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흥동 본당
文興洞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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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광주대교구 소속 본당. 광주시 북구 문흥동 274-1 소 재. 1991년 2월 7일 두암동(斗岩洞) 본당에서 분리 · 설 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마티아 사도. 관할 구역은 문흥 동, 각화동, 두암동, 우산동 일부 지역. 〔교 세〕 1991년 3,126명, 1993년 4,275명, 1995년 5,136명. 〔역대 신 부〕 초대 임병태(林炳泰) 시몬(1991.2~1996.8), 2대 정형 달(鄭亨達) 바오로(1996. 8~현재) . 〔설립과 성장〕 1989년 초 두암동 본당 관할의 문흥동, 각화동 지역과 두암동, 우산동 지역에 거주하는 신자들 을 중심으로 문흥동 공소가 설립되었는데, 교구에서는 이 지역의 발전과 앞으로 있게 될 본당 설립을 위해 그 해 3월 31일 현 본당 소재지의 부지 803.8평을 매입하 였다. 이에 공소 신자들은 임시 성당과 교리실, 사무실 등의 부속 시설 건립에 노력하여 이를 완공하고, 1990 년 5월 7일 윤공희(尹恭熙, 빅토리노) 대주교의 집전으 로 공소 축성식 및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 후 문흥동 공소에는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의 날론(M. Nallon, 나) 신부, 케니(P.Kenny, 기) 신부, 오닐(O'Neil, 천) 신부 등 이 방문하여 미사를 집전해 왔다. 그리고 공소 설립 당시 의 예상대로 문흥동 일대는 2~3년 동안에 택지와 아파 트 단지가 조성되어 전입 인구수가 급증하였다.
이에 교구에서는 두암동 본당의 분할을 적극 추진하여 1991년 2월 7일 문흥동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킴과 동 시에 임병태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임병태 신부는 부임 직후인 2월 15일 본당 주보를 창간한 데 이어 초기부터 신자 상호간의 친목 도모, 신심 단체의 증설 및 활성화, 피정, 성서 대학 운영, 문흥골 아이네 공부방 개설 등 본당의 정착에 노력하였다. 또한 1992년 2월 22일에는 사랑의 씨튼 수녀회 문흥동 분원이 개설되었 으며, 그 해 9월 1일에는 월간지 《문흥골》 창간호를 발 행하였다. 1992년에 들어서면서 본당 내 전 신자들을 대상으로 성당 건립에 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한 문흥동 본당은 성당 건축 계획을 오랫동안 협의한 후 같은 해 11월 29일에 '성당 건축 추진위원회' 를 구성하였다. 이 후 성당 건립은 1994년 2월 25일 기공식을 가진 후 순 조롭게 진행되어 이듬해 11월 26일 대지 760평에 연건 평 1천여 평의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성당을 완공 하고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특히 지하 1층에 마련된 문 화 센터는 신자 및 지역 주민들의 취미 활동 및 문화 생 활에 기여하고 있다.
현재 본당에서는 청소년 상담소를 운영하여 청소년들 의 고민 해결과 선도에 앞장서고 있으며, 그 동안 평신도 사도직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해 온 결과, 레지오 마리애 2개 꾸리아에 41개 쁘레시디움을 비롯하여 연도회, 청 년회, 제대회, 빈천시오 아 바오로회, 성가대, 울뜨레야, M. E., 문흥골 편집부, 안나회, 마리아회, 요셉회, 가나회 등 여러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 광주대교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주대교구 50 년사》, 1990.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