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마리아 閔 - (1818~1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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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고종(高宗)의 모친이자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 이 하응(李昰應)의 부인. 대원군의 부인이므로 흔히 민 부 대부인(閔府大夫人)이라고 부른다. 본관은 여흥(驪興) . 1818년 3월 8일에 태어났으며, 고종의 유모인 박(朴) 마르타의 전교로 입교한 후 교리와 기도문을 열심히 배 워 매일 <일과문>(日課文)을 읽은 그녀는, 2남 명복(命 福)이 1863년 고종으로 즉위하자 감사 미사를 올리기도 했다. 1866년 초에는 박 마르타를 통해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 등과 교섭한 후, 남종삼(南鍾三, 요한)의 방아책(防我策)에 따라 프랑스 후원을 받아 러시아의 위 협을 막으려 하였으나 이를 반대하던 흥선 대원군의 마 음이 바뀌면서 목적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리고 궁중 안 주인의 입장에 있었던데다가 흥선 대원군이 철저히 천주 교를 배척하였기 때문에 30여 년 동안 세례를 받지 못한 채 신앙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1895년 10월 명성황후(明成皇后) 민비(閔 妃)가 시해되고 얼마 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 하는 등 정세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자, 그녀도 궁중과 인 연을 끊고 비교적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게 됨으로써 79 세 때인 1896년 10월 11일 밤 운현궁(雲峴宮)에서 위 텔(Mutel, 閔德孝) 주교로부터 마리아라는 세례명으로 세례성사를 받은 후 견진성사까지 받았다. 이어 다음해 9월 5일 밤에는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운현궁 내전에서 고해성사를 받았으며, 비밀리에 거행된 미사 중에 성체 성사도 받았다. 그 해 12월 중순경부터 노환으로 병석에 누웠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1898년 1월 8일 81세를 일 기로 사망하였다. 그녀가 사망한 후 비로소 그녀가 천주 교에 입교했었음을 알게 된 고종과 흥선 대원군은, 교회 측에 이러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당부를 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장례식은 같은 해 2월 22
일 사망한 흥선 대원군과 함께 5월 15일 국장(國葬)으로 거행되었다. (→ 박 마르타 ; 흥선 대원군)
※ 참고문헌 柳洪烈, 《증보 한국 천주교 회사》 上, 가톨릭출판사, 1962/ 崔奭祐, 《韓 國天主教會의 歷 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한국교회사연구소 역주, 《텔 주교 일기》 Ⅱ,천주교 명동 교회, 1993. 〔편찬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