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바오로 6세(1963~1978)가 재위 5년째인 1967년 3월 26일 그리스도 부활 대축일에 반포한 회칙.
〔반포 배경〕 이 회칙이 반포된 1967년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제국주의의 지배하에서 독립한 신생 국 가들이 경제 발전을 위해 따랐던 개발과 전략이 대부분 실패하면서, 그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새로운 전략 과 방식을 고민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던 시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선진국의 모델을 따라 후진국을 개발 하고자 하는 확산 이론이 지배적이었는데, 확산 이론이 란 저발전의 원인이 대부분 후진국에 있다고 보고, 선진 국의 모델을 그대로 후진국에 이식하자는 것이다. 그래 서 1950년대는 이 이론에 따라 모든 후진국들이 개발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선진국과 개발 도상 국 간에 극심한 경제적인 격차를 낳았고, 개발 정책은 선 진국에 대한 정치적 · 경제적 종속을 심화시켰을 뿐이었 다. 결국 이 이론의 한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1960년대 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종속 이론은 바로 이런 확 산 이론의 실패에 대한 문제 제기로 등장한 것이다. 종속 이론은 후진국의 빈곤과 저발전-정치적인 억압, 경제, 문화, 종교적인 종속이 포함된다-이 후진국의 내부 요 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선진국과의 관계 때문에 발 생한다고 보았다. 후진국의 빈곤과 저발전이 선진국 발 전의 부산물이라고 본 것이다. 회칙이 반포된 이 시기는 이런 이론이 설득력을 얻어 가던 시기였다. 교회로서는
이런 시기에 빈곤의 원인을 선진국의 탓으로 돌리고, 분 석 방법이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유사한 이 이론이 가톨 릭 신자가 대다수인 남아메리카 대륙에 횡행하는 것이 적잖은 문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1968년에 콜롬비아 메 데인에서 제2차 남아메리카 주교 회의가 열릴 예정이었 고, 교황 바오로 6세는 두 번의 남아메리카 방문을 통하 여 이런 남아메리카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교황은 남아메리카의 가톨릭 교회를 직접 상대로 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남아메리카를 의식하고 이 회 칙을 작성하였다.
〔내 용〕 회칙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는 크게 다섯 가 지로 나눌 수 있다.
① 후진국 빈곤의 원인 : 이 회칙은 후진국 빈곤의 원 인을 파악할 때, 전체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종속 이론 에 다소 동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고 빈곤의 원인 을 전적으로 선진국의 책임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 빈곤 과 경제적 격차의 원인이 과거의 식민주의(7항), 현재의 신식민주의(52항)와 현재의 불의한 국제적 통상 관계 (56~58항)에 있다고 보았으며, 아울러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불의한 통상 관계가 양 국가 집단간의 격차를 더욱 벌려 놓았다고 하였다(56~58항). 그러나 바오로 6세는 과거의 식민주의와 현재의 신식민주의에 대하여 분명하 고 강경한 입장을 취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과거 식 민지 종주국들은 자신들이 식민지에 도입한 교육 제도와 기술 제도들이 후진국에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하였는데, 교황이 이 견해에 부분적으로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황은 식민주의의 악한 결과들을 과소 평가하였 다.
② 국제간 빈부 격차 해결 제안 : 바오로 6세는 국제 적 빈부 격차가 더욱 심화되기 때문에 개혁이 긴급하고 절실하다고 호소하면서(29항, 32항), 선진국들이 취할 조 치와 노력을 강조하였다. 먼저 선진국은 연대성의 원리 에 따라 후진국을 도와야 하고, 선진국의 잉여 재화를 후 진국에 넘겨주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였다(45~49항) 그러나 산발적인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계획적인 노력 이 필요한데, 재정과 기술 지원을 위한 일 대 일의 쌍무 협약은 지배와 종속 관계를 낳을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후진국의 발전을 지원하는 세계 기금의 창설이 긴급하다 고 주장하였다(50~53항). 쌍무 협약을 통하거나 세계 기 금을 통해서 지원 국가는 수혜국의 필요와 부채 상환 능 력을 고려하여 증여, 무이자, 저리, 연부 상환 등 여러 가지 적당한 방법을 사용하여야 하며, 지원 자금이 계약 대로 사용된다는 보장을 받되 수혜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54항). 둘째로, 현재의 통상 원칙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쌍방의 경 제력 차이가 현저한 현실에서 자유주의 통상 원칙이 격 차를 증대시킬 뿐이고(58항), 쌍방의 자유 계약도 공정 하지 못하므로(59항), 무제한 경쟁을 토대로 삼는 현재 의 자유주의 통상 원칙이 적합하지 않다고 하였다(60~ 61항). 셋째로, 보편적 사랑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래서 극단적 민족주의와 인종 차별주의를 극복하려는
마음, 공동 세계를 지향하는 마음과 민족 자결의 원칙을 준수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호소하였다(62~65항). 그리고 선진국들은 후진국 출신의 유학생과 노동자들을 공정하게 대우하고(68~69항), 후진국에 진출하는 다국 적 기업가는 후진국 노동자를 착취해서는 안되며 기술을 이양하고 지도자로 양성하여 기업 설립의 기회도 제공하 여야 하며(70항), 후진국에 파견되는 기술자는 그 나라의 역사와 재능과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71~73항)고 역설 하였다.
③ 국제적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한 후진국의 역할 : 국 제적 빈부 격차를 줄이는 데 있어서 후진국은 자구적 노 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빈곤과 저발전 의 원인과 책임을 전적으로 선진국에 돌리지 않으려는 것이고, 종속 이론과 차이를 나타내는 점이 특징이다. 교 황은 후진국들이 우선 자신의 발전에 대해 몇 가지 중요 하고 건전한 견해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개인과 민족은 자신의 발전에 대하여 일차적 책임을 지며, 외부의 도움 이나 방해에도 불구하고 각자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 주 동적 역할을 할 생각을 가져야 한다(15~17항)고 하였다. 아울러 진보는 경제 성장만이 아니고 인간 전체의 향상 을 위한 것이며, 진정한 진보와 발전은 물질적 빈곤과 결 핍, 사회악, 무지에서의 해방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억압 과 전쟁에서의 해방도 의미하므로 발전이 곧 모든 사람 의 풍요, 자유 그리고 평등의 실현을 의미한다(14항, 18~ 20항)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재산 은 우선적으로 만민을 위한 것이어서 사유 재산권은 절 대적 권리가 아니고 공동선이 필요하면 사유 재산권도 포기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22~24항), 따라서 경제 활동의 근본 동기는 이윤이고 경제의 최고 법칙은 자유 경쟁이며 사유 재산권은 절대 불가침이라는 자본주 의적인 사고는 해롭다고 하였다. 그래서 산업화 과정에 서 과거에나 현재에도 모순이 발생하고 불의가 저질러졌 지만 그 탓을 산업화 자체보다는 방임적 자본주의 체제 에 돌려야 한다고 하였다(25~26항). 마지막으로 노동은
창조 활동의 계속, 자기 발전, 타인에 대한 봉사라는 의 미를 생각하며 노동자의 존엄성을 인정해야 한다(27~28 항)고 교황은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후진국의 민족들이 도입할 조치로 다음과 같은 과제를 제안하였다. 진정한 발전을 위하여 "국가 발전 계획이 필요하다. 국가는 그 계획 안에서 개인, 중간 집단, 직능 집단, 문화 단체, 개 인 기업의 활동을 격려하며 보충해야 하지만 자유를 부 정하는 획일적 집단화를 피해야 한다. 그래서 경제 계획 이 필요하다. 국가의 계획은 경제 발전과 사회 발전을 함 께 추구해야 한다. 그 계획은 불평등의 해소, 물질적 풍 요, 도덕 함양, 기술 개발을 지향해야 하지만 기술이 인 간을 지배하는 기술주의(테크노크라시)는 피해야 한다" (33~34, 38~40항). 국가의 발전 계획에는 문맹 퇴치, 초 등 교육의 육성도 포함되어야 하며 특히 교육은 인격의 성장, 경제 발전, 사회 발전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 이므로(35항)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제안 하였다. 그리고 인구 계획도 그 발전 계획의 일부가 되어 야 한다고 하였다.
④ 폭력 : 교황은 1960년대 개발 도상국에서 사회 발 전을 위한 수단으로 흔히 사용되던 폭력 혁명에 대해서 도 언급하였다(31항). 그러나 회칙은 의도적으로 구성한 문장을 통해서 폭력 혁명이 현실 악(現實惡)보다 더 큰 불행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하였다. 그러나 교 황은 인권이 유린되고 공동선을 침해하는 명백한 폭군적 압제가 오래 지속되는 경우 폭력 혁명이 정당할 수도 있 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정의로운 전쟁 이론 혹은 정 당 방위론으로 알려진 가톨릭 전통과 합치한다. 그렇다 고 폭력 혁명을 장려한 것이 아니라, 단지 중요한 점은 이 부분이 극단적 조건에서라도 폭력 사용을 장려하지 않으면서도 폭력을 무조건 단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폭력을 쓸 수 있다는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서도, 어떤 때에는 묵인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였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는 정당하다고 하였 다.
⑤ 개혁의 주체 : 바오로 6세는 개혁이 시급하고(29 항), 현재 상황의 부정을 싸워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32항). . 그러면 폭력 혁명을 장려하지 않는데, 누가 어떻 게 싸우고 현실을 극복하라는 것인가? 회칙에서 교황은 선진국의 정치가, 언론인, 지식인, 파견된 전문가, 유엔 기구, 후진국의 지도자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일 을 할 사람이라고 하면서 이들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평 가〕 회칙 <민족들의 발전>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첫째, 이전의 회칙들이 주로 국내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다루었던 데 비해, 이 회칙은 전세계적 인 차원에서 문제를 다루어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에 폭 넓은 전망을 보여 주었다. 둘째, 이전의 회칙에 비하여 접근하는 방식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였는데, 이전의 회 칙들이 현상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회칙은 사회 문제 특히 빈곤의 근본적인 원인을 탐색하여 이전 의 회칙들보다 진전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셋째,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현실적으로 선택하고, 여기에 투신하도록 자극하는 데 공헌하였다. 넷째, 이 회칙의 권고와 제안 사항들이 유럽 및 선진국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이 회칙은 도어(D. Dorr) 신부가 평가하듯이 다소 미흡한 측면도 있 다. "식민주의의 결과에 대한 설명은 이득과 해악을 같 은 것으로 보게 만든다. 그래서 식민지 권력자들이 식민 지 민족의 정치적 · 경제적 구조뿐 아니라 그들의 삶에 질서와 의미를 주던 사회적 · 문화적 · 종교적 구조마저 파괴한 정도를 과소 평가하고 있다. 또한 서구의 과학, 기술, 문화가 대부분의 제3 세계에 실질적이고 계속적인 이득이 미친 영향을 과대 평가하였다." 그리고 이 회칙 은 빈곤 문제의 해결 방법에 있어 합의 모형을 선택하였 는데, 이 합의를 선진국이 지키지 않을 경우에 후진 빈국 들이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아무런 제안을 하고 있지 않다. (→ 바오로 6세)
※ 참고문헌 Peter J. Henriot · Edward P. De Berri · Michael J. Schulthesis, Catholic Social Teaching : Our Best Kept Secret, Orbis Books, 1988/ Herve Carrier, S.J., The Social Doctrine of the Church Revised, Pontificum Consilium de Iustitia et Pace, 1990(강대인 역, 《사회 교리란 무엇인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92)/ Richard L. Camp, The Papal Ideology of Social Reform, Leiden, E.J. Brill, 1969/ Donal Dorr, Optionfor the Poor, Gilll and Macmillan, Dublin, 1983(오경환 역, 《가난 한 이를 위한 선택》, 분도출판사, 1987). 〔朴文洙〕
<민족들의 발전> 民族 - 發展 〔라〕Populorum Progress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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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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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 이론이 설득력을 얻어 가던 시기에 반포된 <민족들의 발전>은, 국제적 빈부 격차를 줄이기 위해 후진국도 자구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