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누치오 펠릭스, 마르코 Minucius Felix, Marcus(?~250경)

글자 크기
5

그리스도교 호교론자. 로마의 법률가. 2세기 중반 아 프리카에서 태어난 것으로 여겨지며, 그리스도교로 개종 한 후에도 계속 법률가라는 직책을 지녔던 것 같다. 락탄 시오(Lactantius)와 예로니모(Hieronymus)는 그를 테르툴 리아노(Tertullianus), 치프리아노(Cyprianus) 그리고 아르 노비오(Arnobius)와 함께 아프리카 교부로 간주하였다. 《옥타비우스》(Octavius)라는 작품을 남긴 것 외에 그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없다. 250년경 로마에서 사 망하였다. 〔《옥타비우스》〕 박해 때 로마 교회에서 라틴어로 쓰여 진 유일한 호교 작품으로 대화체 형식으로 되어 있다. 현 재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수사본은 파리 필사본(Codex Parisinus)으로, 아르노비오가 쓴 《이방인들을 반대하여》 (Contra paganos) 제8권에 수록되어 있지만 《옥타비우스》 의 저자는 예로니모와 락탄시오가 증언하듯 아르노비오 가 아니라 미누치오 펠릭스임이 분명하다. 락탄시오는 "내가 알고 있는 우리 소송의 옹호자들 중에서 미누치오 펠릭스는 법조계에서 매우 저명한 위치에 있다. '옥타비 우스' 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그의 책은 마치 그가 이러 한 분야의 연구에 전념하는 사람인 듯 진리 탐구에 뛰어 난 사람임을 보여 주고 있다" (Div. inst. 5, 1, 21)라고 하였 고, 예로니모는 "로마의 뛰어난 변호사인 미누치오 펠릭 스는 그리스도교 신자와 이방인들 사이의 논쟁을 대화 형식으로 표현한 《옥타비우스》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De viris illustribus, 58)고 언급하였다.
내용 : 이 작품의 무대는 로마이며, 등장 인물은 저자 인 법률가 미누치오 펠릭스와 그의 친구로서 그리스도교 신자인 옥타비우스, 이교도인 체칠리우스(Caecilius)이다. 미누치오와 학생 시절부터 친구였던 옥타비우스는 바다 건너에 있는 지역(아마도 아프리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 다가 로마로 여행을 왔던 것 같고, 본문에서 치르타 출신 의 프론톤(Fronton)을 자신의 동향인(同鄕人)이라 부른 것으로 보아 체칠리우스는 누미디아(Numidia)의 치르타 (Cirta) 출신으로 여겨진다. 이 작품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기록한 것인지 아니면 가상의 현실을 작품화한 것 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가상의 작품이라는 증거는 없 다. 오히려 저자가 자신들의 친밀한 우정을 회상하면서 자신들이 한마음 한뜻이었고 함께 새로운 신앙을 받아들 였다고 회상하면서 글을 시작하기 때문에, 이미 세상을 떠난 옥타비우스를 기념하여 쓴 것으로 여겨진다. 저자 는 치체로(Cicero)의 대화 화법(對話話法)를 이용하여 이 교 사상에 반대하는 그리스도교의 입장을 기술하고 있 다.
이 대화는 로마인들의 유명한 휴양지인 오스티아 (Ostia) 항구를 산책하는 동안 이루어지는데, 그들이 세 라피스(Serapis) 석상을 지나갈 때 체칠리우스가 그 석상 에 입을 맞춤으로써 논쟁이 시작된다. 논쟁은 마치 법정 에서 이루어지는 재판처럼 체칠리우스는 고발자(accusator)로, 옥타비우스는 그리스도교를 옹호하는 변호자 (advocatus)로, 그리고 미누치오 펠릭스는 재판관(judex) 으로 나타난다. 철학자로서 회의론적인 태도와 전통에 대해 무비판적인 체칠리우스는 이교 사상을 열정적으로 옹호하면서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맹렬히 공격하는데, 그 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의 모든 사건은 의심스럽고 불확실하며 예측을 불허하기 때문에, 진리라기보다는 개연적이다. 인 간의 지성에는 한계가 있어 초월적인 것이나 내면적인 것들을 알 수가 없으며, 우주의 문제들을 해결하려 할 때 도 신이나 창조자는 필요 없다. 반대로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물리적 · 윤리적 부조화는 신의 섭리와는 무관한 것이며, 다만 우연만이 이 세상을 지배할 뿐이다. 둘째, 조 상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우리에게 전해진 믿음을 보 존하며, 어려서부터 공경하도록 가르침을 받은 신들을 흠숭하는 것이 더 낫다. 그것은 태양의 길과 대양의 한계 를 넘어 제국의 경계를 확장시키고 있다. 셋째,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선조들의 옛 종교 및 가치를 경시하는 그 리스도교의 가르침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그리스도 교 신자들의 그러한 자세는 오만 불손한 것이며 무모한 것으로, 그들은 무신론자이며 도처에 헛된 우상 숭배를 퍼뜨리는 자들이고, 모두를 '형제' 요 '자매' 로 부르는 몰상식하고 부도덕한 자들로 근친 상간을 범하는 자들이 다. 그리스도교가 가르치는 유일신 사상, 종말론, 불사불 멸, 육신의 부활 및 심판 등은 다 불합리한 것이다.
이러한 체칠리우스의 공격에 옥타비우스는 차분하고 도 설득력 있는 어조로 조목조목 답변하는데, 옥타비우 스의 반박과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에 앞서 미 누치오는 이 논쟁이 진리 탐구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강 조하고 있다.
첫째, 체칠리우스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무식한 무리 로서 보잘것없는 주제에 감히 천상적이고도 초월적인 것 을 언급하고 있다고 의분을 터뜨리고 있지만, 사람은 누 구나 생각하고 판단할 자유와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망 각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진리를 찾고 진리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모두에게 주어 진 보편적인 소명인 것이다. 광대 무변한 이 우주의 신비 를 하느님의 섭리 속에서 이해하지 않고 우연의 결실이 라고 생각하는 자들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고 가엾은 사 람들이다. 하느님만이 바로 생명의 원천이며 모든 것을 보존하고 다스리신다. 최고의 선, 곧 절대자는 둘일 수 없기에, 하느님은 유일한 존재이며 진실한 분이시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을 볼 수 없고, 그분의 실체를 다 파악 할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철학 자이며, 진실된 철학자, 진리를 찾는 구도자(求道者)는 그가 누구이든 그 자체로 이미 그리스도교 신자인 것이 다. 둘째, 잘못된 전통은 거부되고 마땅히 개선되어야 한 다. 이교 사상과 종교야말로 신화와 온갖 모순, 부도덕으 로 가득 찬 혼합물이다. 셋째,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대한 모든 고발과 모함은 허위적인 것으로 악마에 의한 것이 다. 그리스도교의 모든 가르침은 철학자들의 사상과 근 본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물론 약간의 다른 점이 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들로 차후에 보충, 언급될 것이다. 이러한 논리 앞에 체칠리우스는 스스로 납득하게 되었 고, 미누치오는 자신이 재판관의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 는 것에 기뻐하며, 다음과 같이 글을 맺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다시 산책을 계속하였다. 체칠리우스는 이제 믿음을 갖게 되었고, 옥타비우스 는 승리의 기쁨을 맛보았다. 나는 이 둘이 얻은 신앙과 승리를 함께 느끼며 같은 것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특성 : 이 작품은 이론과 논리뿐만 아니라, 문장 표현 도 우아하여 가장 훌륭한 호교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명료한 문체, 강약의 조화, 고전적 산문의 형식을 따른 세심한 주의력 등은 치체로를 연상하게 한다. 실제로 이 책은 치체로의 작품 중 《신들의 본질》(De natura deorum) 에서 많은 암시를 받았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자의적(字 意的)인 것도 있다. 또한 치체로의 다른 작품들인 《신성 론》(神性論, De divinatione)과 《공화국》(De )에서도 많은 내용을 발췌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세네카republica (Seneca)에게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고, 스토아 사상과 연결된 내용도 많이 발견되며, 플라톤도 여러 번 인용되고 있다. 그 외에도 호메루스(Homerus), 세노폰(Senophon) , 플로루스(Phlorus) 오라시우스(Oratius) 유베날리스(Juvenalis), 루크레시우스(Lucretius), 마르시알리스(Martialis) , 오비두스(Ovidus) , 살루스시우스(Sallustius) . 티불루스 (Tibullus), 비질리우스(virgilius) 등에게서도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호교 교부 가운데에서는 유스티노(Justinus), 타 시아노(Tatianus) , 아테나고라스(Athenagoras), 테오필로 (Theophilus)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지 만 입증되지는 않고 있다.
이 작품에는 성서 구절이 단 한 줄도 인용되어 있지 않 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데, 이는 저자가 이교인들을 의식 하여 의도적으로 인용하지 않은 듯하다. 저자의 신관(神 觀)은 스토아 사상의 영향을 짙게 받은 듯하며, 유일신 사상과 불사불멸에 대한 믿음은 그의 중심 사상이자 신 앙 고백의 기본 골격이기도 하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그 리스도교 사상을 실천적 윤리 규범의 관점에서 이해하며 설명하고 있다.
저술 연대 : 《옥타비우스》의 저술 연대는 테르툴리아 노의 작품과 관련된다. 왜냐하면 많은 표현과 내용들이 테르툴리아노가 197년경에 쓴 《호교론》(Apologeticum)과 《제 민족에게》(Ad nationes)에 나타난 것과 공통적이기 때 문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오랫동안 이 두 저자 사이 의 상호 관계를 연구하였지만 별다른 결론을 얻어내지는 못하였다. 예로니모는 테르툴리아노에게 우선권을 부여 한 반면, 현재 많은 학자들은 미누치오 펠릭스에게 우선 권을 부여하고 있다.
〔기타 저술〕 《옥타비우스》에서 미누치오 펠릭스는 다 음 기회에 운명에 대해 기술하고자 한다고 언급하였지 만, 그 《운명론》(De fato)이 저술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 다. 다만 예로니모가 《명인록》에서 《운명론 혹은 반수학 론》(De fato vel contra mathematicos)이란 책을 언급하고 있 는데, 문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옥타비우스》의 저자와 동일 인물로 여기지 않고 있다.
※ 참고문헌  P.B. Schmid, Grundlinien der Patrologie(정기환 역, 《교부학 개론》, 컨콜디아사, 1993)/ B. Altaner, Patrology, trans. by H.C. Graef, New York, Herder and Herder, 2nd ed., 1960/ J. Quasten, Patrology, vol. 3, Utrecht, The Newmans Press, 1960/ P.W. Lawler, 《NCE》 9, p. 883/ E.A. Livingstone ed., The Concis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邊宗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