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리 보스>

〔라〕Mirari V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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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프랑스에서 발생하여 성장하고 있던 가톨릭 자유 주의 운동에 따른 위험성과 종교 무차별주의를 단죄하기 위하여 발표한 회칙. 1832년 8월 15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1831~1846)가 취임 후 처음으로 발표한 회칙이다.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관례에 따라 교황 취임 후 세계 의 주교들에게 보내던 회칙을 발표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회칙의 첫마디를 "여러분이 이를 궁금해 하리라고 여긴 다" (Miirari VOS arbitramur)라는 말로 시작하였는데, 그는 그 이유를 교황 임기 초기에 발생한 '죄악의 폭풍' 때문 이라고 하였다. 〔배 경〕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신학 교수로 활동하였던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가톨릭 교 회의 제도에 관해 가졌던 입장은 아 우구스티노(354~430)와 토마스 아퀴 나스(1225?~1274)의 견해와 같았다. 1799년에 출판된 저서 《개혁가의 비 난에 대한 성좌의 승리》 (Ⅱ Trionfo della Santa Sede e della Chiesa contro gli assalti dei novatori combattuti e respinti colle stese loro armi)에서 그는, 교황을 으뜸으로 하는 교회는 독립 불변의 구조로서 하느님이 세우신 제도라고 설명하고, 교황령(敎皇領)은 모든 세 속 국가로부터 교회가 영적 독립을 확보하기 위한 부동(不動)의 자산이 라고 역설하였다. 이러한 견해를 지녔던 그는 교황이 된 후 온갖 자유주의 혁명 세력으로부터 교회의 권위와 교 황령을 고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교황으로 선출될 당시의 상황은 그에게 그리 좋은 것 은 아니었다. 가톨릭 자유주의가 확산되고 있었고, 이탈 리아 특히 북이탈리아의 교황령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반 란이 일어나 정치적인 불안이 가중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 1세의 몰락 이후 다시 등장한 구체제에 반대하 여 교회의 자유를 요구하며 교회 쇄신과 신학의 재구성 이 주장되었는데, 이들의 대표자인 라므네(H.F. de Lamennais, 1782~1854) 신부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강력하게 요구하며 국왕 통치에 열렬히 반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화 체제에서 교회는 보다 효과적으로 그 사명을 수행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라므네의 주장은 여러 나라 로 확산되어 갔다. 그러나 라므네가 비록 세속의 권력 예 속으로부터 교회의 해방을 추구하였다 하더라도, 시민적 민족 해방의 요구가 증대되는 이탈리아 정치 상황에서 자연주의 철학의 색채를 띤 자유주의는 교황에게는 불안 의 요소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교황은 회칙을 통하여 교회 제도의 초자연적 본질과 교도권의 우위성을 천명하 고자 하였던 것이다.
〔내 용〕 이 회칙은 당시의 어려운 시대 상황을 설명한 데 이어, 주교들에게 가톨릭 신앙과 교황좌의 권위를 지 키고, 최선을 다해 교회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할 의무를 수행하라고 호소하고 있다. 또한, 교황의 권위, 사제 독 신제,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거듭 천명하였으며, 양심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에 대한 무분별한 주장과 교회와 국 가의 분리를 주장하는 자유주의를 단죄하였다. 그리고 금서 목록을 재확인하고, 교회의 모든 권위는 하느님에 게서 온다고 역설하였다.
<미라리 보스>는 종교 무차별주의를 이렇게 단죄하였 다. "지금 교회를 침해하고 있는, 넘쳐 나는 악의 원천은 무차별주의이다. 이러한 그릇된 생각이 사악한 사람들의 기만으로 사방에 번져 가고 있다. 인간은 그 도덕 행위가 올바른 선한 규범에 부합하는 한 어떠한 종교 신앙을 고 백하든 그 영혼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다. 어떠한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든 안전한 구원의 항구 가 열려 있다는 생각을 하는 그들은 하느님은 한 분이시 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라는 사실을 두려워하여 야 한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친히 하신 증언을 숙고하여 야 한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 이며,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헤치는 사람이 다.' "
〔평 가〕 라므네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그의 견해를 단죄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자유주의와 자연주의, 합리 주의, 철학적 전통주의, 종교 무차별주의 등의 경향을 단 죄한 이 회칙은 1864년에 발표된 <오류표>(Sylabbus)의 전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후에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정치적 자유주의는 물론 합리주의로 드러나는 자연주의적 이념들을 회칙 <신굴라리 노스>(Singulari Nos, 1834. 6. 25)와 <둠 아체르비씨마스>(Dum Acerbissimas, 1835. 12. 26)에서 거듭 단죄하였다. 그는 당시의 혼란한 정치 상황에서 세속 권력으로부터 교회의 독립을 보장하 고 교회의 초자연적 본질을 수호하기 위하여 교황령을 고수하고자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1870년 교황 비오 9세(1846~1878) 당시에 교황령이 사라진 다음에도, 또 합리주의가 인류의 모든 사고 영역에 젖어 든 다음에 도, 교회의 초자연적 본질은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다. (→ 교황령 ; 그레고리오 ④ ; 라므네)
※ 참고문헌  The Papal Encyclicals, The Pierian Press, 1990, pp. 119~154/ The Christian in the Doctrinal Documents ofthe Catholic Church, ND, Revised ed., Collins, Glasgow Britain, 1983/ T.F. Casey, 《CE》 7, pp. 202~203/ A. Simon, Gregory XⅥ, Pope, 《NCE》6, pp. 783~788. 〔姜大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