뮈가르, 피에르 프랑수아 Mugabure, Pierre François(1850~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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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뭐가뷔르 대주교.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일본 선교사. 제2대 도쿄(東京) 대주교. 1850년 9월 1일 프랑스 바스크(Basque) 지방의 어촌 게타리(Guéthay)에서 태어나 생후 3개월 만에 어부 였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어머니 혼자 생계를 꾸려 나 가야 하였으므로 조부모와 외숙부인 소바베(Saubaber) 신 부에 의해 양육되었다. 외숙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신 부가 되기를 희망한 그는, 라르소르(Larressore) 소신학교 에 입학하여 약 6년 동안 수학하였으며, 이어 외숙부의 권유로 바욘느(Bayone) 대신학교에 진학하였다. 본래 폐의 기능이 약해 선교사가 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따 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강한 의지로 극복할 것을 결심한 후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다. 이후 그 는 성모 신심과 동회(同會) 순교자에 대한 공경심이 남 달리 깊어 신앙 생활은 물론 사제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 에서도 언제나 모범적인 태도로 임하였다. 1874년 9월 19일 사제 서품을 받음과 동시에 일본 선 교사로 임명된 뮈가뷔르 신부는 곧바로 프랑스를 출발하 여 이듬해 1월 일본에 도착하였다. 얼마 후 일본어가 능 숙해지자 도쿄 신학교에서 라틴어를 가르치기도 하는 한 편, 당시 일본은 천주교 전교가 매우 활성화되고 있었으 므로 거의 매일 저녁 교리 교육 및 신앙 강좌 등에서 강 의하였다. 1877년 8월에 츠키지(築地) 본당 보좌 신부 로 임명되었고, 1879년 말경에는 천주교로의 개종 현상 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는 니가타(新瀉)와 그 주변 지 역에 파견되어 사목하였다. 이곳에서 활동하던 중 콜레 라가 발생하여 희생적으로 환자들을 돌보다가 나중에는 그 역시 감염되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1881년에는 요코하마(橫浜)에서 활동했으며, 1885 년에는 초대 도쿄 대교구장인 오주프(0souf) 주교와 함 께 미국 여행을 하고 돌아온 후 츠키지 본당의 주임 신부 로 임명되어 사목하는 한편, 인근의 도쿄 대학에서 프랑 스어를 강의하였다. 그 후 오주프 주교의 요청에 따라 기 금 마련을 위해 약 3년 동안 미국을 순회하였는데, 이때 무리를 하여 그의 폐 기능은 한층 더 약화되었다. 이어 요코하마에 파견되어 활동하였으며, 1894년 1월 1일에 는 와카바마치(若葉町) 본당을 설립하였고, 다시 2년 후 에는 시즈오카(靜岡)로 전임되었다.
1902년 뮈가뷔르 신부는 오주프 대주교의 적극적인 추천에 의해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계승권을 가진 보좌 주교로 임명되어 그 해 6월 22일 주교 성성식을 거행하 였다. 1904년에는 다시 기금 마련을 위해 유럽을 방문 하였으나 러일전쟁의 발발로 기대했던 만큼의 수확을 거 두지 못한 채 2년여 만에 일본으로 돌아왔다. 1906년 6 월 27일 오주프 대주교가 병사함에 따라 도쿄 대주교로 임명되었으나 폐질환이 계속 악화되어 직무상 필요한 여 행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요코 하마의 외국인 성당 구역을 담당하는 주임 신부의 대리 를 맡는 등 활발한 사목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전 교 활동의 규모가 더욱 확대되어 각지에 성당이 신설되 었으며, 새로 시작한 교회 내의 출판 사업도 점차 규모가 확장되었다. 1909년 9월에는 묵상회 개최 도중 각혈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요양차 그 해 11월 본국 프랑스 로 돌아갔다. 한때 병세가 호전되어 루르드 성지에 순례 를 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으나, 고향 게타리로 돌아간 후 다시 악화되어 1910년 5월 25일 후두 마비로 사망하 였다. 투병 생활 중 뮈가뷔르 주교가 보인 인내와 고뇌의 초자연적인 감수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 다. 뭐가밖르 주교는 서울의 위텔 주교와도 1년에 몇 번 씩 서신을 주고받았다. 이토(伊藤博文)의 암살범이 천주 교인이라는 사실도 위가밖르 주교가 1909년 10월 28일 위텔 주교에게 보낸 전보로 비로소 서울에 알려지게 되 었다.
※ 참고문헌 上智大學, 《カ 卜 リ ッ ク 大辭典》 V, 東京, 富山房, 1954, pp. 75~76/ Launay Adrien, Mémorial de la Société des MissionsEtrangéres, 2e partie, Paris, 1916. 〔李裕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