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회의 26성인 중 대표적인 일본인 순교 성인. 예수회 수사. 세례명은 바오로. 축일은 2월 5일. 지금의 오사카(大阪) 인근 셋쓰(攝津)에 있던 아바(阿波)의 도 쿠시마(德島)에서 다이묘(大名) 미키노한다유(三木半太 夫)의 아들로 태어나 1568년(永祿 11) 아버지와 함께 세 례를 받고, 10여 세 되었을 무렵 아즈치야마(安土山)의 예수회 신학교에 제1회 입학생으로 들어가 22세 때인 1585년 졸업과 동시에 수사가 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로부터 3년 만인 1588년에 전사하였다.
수사가 된 미키 바오로는 타고난 성품과 열정으로 전 교 활동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며, 후에 주교 마르티 네즈(Martinez Pedro)를 따라 오사카에서 활동하던 중 예
수회 신부 오르간티노(Organtino Gnecchi-Sold)의 눈에 띄 어 게이한(京阪, 교토와 오사카) 지방에서 함께 활동했다. 이후 바오로는 불교 승려들과 많은 토론을 벌였고, 자신 이 저술한 교리서들을 통해 불교 신자들을 깨우치기도 하였다. 당시 일본 교회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가 1587년(天正 15)에 선교사 추방령을 내린 적이 있었 지만, 1590년 순찰사 발리냐노(Valignano Alessandro)가 인도 부왕(副王)의 사절 자격으로 히데요시를 방문한 뒤 에는 금교(禁敎)의 제약 속에서 조심스럽게 활동을 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1596년 프란치스코회 회 원들이 금교를 무릅쓰고 교토 일대에 성당과 수도원을 건립하는 등 공공연한 전교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히데요 시의 반감을 사게 되었고, 그 결과 1597년 초에는 교토 와 오사카 일대에서 활동하던 프란치스코회 회원들을 체 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지게 되었다.
이 박해로 게이한 지방에서 체포된 사람들은 프란치스 코회 수사 6명, 예수회 수사 3명과 일본인 신자 15명 등 24명이었다. 미키 바오로는 이때 오사카에 있다가 뜻하 지 않게 체포되어 1597년 1월 1일 교토의 옥에 갇히게 되었다. 이어 그는 1월 3일 다른 동료들과 함께 오사카 를 거쳐 1월 9일에는 나가사키(長崎)로 출발하였고, 27 일 동안 혹한 속을 걸어서 2월 5일(음 1596년 12월 19일)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이들 일행은 도중에 일본인 신자 2명이 자진하여 체포됨으로써 모두 26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날 저녁, 바오로는 동료들과 함 께 나가사키 해안 근처에 있던 니시사카(西坂) 언덕으로 끌려가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하였으니, 당시 그의 나이 는 33세였다. 순교 직전에 그는 당당한 얼굴로 모여 있 던 사람들에게 천주교 교리를 설명하였으며, 복음이 널 리 전파될 것을 기원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 바오로는 동 료 순교자들과 함께 1862년 성인품에 올랐다. (→ 나가
사키 ; 일본 천주교회사)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 Léon Pagés, 木村太郎 역, 《日本卄六 聖人殉教記》, 東京, 1931/ ㅡ, 吉田小五郎 역, 《日本切支丹宗門 史》, 東京, 1939/ 《カ 卜 リ ッ ワ 大辭典》 1, 東京, 富山房, 1954/ 片岡彌 吉, 《日本キ リ シ タ ン 殉教史》, 東京, 1982. 〔車基眞〕
미키 바오로 三木 - (1564~1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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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미키 바오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