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 신학 民衆神學 〔라〕Minjung theologia 〔영〕Minjung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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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신학은 예수와 열두 제자의 주변부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하였던 민중을 예수 사건 이해의 중심에 세움으로써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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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 신학은 예수와 열두 제자의 주변부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하였던 민중을 예수 사건 이해의 중심에 세움으로써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려 하였다.

한국의 정치 · 경제적 상황에 대한 정치적 · 민중적 토 착화 신학의 형태. 고등 종교의 문화 이념을 한국적인 실 체로서 이해한 최병헌(崔炳憲) 유동식(柳東植) 윤성범 (尹聖範), 변선환(邊鮮煥)으로 이어지는 토착화 신학과 는 달리, 이것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통찰하며 오히려 억 압된 상황 속에서 생겨난 기층 민중 종교를 한국 문화의 본질로 바라보는 토착화 신학이다.
〔형성 배경과 전개 과정〕 민중 신학은 박정희 정권 (1961~1979)이 추구하였던 한국 사회의 1970년대 개발 독재에 의하여 희생당한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들의 투 쟁에 참여했던 그리스도인들의 고난 경험에서 탄생하였 다. 1960년대 이후 도시 산업 선교 영역에서 진행된 민 중을 '위한' 선교 활동은 평화 시장의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 사건을 계기로 민중과 '함께' 하는 선교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전태일 사건은 한국 교회의 선교에 충 격적인 전환을 가져다 주었다. 교회는 민중이 더 이상 선 교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교의 동역자이며 주체임 을 깨닫게 되었고, 하느님은 민중 사건 속에서 민중과 함 께 고난당하고 민중을 해방하는 분으로 이해되었다. 이 런 깨달음은 일부 신학자들과 그리스도인 교수들을 인권 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게 하였고, 결과적으로 이들은 해직 또는 투옥되었다. 민중 신학은 해직되고 투 옥된 이들 신학자들의 선교에의 참여와 감옥 체험에서부 터 생겨났다. 1세대 민중 신학자들이라고 불리는 이 시 기의 민중 신학자들로는 안병무(安炳茂) 서남동(徐南 同), 현영학(玄永學), 문동환(文東煥), 김용복(金容福) , 서광선(徐洸善) 등이었다.
'민중 신학' 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게 된 것은 당시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 김형효(金炯孝)와 연세대 신학 과 교수 서남동(1918~1984)의 논쟁 때문이었다. 민중은 민중 신학자들의 추상적인 허구일 뿐이라고 지적하면서 민중 신학의 '투쟁적인 열광주의' 를 경고한 김형효의 글 에 대하여, 서남동이 《기독교 사상》 1975년 2월호에 논 박문 <예수, 교회사, 한국 교회>를 발표하였는데, 거기에
서 '민중 신학' 이라는 개념이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서남동은 성서의 해방 전통과 한국 민중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투쟁과 증언이 하느님의 선교에서 서로 합류하는 것을 밝히는 데 자신의 민중 신학적 관심의 초 점을 두었다. 이 과제를 위해 서남동은 '사회사적 · 성령 론적 통시적 방법론' 을 활용하였는데, 사회사적 방법을 통해 서남동이 시도하였던 것은 '계시의 하부 구조' , 즉 민중의 구체적인 삶의 복판에서 일어나는 하느님의 활동 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계시가 역사적 사건으로 일어난다는 그의 '성육신적 신앙 고백' 과 다르지 않다. 성령론적 통시적 해석 방법론은 예수 사건을 지나간 역 사적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 민중 사건 속에서 다시 반복되는 사건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안 병무는 이런 방법론을 역사의 '맥' 이라는 개념으로 표현 하기도 하였다.
구속되었다가 1975년에 석방된 민주 인사들의 환영 예배에서 성서학자 안병무는 '민족, 민중, 교회' 라는 제 목의 강연을 하였는데, 여기에서 그는 민족 개념이 지배 계급에 의해 현상 유지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오용된 역 사를 지적하면서, 민중을 민족의 실체이며 민족사의 보 유자로 파악하였다. 그 후 안병무는 마르코 복음의 '오 클로스 (ὄχλος) 개념과 '갈릴래아' 를 한국의 상황에서 재조명하는 신학적 작업을 전개하면서, 민중 사건을 예 수 사건의 중심부에 세웠다. 예수와 열두 제자의 주변부 에서 전혀 주목받지 못하였던 '오클로스' , 곧 민중을 그 는 예수 사건 이해의 중심에 세움으로써 서유럽 신학이
안고 있던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하였 던 것이다. 안병무에게 민중은 예수 사건의 조역이 아니 라 주역이며, 예수 사건의 보전자(保全者)이며, 전승자 였다. 민중 사건은 하느님이 벌이는 선교인 것이며, 전승 의 형식은 '이야기' 혹은 '유언비어' 였다. 같은 시기에 현영학은 민중의 몸의 언어인 탈춤에, 김용복은 민중의 '사회 전기(傳奇)' 에, 문동환은 민중 교육론에 그리고 서광선은 민중 문화에 관심을 기울였다.
민중 신학 형성 초기에 있었던 가톨릭 신학자들의 참 여도 간과될 수 없다. 서인석(徐仁錫) 신부는 구약성서 에서 '가난한 사람들' 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을 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이스라엘의 법 정 신을 조명하였다. 또 가톨릭 시인이었던 김지하(金芝河) 는 서남동의 민중 신학적 상상력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김지하의 담시 <소리의 내력>(1972)과 그의 옥중 작품 메모인 <장일담>은 서남동으로 하여금 신학의 새로 운 형식으로서의 '이야기 신학' 을 발전시키고 '한' (恨) 의 개념을 신학적으로 성찰하게 하였다.
1980년대 들어와 민중 신학은 전환기를 맞는다. 광주 민중 항쟁은 한국 사회 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함 께 민중 신학에서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대안적 실 천의 과제를 모색하게 하였다. 민중 사건에 대한 증언의 신학이었던 1970년대 민중 신학은 억압 구조가 다층적 이고, 민중 스스로 변혁의 주체가 되어 가는 1980년대 의 상황에서 사회 구조의 근본적 변혁을 위한 대안을 제 시하는 데 일정한 한계를 노출하였기 때문이었다. 따라 서 1970년대 민중 신학의 민중 이해의 한계, 변혁을 위 한 과학적 운동론과 대안 제시의 한계 등이 지적되었다.
한편 진보적 사회 운동 세력들은 유물론적 세계관, 특 히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하게 되었고 운동의 목표도 반외 세 민족 자주화, 반독점-반독재 민주화, 민족 통일을 지 향하게 되었다. 이른바 2세대 민중 신학자들로 알려진 강원돈(姜元敦), 김진호(金鎭浩), 최형묵(崔亨默) 등은 1980년대 한국 사회 변혁 운동의 이념들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계를 모색하는 데서 그들의 신학적 출발점을 찾았다. 강원돈은 '성육신론' 을 '물(物)의 신학' 의 성서 적 전거로 삼으면서 '물질적 세계관과 신앙의 종합' , 그 리스도교 신앙과 정치적 실천을 매개하는 신학적 해석학 의 일반 이론의 정립' , 그리고 이것을 기초로 새로운 교 회론과 성사론(聖事論)을 정립하려고 시도하였다. '물의 신학' 은 교회의 지배적인 신앙 유형의 이데올로기적 성 격과 정치적 기능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변혁 이론을 모색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 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전위적 이론과 실천보다 그 리스도교인 대중의 참여를 신학적 성찰의 기초로 이해하 려는 노력이 있었다. 서진한(徐震漢)과 박재순(朴在淳) 등은 전통적인 신학적 주제를 민중 신학적 시각에서 재 해석하고 민중 운동의 장으로서 교회의 위치를 다시 강 조하였다. 이런 반성의 배후에는 민중 신학을 민중 교회 운동에 접합하려고 시도하였던 민중 교회 운동이 부딪힌 '기독교 운동' 의 정체성에 대한 위기 의식도 일정한 역
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민중 신학적 시각에서 성서를 탐구하여 예수 운동의 혁명성을 실천적 그리스도교의 재구성에 접합하려는 대 단히 학문적인 시도가 일련의 젊은 성서학자들에 의해 공동으로 진행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특히 김진호 의 작업이 돋보이는데, 그는 1970년대의 소외론적이고 탈이데올로기적인 민중론과 1980년대의 계급론적 민중 론을 지양하면서 '해게모니(hegemonie, 주도권) 접합을 이 룬 대중 연합체' 를 민중으로 파악함으로써 실천적 그리 스도교의 '계급적 실천' 의 폭을 더 넓혔다. 민중 문화에 대한 신학적 탐구 역시 이 시기에 진일보하였다. 1세대 민중 신학자들의 민중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저항적 민중 문화의 복원과 신학적 접목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 었다면, 이정희(李正熙)는 다양한 문화 비평 이론을 비 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전통 문화가 갖는 상상력의 힘, 특 히 민중의 생활사에 흐르는 '살림의 문화' , '민중의 언 어' 를 그리스도교적 살림 문화 창조에 접근시켰다고 하 겠다. 그리스도교 신앙과 전통 문화가 만나는 자리가 민 중의 일상적인 삶과 민중 언어에서 모색된다는 점에서 1980년대 민중 문화 신학은 특징지어진다. 민중 신학의 형성에 또 다른 접근을 시도한 이들은 이른바 해외 유학 파 신학자들이라고 하겠다. 이들의 민중 신학에 대한 이 해나 나름대로의 민중 신학의 전개는 이들의 숫자만큼이 나 다양해서 일괄적으로 평가하기가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있다면 민중 신학에 대한 에큐메니컬 신학적 대화와 비판을 더 풍성하게 하는 데 기여하였다 는 것이다.
민중 신학은 1990년대에 들어와 또 다른 도전에 부딪 히게 되었는데, 사회주의 경제 체제의 붕괴와 남한의 상 대적 민주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변혁의 대안적 체제로 기대되었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시장 경 제 체제에 의해 무너진 1990년대의 세계사적 지각 변동 은 민중 신학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회 변혁 운동체 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민중 신학에 보다 직 접적인 도전이 된 것은 이른바 '문민 정부' 의 수립과 상 대적 민주화, 경제 성장과 시민 계급의 등장이라고 하겠 다. 민중 신학에 대한 용공성 시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반독재-민주화 투쟁이 상대적으로 약화된 현 실, 중산층의 확대가 민중의 변혁에 대한 열정을 상대화 혹은 무력화시키는 현실을 근거로 민중 신학 폐기론이 등장하는 한편 다른 한편에서는 상황의 상대적 변화와 관계없이 민중은 언제 어디에서나 존재하며 그러므로 민 중 신학은 폐기되지 않는다는 입장도 제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 신학자들은 지금까지 다양하게 전개된 민 중 신학자 세대간의 대화는 물론 에큐메니컬 신학적 대 화를 더 활발하게 하고 변화된 상황에서 민중 신학을 창 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1993년에 '한국 민중 신학 회' 를 조직하였다.
〔주 제〕 민중은 누구인가? : 1세대 민중 신학자들은 민중의 개념을 규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개념 화가 실체의 생동적 파악을 오히려 제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중은 자신의 역동적 운동 가운데서 자신을 발 전시키고, 그러기 때문에 민중은 민중 운동에 참여함으 로써만 파악되는 것이지 객관적 관찰을 통해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민중 을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으로 억압받고, 경제적으로 착 취받고 문화적으로 소외된 집단으로 이해하였다. 1세대 민중 신학자들의 이런 태도는 인식론에서 주객 도식을 극복하고 신학하는 사람의 역사 참여를 설득력 있게 유 도할 수는 있었으나, 민중 이해의 비과학성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변혁 대안 제시의 한계 때문에 이른바 2세대 민중 신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이들은 1세대 민중 신 학자들의 민중 이해가 소외론적 관점에 근거하고 있으며 1980년대의 변혁 운동에 상응하지 못한다는 현실 인식 을 바탕으로, 마르크스주의적 세계관 위에서 민중을 파 악하였다.
그러나 이들 2세대 민중 신학자들의 과학적 민중 이해 도 사이에서 계급적 조건에 대한 판단을 중심으로 다시 분화하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그들 민중이 사회 경제적 관계로만 환원되지 않는 또 다른 민중 현실, 예컨대 '민 중 가운데 민중' 인 여성의 문제는 민중을 보다 탄력적으 로 이해할 것을 요청하였다. 따라서 개념의 엄밀한 규정 과 실체의 정확한 파악이 변혁 운동을 위해 전략적으로 중요하지만, 민중 신학 본래의 입장, 곧 민중의 투쟁과 희망에 참여함으로써 민중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는 이론과 실천의 일치를 지향하는 한 민중 신학의 변할 수 없는 전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
민중 역사 주체론 : 민중 신학은 민중을 '역사의 하부 구조에서 고난받고 소외당한 생산의 주체로서 역사의 보 유자' 라고 규정함으로써, 역사 주체로서 민중의 계급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세대 민중 신학자들은 민중의 역사 주체성을 '지배와 피지배의 관 계' 에서 파악하기를 거부한다. '지배와 피지배' ,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의 틀에서 파악된 역사 주체성이 흔 히 두 계급간의 위상 변화와 동일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용복은 '고난' 에 민중의 역사 주체성이 있다고 하였다. 민중의 고난을 통한 자기 초월과 그것의 대속적 성격에서 민중 신학은 민중 사건과 예수 사건, 하느님의 역사 참여 사이의 연속성을 발견한다. 여기에 민중 신학 의 민중 주체론이 신학적인 이유가 있다. 예수 사건에서 드러난 민중 역사 주체론은 '선포' 되고 '약속된' 주체론 이다. 선포된 주체성은 민중으로 하여금 역사 구원의 보 유자로서의 자의식을 일깨우고, 약속된 주체성은 민중에 게 희망 속에서 투쟁하게 한다. 그러므로 민중 신학이 이 해하는 민중의 역사 주체성은 진보 사관에 기초하지 않 고, 종말론적 희망 위에 근거를 가지고 있다. 종말론적으 로 이해된 역사 주체성은 민중의 자기 초월의 전거가 된 다. 민중은 이미 자기 자신의 역사의 주체이다. 그것은 지배자가 지배 역사의 주체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문제 는 어떤 의미에서 민중은 역사의 주체인가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적 메시아 희망과 민중 메시아주의 : 민중 신학은 하느님의 고난받는 종인 예수의 메시아주의를 강
조함으로써 엘리트적 · 영웅적 메시아주의, 곧 정치적 메 시아주의를 극복하려고 하였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모든 형태의 폭력에 기초한 억압적 권력을 폭로 하고 상대화시킨다. 그러나 문제는 민중 메시아주의와 그리스도교적 메시아 희망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데 있 다. 민중 메시아주의는 메시아 희망의 보유자가 민중 자 신이라고 보며, 메시아 역시 초월적 존재라기보다 민중 가운데서 육화한다. 민중의 자의식의 진보적인 성숙이 운동 가운데서 기대된다. 민중 해방은 민중 자신의 힘에 의해 성취되며, 민중 메시아주의의 역사 이해는 '역사 내재적 진보 이념' 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민중 메시 아주의가 그리스도교적 메시아 희망과 어떤 관계에 있느 냐는 것이다.
메시아주의가 약속하는 구원이 물질적이냐, 영적인 것 이냐, 역사적인 것이냐 초월적인 것이냐는 중요한 구별 이 아니다. 또 그리스도교 메시아 희망이 민중을 수동적 으로 만들며 혁명적 열정을 약화시킨다는 민중 메시아주 의의 비판이나, 민중 메시아주의가 민중을 절대화시킴으 로써 자기 초월의 근거를 상실할 위험이 있다는 그리스 도교 메시아 희망의 비판도 중요한 지적이 아니다. 민중 메시아주의의 비판은 그리스도교적 메시아 희망이 그리 스도인을 변혁을 위한 행동으로 인도하지 못하는 한 정
당하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 메시아 희망은 민중 메시 아주의가 역사적 성취를 절대화하여 자기 비판력을 상실 할 때 정당한 비판이 된다. 이런 갈등은 민중 신학이 변 혁 운동과 대결하는 한 언제든지 새롭게 제기될 문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운동으로서의 신학 : 1세대 민중 신학의 전개는 '민중 은 신학에 무슨 의미를 주는가? 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었다. 이런 질문과의 대결에서부터 성서와 교 회사에 나타난 민중 전통이 재조명되었고, 민중을 역사 의 주체로 파악하게 되었으며, 민중의 현실 변혁을 위한 자기 초월적 행동에 메시아적 성격이 부여되었다. 그러 나 차세대 민중 신학은 '신학이 민중에게 무엇을 의미하 는가?' 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에 신학의 대안적 현실 변혁 가능성이 모색되었고 마르크스주의 세 계관이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는데, 이는 신학 운동이 아 니라 운동으로서의 신학으로 전환된 것이다. 그래서 운 동의 기초인 대중, 혹은 교회 대중에 대한 이해가 과학적 으로 접근되었다.
그러나 운동으로서의 신학은 신학하는 자의 학문과 삶 의 일치를 지향할 뿐만 아니라 신학이 곧 운동일 수 있어 야 한다는 자기의 무화(無化)를 의미한다. 이는 변혁의 대안 모색이 구조적 변화와 인간 삶의 태도의 변화가 상 응할 때 실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운동으로서 의 신학인 민중 신학은 신앙 공동체의 실험적 모색을 요 청한다. 특히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 체제의 유일 지배가 현실이 되는 오늘의 상황에서 평등과 경제 정의를 지향 하는 새로운 신앙 공동체 운동은 민중 신학의 새로운 과 제로 남아 있다.
해외에서의 민중 신학 연구 동향 : 민중 신학이 해외 신학계, 특히 에큐메니컬 신학의 지평에서 논의된 것은 민중 신학이 태동하던 초기에서부터 이미 시작된 일이었 다. 고난받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관심과 연대 는 곧바로 민중 신학과의 신학적 대화로 연결되었다. 1 세대 민중 신학자들의 글이 영어(CCA ed., Minjung-Theology : People as the Subjects ofHistory, Singapore, 1981)와 독일어(J. Moltmann Hrsg., Minjung : Theologie des Volkes Gottes in Suedkorea, Neukirchen-Vluyn, 1984)로 번역되면서 민중 신학이 해외에 알려졌고, 한국인 해외 유학생들의 학위 논문과 외국인 신학자들의 학위 논문도 양산되기 시작하였다. 해외에서 의 연구는 민중 신학 자체에 대한 이해와 소개, 혹은 대 화와 비교 연구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민중 신학 자체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쟁점이 된 주제 는 민중에 대한 이해, 민중 운동과 그리스도교 선교의 관 계 문제, 민중 문화 · 민중 미술과 신학과의 관계 등이었 다. 비교 연구의 경우, 민중 신학의 십자가 이해와 신 (神) 이해에 대한 비교, 흑인 해방 신학, 혹은 라틴 아메 리카 해방 신학과의 비교, 민중 메시아주의와 구원의 문 제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민중 신학자들이 해외 신 학자들과 직접 논쟁을 한 것도 주목되어야 한다. 1989 년 독일 선교부(E.M.W.) 소속의 신학위원회가 먼저 편지 를 보내 시작된 독일 신학자들과 민중 신학자들 사이의
논쟁은 '민중의 역사 주체론' , '민중 자력 구원론' , '그 리스도교적 메시아 희망과 권력의 문제'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논쟁은 '신학' 과 '신학하기' 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와 입장 때문에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았지 만, 민중 신학이 세계 신학의 지평에서 주목받는 또 다른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해외에서 민중 신학에 대한 관심이 식은 것은 한국의 변 화된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내에서의 진전된 논의 가 번역되어 소개되지 않은 데도 그 이유가 있다고 보여 진다.
〔전 망〕 민중 신학이 처음부터 자신의 과제로 설정한 분단 현실의 평화적 극복과 참여 민주주의의 실현, 인권 의 신장은 아직도 해결되고 있지 않다. 특히 민중 가운데 민중인 여성의 신학적 성찰과 해방 운동과의 대화는 더 진전되어야 하며, 종교 신학, 생명의 신학과의 대화 역시 민중 신학을 더 풍성하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1990년 대의 세계사적 변화가 민중 신학에 던지는 도전은 경제 정의(正義)의 문제이다. '세계 무역 기구 의 출범과 함 께 현실이 되어 가는 민족 국가의 해체와 무제약적인 자 본 운동의 확대는 부와 빈곤의 문제를 다시 신학적 성찰 의 중심에 세운다. 빈곤은 이제 한국 민중만의 문제가 아 니다. 민중 신학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면서 세계의 민중과 함께 정의로운 경제 질서를 모색하는 투쟁과 연대에 참여해야 한다. 민중 신학은 이 런 도전에 응전할 수 있는 자기 자신 안에 잠재해 있는 신학적 상상력을 발전시킬 과제를 가지고 있다. (→ 프 로테스탄트 신학)
※ 참고문헌  강원돈, 《물(物)의 신학-실천과 유물론에 굳게 선 신학의 모색》, 한울, 1992/ 권진관, 《성령과 민중-실천적 신학과 신 학적 실천》, 한국신학연구소, 1993/ 김진호, 《실천적 기독교를 위하 여- 예수 운동의 혁명성 문제》, 도서출판 나난, 1992/ 김용복, 《한국 민중과 기독교》, 형성사, 1981/ 박재순, 《민중 신학과 씨알 사상》, 도 서출판 천지, 1990/ 서남동, 《민중 신학의 탐구》, 한길사, 1983/ 서남 동 목사 기념 논문집 편집위원회, 《전환기의 민중 신학-죽제 서남 동의 신학 사상을 중심으로》, 한국신학연구소, 1992/ 안병무, 《민중 신학 이야기》, 한국신학연구소, 1987/ ㅡ, 《갈릴래아의 예수-예 수의 민중 운동》, 한국신학연구소, 1990/ 안병무 박사 고희 기념 논 문집 편집위원회, 《예수, 민중, 민족》, 한국신학연구소, 1992/ 임태수, 《구약성서와 민중》, 한국신학연구소, 1993/ 최형묵, 《사회 변혁 운동 과 기독교 신학》, 도서출판 나단, 1992/ 한국 기독교 장로회 민중 교 회 운동 연합 편, 《바닥에서 일하시는 하느님 - 민중 선교의 현장》, 한국신학연구소, 1992/ 한국 기독교회 협의회 신학 연구위원회, 《민중과 한국 신학》, 한국신학연구소, 1982/ 한국 크리스찬 아카데 미 편, 《한국 민중 신학의 조명》, 대 화출판사, 1983/ K. Blaser, Volksideologie und Volkstheologie : oekumenische Entwicklungen im Lichte der Barmer Theologischen Erklaerung, Miinchen, 1991/ CCA ed., Minjung-Theology : People as the Subjects ofHistory, Singapore, 1981/ A. Hoffimann-Richter, Ahm, Bymg-Mu als Minjung Theologe, Göttingen, 1988/ W. Kroeger, Die Befreiung des Minjung : Das Profil einer protestantischen Befreimgstheologigie fuer Asien in oekumenischer Perspektive, Miinchen, 1992/ Lee, Jung-Young ed., An Emerging Theology in World Perspective Commentary on Korean Minjung Theology, Connecticut, 1988/ C. Linneman-Perrin, Die politische Verantwortung von Kirchen in Krisensituationen, untersucht an zwei Beispielen in Suedkorea und Suedafrika, Miinchen, 1992/ J. Moltmann Hrsg., Minjung-Theologie des Volkes des Gottes in Suedkorea, Neukirchen-Vluyn, 1984/ T. Sundermeier, Das Kreuz als Befreiung : Kreuzesinterpretationen in Asien und Afrika, Miinchen, 1985/ T. Sundermeier Hrsg., Lexikon Missionstheologischer Grundegriffe, Berlin, 1987/ Ulrike Link-Wieczoreck, Reden von Gott in
Afrika und Asien Darstellung und Interpretation afrikanischer Theologie im Vergleich mit der koreanischen Minjung-Theologie, Göttingen, 1991. 〔蔡洙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