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墨子(기원전 479?~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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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중국 전국(戰國) 시대(기원전 402~256) 때의 사상가 (思想家). 이름은 적(翟). 그의 학파를 묵가(墨家)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전국 시대의 제자백가(諸子百家) 가운 데서 공자의 유가(儒家)와 함께 가장 두드러진 학파였 다. 묵자는 혼란한 전국 시대에 살면서도 자기의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층민들의 입장에서 당시의 정치와 사 회를 바로잡고자 노력하였다. 묵자의 사상은 봉건 통치자들의 눈으로 볼 때 매우 위 험한 것이었으므로 진(秦)나라가 중국 땅을 통일한 뒤로 는 통치자들의 금기(禁忌) 대상이 되었다. 이에 묵자의 학문은 세상에서 행세하지 못하였고, 묵자와 제자들의 사상을 모아 놓은 《묵자》도 사람들에게 제대로 읽힐 수 가 없었다. 묵자의 생애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묵자》 의 내용이 많이 없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생 애〕 묵자의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마천 (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묵적(墨翟)은 송(宋)나라 대부(大夫)였는데 성(城)을 잘 방어하였고, 절용(節用) 을 주장하였다. 어떤 이는 공자(기원전 551~479)와 같은 시대 사람이라 하고, 어떤 이는 그보다 뒤의 사람이라 한 다"는 간단한 기록이 있을 뿐이다(《孟子荀卿列傳). 전국 시대 때만 해도 유명한 사상가였던 묵자이지만, 한(漢) 나라에 와서는 역사가인 사마천조차도 그의 생애에 대하 여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인물로 변해 버렸다.
묵자는 성과 이름이 확실하지 않다. '묵' 은 성이 아니 라 얼굴에 검은 문신을 하는 형벌인 묵형(墨刑)을 뜻한 다고도 한다. '적' 이 성이고 이름은 '오' (鳥)라는 학자 도 있다. '묵적' 은 오랑캐를 뜻하는 맥적(貊狄) 또는 만 적(蠻狄)이란 말에서 왔고, '묵' 은 그가 입은 옷이 검고 또 그의 살갗이 검은 데서 붙여진 말이라는 주장도 있다. 묵자는 출생지도 분명하지 않다. 송나라 또는 노(魯)나 라 사람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나, 초(楚)나라 또는 제 (齊)나라, 심지어 인도 · 아랍 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가 살았던 시기도 사마천은 "공자와 같은 때, 또는 그 보다 뒤진 시기"라 하였지만 여러 학자들의 고증 결과를 종합해 보면, 태어난 해는 기원전 500년에서 459년 사 이이고, 죽은 해는 기원전 425년에서 376년 사이가 제 시된다. 기원전 479~381년이라는 묵자의 생몰 연도는 전목(錢穆)의 고증을 따른 것이다(《先秦諸子繫年).
《묵자》에는 여러 곳에 스스로 자신이 천하고 가난하 며, 형편없는 몰골로 노동에 종사한다고 하였는데, 아마 도 목수 출신이었던 듯하다. 묵자는 말보다는 실천을 앞 세웠고, 자신의 희생도 감수하였다. 비록 미천한 신분이 었지만 일찍이 유가의 경전을 공부하고 많은 책을 읽었 다. 그러나 그는 유가의 귀족적인 성격과 비생산적인 성 향이 여러 가지 사회 모순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통감하 고, 공자의 유학을 비판하면서(《묵자) 非儒 편), 하층민들 을 위하려는 학문 체계를 발전시켰다.
〔사 상〕 묵자는 만물의 창조자이며 우주의 주재자(主 宰者)인 '하늘'' 에 대한 신앙을 사상의 바탕으로 삼고 있 다. 그는 하늘은 모든 사람을 다 같이 사랑하며, 만물을 마련하여 사람들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니, 사람 은 하늘의 뜻을 따르고 하늘을 본받아야만 한다고 주장 하였다(《묵자》 天志 편).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늘을 본받 아 모두가 나와 남의 구별 없이 똑같이 서로 사랑하며 서 로 이롭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겸애 (兼愛)이다. '겸애' 는 곧 인간의 평등을 전제로 하는 것 이므로, 엄격한 계급 사회였던 당시의 사회 제도를 정면 으로 부정하는 것이 된다(《묵자) 兼愛 편). 겸애설을 창도 한 묵자가 그 시대에 끊임없이 벌어지던 전쟁을 반대한 것은 당연하다. 전쟁은 승리를 거둔다 해도 백성들에게 는 큰 불행이다. 남의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 들을 죽이는 커다란 살인 행위였다(《묵자) 非攻 편). 그는 침략 전쟁을 없애기 위하여 방위 전술도 연구하였는데, 지금 고증할 수 있는 《묵자》 71편의 내용 가운데 끝머리 20편이 침략 방어 전법을 논한 것이다. 그러나 묵자도 '침략 전쟁' 과 달리 우(禹)가 삼묘(三苗)를 정벌하고, 탕(湯)이 걸(桀)을 벌(伐)하며, 무왕(武王)이 주(紂)를 벌한 것은 명분이 바르고 사리에 합당한 것이라 하여 '침략 전쟁' 과 '주벌' (誅伐)을 구별한다.
이와 함께 묵자는 '절용' (節用)을 강조한다. 군주가 스스로 모범을 보여서 절약하고 사치를 하지 않으면 나 라가 저절로 부강해질 것이라고 하였다. 절약을 강조한 묵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로 유가의 지나친 장례 의식과 사치스런 음악을 맹렬히 공격하였다(《묵자》 節 用 · 節葬 · 非樂 편).
묵자의 정치관은 하늘의 뜻에 따라 의(義)에 입각해서 정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늘을 만물의 창 조자요 우주의 주재자로 간주한 묵자는 아랫사람이 윗사 람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상동' (尙同)의 정치를 강조하 였는데, 그는 이 기초를 천의(天意)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하 관계에 있어서 하늘의 뜻을 받드는 천자 (天子)가 정점이 되며, 천자는 어진 이를 등용하여 상하 가 화합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묵자》 尙 賢 · 尙同 · 天志 편). 이외에 묵자는 <비명>(非命) 편에서 숙명론을 배척하고 있으며, <명귀>(明鬼) 편에서는 귀신 이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감시하다가 나쁜 자를 벌한다 고 하여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묵 가〕 묵자의 사상은 온 세상에 큰 반향을 일으켜 '묵가' (墨家)라는 학파를 형성하였다. 《장자》(莊子) <천 하〉(天下) 편에는 "온 천하가 크게 놀라도록 유가와 묵 가가 함께 일어났다"고 하였고, 《한비자》(韓非子) <현 학>(顯學) 편에는 "세상의 두드러진 학파는 유가와 묵가"라고 하였다.
묵가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하 기 위해서는 물불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남자》 (淮南子) 태족훈(泰族訓)에는 "묵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 들은···모두 불에 뛰어들고 칼날을 밟게 할 수가 있었으 며 죽는다 해도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고 하였다. 묵자 자신도 자기의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서 자신의 희생과 고난을 감수하였다. 초나라가 새로운 무기를 발명해 송 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자, 그는 전쟁을 막기 위해 초나라 로 달려가 죽음을 무릅쓰고 임금을 설득시킨 일도 있다 (《묵자》 公輸 편).
묵자 당시의 묵가는 상당한 수의 대집단이었다. 이것 은 묵자가 방위 전술에 뛰어난 300명의 제자를 송나라 에 파견하였다든가, 묵자를 위해서 복역하는 사람이 180명이었다는 기록에서 짐작할 수 있다. 묵자 밑에는 '거자' (巨子)라 불리는 여러 명의 지도자들이 각지에서 전국의 묵가들을 통솔하였다. 묵가가 다른 제자백가들과 다른 점은 이들이 '하늘' 을 신앙하는 일종의 종교 집단 이었다는 것이다. 신앙의 힘으로 묵가의 모든 사람들이 교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고난을 극복하였음이 분 명하다. 그리고 묵가들은 상부에서 안배하는 바에 따라 일도 하고 벼슬살이도 하였고, 각자가 버는 돈은 그중의 일부를 상부에 헌납하였다. 또 이들은 엄격한 규율로 뭉 쳐져 있었는데, 묵가의 한 거자(즉 孟勝)는 자기 탓이 아 니었는데도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를 따라 183명의 제자들도 자살하였 다고 한다(《呂氏春秋》 上德 편). 이처럼 세력이 대단하였던 묵가도 전국 시대 말기에 이르러서는 제자들이 여러 파 로 갈라지고, 학문이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한비자》의 <현학> 편에는 묵가가 상리씨(相里氏) · 상부씨(相夫 氏) · 등릉씨(鄧陵氏) 등 셋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그러 다가 기원전 221년에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자 묵가는 갑자기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데, 그 원인은 묵 자의 학설이 자기 희생과 고난의 감수를 요구함으로써 보통 사람들로서는 그것을 감당하기가 힘들었고, 강력한 통치자가 등장하면서 그들 눈에 거슬리는 묵가들이 발붙 일 여지가 없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저 서〕 《묵자》는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예문지 (藝文志)에 "71편"이 있다 했으니 한나라 초기에는 71 편의 《묵자》가 전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묵 자가 이단(異端)으로 규정됨에 따라 그의 사상을 담고 있는 《묵자》도 영향을 받아, 수(隋) · 당(唐)에서 송 (宋) · 명(明)에 이르는 시대에는 15권본과 3권본의 《묵 자》가 전해졌다. 그러다가 청(淸)대에 이르러 묵자에 대 한 연구가 다시 일어나면서, 학자들이 명(明)대 도장(道 藏) 속에 들어 있던 53편의 《묵자》를 찾아내어 지금까지 널리 읽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15권 53편의 내용 도 본문의 일부가 빠지고 순서가 뒤바뀐 편들이 상당히 많다.
호적(胡適)은 그의 《중국 고대 철학사》에서 《묵자》 53 편을 5조(組)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에 대한 견해는 서 로 다르지만 그 분류 방법에는 많은 학자들이 따르고 있 다. 제1조인 제1권 7편은 순수한 묵가의 이론으로 보기 힘든 내용들이다. 제2조는 제2권에서 제9권에 이르는 24편으로 묵자의 사상을 대표하는 <상현>(尙賢) · <상 동>(尙同) · <겸애>(兼愛) · <비공>(非攻) · <절용>(節 用) · 〈절장〉(節葬) · <천지>(天志) · <명귀>(明鬼) · <비 악>(非樂) · <비명>(非命> · <비유>(非儒) 편 등이 들어 있다. 이들은 모두 상 · 중 · 하 3편으로 나뉘어 있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24편뿐이다. 제3조의 <경>(經) 상 · 하, <경설>>(經設) 상 · 하 및 <대취>(大取) · <소취> (小取)의 여섯 편은 글귀가 짧으면서도 알 수 없는 글들 이 많다. 이들은 대체로 묵가의 논리학(論理學)과 관계 가 깊은 글인데, 옛부터 <경> · <경설>의 네 편은 <묵경> (墨經)이라 하여 특별한 취급을 받기도 하였다. 이들 짧 은 글 속에는 기하학 · 물리학 등 과학적인 내용들도 있 어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묵자의 말과 행동에 관한 기록들이 중심을 이룬 제4조의 5편은 묵자의 제자 들이 기록한 것으로, 묵자의 생애와 사적을 알려 주는 귀 중한 자료가 된다. 제5조 11편은 묵가의 병법(兵法)으 로, 주로 성을 방비하고 적을 대적하는 방법을 논한 것이 다. 그러나 이 가운데에는 한대(漢代)에 첨가되었다고 보이는 글들도 들어 있다.
※ 참고문헌 김학주, 《墨子-그의 생애, 사상과 墨家》, 민음사, 1994/ 김학주, 新譯 墨子》, 명문당, 1978/ 송영배, 《제자백가의 사 상》, 현암사, 1994/ 畢沅, 《墨子》, 臺灣 : 臺北 中華書局 孫詒讓, 《墨子 閒詁》, 臺灣 : 臺北 世界書局/ 高亨, 《墨子新箋》, 山東 : 人民出版/ 梁 啓超, 《墨子學案》, 上海 : 商務印書館/ 一, 《子墨子學說》, 上海 : 中 華書局 方授楚, 《墨學源流》, 上海 : 中華書局/ 陳柱, 《墨學十論》, 上 海 : 商務印書館 張統一, 《墨子閒詰箋》, 臺灣 : 臺北 世界書局. 〔金學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