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 알베르 콩트 드 Mun, Albert Comte de(1841~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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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정치인. 프랑스의 그리스도교 사회주의 지도자. 1841 년 프랑스의 뤼미니(Lumigy)에서 태어나 생 시르에 있 는 사관 학교를 졸업한 후, 나폴레옹 3세 통치 기간 중 동료 라 투르 뒤 펭(LaTour du Pin, 1834~1924)과 함께 군 장교로서 보불전쟁에 참여하였다가 포로가 되어 알자스 로렌 지방의 메스(Merz)에서 감옥 생활을 하였다. 이 당 시 독일 주교 케틀러(W.E. Kettler, 1811~1877)가 저술한 《1864년 12월 8일의 교황 칙서와 1789년 혁명의 원칙 들》을 읽으면서,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그리스도교적인 시각에서 비판 · 반성하고, 산업화에 의해 크게 타격을 받은 노동자 계급을 위한 이론적 대안을 준비하였다. 특 히 그가 감옥에서 나온 직후에 경험한 파리 코뮌 사건은, 그로 하여금 당시의 혁명적 사조에 대항해서 그리스도교 정신에 따라 노동자들을 사회에 통합시키고 교육시키는 활동에 참여하게 만들었다. 1871~1884년 사이에 그는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에 입각해서 노동자들의 빈곤의 문 제를 다루기 위한 사회적 처방을 찾기 시작하였다. 뮌은 뒤 펭과 함께 1871년 노동자들을 위한 가톨릭 동우회를 결성하고 사회 문제에 대한 연구 모임을 만들 었는데, 가톨릭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교 정신에 입 각해서 노동자 계급의 인권과 사회 복지 및 인간다운 공 동체적 삶을 위해 노동 조합 영역에서 싸우게 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그리고 1876~1891년 사이에 간행되었 던 《가톨릭 모임》(L'Asociation Catholique)이라는 잡지를 통해서 사회 문제에 대한 가톨릭의 이론적 · 실천적 방향 을 제시한 사회적 교리(social doctrine)를 마련하였다. 그의 교리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시각의 장점을 존중하면서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노동 조합 운동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실천적 노력은, 그의 뛰 어난 정치가적 자질과 결합되어 당시의 일반 시민들과 신자들의 많은 지지를 얻었으며 1876~ 1878년, 1881~ 1893년, 1894~1914년에는 국회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1881년에 가톨릭 정당을 만들려고 한 그의 노력은 가톨릭사에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사실 그는 입헌 군주 론자였으나 교황 레오 13세(1878~1903)의 요청으로 공 화제를 받아들였다. 그 당시의 사회주의자들이 그를 반 동적 우익 사회주의자 또는 반동 사회주의자로 여긴 이 유는, 그가 노동자 계급의 문제를 비롯한 산업 사회의 문 제 해결과 노동 입법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으나, 정치 체제 문제와 교회 문제에는 여전히 국왕의 권위와 엘리 트로서 귀족 계급의 특별한 선도적 역할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뮌의 개인적 · 정치적 삶은 가톨릭 사회 사상과 이를 기반으로 한 당시 가톨릭 신자들의 사회 문제에 대한 이 론적 대안을 인식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그는 당시의 의 회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산업 입법을 하는 데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던 사상가이며 정치가였다. 근로자들을 위해 서 일요일을 공휴일로 정하고, 노동 시간을 제한하며, 여 성 근로자들을 보호하고, 산업 재해시의 보험 제도를 확 립하며, 병이 났을 때나 정년 퇴직 후를 위한 사회 보험 제도를 법으로 마련한 것도 바로 뮌의 소명 의식에 입각 한 정치 활동의 결과였다. 프랑스 그리스도교 사회주의 의 탁월한 지도자였던 그는 1914년 10월 6일 보르도에서 사망했다. 저서로 《알베르 콩트 드 뮌의 강연집》(Discours du Comte Albert de Mun, Paris, 1880), 《각종 연설문과 문서들》 (Discours et Écrits Divers, 7 tomes, Paris, 1895~1904), 《나의 사 회적 사명》(Ma Vocation Sociale, Paris, 1911), 《서문》(Textes, R. Talmy 엮음, Paris, 1964) 등이 있다.
〔중심 사상〕 알베르 뮌의 중심 사상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반(反)프랑스 혁명적 성향 : 그는 프랑스 혁명의 가장 큰 실책은 하느님의 뜻에 기초한 법을 계몽 철학자들의 합리적 입법으로 대체함으로써 사람들을 서로 대립시키 고, 사회적 의무의 개념을 이해 관계의 개념으로 대체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프랑스 혁명의 원인은 사 회의 지도 계층이 자신들의 의무를 잊어버림으로써 계급 간의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고, 교회가 하지 못하는 산업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가 교회에 적극적으 로 개입했기 때문이라 하였다. 프랑스 혁명이 가져다 준 피해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동업 조합의 해체로 이루어 진 노동자 계급의 도덕적 해체였다. 그가 새로운 그리스 도교 노조를 세우려고 하였던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 서였는데, 프랑스 혁명은 구체제의 산업 조직을 파괴하 면서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노동 조직을 제시하지 않았 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노동자 계급의 고통과 노사간의 격렬한 계급 투쟁이 생겨났다고 보았다.
사유 재산의 사회적 성격 강조 : 사유 재산의 사회적 책임론의 기초를 마련한 사회학자는 르 플레(F. Le Play) 로, 그의 생각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신 학 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뮌은 토마스의 신학에 그리 스도교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의 실천적 경험을 합하여 그 당시의 사유 재산에 대한 비판적 이론을 만들었다. 이 입 장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둘 다 비판한 것으로도 유 명하다. 그가 강조하는 사유 재산에 관한 그리스도교적 관점에 의하면, 한 사회의 재산 소유자들은 재산을 갖지 못한 사회의 구성원들에 대해서 도덕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 무산 계급들은 그들의 생존을 위해 서 유산 계급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 각에서 보면, 재산 소유자는 그들의 공동체에 대한 사회 적 의무를 존중할 때에만 자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 리를 가지고 있다. 뮌의 이러한 사유 재산관의 성서적 기 초는 '자선' 이다. 성서에 의하면, 부자들은 하느님의 뜻 에 따라서 자신의 재산에 대한 청지기 정신에 충실하면 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그런데 프랑스 혁명 직 후부터 이 원칙이 포기되었는데, 프랑스 혁명 직후의 사 회 입법은 사유 재산의 도덕적 책임을 부정하는 로마 법 의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였기 때문이다. 이 당시 대부분 의 고전 경제학자들이 사회주의의 기원을 관료제나 그리 스도교 교리에서 찾았던 반면에 뮌은 위험한 사회주의 사상을 낳은 것은 바로 사유 재산의 도덕적 책임을 부정 한 자유주의 교리라고 보았던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뮌 을 중심으로 하는 가톨릭 사상가들이 무책임한 자유주의 와 위험한 국가 사회주의 사회에서 제3의 체제를 찾는 긴 여행이 시작되는데, 이것이 후대의 연구자들이 '가톨 릭 조합주의' 라고 부르는 사상이다.
그리스도교 노동 조합주의론 : 조합주의에 대한 생각 은 당시의 노동 조합 운동의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 다. 1880년대 초반, 프랑스 사회에서는 아직 노동 조합 운동이 합법화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당시의 의회는 노동 조합의 조직을 합법적으로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논 의들을 하고 있었다. 이때 알베르 뮌은 두 가지 일을 걱 정하였다. 하나는 새롭게 생길 노동 조합이 거기에 가입 하기를 꺼리는 노동자들을 탄압하지는 않을까 하는 문제 였고, 또 하나는 노동자들과 고용주들의 모임이 계급간 의 갈등을 더 증폭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였 다. 특히 이러한 노동자들의 단체와 사용자들의 단체가 서로 계급 적대감을 갖고 대립하는 것은 민족적으로 커 다란 비극이요 손실이었다. 왜냐하면 이 두 단체의 투쟁 과정에서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의무감을 잃을 것 이고, 그 투쟁의 첫 번째 희생자는 노동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계급 투쟁은 국가의 기간 산업 들을 계급 투쟁의 분위기 속에서 점진적으로 파괴할 것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뮌은 하나의 이론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게 되는데, 이것이 조합주의론이다. 뮌의 조합주의 론은 네 가지 주요 사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노동 자와 사용자를 기존의 산업 사회에서처럼 계급 대립적 상태로 놓아두는 대신에 이들을 하나의 조합에 구성원으 로 묶어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직업 집단의 문제를 스 스로 의논하게 하는 것이다. 뮌은 계급 투쟁을 지향하는 기존의 노동자 중심의 노동 조합과 경영자 중심의 체제 를 '분리 노조' (syndicat séparé)라고 부르고, 자신이 구상 한 노동 조합을 '혼합 노조' (syndicat mixte)라고 불렀다. 이것은 오늘날의 노동 사회학 용어로 표현하면, 계급 투 쟁 지향의 노동 조합 체제보다는 노사 관계 협의회를 일 찍부터 정착시키자는 생각이었다. 둘째는 직업 집단에 분할할 수도 없고 양도할 수도 없는 세습 재산으로서의 산업 재산을 소유할 권한을 인정함으로써 개인 재산을 소유하고 있지 못한 노동자들이 안정된 방식으로 직업 집단 재산의 이익을 보게 하는 것이다. 곧 현대적 시각에 서 보면, 실업자들에 대한 보조금, 노동자의 퇴직 후 연 금, 구제금, 노동자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전문 직업 학교 등을 직업 집단의 재산을 활용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셋째는 노동자이건 경영자이건 이들의 경력 소유를 법으로 인정하고 보장함으로써, 전문 경력의 소유에 자본이나 사유 재산의 소유와 같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 고 이들 직업 집단 내부에서 생기는 문제의 해결을 국가 의 개입 없이 그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해결하도록 유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기존의 직업 집단들 을 새롭게 조직함으로써 이들 사이에 새로운 직업 집단 의 윤리를 정착시키고, 이들을 정치 세력화함으로써 직 업 집단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의회를 구성하는 것이 었다. 뮌과 그의 동료 뒤 펭은 바로 이러한 생각으로 산 업화와 프랑스 혁명의 입법으로 도덕적으로 해체된 산업 사회를 다시 건설하고 싶었던 것이다.
뮌은 사용자와 노동자를 한 조합에 모여서 기업과 관 련된 여러 가지 논의를 하게 할 때에야 비로소 노사간의 상호 의무의 원칙에 입각해서 계급 적대감을 중화시키고 기업의 문제를 구성원들끼리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고 보았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 의회는 그의 안을 받아들 이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하나의 타협안을 제시하였는 데 그것이 노사 갈등의 중재를 위한 상설 중재위원회였 다. 알베르 뮌의 이러한 혼합 노조에 대한 생각은 그 이 후 산업 사회의 변화 추세와 함께 새로운 그리스도교 공 동체 실험을 낳았다. 그것이 아르멜(L. Harmel)을 중심으 로 하는 그리스도교 노동 조합주의에 대한 생각이다.
[그리스도교 노동 조합주의] 민은 아르멜이 경영하고 있는 기업에서의 새로운 그리스도교 노동 조합주의적인 실험을 관찰하면서 새로운 사회학적 교훈을 얻었는데, 그것은 현대 사회의 산업 조직이 더 이상 가부장적인 관 계를 허용하지 않고 새로운 인간 관계의 유형을 요구한 다는 사실이었다. 뮌은 이 새로운 그리스도교 노동 조합 주의의 모델이 원래 자신이 구상하였던 조합주의 모델이 가지는 어려움을 두 가지 점에서 보완해 줄 수 있다는 사 실을 깨달았다. 하나는, 이 새로운 형태의 노사 관계는 사회 입법의 실현을 통해서나, 새로운 상황에 맞게 협동 조합주의의 생각을 적응시킴으로써 대규모 집단인 노동 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는 것이 다. 둘째는 이 실험이 전통적 가부장적인 후원주의 제도 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현대식 기업의 경영은 더 이상 기업주의 주인 의식에 만 맡겨져서는 안되며, 이 후원주의를 대체하는 현대적 노사 관계의 모체로서 노동자의 경영 참여가 유일한 대 안이라는 사실이다.
뮌은 이 교훈을 통해서 자신의 혼합 노조에 대한 생각 을 버리고, 노동자의 경영 참여라는 새로운 노사 관계의 틀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실현시키려 하였다. 그것이 오 늘날 노사 협의회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노동 조합과 사용자 모임의 대표자들' 을 구성원으로 하는 노사 대표 혼합위원회의 구성이다. 그리고 뮌은 교황청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더 이상 조합주의 체제의 결성에 집착하지 않고, 그리스도교 정신에 근거하여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것은 노사 관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제도가 아니라,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신뢰 와 사랑을 심고, 각자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적 도덕 관습을 부활시키는 것이었다. (→ 가톨릭 사회 교리 ; 가톨릭 사회 운동 ; 노동 조합 ; 르 플레)
※ 참고문헌 C. Gide · C. Rist, Histoire des Doctrines Ecomiques Depuis Les Physiocrates Jusq'A Nos Jours, Paris, Sirey, 1944/ E. Barbier, Histoire Du Catholicisme Social En France : Du Concile du Vatican A L'Avènement de S.S. Benoit XV(1870~1914), Tome 1~7, Bordeaux, Imprimerie Y. Cadoret, 1924/ J-B. Duroselle, Les Débuts du Catholicisme Social en France Jusqu'en 1870, Paris, P.U.F, 1951/ R. Talmy, Aux Sources du Catholicisme Social, Paris, Desclée & Cie Editeurs, 1963/ René de La Tour du Pin, Vers un Ordre Social Chreitien : Jalons de Route : 1882~1907, Paris, Gabriel Beauchesne Editeur, 1907/ 민문홍, 《사회학과 도덕 과학》, 민영사, 1994. 〔閔文泓〕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