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동 본당
墨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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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서울시 중랑구 묵2동 239- 127 소재. 1975년 9월 8일 상봉동 본당에서 분리 ·신 설되었으며, 주보는 통고의 성모. 관할 구역은 묵1 · 2 동, 중화1~3동 전역과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일부. 〔교 세〕 1975년 1,549명, 1979년 3,648명, 1982년 4,351명, 1986년 7,299명, 1990년 6,522명, 1995년 6,992명. 〔역대 신부〕 초대 스미스(J. Smyth, 천) 요한 (1975. 9~1978. 12) , 2대 콘웨이(P. Conway, 구순혁) 파트 리치오(1978. 12~1982. 9), 임시 스미스(P. Smyth, 천만석) 파트리치오(1982. 9~1983. 2), 3대 더간(J.Duggan, 홍) 야 고보(1983. 2~1987. 2) 4대 장홍선(莊弘善) 요셉(1987. 2~1992. 10), 5대 조형균(趙亨均) 요한(1992. 10~1995. 9) 6대 김태수(金泰洙) 요셉(1995. 9~1996. 3), 7대 김우성 (金祐成) 비오(1996.3~현재). 〔설립과 성장〕 마을 주변의 대부분이 배밭이었던 묵동 지역은 1970년대 초 도시 계획 사업의 추진으로 주택 건설이 활발해짐에 따라 전입 인구수가 급격히 증가하였 다. 그 결과 이 지역을 관할하던 상봉동(上峰洞) 본당에 서는 교세 신장으로 점차 사목상 어려움이 증대되었고, 중화동 · 묵동 · 공릉동 일대의 신자들이 교통 불편을 겪 게 되자 새로운 본당 설정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무렵 묵동 지역에 거주하는 신자 70여 명은 김진영(프란치스 코)을 대표로 하여 당시의 본당 주임 만니온(F. Mannion, 明) 신부에게 공소 설립 추진을 건의하였고, 1974년 8 월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지원으로 성당 부지 362.4평을 마련한 후 같은 해 9월 1일 강당(70평)을 신축하였다. 9 월 30일에는 마침내 묵동 공소가 정식으로 설립되었는 데, 당시 신자수는 약 250명 정도였다. 묵동 공소 설립 직후부터 신자들은 신심 강화와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을 조직하고 전입 신자 및 냉 담자 가정을 방문하는 등 적극적인 전교 활동을 전개하 여 불과 1년 만에 신자수가 720명에 이르게 되었고, 그 결과 1975년 9월 8일 묵동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초대 스미스 신부는 1975년 12월 15일 기존 강당을 증축하여 사제관을 건립하였고, 1976년 4월 5일에는 초 대 본당 사목회를 구성하였으며, 5월 5일에는 김수환(金 壽煥, 스테파노) 추기경 집전으로 성당 및 사제관, 성모 상 등의 축성식 및 첫 견진성사를 거행하였다. 또한 관할 구역 내 각 가정의 성화(聖化)를 위해 그리스도교 가정 운동(Christian Family Movement)의 조직을 적극 권장함으 로써 소공동체의 활성화를 도모하였다. 1977년 7월 3일 에는 <묵동 주보>를 창간하였고, 교세가 신장됨에 따라 기존의 협소한 성당으로는 어려움이 많자 사목 위원을 중심으로 성당 신축 계획을 세운 후, 1978년 3월 19일 공사에 착공하여 이듬해 4월 22일 지하 80평, 지상 100 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여 축성식을 가졌다.
2대 콘웨이 신부는 각종 교육 및 세미나 등을 자주 개 최하여 전 신자의 참여를 강조하였고, 1980년 8월 31일 묵동 신용 협동 조합을 창립하였다. 1981년 3월 15일에 는 살레시오 수녀회 묵동 분원이 개설되었고, 같은 해 7 월에는 상계동 본당에서 중계동에 거주하는 신자 46세 대 127명의 교적을 이관받았으며, 10월에는 본당 신자 들의 신심 강화를 위한 신앙 대회를 개최하였다. 그 해 12월 3일 공릉동(孔陵洞) 본당이 설정되자 공릉1 · 2동 의 신자 1,300명의 교적을 새 본당으로 이관시켰으며, 1984년 9월에는 본당 확장 계획에 따라 주변 주택지를 매입하였다. 또 3대 더간 신부는 성소 후원회와 성 빈천 시오 아 바오로회를 발족시켰으며, 1984년 6월에는 레 지오 마리애 묵동 본당 꾸리아를 결성시켰다.
사목권이 서울대교구로 이관된 후 4대 주임으로 부임 한 장홍선 신부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모범 중 · 고등학 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이동 도서실을 개설하였으며, 신자들에게 무료로 책을 대출해 주기도 하였다. 1988년 3월에는 지역 내에 거주하는 신체 · 정신 장애 아동들의 교육을 위한 '엠마오 교실' 을 개관하여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교회상을 구현하였으며, 본당 확장을 위해 주변 주택지를 매입했다. 이어 부임한 5대 조형균 신부는 본당 공동체의 신심 강화와 친교 및 일치에 중점 을 두어 전 신자 성지 순례와 체육 대회를 자주 실시하였 고, 1993년 4월 11일에는 본당 신문 <피에타>(PIETA) 를 창간하였으며, 이듬해 7월에는 본당 군종 후원회를 발족시켰을 뿐만 아니라, 1995년에는 본당 설정 20주년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사진전 및 체육 대회를 개최하여 본당 신자들의 친목을 도모하기도 했다. 그리고 7대 김우성 신부는 부임 직후부터 '청소년 복음화' 에 중점을 두 어 우선 성당 내에 청년들의 활동 장소와 놀이 공간을 마 련하는 등 적극적인 청소년 사목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본당에는 사목 협의회를 중심으로 레지오 마리애 2개 꾸리아에 54개 쁘레시디움을 비롯한 헌화회, 자모회, 연령회, 성가대, 성소 후원회, 군종 후원회, M.E., 울 뜨레야, 청년 연합회, 성모회, 빈천시오 아 바오로회, 남 성 신자들의 신심 봉사 단체인 성 요셉회, 자선 사회 봉 사 단체인 까리따스회 등의 평신도 단체들이 조직되어 있다. (→ 서울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보유편/《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가 톨릭출판사, 1984.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