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금 본당

勿禁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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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구 소속 본당. 경남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 중부 동 352-3 소재. 1969년 11월 19일 양산 본당에서 분 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녀 소화 데레사. 관할 구역 은 물금읍, 원동면 전역과 동면 가산리 호포 부락. 〔교 세〕 1970년 286명, 1974년 441명, 1979년 401명, 1984년 663명, 1988년 666명, 1992년 690명, 1995 년 961명. 〔역대 신부〕 초대 이옥군(李玉君) 타대오 (1969. 11~1971. 5), 임시 박유식(朴裕植) 안드레아(1971. 5~10), 임시 왕영수(王永秀) 프란치스코(1971. 10~1972. 11), 임시 유창호(劉昌鎬) 토마스(1972. 11~1973. 7), 2대 이홍기(李洪基) 요한(1973. 7~11), 3대 김만수(金萬洙) 요한 보스코(1973. 11~1975. 2), 임시 이상호(李尙護) 레 이문도(1975. 2~5), 임시 이철희(李哲熙) 바오로(1975. 5~ 7), 4대 이시찬(李時贊) 다니엘(1975.7~1976. 11), 5대 신 상도(辛尙道) 아우구스티노(1976. 11~1979. 2), 6대 안달 원(安達遠) 베드로(1979. 2~1987. 2), 7대 이경우(李慶雨) 가브리엘(1987. 2~1991. 2), 8대 유창호(劉昌鎬) 토마스 (1991. 2~1993. 2), 9대 김옥수(金玉洙) 도미니코(1993. 2~ 1994. 2), 10대 서주갑(徐柱甲) 마티아(1994. 2~1996. 2) , 11대 김창대(金昌大) 임마누엘(1996. 2~1997. 1), 12대 김홍태(金洪泰) 베다(1997. 2~현재).
〔공소 시대〕 1926년 12월 5일 부산진(釜山鎮) 본당 에서 언양(彥陽) 본당이 분리 · 설립된 이후 양산군(梁山 郡) 지역의 사목은 언양 본당에서 담당하였는데, 이듬해 가을 물금면 증산리 일대에 거주하는 다섯 가구의 신자 들이 회장 박수환(마티아)의 집에서 첫 공소 예절을 함 으로써 증산(曾山) 공소가 설립되었으며, 언양 본당의 옛 성당 건물에 사용된 목재 일부를 얻어 공소 건물을 신 축하였다. 당시까지 언양 본당 소속이었던 증산 공소는 지역 사회와 관할 본당의 사정에 따라 밀양(密陽) 진영 (進永), 언양, 삼랑진(三浪津) 김해(金海), 구포(龜浦), , 동래(東萊) 본당 등으로 관할이 계속 변경되었다.
삼랑진 본당 소속이었을 때에는 증산 공소 건물을 물 금 역전으로 잠시 이전하였다가 얼마 후 매각하여 양산 임시 성당 부지 매입 비용으로 사용하였고, 구포 본당 소 속이었을 때에는 증산리 215번지에 162.1평의 부지를 매입하여 공소 건물을 신축하였는데, 1966년 1월 3일 구포 본당 주임으로 있다가 은퇴한 윤예원(尹禮源, 토마 스) 신부가 상주하게 됨에 따라 임시 본당으로서의 역할 을 하게 되었다. 이 무렵 윤예원 신부는 이곳보다는 물금 리 지역이 본당 신설에 더 적합하다고 인식하고, 본당 회 장단들과 협의하여 현 성당 부지 668.56평을 매입하였 다. 그러나 윤예원 신부가 대전교구로 전임됨에 따라 이 곳은 다시 공소로 남게 되었으며, 1967년 12월 27일 양 산 본당이 신설되면서 소속이 변경되었다.
그 후 증산 공소 신자들은 1969년 2월 휴양차 공소에 거주하게 된 이옥군 신부를 주축으로 본당 설립을 추진 하기 시작하였고, 우선 사제 생활비를 조달하기 위해 증 산 평야 일대의 논 1,501.26평을 매입하였다. 한편 부 산교구에서도 이 지역이 교통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발 전 가능성도 높다고 판단하여 이미 매입해 둔 성당 부지 에 30.02평 규모의 임시 성당을 건립할 것을 계획하였 다. 그 결과 그 해 11월 19일 물금 본당이 설립되었으 며, 이옥군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성장과 변모〕 부임 직후인 1969년 11월 21일 동항 (東港) 본당과 자매 결연을 맺은 초대 이옥군 신부는, 본 당 설정 이전부터 추진하여 왔던 임시 성당(현 강당)과 사 제관 일부를 신축하는 한편, 교세 신장을 위해 현갑순 (바르바라) 전교 회장을 본당 내에 상주시켰다. 그러나 2대 이홍기 신부 이후로 1973년 11월 3대 김만수 신부 가 부임하기까지 물금 본당은 교구 사정, 본당의 교세와 재정, 지역적 여건 등으로 본당 신부의 이동이 잦아 안정 을 찾지 못하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1973년 6월 양산과 물금 두 본당 주최로 '부산교구 시외 본당 성년 대회' 를 개최하였다.
본당에서는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점차 안정 을 찾게 되자 성당 신축을 모색하였다. 4대 이시찬 신부 가 부임한 후 1976년 7월 '성당 건립 기성회' 를 조직하 여 성당 건립을 구체화하였으며, 5대 신상도 신부 재임 시인 1977년 7월 4일에는 성당 건립 기공식을 거행한 후 4개월여 만인 그 해 11월 20일 연건평 88.07평 규모 의 신축 성당을 완공 · 축성하였다. 성당 신축 후 본당에 서는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을 비롯한 평신도 단체들 의 조직이 점차 활발해졌다. 신상도 신부는 부임 직후 어 린이 미사와 지역 미사 시간을 신설하였고, 이듬해에는 신자들의 편의를 위해 도서 문고와 성물점을 운영하기 시작하였으며, 신심 강화를 위한 각종 종교 영화를 상영 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6대 안달원 신부 재임 때인 1981년 6월에는 본당 청년회 주최로 '낙동 지구 체육 대회' , 1984년 10 월에는 본당 설립 15주년 기념 '양산 지구 체육 대회' 등 본당 차원에서의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어 신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모색하였다. 한편 1983년 6월에는 31.02평의 슬라브 양옥 사제관을, 1985년 4월에는 관 리인 사택을 겸한 본당 사무실 15.81평을 완공하는 등 성당 부속 시설 건립 공사도 추진하였다. 1983년 9월부 터 성모 성심회 소속 수녀 2명이 사목 협조차 파견되어 평신도 단체들의 지도와 예비자 교리 강의를 담당하였으 며, 1985년 12월에는 레지오 마리애 '능하신 어머니' 꾸리아를 창단하였고, 본당 전 신자들을 대상으로 피정 을 실시함으로써 신자 재교육에 기여하였다. 특히 안달 원 신부는 1986년 8월 물금 본당을 중심으로 한 《천주 교 양산 지역사》(天主教梁山地域史)를 간행하여 본당의 변모와 발전상을 알렸으며, 7대 이경우 신부는 1988년 에 본당 신자 대표로 구성된 대의원들의 직접 투표로 본 당 회장을 선출하여 본당 내의 민주적 화합을 도모하기 도 하였다.
현재 본당에는 사목 협의회를 중심으로 레지오 마리애 1개 꾸리아에 12개 쁘레시디움, 연도회, 자모회, 울뜨레 야, 청년회, 빈천시오 아 바오로회 등이 있으며, 이와 함 께 40~60세 여성들로 구성된 봉사 및 친교 단체인 성 모회, 60세 이상 할머니들의 신심 강화 및 친목 단체인 안나회, 고등 학생들의 개인 성화 및 종교 교육을 위한 모임인 등대 셀, 성서 연구 모임인 사랑의 까치 등의 평 신도 사도직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 부산교구)
※ 참고문헌  安達源, 《天主教梁山地域史》, 嶺南産業研究院, 1986/ 天主教釜山教區 편, 《釜山教區三十年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90. 〔편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