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전남 무안군 무안읍 성동리 856 소재. 1954년 11월 4일 함평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가롤로. 관할 구역은 무안군의 무안읍, 청계면 태봉리, 몽탄면 사창리, 함평군의 엄다면 삼정리 전역과, 무안군 현경면 일부. 〔교 세〕 1956년 365명, 1965년 1,674명, 1970년 1,875명, 1975년 1,845명, 1979년 2,052명, 1983년 2,529명, 1988년 2,860명, 1991년 3,129명, 1995년 2,755명. 〔역대 신부〕 초대 이민두(李敏斗) 타대오(1954. 11~1955. 12), 2대 김정용(金正容) 안토니오(1956. 4~1960. 6), 3대 배봉룡(裵鳳龍) 바오로(1960. 6~1964. 11), 4대 도허티(J.Dohery, 홍) 요한(1964. 11~1965. 5), 5대 물둔(P. Muldoon, 조) 파트리치오(1965. 5~1969. 11), 6대 나상택(羅相澤) 요한(1969. 11~1973. 4), 7대 김홍언(金洪彥) 요한 보스코(1973. 4~1976. 11), 8대 이성규(李成揆) 라파엘(1976. 11~1978. 4), 9대 남재희(南才熙) 율리아노(1978. 4~1981. 9), 10대 백용수(白龍洙) 마태오(1981. 9~1985. 6), 11대 강영식(姜永植) 안드레아(1985. 6~1990. 2), 12대 신동술(申東述) 라이문도(1990. 2~1993. 2), 13대 김형수(金炯秀) 비오(1993. 2~1997. 2), 14대 민병천(閔炳千) 바오로(1997.2~현재).
〔복음 전래와 공소 설립〕 지금의 무안 지역에 천주교 신앙이 전파된 것은 박해가 끝난 뒤였다. 1872년 인근의 나주(羅州)에서 무학당(武學堂) 사건이 발생하여 몇몇 신자들이 순교했을 때만 해도 무안 지역에 신자가 거주하였다는 기록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산간 지역에서 담배 농사를 짓던 신자들의 후손이 무안 · 나주 등지로 이주하면서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1899년 7월에 목포(木浦, 현 산정동) 본당의 데예(A.Deshayes, 曺有道) 신부를 보좌하던 이내수(李迺秀,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무안 우적동(현 몽탄면 사천리 牛跡洞)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이내수 신부는 병으로 인해 목포 본당으로 돌아갔고, 우적동에는 몇몇 신부들이 휴양차 머무르면서 주변 신자들을 돌보기 시작하였다. 그 후 1907년 투르뇌(Tourneux, 呂東宣) 신부가 본당을 사내[沙川]에서 노안(老安)의 남산(南山)으로 이전하였고, 1909년에는 카다스(Cadars, 姜達淳) 신부가 다시 계량(桂良)으로 이전하였는데, 이 계량 본당은 1927년에 '나주 본당' 으로, 1935년에는 지금의 나주 본당을 분리하면서 다시 노안 본당' 으로 개칭되었다.
그러나 당시까지도 무안 지역의 신자수는 많지 않았다. 이들은 가까운 나주 본당이나 노안 본당으로 다니며 성사를 받다가 해방 후인 1945년 12월에 나주 본당에서 함평(咸平) 본당이 분리 설립되면서 함평 본당 소속이 되었으며, 1953년에 비로소 '무안 공소' 로 설정되었다. 즉 그 해 1월 21일 함평 본당 초대 주임 김창현(金昌鉉, 바오로) 신부의 지도로 김 막달레나 전교 회장을 비롯한 20여 명의 신자들이 무안읍 성내리(城內里)에 있는 김병옥의 집에 모여 처음으로 주일 첨례를 드리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공소 신자들은 같은 해 3월 18일 성동리(城東里) 전순도의 집을 매입하여 개조한 후 공소로 이용하였으며, 5월 24일에는 김창현 신부의 집전으로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리고 1953년 7월 5일 광주교구장 서리 헨리(W.H. Henry, 玄海) 신부 집전으로 공소 강당을 축성한 데 이어 이듬해 11월 4일 무안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성장과 변모〕 초대 주임 이민두 신부는 부임 직후인 1954년 11월 20일 광주교구의 지원을 받아 사제관을 준공하는 등 본당 기반 조성을 위해 노력하였는데, 이듬해 12월 16일 나주 본당을 방문하였다가 갑자기 사망하고 말았다. 이어 2대 김정용 신부는 1956년 6월 7일 종각 축성식을 거행하였으며, 10월 8일 식당 공사를 시작하면서 기존의 성당을 개수하여 사제관으로 이용하였고, 이듬해 3월 21일부터 성당 부지 확장 공사를 하였다. 이 작업이 마무리되자 6월 20일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1957년 12월 22일 102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고, 이듬해 1월 8일 헨리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가졌다. 5대 물둔 신부 재임 때인 1966년 5월에는 30평의 신축 사제관이 건립되었고, 6대 나상택 신부는 1971년 2월 12일 청계(淸溪) 공소 건물을, 그 해 12월 30일에는 신자들의 협력으로 지성소(至聖所)를 신축하였으며, 9대 남재희 신부는 1979년 11월 6일 수녀원 및 부속 건물 공사를 착공하여 이듬해 4월 5일 완공하고, 1981년 4월 2일부터 까리따스 수녀회 수녀들이 본당에 파견되어 본당 사목에 협조하도록 하였다.
1985년 10월 16일 레지오 마리애 '순교자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었고, 1986년 9월 7일에는 함평과 일로(一老) 지역을 포함하여 '정의의 거울' 꾸리아가 창설되었다. 이 무렵 본당에서는 신자들의 신심 강화를 위해 피정 및 성령 세미나를 자주 개최하였다. 1985년 7월 9일 지도(智島) 공소가 설립되었고, 이듬해 4월 지성소 내부 공사 실시 및 제대, 십자가, 성모상 등이 마련되었으며, 그 해 5월 12일에는 80평의 망운(望雲) 공소 건물이 축성되었다. 또 1991년 8월에는 윤공희(尹恭熙 빅토리노) 대주교의 집전으로 망운 공소에 성모 카테키 스타회의 수녀원 분원 준공식이 거행되었고, 9월 8일에 는 4개의 교실을 갖춘 연건평 74평의 교육관을 건립하였으며, 1993년 8월에는 이 교육관을 2층으로 증축하여 사제관으로 사용하였다. 한편 1993년 9월 19일자로 무안 본당의 망운 공소가 준본당으로 승격됨으로써 무안 본당 관할의 지도, 해제(海際), 임자(荏子) 등 3개 공소가 이곳으로 이관되었으며, 1997년 2월 4일자로 청계 공소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현재 본당에는 사목 협의회를 중심으로 레지오 마리애 1개 꾸리아에 15개 쁘레시디움과 소년 쁘레시디움이 있고, 연도회, 60세 이상 할머니들의 친교 단체인 성모회, 60세 이상 할아버지들로 구성되어 친목 및 본당 환경 미화를 담당하는 요셉회가 있다. 그 밖에 30~50대 여성 신자들의 신심 단체인 목자회, 성체회, 성심회, 30~50대 남성 신자들의 신심 단체인 대건회, 로고스회, 성가정회, 그리고 주일학교 후원 활동을 주로 하는 로사회, 청년 단체인 아가페회 등 여러 평신도 단체들이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 광주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보유편/<가톨릭 시보> 188호(1958. 1. 25), 3면/ 천주교 광주대교구 편, 《광주대교구 50년사》, 빛고을출판 사, 1990. [편찬실]
무안 본당
務安本堂
글자 크기
5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