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신학 文化神學
〔라〕theologia culturae · 〔독〕Kulturtheologie · 〔영〕theology of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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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신학적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전달하는 단순한 도구적 표현 매체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메시지이다.
신학의 한 분과로서 문화와 그리스도교 신앙과의 관 계, 더 넓게는 문화와 종교와의 상관 관계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다루는 신학. 문화와 종교와의 관계는 종교학적 으로는 성(聖)과 속(俗)의 변증법적인 상관 관계와 관련 되고, 신학적으로는 문화 이념에 대한 신학적 비평, 그리 스도교 신앙의 토착화 이론, 그리스도교 신앙의 문화 예 술적 표현과 상징 문제, 그리고 다양한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 문제가 포함된다. 문화는 정치 사회 문화, 예술 문 화, 기술 과학 문화, 종교 문화 부문에서 각각 초월적 차 원 곧 종교적 · 신학적 문제와 관계하고 접목하여 문화 신학의 소재를 산출한다. 문화 신학의 개념과 관계가 위와 같이 매우 복합적인 이유는 문화라는 개념 그 자체의 포괄성과 다양성 때문 이다. 문화는 가치와 의미를 창조하면서 한 공동체가 자기 정체성과 일체성을 견지하는 삶의 의미의 연관 구조 이며 하나의 유기체적 생명체와 같다. 따라서 살아 있는 문화는 사회성과 전통을 매개로 하여 차세대에서 문화적 계승과 새로운 가치 창조를 하면서 끊임없는 '지평 융 합' 과정을 거쳐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특히 인간은 문화라고 하는 제2의 자연 환경 속에서 조성되어 가기 때문에 '인간은 문화적 존재' 이다.
〔문화와 종교 간의 변증법적 관계〕 문화는 종교가 아 니며 종교는 문화가 아니다. 각자 독자적인 기능과 영역 과 차원이 있다. 문화가 인간 생명의 자기 창조적 운동과 관계된다면, 종교는 인간 생명의 자기 초월적 운동과 관 계된다. 새로운 가치 창조 운동으로서의 인간의 문화 운 동이 수평적 차원이라면, 인간의 자기 초월 운동으로서 의 종교적 행위는 수직적 차원이다. 이처럼 문화와 종교 는 구별되어야 하지만 분리될 수는 없다. 성과 속이 구별 되어야 하지만 분리될 수 없음과 같다. 왜냐하면 의미와 가치를 창조하려는 인간의 의미 추구, 가치 창조의 행위 가 그 궁극적 단계에 가서는 의미와 가치의 존재론적 뿌 리와 지반이 되는 '궁극적 실재' 곧 형이상학적인 종교 적 실재와 관련되고 접촉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는 화석화된 종교에서보다 문화 활동과 예술 적 행위 안에서 인간은 초월을 경험하고 또 표현한다. 문화가 궁극적인 것의 보유자가 되며 문화의 각 부문은 종 교적 계시의 훌륭한 매개체가 된다.
문화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종교란 문화의 실체(substance)이며, 문화란 종교의 형태(form)이다” 라 는 유명한 명제를 제창하였다. 종교는 종교로서의 문화 와 구별되는 특별한 전문 기능을 지니지만 본질적으로 인간 정신 기능의 특수한 영역이 아니고 인간의 정신적 삶 전체의 '깊이의 차원' 이기 때문에 문화적 삶의 현상 과 활동 전 영역은 종교 신앙과 관련된다. 위의 문화 신 학 명제를 받아들인다면 문화사와 종교사는 구별되면서 도 분리할 수 없게 된다. 그 문화를 창조하고 전승해 가 는 문화 공동체의 궁극적 관심 곧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초월 경험과 가치 지향성이 문화사의 깊이의 차원에 육 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틸리히의 문화 신학은 모든 시대 의 공동체가 지향하는 문화 이념과 가치 속에 내재해 있 는 '궁극적 관심' 을 복음의 빛에서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성찰함으로써 문화 이념이 지니는 생명 창조적 기능과 생명 파괴적 기능을 분별해 내는 이념 비평적 과제를 지 닌다. 문화 신학은 19세기 서유럽 부르주아 시민 종교와 자본주의 문화가 지니고 있었던 자기 만족적인 문화 이 념, 근대 국가주의가 지니고 있는 권력의 우상화, 볼세비 키 사회주의 혁명 이론과 공산주의 사회가 빠져 드는 집 단주의와 폭력 혁명의 이론, 근대주의가 전제하고 있는 합리성의 독단주의와 발전론적 역사주의의 독단성, 근본 주의적 종교 집단과 열광주의의 신앙 집단이 공유하는 마성적 성격 등등의 본질을 그리스도교 복음의 빛 안에 서 비판적으로 밝힌다. 결국 문화 신학은 그리스도교 복 음이 지향하는 정의, 자유, 평화가 육화된 '하느님의 나 라' 라는 궁극적 목적을 가지고 이 역사 속의 '준궁극적 문화 이념' 들을 비판적으로 검증하여 인간을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 속에서 살도록 하기 위해 우상 파괴적인 예 언자적 기능, 모성적 치유를 본질로 하는 제사장의 기능, 놀이와 유머를 즐길 줄 아는 현자의 기능을 회복시켜 복 음에 봉사한다.
리차드 니버(Richard Niebuhr)는 그의 명저 《그리스도와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교와 서유럽 문화와의 관계 방식 을 다음의 다섯 가지 모델로 분류하였다. 문화와 적대 관 계의 그리스도교, 문화를 지배하는 그리스도교, 문화와 역설적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그리스도교, 문화 이념으 로 기능하는 그리스도교, 그리고 문화를 변혁해 가는 그 리스도교가 그것이다. 이들 각각의 모델은 그리스도교의 삶의 자리를 나타내고 그것에 반응하는 다양한 형태들이 다. 문화 신학을 그리스도교의 육화 신앙과 하느님 나라 를 두 축으로 삼는 복음의 역동적 운동이라고 이해한다 면 다섯 번째 모델이 이상적이지만, 그리스도교가 구체 적으로 처한 문화적 ·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교와 문화의 관계 설정은 매우 탄력적이고 가변적임을 인정해 야 할 것이다.
〔예술 문화와의 관계〕 정치 사회적 이념 비판 영역, 곧 역사적 삶의 현실 속에서의 인간 해방의 관심에서 문화 신학의 영역을 찾는다면, 문화 신학의 과제와 관심은 예 술 문화 영역에서 발생한다. 종교와 예술, 신학과 미학은 만나면서 서로를 조명하고 풍요롭게 한다. 종교와 예술 이 그 기원을 함께한다는 것은 문화사의 첫 장에 나오는 상식이 되었다. 그 뒤 종교와 예술이 분화되고 전문화됨 으로써 각각은 더욱 왜소하고 빈약하게 되었다. 현대 문 화 신학에 의하면 예술은 신학적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전달하는 단순한 도구적 표현 매체가 아니라, 그것 자체 가 메시지이다. 종교와 예술의 친화성은 상징성, 창조성, 비합리성, 직관성, 신명성, 놀이성, 축제성 등에서 매우 통하는 점이 많다.
첫째, 종교와 예술은 상징 언어를 통하여 메시지를 전 달한다. 상징(symbol)은 기호(sign)와는 다르다. 상징은 자기 자신을 넘어서서 무엇을 가리키면서, 그가 가리키 고 있는 실재의 능력과 의미에 참여하고 있다. 교통 신호 등의 색깔과 교통 표지판의 그림은 기호이지만, 연꽃이 나 십자가, 어린 양이나 무궁화꽃은 상징이다. 그리스도 교 역사에서 상징 파괴는 두 차례의 큰 역사적 사건과 관 련되어 있다. 그 첫 번째는 726년 동로마 황제 레오 3세 가 일체의 성화상(聖畵像) 공경 금지령을 내린 사건과 관련된다. 성화상 파괴령(Iconoclasm)이라고도 불리는 이 명령은 교회 안에서와 신자 가정에서 그리스도, 성모, 순 교자, 성인의 상(像)을 그림이나 조각 형태의 상징물로 만들어 경배하는 경건 행위나 숭배 행위를 금지시킨 명 령이다. 이 성화상 공경 금지령은 843년 황태후 테오도 라(Theodora)가 동로마 제국을 통치하게 되면서 철회되 었다. 두 번째는 종교 개혁의 정신이 '오직 성서라는 원 리' 를 강조함으로써 성화상 공경을 비롯한 일체의 상징 적 종교 예술의 표현과 그 기능을 비판하고 축소화하였 다. 복음의 단순성과 순수성을 회복하려는 원래의 의도 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프로테스탄트는 상징 신학의 약화를 초래하여 신앙이 무의식과 의식을 통섭(通涉)하 는 전인적 인간의 깊이와 관련되지 못하고 단지 의식의 차원으로 단층화되었다. 상징은 인간의 시각적 행위를 통하여 본질을 직관하게 하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역 설과 비대칭적 시간의 동시성을 체험하게 한다. 신학이 말하려는 실재와 그 진리성은 모두 상징적이다. 예술도 상징이다. 이 점에서 문화 신학은 상징이 신학과 종교적 예배 의식에서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재발견하고 재강조 한다. 상징은 표피적 형식이나 형태를 넘어서서 존재와 정신의 깊이를 현시(manifestation)한다. 진지한 예술가는 기존의 종교 제도에 대하여 반(反)종교적일 수는 있어도 결코 비(非)종교적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진정한 예술 가는 그의 예술 양식을 통하여 삶의 궁극적 질문과 의미 를 묻고 그 대답에 예술적 표현을 통해서 참여하기 때문 이다. 틸리히가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위대한 프로테 스탄트의 회화' 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술 특 히 미술에서의 초현실주의나 추상적 표현주의를 신학의 계시론과 연관시켜 설명하는 그의 논리도 상징론에 대한 그의 문화 신학적 이해에 기인한다.
둘째, 종교와 예술은 비합리적 직관성, 역설성에서 서 로 통하는 면이 있다. 특히 근대주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데카르트 · 라이프니츠 · 볼프의 인식론과 실재론 에서 진리 인식 방법과 진리와 비진리의 판별적 규범으 로 제시되는 '명석하고도 판명한 인식 논리' 는 수학적 논리와 경험적 합리주의를 강조하는 반면 이외에 모든 생의 충만한 신비는 말소하여 버렸다. 이에 대하여 예술 과 종교는 저항한다. 예술 영역과 종교 체험은 반(反)이 성적일 수는 없어도 얼마든지 비(非)이성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도리어 삶의 깊이의 차원과 생명과 존재 의 역설적 일치 경험은 합리주의 독단론을 가지고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마르부르크 대학의 오토(H. Otto) 교수 는 그의 명저 《성스러움의 의미》(Das Heilige)에서 종교 체험의 본질을 성스럽고 신비한 '누미노제' (numinose)적 인 것의 체험으로 보고, 인간에게 떨리는 경외감' 과 매 혹적인 황홀감' 이라는 이율 배반적인 감정을 동시에 불 러일으키는 성스러운 것에 대면하는 인간의 종교 체험을 현상학적으로 서술하였다. 특히 그가 강조하였던 것은 종교가 합리성이나 도덕성의 범주에 유폐되고 제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돌파시키는 역설적 일치의 체험, 직관적 신비 체험이었다. 빛과 로고스적인 것의 단 일극성이 아니라 어둠과 디오니소스적인 것까지를 동시 에 포용하며, 그것을 통해서도 신성을 계시하는 양극성 적인 것의 역설적 통일과 대치를 통한 조화를 말하려고 하였다. 그 점에서 문화 신학은 예술과 종교를 매개시키 려 한다.
셋째, 종교와 예술, 신학과 미학은 삶의 놀이성 · 축제 성 · 신명성을 공유하면서 문화 신학이라는 공동 광장에 서 만난다. 종교와 예술에서 이런 특성을 다시 강조하는 대표적인 문화 신학자로는 샘 킨(Sam Keen), 하비 콕스 (Harvey Cox),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 죌레 (Zoell)와 한국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인 현영학(玄永 學), 유동식(柳東植) 등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세계관 적으로 근대주의를 넘어선 정신의 반획일주의이다. 근대 적 인간상의 특징인 공작인(工作人, homo faber) 대신에 축제인(祝祭人, homo festivus), 경탄인(驚歎人, homo admirans), 춤추고 환상을 꿈꾸는 인간(homo ludens)의 복 권을 강조한다. 근세 역사가 일방적인 역사주의에 몰두 하였고 우주와 만물을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같이 직선적 사고에 집착하게 하였으며, 정치적 불의와 악에 대한 인간의 해방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인간을 증오와 열 광주의에 방치시켰다. 자연과 함께 숨쉬는 인간을 잃어 버리고 도시인의 익명성, 유동성, 능률성, 경제성에 밝은 인간을 찬양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해방 신학, 정치 신학, 희망의 신학은 이러한 일방성의 위험을 감지하고 '놀이의 신학' , '축제의 신학' 을 되찾아 이들의 상호 보완을 시도하였다.
축제성과 환상은 세계 현실 속에 있는 불의함과 역사 의 악(惡)을 외면하고 현실 도피적인 환상적 놀이로 이 성을 몰입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해학과 놀이를 통하여 현재를 비판하고 초월하게 한다. 환상과 미래의 희망은 과거와 현재를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재를 비 판하고 미래를 선취한다. 놀이 신학과 축제 신학은 하비 콕스의 《세속 도시》와 《바보들의 축제》, 몰트만의 《희망 의 신학》과 《창조 안에 계신 하느님》에서 암시하듯이 정 치 신학과 해방 신학의 참여 동기를 버리지 않고 도리어 성숙시킨다. 또한 역사 범주 일변도로 치우쳤던 그리스 도교의 신학 방법론을 새로운 자연 신학으로 보완할 것 을 주장한다. 그리고 참여의 원리 못지않게 동일성의 원 리도 강조한다. 하느님의 창조 행위 그 자체를 지나친 목 적 의식이나 도덕적 책임 의식, 존재론적 필연성 속에서 보지 않고 하느님의 자유와 사랑이 충만한 놀이 행위로 서 재해석한다. 전통적인 신학 용어로 표현하면, 하느님 은 '하느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 '보기에 좋으니까' 창조 행위를 하였으며, 하느님의 창조적 기쁨과 새로움 의 경험과 영광에 인간을 무조건적으로 초청하고 함께 춤추자고 부른다. 하느님의 창조 행위가 일어나고 있는 우주 자연에는 현대 인간들이 생산성 증대를 목적으로 하는 노동의 개념이나, 목적 지향적인 획일성이 지배하 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움의 출현, 아름다움과 조화로움, 거룩한 생명의 낭비, 고통을 동반하는 창조의 기쁨, 그리 고 놀이를 통한 즐거움과 만족이 있다. 현대 문화 신학은 이와 같은 현대 예술 및 미학과의 대화를 통하여 새로운 문화 신학적 측면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종교 문화와의 관계〕 현대 문화 신학은 또 하나의 중 요한 과제로서 종교 현상의 다원성에 대한 신학적 해명 을 그 과제로 갖는다. 넓은 의미에서 문화 신학의 한 부 문인 종교 신학은 그리스도교 신앙과 다른 비그리스도교 및 타종교 문화와의 관계 문제를 추구한다. 이 문제에 대 한 그리스도교 신학의 분명한 각성은 1960년대 이후였 다.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후, 프 로테스탄트는 세계 교회 협의회 나이로비 회의(1975) 이 후부터이다. 종교간의 대화 및 만남의 태도를 가르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서로는 1965년의 <비그리스도 교에 관한 선언>과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이 있고, 세 계 교회 협의회의 입장으로서는 <종교간의 대화 지침서> (1979)와 <바아르 선언문>(1990)이 있다. 그리스도교와 비그리스도교 종교들과의 대화 및 협력에 관한 종교 신 학적 입장은 다음 세 가지 입장으로 대별된다.
배타주의 입장 : 일종의 종교 문화 정복설과 같은 입 장으로서 그리스도교만이 참 진리의 종교이며 계시적 종 교이고, 타종교 및 타종교에 기초한 이방 문화는 이교이 며 우상 종교라는 것이다.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 는 입장을 견지하며, 성서만이 오직 유일한 구원 진리가 계시된 경전이라고 믿는다. 종교간의 대화 자체가 무의 미하며 불신앙적 태도라고 생각하므로 대화 자체가 금기 시되고 오로지 종교적 승리주의 정신이 지배한다. 이러 한 극단의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은 그리스도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교에도 있기 때문에 배타주의는 종교 간의 전쟁과 종교 문화 갈등으로 이어질 위험을 내포하 고 있다.
포용주의 입장 : 그리스도교 구원의 도리를 보다 온전 한 구원 진리라고 고백하면서 그리스도교 이전 단계의 인류 종교의 실재성과 그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의 윤리 적 · 영적 가치와 공헌을 수용한다는 입장이다. 포용주의 입장을 일명 성취설(成就說)이라고 보는 이유는 그리스 도교 구원 진리의 우월성과 온전성을 포기하지 않기 때 문이다. 포용주의 입장은 하느님의 구원 경륜과 말씀의 역사가 시공을 넘어 우주적이고 보편적으로 현존하고 역 사하여 왔다고 믿는다. 진리의 말씀과 생명의 빛으로서 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교의 전교(傳敎) 이전에도 이미 모든 인간 문화와 종교적 진리 안에 현존해 왔고 역사해 왔기 때문에 명시적 그리스도인이 아닐지라도 모든 사람 은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라고 칼 라너(Karl Rahner)는 주장하였다. 이 입장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궁극성을 고 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실천적 견해를 반영하지만, 종교 신학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교의 우월성 · 규범성 · 절대 성을 전제로 하는 종교 문화 제국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 다는 비판을 받는다.
다원주의 입장 : 세계 안에 숨쉬는 모든 위대한 세계 종교들은 모두 하느님의 시대 경륜과 인류 구원을 위해 하느님 안에서 일어나고 인류의 문화적 · 역사적 상황 속에서 구체적으로 반응한 다양한 유형의 구원 패러다임 (paradigm)들이라고 해석하는 입장이다. 모든 진지한 종 교들은 그들 나름대로 계시 경험과 구원 경험을 갖고 이 를 전승해 오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만이 계시 종교이고 다른 종교들은 이성 종교, 자연 종교, 도덕 종교라고 규 정하는 19세기 종교사 학파들과 정통 보수주의 문화 신 학 입장을 비판한다. 다원주의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진 리 체계의 우월성 주장이 후기 현대 사회의 가치의 다양 성, 구원 패러다임의 다양성, 상징 체계와 윤리 체계의 다양성을 손상시킨다고 본다. 그러나 이 입장은 특수성 이 배제된 종교적 혼합주의나 무책임한 종교적 상대주의 와는 엄밀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다원주의의 진정한 의 도는 신앙의 자기 정체성과 개방성이 동시에 숨쉬는 종 교 신학을 추구한다. 대표적인 신학자로는 가톨릭의 라 이문도 파니카(Raimundo Panikkar)와 프로테스탄트의 존 힉(John Hick)을 들 수 있다.
〔문화 신학과 한국의 토착화론〕 토착화란 복음이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복음이 전파되는 역사적 · 문 화적 현실 속에 육화해 들어가 하느님의 나라를 현실화 시켜 가는 역동적 과정을 말한다. 또한 외래 종교가 피선 교 사회의 문화 역사 전통 속에 접목되어 외래 종교로서 의 생소함을 극복하고 토착 문화 현실 속에 뿌리내림을 의미한다. 철학적 해석학의 표현을 빌린다면 '기존 전통 의 종교 문화 구성원이 지닌 삶의 지평과, 전래된 외래 종교의 삶의 지평이 융합을 이루어 가는 역동적 과정' 이 토착화이다.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는 초창기에 매우 활발한 자생적 토착화 신학과 토착화 신앙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벽의 <천주 공경가>(1779) 정약종의 《주교 요지》(1795), 한국 최초의 호교론서라고 할 수 있는 정하상의 《상재 상서》 (1839) 등은 모두 신앙의 토착화 작업을 위한 노력의 결 실이다. 그 뒤 120년 간은 주로 서유럽의 전통 신학을 소개하거나 수용하는 데 그쳤고 1960년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한국 가톨릭 사목 지침서>, <상제례 토 착화 시론> 등의 중요한 문서들이 나왔다. 사실 토착화 과정은 문화적 · 종교적 형태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 은 아니다. 때로는 사회 정치적 참여를 통해서도 그리스 도교 신앙의 본질이 한국인의 심성 속에 더욱 현실적으 로 육화되어 가는데, 1970년대 이후 정의 구현 사제단 의 활동이나 가톨릭 농민회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은 노동 자 · 농민 계층과의 연대적 활동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프로테스탄트의 토착화는 최병헌(崔炳憲), 유영모(柳永 模), 윤성범(尹聖範) 김하태(金夏泰) 유동식 등 주로 감리교 신학자들에 의한 공헌과 학술적 저작물로 나타났 다. 윤성범의 《성(誠)의 신학》, 유동식의 《한국 무교의 역사와 구조》 및 《풍류도와 한국 신학》, 김하태의 《동서 철학의 만남》, 서남동(徐南同)과 안병무(安炳茂)의 《민 중 신학의 탐구》 등은 한국 프로테스탄트 토착 신학의 결실이다.
토착화 이론과 토착화 과정은 이론 신학적 측면에서만 이 아니라, 예배 양식 · 교회 건축 양식 · 교회력 · 교회 음악과 미술 · 연극 등의 문화적 매체들을 통해서도 이루 어진다. 유교적 제사 의식을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재해 석하여 수용하는 문제, 추석을 한국 교회의 추수 감사절 로 삼는 일, 사제들과 성직자들의 의복을 한국적으로 개 조하는 일, 건축 양식에 한국적 건축미를 도입하는 일, 한국적 가락과 한국화의 기법을 통하여 한국 그리스도인 들의 신앙을 표현하는 일 등이 매우 활발히 진행되어 가 고 있다. 최근에는 멀티미디어 시대에 부응하여 가톨릭 의 <평화 방송>, 프로테스탄트의 <기독교 방송> 등 기존 전파 방송 매체와 곁들여 케이블 텔레비전 영상 매체를 통한 문화 선교의 시도는 앞으로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 다. (→ 신학)
※ 참고문헌 Paul Tillich, Theology ofCulture, New York, 1957(김경 수 역, 《문화 신학》, 대한기독교서회, 1965)/ ㅡ, The Protestant Era, Chicago, 1957/ Richard Niebuhr, Christ and Culture, New York, 1952(김 재준 역, 《그리스도와 문화》, 대한기독교서회, 1968)/ John Hick, God has Mary Names, Philadelphia, 1980/ Hans Kung, Christianity and World Religions, New York, 1986/ Hans Georg Gadamer, Truth and Method, New York, 1982/ Arend Th. van Leeuwen, Christianity in World History, Edinburgh, 1964/ Paul Knitter, No Other Names? : A Critical Survey of Christian Attitudes toward the WorldReligions, London, 1985/ Karl Rahner, Anoymous Christianity and the Missionary Task ofth Church, Theological Investigations, vol. 12, New York, 1974/ Harvey Cox, Religion in the Secular City : Toward a Postmodem Theology, New York, 1984/ Song Choan-Seng, Third Eye : Theology in Formation in Asian Settings, Maryknoll, 1979/ 유동식, 《풍류도와 한국 신학》, 전망사, 1992/ 유동 식, 《한국 무교의 역사와 구조》, 연세대 출판부, 1975/ 서 남동, 《민중 신학의 탐구》, 한길사, 1983/ 김광식, 《토착화와 해석학》, 대한기독 교출판사, 1987/ 김경재, 《해석학과 종교 신학》, 한국신학연구소, 1994/ 김하태, 《동서 철학의 만남》, 종로서적, 1985/ 이성배, 《유교와 한국 그리스도교- 이벽의 한국적 신학 원리》, 분도출판사, 1985/ 정대위, 《그리스도교와 동양인의 세계》, 한국신학연구소, 1986/ 함 석헌, 《뜻으로 본 한국 역사》, 한길사, 1983/ 김문환, 《문화 선교와 교 회 갱신》, 엠마오, 1995. 〔金敬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