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말살 民族抹殺 〔영〕genoc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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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말살' 이라는 용어가 공식 채택되었던 뉘른베르크 국제 군사 재판 모습(왼쪽)과 12만 명의 유형자들이 죽어 갔던 죽음의 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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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말살' 이라는 용어가 공식 채택되었던 뉘른베르크 국제 군사 재판 모습(왼쪽)과 12만 명의 유형자들이 죽어 갔던 죽음의 수용소.

어느 인종 전체나 정치 · 인간 공동체의 생활, 자유, 재 산, 문화를 계획적으로 파괴시키는 죄. '민족 근절' 이라 고도 한다.
〔의 미〕 이 용어는 폴란드 출신의 미국인 교수 렘킨(R. Lemkin)에 의해 창안되었는데, 그는 그리스어 '게노스' (γένος, 인종)와 라틴어 접미사 '치데' (cide, 살인)를 합성 하여 '모든 인류 집단의 살해, 즉 존재 권리의 부정' 이라 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인류의 초기 역사에는 한 종족을 몰살시키는 전쟁과 정복 전쟁, 그리고 그에 따른 제도적 인 억압의 예가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 학살 에 대해 강력하게 대처하지 않았으며, 이 범죄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도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치즘의 추종자들에 의해 자기 민족보다도 열등한 민족 으로 간주된 유대인, 보헤미아인을 비롯한 다른 종족을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말살하려고 하였던 것은 국가의 권한이 아닌 인간성에 위배되는 범죄이다. '민족 말살' 이라는 용어는 1945년 8월 8일 나치 전범의 심판을 위 한 뉘른베르크(Nürnberg) 국제 군사 재판에서 공식적으 로 채택되었는데, 이 재판에서는 이들의 범죄를 세 개의 요소가 혼합된 범죄, 즉 평화를 반대한 범죄, 전쟁 범죄 그리고 인간성에 위배되는 범죄로 규정하였다. 이 중에 서 세 번째 정의는 국제 형법에서 발전된 것이다. 민족 말살은 인간성에 위배된 범죄 중에서 여전히 가장 심각 한 것으로 남아 있다. 이 범죄는 1948년 12월 9일에 개 최된 유엔 총회에서 만장 일치로 채택한 "민족 말살 범 죄의 예방과 처벌을 위한 협약"에 의해 재확인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권리에 도전하는 이 범죄의 처벌을 위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며, 그로 인해서 그 이후 와 현재의 세계 여러 곳에서 이 범죄는 계속하여 은폐된 상황에서 발생하고 있다.
〔개 념〕 민족 말살이라는 용어의 개념은 그 자체로 전 인류 집단의 몰살을 의미한다. 그러나 민족 말살에 관한 국제법 규정은 국가적 · 민족적 · 종족적 그리고 종교적 집단만을 그 대상에 둘 뿐 정치적 · 경제적 · 문화적 집단 은 그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였다(1948년 협약 제2항). 정 치적 · 경제적인 민족 말살을 제외한 것은 걱정되는 존재 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문화적 혹은 민속학 적인 몇 가지 권리만을 보유한 정치적 집단이나 어떤 소 수 집단의 존속에 대한 국제적 보장은 완전히 인간의 권 리와 소수의 권리에 대한 국제적 보호 장치의 존재 여부 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영역에서의 실현 은 거의 설득력이 없으며, 1950년 11월 4일 체결된 인 간 권리에 대한 유럽 협약-서유럽의 제한된 국가에서 만 실시되는-을 제쳐놓은 것이다.
민족 말살을 구성하는 행위들은 항상 집단의 육체적이 고 생물학적인 몰살에 귀착된다. 더구나 이는 목적을 위 해 사용되는 수단이 무엇이든 이 범죄의 핵심을 구성하 는데, 그 목적이란 '숫자가 많은 구성원의 살해, 그들의 육체적 혹은 정신적 온전함에 대한 치명적 타격, 완전한 혹은 부분적인 육체의 파괴를 유도할 수 있는 존재 조건 에 어떤 집단을 의도적으로 복종시키는 것, 어린이들을 다른 집단으로 강제 이동시키는 것' 등을 포함한다(협약 제2항). 이러한 행위들은 결코 개별적인 몇몇 개인에 의 해 저질러질 수는 없다. 민족 말살이란 본질적으로 국가 권력을 소유한 자들이 그들의 이름을 내걸고, 또는 명시 된 혹은 무언의 동의에 의해 저질러지는 집단적인 범죄 이다. 그러나 책임성의 소재에 대한 조사는 쉽지 않으며, 이 책임성의 구분은 이 범죄가 특히 국가에 의한 범죄일 경우 결코 쉽지 않다.
처벌뿐만 아니라 예방까지도 겨냥한 제3항은 본래 의 미의 민족 말살뿐 아니라 이 범죄를 저지르려는 목적의 합의, 직접적이고 공공연한 선동, 실행하려는 의지 그리
고 그 실행의 방조까지도 범죄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실 질적으로 이러한 조치들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데, 특히 1948년 협약이 간과한 예비적 행위 (가스실의 건설, 핵무기 · 화학 무기 · 생물학 무기의 생산)를 민 족 말살을 시행하려는 의도로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어떤 정부에 의해 심리적 선동으로 자국민을 움직여 다른 국가의 국민들에 대한 방어적 감정을 갖도 록 만들고, 민족 말살을 저지르도록 고무하는 것을 어떻 게 파악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은 숙제로 남아 있다.
이 협약이 시행된 이후, 이 범죄는 언론과 여러 정부들 에 의해서 되풀이하여 나타났다. 러시아에서는 체 반 도와 크림 반도에서의 타타르족, 볼가 강 유역의 독일인 같은 몇 개의 소수 민족들에 대하여 나타났으며, 브라질 에서는 아마존 인디언에게, 나이지리아에서는 이보(Ibo) 족에게,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여러 아랍 국 가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또한 현재 세계 곳곳에서 진행 되고 있는 전쟁 역시 이러한 성격이 다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범죄는 전혀 법적으로 성립되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 이 범죄에 대한 억제는 국제 형법 재판의 불 충분성으로 인해 정치적 장애에 부딪혔다.
〔국제법상의 문제〕 "민족 말살을 저지른 모든 사람들 은 그들의 신분이 무엇이든, 즉 위정자이든, 정부 관료이 든 아니면 개인이든 처벌을 받아야만 한다"(협약 제4항) 는 내용은 민족 말살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모든 장치가 마련된 것처럼 생각하게 할 수도 있지만 이는 국 가나 정부의 책임을 제외시킨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행동을 명령하는 주체들도-이는 국가의 이름으로 되겠 지만-마찬가지로 제재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상위 계급에서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이 이 협약 에서 명확하게 제외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재판은 명령 에 의해 시행된 민족 말살의 장본인들에게서 개별적으로 의도적인 요소가 있었는지 아닌지를 결정해야만 할 것이 다.
근본적으로 정치적 범죄인 민족 말살의 장본인들은 외 국으로 도피하면서 모든 처벌을 모면할 가능성이 있는 데, 전통적으로 정치적 범죄에 관해서는 범죄자 신병 인 도의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약은 민족 말살이 정치적인 범죄처럼 간주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 였으며, 협약 체결국들은 현재 발효 중인 법과 조약에 따 라 이에 동의할 의무를 갖는다(협약 제7항). 마지막으로 만약 민족 말살이 전쟁 중에 저질러진 행위라면 그것은 전쟁 기간의 범죄와 마찬가지로 평화 기간의 범죄를 이 루는 것이며, 따라서 협약 체결국들은 그것을 "예방하고 제재해야만 한다" (협약 제1항).
이처럼 그 처벌을 쉽게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편에도 불구하고, 민족 말살은 그 장본인을 심리하고 재판하기 위해 소집되어야 하는 법정의 결여로 여전히 제재받지 않고 있다. 그래서 1948년 협약에서는 두 가지 가능성 을 갖고 있었다. 첫 번째로, 민족 말살을 저지른 국가의 법정이 그들을 처벌하지 않을 경우 그들을 체포한 다른 국가의 법정이 그 처벌을 수행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외국 정부의 재판관에 의해 판결이 내려지는 것을 원하 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불행하게도 배제되었다. 두 번 째 해결책은 보다 혁신적인 것으로 '국제 형법 재판소' 의 설치였다. 그러나 사실상 이것도 사문화되었는데 그 이유는 유엔의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어떠한
국제적 범죄 재판도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남은 유일한 가능성은 민족 말살이 저질러진 국가의 법정에 기소된 사람들을 소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민족 말살 이 국가에 의해 시행된 범죄임을 상기할 때 그 처벌이 효 과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법적인 장애물은 시효에 관한 문제이다. 확실 히 제5항에 의해 협약 체결국들은 1948년 협약에 충분 한 효과를 주기 위하여, 특히 효과적인 형사적 처벌을 위 해 필요한 법적 조치를 마련하여야 했다. 그러나 형사적 행위와 과해진 형벌의 시효에 관련된 규정에 의해 민족 말살의 범죄자들은 제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지 만 1968년 11월 26일 유엔 총회에서 민족 말살 중에서 전쟁 범죄와 인간성에 위배되는 범죄의 무시효성에 관련 된 협약을 채택(1968년 협약 제1항)함으로써 그렇게 될 위험성은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제도적 결함이 특히 국제 형법 재판소의 결여에 의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인간성은 민족 말살 범죄를 확인하는 데 충분한 입법화를 부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입법화는 인간성에 위배되는 이런 위협에 보편적으로 다양하게 적용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국 제 재판소는 "민족 말살의 예방과 처벌을 위한 1948년 협약의 유보" 와 관련하여 1951년 5월 28일의 자문 의 견에서, 민족 말살의 성격을 사람들의 권리에 반대되는 범죄라고 표현하면서 "협약의 근저에 있는 원칙들은 설 사 모든 협약 밖에 있더라도 모든 국가에 의무를 지우는 것과 같이 문명화된 국가들에 의하여 확인된 원칙들이 다"라고 추론했다. 국제 연합 가입국 중 107개 국이 1993년 1월 1일에 '1948년 협약' 을 비준하였으나, 인 간성은 아직도 민족 말살의 망령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
※ 참고문헌  K. Vasak, 《EU》 10, pp. 264~265/ 一, Les dimensions internationales des droits de l'homme, Paris, UNESCO, 1978/ R.-J. Dupuy, Humanité et droit international, Paris, 1991/ W.V. O'Brien, 《NCE》 6, pp. 336~337. 〔邊琪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