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교구 소속이던 침묵의 본당.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읍 소재. 1935년 유서 깊은 광너울 공소(荷次面 兔山里)를 중심으로 마산 본당(馬山本堂)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1944년 11월 폐쇄되었다. 관할 지역은 강서군의 서남 지역 8개 면이었고, 광너울 공소를 비롯하여 함종리(咸從里), 기양리(岐陽里), 송호리(松湖里), 가흥리(佳興里), 고학리(古鶴里) 공소 등이 있었다. 이 중 광너울 공소는 1863년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가 설립하였는데, 그 후 1866년의 병인박해(丙寅迫害)로 폐쇄되었다가 신앙의 자유를 얻은 뒤 부활되어 평양 본당(館後里本堂의 후신), 영유 본당(永柔本堂), 마산 본당(馬山本堂) 등에 소속되었다가 강서 본당이 설립되면서 여기에 속하게 되었다.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메리놀회의 놀란(Thomas Nolan, 吳) 신부는 본당 정착을 위한 노력과 교세 확장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성당 건립에 노력하여 2년 뒤인 1937년 9월에는 한옥을 개조한 성당을 완공하고 낙성식 및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이때 그를 도와 사목에 협조한 사람은 이주백(李周伯, 요셉) 회장이었다. 그러나 1937년 말 놀란 신부가 전임되면서 강서 본당은 주임 신부를 모시지 못해 다시 마산 본당 관할이 되었고, 1942년 진남포 본당(鎮南浦本堂) 관할로 변경되었다. 그러다가 1943년 6월 서울교구에서 파견된 김영식(金永植, 베드로) 신부가 제2대 주임으로 부임함으로써 본당으로 재출발하였으나, 이듬해 11월 김영식 신부가 서울교구로 귀환함에 따라 재차 마산 본당에 병합되었다. 강서 공소의 강당은 그 후 1949년 공산당에 의해 몰수되었으며, 이듬해 마산 본당의 강영걸(姜永杰, 바오로) 신부가 공산당에게 피납되면서 침묵의 교회가 되고 말았다. 〔역대 신부〕초대 놀란 토마스(1935~1937), 2대 김영식 베드로(1943. 6~1944. 11). (→ 평양교구 ; 침묵의 교회) 〔車基眞〕
강서 본당
江西本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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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 축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