파시즘' 이 된다. 그것이 편집병 혹은 망상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 체제가 자본주의가 주는 현실 표상에 조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분열하는 스키조(schizo, 분열) : 욕망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본래 분열적이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하는 스키조는 욕망하는 기계가 출현하는 가공되지 않은 경험이다. 또한, 유목민(nomad)에 대해 언급하면서 유목민은 결코 여행하지 않으며, 여행은 정주민(定住民)의 것이라고 한다. 유목민은 스키조를 추구하여 어디에도 정주(토지화)하지 않게 하는 것이 파라노이아가 되지않게 한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저서는 절대적 탈속령화의 실험을 위한 지도 혹은 프로그램이다. 그것은 사막과 초원을 달려가는 유목민들의 전쟁 기계와 연결된다. 이런 탈영속화(脫領屬化)에는 새로운 것의 발견과 창조가 있다. 이런 기계론은 인간 생명의 가치는 물론이고 개인의 인격성도 존엄성도 자유도 고귀한 영성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 여기에 신이 설 자리는 더 더욱 없다. 극한적 내재뿐이다. 욕망의 소용돌이 흐름만이 있고 기계적인 전체가 있을 뿐이다.
II . 신학적 측면의 무신론
20세기 중반에 틸리히(P. Tillich), 바르트(K. Barth), 불트만(R. Bultmann) 본회퍼(D. Bonhöffer) 등을 위시하여 영미계 신학자들 예컨대 알타이저(T.J.J. Altizer), 두 사람의 해밀턴(K. Hamilton, W. Hamilton), 디워트(L. Dewart) 등을 비롯한 여러 신학자들은 '신신학(神神學)의 죽음' (Death of God Theology)을 형성 · 추종함으로써 신학 안에서 무신 사상을 배태하였다. 그들은 형이상학적 하느님의 파괴가 인간으로 하여금 절대적 신앙을 통해 살아 있는 하느님을 만나게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파브로(C. Fabro)는 《진보주의자의 모험》(L'Avventura della Progressista)이라는 저서에서 그 핵심을 지적하였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 이후 '신신학의 죽음' 의 신학들이 속출하였다. 많은 새로운 신학들이 새로
운 철학 사상에 근거하여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파브로는 이런 선상에서 '신신학의 죽음' 을 고찰하였다. 그런데 신의 죽음이라는 절대적 부정에서 어떻게 살아 있는 신의 체험 즉 절대적 긍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느냐, 다시 말해 무에서 존재를 이끌어 낼 수 있느냐 하는 근본적인 존재론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렇게 근 · 현대 철학사조의 극단적 내재성, 무신성(無神性), 무자아성(無自我性)이 그대로 신학으로 옮겨 가 그 근저에 흐르고 있다. 이런 논리를 파브로는 본회퍼, 틸리히 등에서 찾지만 이런 논조는 '신신학의 죽음' 을 고백하는 모든 신학자들에게 그대로 해당된다. 물론 파브로는 이런 '신신학의 죽음' 설들이 어느 정도 공감을 사는 것은 각 사람의 취향과 환경의 영향임을 인정하였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하느님의 지성을 분여(分與)받았다는 것이다. 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다른 우주 만물과 다른 점이며, 또한 여기에 인간의 영성적인(spiritual) 면까지 성립된다. 이런 고귀한 지성의 능력을 무시 내지 적대시하는 신학설은 올바른 것이 아니라는 전통 신학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무신론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태도는 다음과 같다. 유물론적 무신론은 부끄러운 것이다(D. 1802). 무신론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사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대한 거부이다(D. 1801). 여러 형태의 범신론(D. 1803~1805, 1701)도 단죄되었다. 하느님은 이성의 자연적 빛으로 인식될 수 있다(D. 1785, 1806). 하느님 존재의 증명 가능성을 제시한다(D. 2145, 2317, 2320). 회칙 <파쉔디>(Pascendi, 1907)는 근대주의적 불가지론 (modernist agnosticism)의 가르침을 무신론으로 규정하였다(D. 2073, 2109). 또한 근대주의(modernismus)를 여러 경로로 무신론을 이끌며 모든 종교를 제거하기 위한 사상으로 규정한다(D.2109)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 : 공의회는 무신론과 윤리적 죄를 결부시키는 전통적 견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신론을 지지하는 것이 죄가 되느냐 되지 않느냐 하는 문제로 공의회가 무신론에 대한 단죄를 완화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 무신론에 대해 공의회에서는 <사목 헌장> (Gaudium et Spes) 19~21항에서 언급하였다. 우선 무신론의 근원을 해명하기 이전에 무신론의 다양한 형태들, 즉 실천적 무신론, 불가지론자, 자연 과학 이론에 나타난 무신적 경향, 실증주의, 종교에 대한 무관심주의, 세속화 등을 열거하였다. 이러한 현대 무신론의 특징으로 공의회는 인간의 신격화(神格化)를 들었 다.
동시에 19항에서는 무신론의 다양한 출현이 오랜 역사적 상황에서 야기되었던 신앙인의 종교적 생활의 결함과 잘못된 윤리 생활과 사회 생활에서 비롯되었다고 파악하였다. 그 결과 종교에 대한 비판적 반동, 특히 그리스도인에 대한 반항이 나타났으며, 그렇기 때문에 무신론에 대해 그리스도인들 역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현대의 다양한 형태의 무신론을 낳게 한 문제점으로 공의회는 세상에 만연되어 있는 악에 대한 혐오감, 자신의 종교적 경험에 대한 좌절감, 그릇된 신 개념으로 인한 위압감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신 개념과 결부시키는 이상한 관념 등을 들었다.
20항에서는 체계적 무신론에 관하여 언급하였는데, 이것은 인간의 자주성과 자유를 강력히 주장하고 하느님께 모든 종속을 부정하는 이론과 마르크스주의로 대표된다고 여긴다. 이러한 공의회의 가르침은 무신론이 인간 지성과 공통 경험에 반대되며 인간을 고귀한 천품(天品)에서 추락시키는 유해한 이론과 운동이라고 규정하면서 단호히 배격하였다. 무신론이 교회의 가르침에 위반되는 점을 21항에서는 세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첫째, 신 긍정(神肯定)은 인간 존엄성에 결코 배치되지 않는다. 둘째, 그리스도교 신학은 인간학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 셋째, 모든 인간에게서 인간 자신은 미해결의 문제로서 남는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지적 후에 공의회는 무신론을 바로잡는 길로, 오로지 올바로 해석된 교리와, 교회와 그 지체들의 완전한 생활,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형제적 사랑을 제시하였다. 아울러 <사목 헌장> 21항은 "교회는 비록 무신론을 절대적으로 배격하지만 믿는 사람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바로 건설하는 데에 함께 노력해야 함을 진심으로 선언하는 바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로써 현대의 무신론이 단순하게 이해력의 결핍이나 악한 마음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없는 이상, 위의 공의회 진술들은 무신론의 참다운 원인이 무엇인가를 그리스도인들
로 하여금 스스로 묻게 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Ⅲ . 무신론과 유신론
무신론과 유신론의 문제는 인간이 이 지구상에 생각하는 존재로 나타난 이래 인류 사고의 지속적인 문제이다. 근대를 거쳐 오늘의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이 문제는 변증법적 과정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유신론의 부정으로서 강력한 이론적 정의적(情意的) 무신론이 대두되었고, 그리고 오늘날에는 무신론의 부정 혹은 전통적 유신론과 현대 무신론의 종합으로서의 새로운 신론이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데카르트 이후 줄곧 초월에서 내재로 치닫던 인류 사고가 경험 현상론, 의식 현상론, 감각론, 유물론, 실존 사상, 구조주의 등 다양한 사상을 거쳐 내재-초월의 사상으로, 존재론으로의 방향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근거한다. 철학적 사고뿐만 아니라 과학과 종교의 관계도 이런 맥락에서 재정립되고 있다. 지난 어느 시기에 과학은 종교를 부정하는 학문으로 또 종교는 과학을 적대시하는 입장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였지만, 오늘에 와서는 가치 문제, 인간의 한계 문제, 윤리 문제, 존재론 문제, 자연의 문제 등 새로운 학문적 요청을 위시하여 과학 자체의 한계 문제 즉 과학의 발전이 질병을 몰아내어 인간 생명을 연장시키고 안락한 삶을 제공하며 인간에게 시공(時空)을 주름잡는 환상적 미래를 약속하는 등 인간 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과
학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인류 멸망의 핵 공포와 복제 인간의 출현 가능, 자연 질서의 혼란 등을 야기시킨다. 이제 과학과 종교는 상호 협력하여 인간 완성과 자연 질서 보존에 기여해야 할 새로운 요청에 몰리고 있다. 한편 1989년 후반에서 1990년 초반에 일어난 소련과 동유럽 여러 국가에서의 마르크스주의와 그 정치 체제의 급속한 몰락은, 지난 1세기 동안 가장 강력하였던 이론적 무신사상을 붕괴시켰다. 그러나 아직 동양에서는 중국을 비롯하여 북한 등지에 마르크스주의의 무신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 체제가 존재한다. 무신의 문제는 순(純)세계 내적 사고와 반초월적 내지 탈초월적인 인간 사유가 지속하는 한 계속될 문제이며 초월적 사유를 갖는 인간에 있어 인류 종말까지 유신(有神)과 무신(無神)의 문제는 때에 따라 사상의 양태를 바꿔 가며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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