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산 본당
文山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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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진주시 문산읍 소문리 58 소재. 1905년 9월 22일 마산(현 완월동) 본당 관할 공소 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성심. 설립 당 시에는 소촌(召村) 본당이었으나, 1913년 무렵부터 현 재의 본당명으로 개칭되었다. 관할 구역은 문산면, 금곡 면, 진성면, 지수면, 사봉면, 일반성면, 이반성면 일대이 고, 공소는 갈촌, 사봉, 진성, 인담 등 4개소다. 〔교 세〕 1928년 856명, 1932년 753명, 1940년 1,017명, 1949년 957명, 1956년 1,260명, 1982년 1,132명, 1988년 691명, 1995년 736명. 〔역대 신부〕 초대 쥴리 앙(M. Julien, 權裕良) 마리오(1905. 9~1909), 2대 김명제 (金命濟) 베드로(1909~1916. 6), 3대 김양홍(金洋洪) 스 테파노(1916. 6~1929. 8), 4대 이필경(李弼景) 안드레아 (1929. 8~1931.5), 5대 김영제(金永濟) 요한(1931. 5~1943. 2), 6대 박재수(朴在秀) 요한(1943. 2~1944. 12) , 7대 서정 도(徐廷道) 베르나르도(1944. 12~1948. 6), 8대 권영조(權 永兆) 마르코(1948. 6~1949. 6), 9대 김동한(金東漢) 가롤 로(1949. 6~1951. 8), 10대 김피득(金彼得) 베드로(1951. 8~1952), 11대 김태호(金兌浩) 알로이시오(1952~1953. 7), 12대 김준필(金俊弼) 아우구스티노(1953. 7~1955) , 13대 최병선(崔炳璇) 요한(1955~1955. 9), 14대 제찬규 (諸燦奎) 시메온(1955. 9~1956. 4), 15대 김동언(金東彥) 베드로(1956. 4~1957. 3), 16대 백응복(白應福) 스테파노 (1959. 3~1960), 17대 박정일(朴正一) 미카엘(1964. 1~ 1967. 1), 18대 허정식(許貞植) 스테파노(1967. 1~1969. 4), 19대 석종관(石鍾寬) 바오로(1969. 4~1970), 20대 마퀴 에이라(R. Maquieira, 민정식) 라파엘(1970. 1~1976. 1), 21 대 장덕범(張德範) 바오로(1976. 1~1979. 1), 22대 최동오 (崔東五) 아타나시오(1979. 1~1982.2), 23대 허성학(許盛 鶴) 아브라함(1982. 2~1985. 2), 24대 장병욱(張炳旭) 베 네딕도(1985. 2~1988. 9), 25대 이강해(李康海) 스테파노 (1988. 9~1991. 6), 26대 이윤호(李潤浩) 필립보(1991. 6~1994.3), 27대 김용호(金容鎬) 안셀모(1994. 3~현재). 〔전사 및 공소 시대〕 지금의 진주 · 함안 지역에 천주 교 신앙이 전파되고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1860년대 초 였다. 그 후 경상도 지역을 전담하던 리델(Ridel, 李福明) 신부와 함께 1865년경 거제도를 방문한, 함안(咸安) 출 신의 구한선(타대오)이 이듬해 병인박해(丙寅迫害)가 일어나면서 매를 맞아 순교하였는데, 진주 문산 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것도 바로 박해 전 구한선에 의해서였다. 이곳의 신자 집단은 박해 후 다시 교우촌으로 재건되었 으며, 1883년에는 로베르(Robert, 金保祿) 신부의 방문 으로 소촌(召村, 현 晋陽郡 文山面 蘇文里)에 공소가 설립 되었다.
소촌 공소는 그 후 죠조(Jozeau, 趙得夏) 신부가 1890 년 초에 부산 절영도(絶影島)에 정착하면서 부산 본당 (정식 명칭은 초량 본당) 소속이 되었다가, 1899년 6월 부 산 본당 3대 주임 타케(Taquet, 嚴宅基) 신부가 진주(晋 州) 본당을 설립하면서 이 본당 관할이 되었다. 당시 진 주 본당 신자수는 1,054명이었는데, 그중에 소촌 공소 신자수가 156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후 타케 신부는 1900년 6월 29일 개항장으로 장래가 유망한 마산포(馬 山浦)로 가서 마산 본당을 설립하였고, 소촌 공소는 다 시 이 본당 소속이 되었다. 타케 신부는 마산에 정착한 지 1년 10개월 만인 1902년 4월 20일에 제주도로 전임 되었고, 대신 제주도에 있던 무세(Mousset, 文濟萬) 신부 가 같은 날 마산 본당 2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본당 설립과 초기 현황〕 1904년 무렵 소촌 공소 신자 수는 160명에 달하였다. 이에 무세 신부는 본당 분할을 교구장 뮈텔(Mutel, 閔德孝) 주교에게 요청하였고, 뮈텔 주교는 이 건의를 받아들여 새로 입국한 줄리앙 신부를 1905년 9월 22일자로 무세 신부의 보좌로 임명하였다. 그에 앞서 무세 신부는 이미 마산 본당 관할 중에서 소촌 지역을 분리하여 새로 본당을 설립할 생각을 갖고 있었 으므로 줄리앙 신부의 임명은 곧 소촌 본당의 설립을 의 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산에 도착한 줄리앙 신부는 즉시 소촌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이듬해 1월에 가서야 삼곡리(三谷里)에 초가 세 채를 매입하고 임시 성당으로 삼게 되었다. 그리고 새 성당 부지를 물색한 끝에 1907 년 소문리의 현 성당 부지 2,400평과 조선 시대 때 찰방 관서(察房官署)였던 기와집 10여 채를 매입하고 성당 공사를 시작하였으며, 1908년 9월 29일 새 성당을 완공 하고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그러나 줄리앙 신부는 1909년 봄에 부산 본당으로 전 임되고, 김명제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는데, 그 는 부임 이듬해 전교 및 지역 계몽 사업의 일환으로 배명 학교(培命學校, 1926년 폐교)를 설립하였다. 학교 명성이 널리 알려져 멀리 통영, 거제, 사천, 곤양, 함안 등지에 서 학생들이 모여들었으며, 1915년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긍련회(矜憐會)를, 그 이듬해에는 소화유치원을 설 립하였다. 이때까지 성당은 찰방 관서 건물을 보수해서 사용하고 있었는데, 400여 년 된 노후 건물이라 더 이상 의 보수가 어려워짐에 따라 3대 김양홍 신부 재임시인 1923년 11월 23일 성당(현 유치원 강당)을 신축하였으 며, 기존의 배명학교와 유치원, 신자들의 사랑방을 중수 개축하였다. 1920년대 문산 본당은 경남 및 전남 지역 의 관할 공소만 무려 97개소에 달해 공소 순회 기간만 7 개월 이상이 소요되었으므로 공소 담당 전교 회장을 따 로 임명하여 사목의 효율화를 도모하였고, 무의탁 행려 노인들을 위한 고조원(孤助院)을 설립하여 지역 복지 사 업에도 일익을 담당하였다. 1928년경 본당 단체로는 전 교회, 성모 부인회, 공교 소년회(公敎少年會), 호상계(護 喪契), 가톨릭 오시(五時) 품꾼회 등이 있었다. 이어 5대 김영제 신부 재임시인 1932년 5월 29일에는 3천여 명 이 참가한 진주 지역 최초의 성체 거동을 문산 본당에서 거행하였으며, 교세가 계속 증가함에 따라 1935년 8월 22일에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1937년 5월 6일 성 당과 사제관 · 수녀원을 건립하였다. 그러던 중 김영제 신부는 타본당보다 수도 성소자가 많음을 확인하고 1937 년 4월 8일 본당 내에 성모 성심원(聖母聖心院, 1957년 경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에 합병)을 설립하였다. 이후 김영 제 신부가 함안 등 몇몇 본당을 거쳐 밀양 본당에 부임하 자, 1951년 회원들도 밀양 본당 내로 본원을 옮겨 사목 활동을 도왔다.
한편, 1950년부터 10년 간 본당 신부가 일곱 번이나 교체되자 공동체 역시 분열의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였 다. 그 와중에 배급받은 전후(戰後) 구호 물자의 처리 과 정에서 관리 체계의 허술로 본당 내에 불신 풍조가 만연 하면서 1957년 월~1959년 3월과 1960년 ~1964년 1월 사이 신부 부재의 수난을 겪기도 하였다. 다행히 이 기간 동안 옥봉동(玉峯洞) 본당의 쥬포니(C.Giupponi, 콘 스탄시오) 신부와 사천(泗川) 본당의 라우리올라(G. Lauriola, 굴리엘모) 신부가 격주로 성무를 집행함으로써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1964년 1월 본당에 부임한 박정일 신부는 레지오 마리 애를 중심으로 본당 내 단체들을 재정비하여 근 15년 만 에 본당을 정상화하였다. 이후 문산 본당에서는 1970년 대 프로테스탄트와의 교환 순회 집회를 통해 교회 일치 운동에 앞장섰고, 1980년대에는 주일학교에 과감히 투 자하였으며, 단체 활동에 소극적인 신자들을 위해 꾸르 실료 교육, 주일학교 교사 및 학생 연수, 신용 협동 조합 강습 등을 통한 끊임없는 교육을 실시하였다. 또 1990 년에는 성모 동산을 마련하고 요셉상을 안치하는 등 성 당 안팎의 조경 사업에 힘썼으며, 1994년 11월 25일에 는 소화유치원을 완공하고 옛 유치원 건물은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자수가 줄 고, 신자층도 점차 노령화되어 가는 추세에 있어 현재 본 당 공동체 분위기 쇄신을 위한 사목에 주력하고 있다. (⇦ 소촌 본당 ; → 마산교구)
※ 참고문헌 《文山聖堂八十年史》, 문산 천주교회, 1985/ 김구정, 《천주교 경남 발전사》, 天主教 釜山教區, 1967/ 천주교 대구대교구 사 편찬위원회 편, 《大邱本堂 百年史》, 대건출판사, 1986/ 부산교구 사 편찬위원회 편, 한국교회사연구소 역주, 《教區年報》, 천주교 부 산교구, 1984/ 천주교 부산교구 편, 《釜山教區三十年史》, 한국교회 사연구소, 1990/ 마산교구 편, 《교구 설정 10주년 기념》, 천주교 마산 교구, 1976/ 한국교회사연구소 역주, 《드망즈 주교 일기》, 가톨릭신 문사, 1987/ 한국교회사연구소 역주, 《뮈텔 주교 일기》 I ~Ⅲ, 천주교 명동 교회, 1986~1993. 〔金成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