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을 의미하는 라틴어 베네딕시오(benedictio)는 '좋은 말을 하다' , '좋게 말하다' 라는 뜻을 가진 동사 베네디체레(benedicere)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고전 라틴 문학과 그리스도교 라틴 문학에서의 강복〕 '베네디체레' 의 의미는 첫째, '좋은 말을 하다' , '누군가에 대해 잘 말하다' , '찬미 · 찬양하다' , '받은 선물에 대해 감사하다' , '사람과 사물 또는 사건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다' 이다. 특히 교회 저술가들은 '찬미, 찬양'이라 표현하였으며 특히 하느님을 대상으로 할 때 이런 의미로 나타내고 있다. 둘째, 종교적 · 그리스도교적 언어의 형태로 바뀌면서 '좋고 마음에 드는 것들을 축하(경하)하는 것' , '건강을 기원하는 것' , '인간의 은혜를 청원하는 것, 특히 하느님의 은혜를 청원하는 것' 등이다. 셋째, 보다 넓게 사용될 경우 '서약' , '번영과 안녕' , '하늘로부터 기원하는 행운에 대한 축하' 의 의미로 쓰인다.
〔그리스 문학에서의 강복〕 그리스 문학에 나타나는 동사 에울로게인(euloghein)와 명사 에울로기아(euloghia)는 라틴어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어원적으로 에우로게인은 '좋게 말하다' , '좋은 말을 사용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에울로기아는 잘 이루어지고, 우아하며, 외적으로 아름답게 조화된 상태를 표현한다. 내용 면으로 동사 에울로게인은 일반적으로 인간 편에서 신들에 대해 '찬미(찬양)하다' , '예식을 거행하다' , '칭송하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성서에서의 강복〕 구약성서 : '하느님이 위에서 내려 주는' 것과 '인간이 밑에서 위에 계시는 하느님께로 올리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① 하느님께서 살아 있는 생물이나 사람들에게 '복을 내려주다' (창세 1, 22. 28 ; 5, 2 ; 9, 1)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하느님 자신이 당신의 자비와 자유 안에서 창조하신 피조물에 강복하심은 창세기 1장에서 시작하여 구약의 여러 부분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것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새끼를 많이 낳아 바닷물 속에 가득히 번성하여라. 새도 땅 위에 번성하여라"(창세 1, 22). 이 구절에서 보면 하느님은 강복을 근본적으로 '사명' 과 연결지었다. 예를 들면 하느님은 창조 때 동물을 만드신 뒤에 이것들을 강복하시면서 "새끼를 많이 낳아 번성하여라" 하셨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계속해서 생물체들을 새로 창조하지 않아도 되었던 이유는 강복을 통하여 스스로 번성할 생명력을 부여해 주셨기 때문이다. 반면 생명체들의 경우에는 이처럼 번성하는 것 자체가 사명이다. 때문에 이것들이 멸종되면 하느님의 사명을 거스르는 것이 되고, 만일 인간이 멸종시킬 때는 하느님이 이것들에 내린 강복과 사명을 가로막는 '죄악' 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인간들에게 복을 내리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창세 1, 28).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로 풍부한 생명력을 강복해 주셨다. 그러면서 그분은 인간에게는 '땅을 정복하여 모든 짐승을 부려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사명을 더 얹어 주셨다. 즉 인간은 하느님의 이 강복에 의해서 맨 처음 창조 이래 하느님의 계속된 창조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당연히 하느님의 이 강복에 따라 인간은 이 세계 내에서 번성할 사명을 지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강복에 따른 직접적인 사명 말씀에 의해서 인간은 이 세계와 모든 생물체를 하느님의 뜻에 따라 번성하도록 돌보아야 할 과제를 부여받은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대리자로서 하느님이 이 세계와 세계 내의 모든 생명체들을 만드시고 번성하도록 베푸신 강복이 실현되도록,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력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강복은 궁극적으로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하느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강복 내지 축복을 입에 올릴 수 없었다. 그렇지만 구약성서 여러 곳에서 아버지가 자녀들에게(창세 9, 26 ; 27, 28 ; 49, 25-26. 28), 왕이 신하들에게(2사무 6, 18 ; 1열왕 8, 14. 55), 사제가 백성에게(민수 6, 22-27) 하느님의 강복을 빌어 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하느님이 특정한 사람에게 강복을 내려 주시기를 비는 중재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복은 하느님께 바쳐지는 의식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는데, 의식 안에서 특별히 계획된 사람들(아론과 모세 : 레위 9, 22-23 ; 레위인들 : 신명 10, 8 ; 21, 5 ; 아론과 레위인들 : 역대 23, 13)은 주님의 강복을 청한다.
특히 민수기에서 아론이 하느님의 강복을 빌어 주는 예를 잘 볼 수 있다(6, 23-27). 그런데 강복과 관련하여 특히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강복이 이스라엘 역사 안에서 하느님과 이 백성이 맺은 계약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은 이 백성과 계약을 맺으면서(출애 19, 3 이하; 신명 5, 2 이하), 이들이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준수할 때 넘치는 강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하시는 것이다(신명 11, 26 이하 ; 여호 24, 19).
② 하느님만이 인간을 강복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하느님을 축복(찬미)하는 존재이다. 즉, 인간의 모든 생명은 하느님 손 안에 달려 있기에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가운데 자기 고유 신앙과 감사와 희망을 표현한다. 다니엘서는 이러한 유형을 제시하고 있는데(3, 26-27) 특히 '세 소년의 찬미가' (3, 52-90)에서 이러한 특별한 의미로서 동사 바락(barak)이 39번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대한 찬미(찬양)로 시작하는 모든 기도들은 베라카(beraka)라고 불린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베푸신 '강복' 이 인간이 하느님께 바쳐 드리는 '축복' 으로 응답될 때 이러한 '찬미(찬양)' 행위는 하느님께 바쳐 드리는 찬양의 원천이자 그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창조의 모든 요소가 하느님의 작품이요 소유라고 인식하기에 또한 이 땅과 그 위에 사는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시편 24, 1) 하느님을 찬미(찬양)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신약성서 : 하느님을 축복하는 구약의 개념이 신약에서도 계속 이어지는데 그것은 하느님을 찬미(찬양)하는 것이다. 특히 하느님의 자비와 선하심을 위해 그분의 뜻에 따라 일어나는 모든 것을 그분의 이름으로 찬미(찬양)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는 70인역에서 특정한 동사인 에울로게인(euloghein), 엑소몰로게인(exomologhein), 에우카리스테인(eacharistein)으로 표현되고 있다. 신약성서에서 동사 에울로게인은 '찬미하다' , '칭송하다' , '영광을 드리다' 라는 의미로 42번 사용되었다. 그리고 10번 나오는 엑소몰로게인은 '칭송하다' , '찬미하다' , '고백하다' , '감사하다' 의 의미로 하느님의 업적을 선포하고 있다. 그 대신 에우카리스테인은 38번 나타나는데 거의 전적으로 하느님께 대한 감사를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신약성서에서 나타난 강복(축복)의 유형으로 먼저 하느님께 찬미(찬양) 드리는 자카리아의 말과 행동(루가 1, 68 이하), 약속하신 구세주를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메온(루가 2, 28), 그리고 '마리아의 찬가' (루가 1, 46 이하)와 제자들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는데 루가 복음 사가는 자기 복음 마지막에 항상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양하는(eulogountes) 제자들의 모습을 묘사하였다(24, 53).
또한 어린이들을 강복(축복)하시는(마르 10, 16) 예수님의 행동이나, 승천 때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고 떠나시면서 이들에게 강복(축복)하시는(루가 24, 50) 예수님의 행동 속에서 강복의 개념을 볼 수 있다. 이외에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의미로서의 개념도 복음서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요한 11, 41 ; 루가 10, 21 : 마르 6, 41 ; 8, 6).
결론적으로 신구약 성서 안에서 드러난 강복(축복)의 개념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하느님을 주체로 할 때는 하느님의 계속적인 구원의 전달 방법으로서 하느님의 사랑의 선물과 자비의 선물, 평화의 선물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로서 인간을 주체로 하였을 때는 찬미, 경탄(흠승), 청원, 감사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은 에페소서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양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신령한 축복으로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 (1, 3).
〔전례 안에서의 강복〕 사람이나 물건에 하느님의 은혜를 비는 행위로서 준성사의 하나. 준성사는 성사들을 어느 정도 모방한 거룩한 표징들로서, 특히 영적 효험을 표시하며, 교회 간구(懇求)의 힘으로 그것을 얻어 주고, 갖가지 경우에 있어 생활을 성화시켜 준다(교회 60항). 따라서 강복도 볼 수 있는 표지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성화와 교회의 모든 다른 사업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목적인 하느님의 영광을 표시하고 각자에게 고유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강복은 대개 성직자가 오른손으로 십자가 표시를 긋는 것과 경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경문은 옛 전통에 따라 하느님께 받은 특은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는 한편 하느님의 은혜를 청하고 세상에서 악마의 권세를 누르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현 교회법에서는 준성사들을 거행할 때에는 교회의 권위에 의하여 승인된 예식과 격식(경문)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1167조 2항).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강복을 청하는 사람은 신앙으로 마음 준비를 하고, 희망으로 신뢰하고 특히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도록 재촉하는 사랑에 불타야 한다.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찾는 사람이라야 주님의 축복을 완전히 깨닫을 수 있고 실제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강복은 사효적(事效的)인 성사와는 달리 강복받는 사람의 신앙 정도에 따라 그 효과를 얻는 것이다. 강복은 전례 집전자가 전례 중에 참석자들에게 하기도 하고 전례 밖에서도 이루어진다. 혼인 강복과 미사 끝의 강복이 전자의 대표적인 경우이고, 이 밖에 전례 중 복음을 낭독하려는 부제나 고해성사를 받으려는 참회자에게 강복하기도 한다. 집전 사제나 부제, 주교만이 교회의 행위로서 강복할 수 있지만, 평신도 역시 사적 행위로서 강복을 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헌장> 79항에서는 "어떤 준성사는, 적어도 특수한 사정 하에 또한 주교의 재량에 따라, 합당한 자격 있는 평신도에 의해서도 집전될 수 있도록 마련되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측면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전례성사성에서는 1972년 4월, 평신도들이 강복하는 것, 특별히 자신들의 매일매일의 생활과 행동에 관계되는 것들에 강복하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현 교회법도 "준성사들의 집전자는 합당한 권력을 받은 성직자이다. 어떤 준성사들은 전례서의 규범을 따라 교구 직권자의 판단으로 합당한 자격을 갖춘 평신도들에 의하여서도 집전될 수 있다"(1168조)라고 하였다. 이 규정들은 평신도들 역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해 보편 사제직에 참여한다는 측면에서 평신도들을 위해 마련된 예식과 경문을 사용하여 강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경우로 부모가 자기 자녀들에게 강복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강복은 원칙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에게만 베푸는 것이지만 현 교회법에서는 예비 신자들과 교회의 금지 규정이 없다면 비가톨릭 신자들에게도 강복을 베풀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1170조). 경우에 따라서 교회는 사람 뿐 아니라 인간 활동이나 전례 생활 또는 신심에 관계되는 물건과 장소에도 강복하는데, 이는 그 물건을 쓰고 그 장소에서 활동하는 인간들을 위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성세수 축성과 성유 축성을 들 수 있다. 결국 인간은 강복된 물건과 장소를 통하여 더욱 하느님을 찾고, 사랑하고, 충실히 봉사해야 할 것이다. (→ 준성사 ; 축성)
※ 참고문헌 《교회법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전례 헌장>/ 《축복 예식서》 《가톨릭 사전》/ J.R. Quinn, Nuovo Dizionario di Liturgia, ed. Paoline, Roma 1984/ 《NCE》 2/ Jovian P. Lang, 《DL》. 〔鄭義哲〕
강복
降福
〔라〕benedictio · 〔영〕bles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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