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본당

茂朱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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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구 소속 본당. 전북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835-1 소재. 1956년 9월 6일 본당으로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성 요셉. 관할 구역은 무주군 무풍면, 부남면, 설천면, 안성면, 적상면 전역이고, 관할 공소는 기곡, 괴목, 무풍, 설천, 안성, 은산, 철목 등 7개소. 〔교 세〕 1956년 66명, 1961년 270명, 1966년 548명, 1973년 761명, 1980년 832명, 1987년 1,006명, 1991년 1,139명, 1994년 1,262명. 〔역대 신부〕 초대 서정수(徐廷壽) 알렉시오(1956. 9~1960. 7) 2대 김영태(金永泰) 도미니코(1960. 7~1963. 6), 3대 드 슈테르(L. de Schutter, 도광석) 레오(1963. 6~1966. 4), 4대 권영균(權寧均) 안토니오(1966. 4~1972. 7), 5대 김용태(金容泰) 베네딕도(1972. 7~1976. 4), 6대 김동준(金東俊) 야고보(1976. 4~1979. 1), 7대 유종환(兪鍾桓) 마태오(1979. 1~1981. 8대 김기수(金基洙) 요한(1981. 1~1983. 1), 9대 이상섭(李相變) 모세(1983. 1~1986. 1), 10대 한기호(韓奇瑚) 세례자 요한 (1986. 1~1989. 1), 11대 오현택(吳賢澤) 가시미로(1989. 1~1992. 1), 12대 박중신(朴伸信) 시몬(1992. 1~1997. 2), 13대 박창신(朴昌信) 베드로(1997.2~현재).
〔전 사〕 무주군 일대에는 일찍이 안성면 여우내(현 眞道里), 숙구지(현 貢進里), 무풍면 현내리(縣內里)에 교우 촌이 형성되어 있어서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와 다블뤼(A. Daveluy, 安敦伊) 신부가 여러 해 동안 순회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로 인해 신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자취를 감추기도 하였지만, 박해가 끝난 후 다시 이 지방에 모여 화전을 일구고 신앙 생활을 계속한 신자들은 1883년 여우내와 무풍 공소, 1909년에는 숙구지 공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신자들이 점차 생업을 찾아 진안(鎭安), 금산(錦山) 등지로 전출하였기 때문에 해방 무렵까지 그리 많은 신자들이 거주하지는 않았다.
한편, 1950년경에 금산 본당(1980년 8월 29일 전주교구에서 대전교구로 이관) 관할로 무주군 내에 밤숙골(현 율속), 은산, 철목, 현내 공소가 설립되었다. 이때 밤숙골에 거주하던 이우옥(골롬바)과 상리(上里)에서 옹기점을 경영하던 한밀술(바오로)을 비롯한 다섯 가구의 신자들이 적극적인 전교 활동을 벌여 교세가 급속히 확장되었는데, 1956년 이 공소 신자들을 모태로 하여 신설된 것이 무주 본당이다.
〔신설과 발전〕 초대 서정수 신부는 부임 직후 현 본당 소재지의 가옥 및 대지 1,800여 평을 매입한 후, 가옥을 임시 성당 겸 사무실로 사용하면서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그 해 12월 연건평 240평 2층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5월 20일 유아 교육 시설이 전무하다시피 하였던 무주 지역에 '성 토마스 어린이 집' 을 개원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으나, 미인가 상태에서 운영되다가 2년여 만에 폐쇄되었고, 그 후 1973년 9월에 '소화유치원' 으로 정식 인가를 받아 다시 개원하였다.
1960년에는 부남면 장안리(長安里) 공소를 신설함과 동시에 장안리 222~223번지의 임야 22,000평을 매입 하였는데, 이 중 개간이 가능한 토지는 공소 신자들에게 경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신자들의 경제적인 기반 조성에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또한 이 지역 여성들을 위해 1964년부터 6년 동안 양재 학원을 운영하였고, 1964년에는 무풍면 은산리(銀山里)에 임야 11,660여 평을 매입하였으며, 본당 내에 돈사(豚舍)를 설치하여 돼지를 길러 본당의 재정 자립도를 높이기도 하였다.
1965년에 수녀원, 1979년 소성당, 그리고 1984년 3월에는 40여 평의 사제관을 각각 신축하였으며, 1986년에는 김종규로부터 무주읍 가옥리의 임야 3,486평을 기증받아 성당 묘지를 조성하였다. 그 밖에 1989년에는 노후된 예수 성심상, 성모상, 요셉상을 보수 손질하는 등 성당 안팎의 조경 사업에도 힘썼다. 본당이 이렇듯 변모하는 동안 관할 공소들도 발전을 거듭하였는데, 1966년 괴목 공소의 설립을 필두로 1977년에 설천(雪川) 공소와 안성(安城) 공소를 설립하였고, 1979년에는 설천 공소 부지 240평을 매입한 데 이어 1983년에 550평을 추가 매입하여 1985년 12월 5일에 41평의 공소 강당을 완공하였다. 또한 1993년에는 철목 공소(164평)와 안성 공소(708평)의 부지를 각각 매입하고, 50여 평의 안성 공소 강당을 건립하였다.
1996년으로 본당 설립 40주년을 맞이한 무주 본당은 노후된 현 성당과 관할 공소들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 공사의 단행과, 소화유치원과는 별도로 '소화보육원' 의 운영이라는 장기적인 본당 발전 계획안을 수립하였다. 1996년 12월경 연건평 101평에 2층 규모로 완공되어 이듬해인 1997년에 개원한 이 보육원은 무주군으로부터의 보조와 본당 자체 부담금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 전주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경 향잡지》 1059호(1956. 6) ; 1063호 (1956. 10)/ 김진소 편, 《天主教全州教區史年表》 호남교회사연구소, 1993/ 김진소, 《天主教全州教區史研究資料集》 1집(1882~1991, 地名 調查報告書), 호남교회사연구소, 1987/ ㅡ, 《天主教全州教區史研究資料集》 2집(1882~1986, 教勢統計表), 호남교회사연구소, 1987/ 《천주교 전주교구 연감》, 전주교구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1978/ 김구정 · 김영구 공저, 《天主教湖南發展史》 천주교 전주교구, 1964, pp. 623~627.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