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 존 스튜어트 Mill, John Stuat(1806~ 1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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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존 스튜어트 밀.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철학자. 경제 학자. 1806년 5월 20일 영국 런던에서 공리주의자(功 利主義者)였던 제임스 밀(James Mill)의 장남으로 태어나 3세 때부터 부친의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라났으며, 14 세부터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에게서 사사하였 다. 정식 학교 교육을 받지 않고 오직 사교육만을 받았는 데, 아버지에게서 3세부터 그리스어를, 8세부터는 라틴 어를 배웠으며, 15세가 되어서는 경제학, 역사학, 철학, 그리고 자연 과학의 여러 분야들을 포함한 다양한 수업 을 받았다. 후에 그가 영국 경험론적 관점에서 철학을 한 것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교육의 영향으로 여겨진다. 17 세 되던 해 아버지를 따라 동인도주식회사(The East India Company)에 입사하여 35년 간 근무하였으며, 런던 사무 소의 고위 자문 직책까지 역임한 뒤 52세에 은퇴하였다.
밀은 《자서전》(Autobiography, 1873)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거의 무한에 가까운 존경을 표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였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아침 산책을 하 면서 나누는 학문적 대화에 많은 희열을 느꼈고, 아버지 를 기쁘게 해줄 여러 가지 질문들을 생각해 두었다가 그
것을 산책 길에서 물어 보고 함께 토론하곤 하였다고 한 다. 후에 그는 아버지의 권고에 따라 벤담의 조수로서 또 제자로서 일하면서 공리주의적 사고에 심취하였는데, 그 영향으로 1822~1823년에는 친구들과 함께 '공리주의 사회' 라는 진보적인 단체를 구성하여 핵심 회원으로 활 동하였다. 밀은 당시 영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전통에 기초한 여러 사회 제도를 공리주의적 원칙하에서 개혁하 려고 했던 벤담의 사상에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고, 후에 벤담의 공리주의에 주요한 수정을 가한 것도 밀이었다.
20세 때 밀은 지적인 활동에 대한 일대 변화를 겪으면 서, 이전에 등한시했고 경멸하기까지 하였던 문학과 시 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는 어렸을 때 받은 교육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자성에 의한 것이었 다. 이때 그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준 사람은 워즈워스 (W. Wordsworth)를 비롯 콜리지(S.T. Coleridge), 칼라일(T. Carlyle), 괴테(J.W. von Goethe), 생시몽(C.-H. de R. Saint- Simon), 콩트(A. Comte) 등이다. 이러한 전환은 단순히 쾌락주의적 공리주의에 머물렀던 벤담으로부터 자신의 독창적 공리주의를 전개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는 벤담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을 평생 동안 공리주의자 라고 생각한 것에는 변화가 없었다. 또한 이 시기에 그는 개인이 하나의 획일된 사고와 행동을 함으로써 야기되는 폐해를 절실하게 실감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훗날 《자유 론》(On Liberty, 1859)에서 개인의 개별성과 자율성에 대 한 열렬한 지지로 나타난다.
25세 때 밀은 그의 생애에서 많은 영향을 주게 될 부 유한 상인의 아내인 테일러(Hariet Tayler)를 처음으로 만 난다. 이 여인은 유부녀였기 때문에 그들의 친밀한 관계 는 곧 영국 상류 사회의 스캔들이 되었지만, 그녀의 남편 이 죽은 후 둘은 1851년에 결혼하였고, 이후 밀의 저술 활동은 미미할 정도로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결혼
생활 7년 만인 1858년에 프랑스 여행 도중 아내가 사망 하자, 밀은 아비농(Avignon)에 집을 구입하고 그녀의 무 덤을 가까이서 방문하는 열정적 사랑을 보여 주었다. 특 히 《자유론》의 헌사에서 그가 보여 준 부인에 대한 존경 과 사랑은 보통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뜨거운 것이었 다. 밀은 1873년 5월 8일에 67세의 나이로 진리에 대한 뛰어난 능력과 열정적인 마음을 가진 채 삶을 마감하였 다.
〔사 상〕 자유주의적 공리주의 : 밀은 공리주의를 다음 과 같이 정의하였다. "도덕의 기초로서 '공리' 혹은 '최 대 행복의 원리' 를 수용하는 신조(creed)가 주장하는 바 에 따르면, 행위는 행복을 증진시키는 정도에 비례해서 옳은 것이고 행복의 반대를 증진하는 정도에 따라서 그 르다. 행복이란 쾌락을, 즉 고통의 부재(不在)를 의미하 고, 불행이란 고통을 즉 쾌락의 결여를 의미한다. 이 이 론에 의해서 정립된 도덕 기준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 해서는 훨씬 많은 언급이 있어야 하는데, 특히 그 이론이 무엇을 고통과 쾌락의 개념에 포함시키는지 그리고 이것 이 어느 정도로 미정된 문제인지에 대한 것이 여기에 해 당된다. 그러나 이러한 보충 설명은 이 도덕 이론이 기초 한 삶의 이론-즉 쾌락과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야말로 목적으로서 바람직한 유일한 것이라고 하는 인생관과, 모든 바람직한(desirable) 것들(다른 어떤 이론과 공리주의에 서도 다양한 것들)은 그 자체로 내재한 쾌락을 위해서거나 혹은 쾌락의 증진과 고통의 방지에 대한 수단으로서 바 람직하다고 하는 인생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 러한 밀의 입장은 표면적으로는 벤담과 크게 다르지 않 지만, 쾌락과 고통을 야기시키는 대상들로 반드시 육체 적 · 물리적 쾌락만을 배타적으로 지칭하지 않고 의도적 으로 열려진 상태로 남겨 두었다는 점에서 벤담과 구별 된다. 그는 이어서 사람들이 에피쿠루스(Epicurus) 학파 와 그 추종자들의 쾌락주의를 '돼지의 철학' 이라고 비판 했던 것에 대해서 반박하였다. 즉 인간의 위치를 격하시 키는 것은 에피쿠루스 학파나 그 추종자들이 아니라 오 히려 그 비판자들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돼지 들 정도의 쾌락밖에 즐길 줄 모르는 존재라는 전제를 가 정해야만 비판자들의 입장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그러 나 에피쿠루스 학파에 따르면, 인간은 더 상위의 쾌락을 즐길 수 있는 지적 능력과 상상력을 보유한 존재라고 하 였다. 이러한 밀의 입장은 벤담의 공리주의적 사상에 대 한 일대 수정이었다. 쾌락에는 양적 대소(大小)만이 있 는 것이 아니라, 양적 대소(大小)로 환원할 수 없는 질적 우열(優劣)이 있다는 것이다.
밀은 행복과 만족을 구별하고,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 을 유지하기 위하여 행복을 희생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 해 반박하였다. 즉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질적으로 높은 쾌락을 발생시키는 것은 행복의 일부분이지, 결코 희생 될 성격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만족한 돼지가 되는 것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것이 낫고, 만 족한 바보가 되는 것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 그리고 만약에 바보 혹은 돼지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문제를 자신들의 입장 에서만 보기 때문이다. 비교되는 다른 당사자는 양면을 다 알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밀의 해석에서 중요한 것 은 소크라테스와 돼지의 쾌락 사이에 질적 차이가 존재 한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 이유가 전자는 양쪽에 대한 지식을 모두 가지고 가치 판단을 내린다는 점이다.
밀은 행복이 인간의 활동에 필수적 목표가 될 수 없다 는 주장에 대해서, 공리가 행복의 추구만이 아니라 불행 의 방지 혹은 감소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하였다. 더 나아 가서 후자가 전자보다 더욱 중요하다고도 하였다. 그러 나 인간이 행복을 절대로 성취할 수 없다는 주장은 과장 이라고 하였다. 물론 밀은 불완전한 사회에서 행복이 불 가피하게 희생되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 을 인정하였으며, 비자발적으로 행복의 포기를 강요당하 는 노예의 삶을 사는 야만인 시대가 인류사에 있었다는 점도 인정하였다. 역설적으로, 행복을 포기함으로써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하였다. 단지 밀이 부정하는 것은 행복의 희생 그 자체가 선하다는 주장이 다.
또한 밀은 자신의 시대에서 경험하고 있는 고통(예를 들어 가난 등)을 인간의 노력과 애정으로 완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은 19세기적 낙관주의자였다. 벤담과 마찬 가지로 밀도, 이상적 사회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법과 사 회 제도, 그리고 교육과 여론이 개인 이익과 전체 이익에 합일되도록 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밀은 행복이 유일한 본질적 가치인가에 대한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덕, 돈, 명예, 권 력, 건강 등이 본질적 가치가 아니라는 주장은 아니다. 덕은 그 자체로 추구되어야 할 본질적 가치이다. 더 나아 가 그것은 본질적 가치 중에서도 최상의 가치라고 주장 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주장이 행복은 유일한 본 질적 가치라는 주장과 양립 가능한가? 밀에 따르면 이들 다양한 가치들은 행복의 주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행복 이 유일한 본질적 가치라는 사실이 행복의 내용과 요소 가 벤담과 같이 단일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본래 이들 가치들은 그 자체로 본질적 가치들인 것이 아니었 다. 밀의 연상 심리학(association psychology)을 받아들인 다면, 이 가치들 특히 돈의 경우, 처음에는 행복의 주요 한 수단으로 출발하였으나, 그것이 가져다 주는 행복과 완전하게 밀착되면서 행복의 일부분으로 고착되었다. 밀 은 결국 행복의 개념을 광의적으로 해석하여 '진보적 존 재로서의 인간의 항구적 이익' 을 공리 또는 행복이라고 주장하고, 그러한 인간의 자율성을 증진시키는 데 필수 적으로 요구되는 것들도 행복의 개념에 포함시켰다.
종교에 대한 입장 : 밀은 《오귀스트 콩트와 실증주의》 (Auguste Comte and Positivism)라는 저서에서 콩트의 초기 실증주의 철학과 후기 인문주의 종교를 구분하였다. 또 한 철학은 버클리(G. Berkeley)와 흄(D. Hume)의 견해를 발전시킨 것으로 높이 평가하였지만, 종교는 고통받는 인류 위에 군림하는 권위주의적 위계 질서를 세우려는 시도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견해는 그의
사후에 출판된 《종교에 대한 에세이 3편》(Three Essays on Religion, 1874)에 달리 나타난다. 이 책의 <본성>(Nature) 과 <종교의 이익>(Utility of Religion)은 부인의 영향을 받 아 1850년에 쓴 것인데, 종교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되 어 있지 않다. 그러나 1869~1870년에 쓴 <일신론>(一 神論, Theism)에서는 종교에 대해서 좀더 호의적인 내용 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 그의 친구였던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들과 무신론자들은 많은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생전의 견해와는 다르게 하느님이 존 재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록 이 작품 속 에서 진리와 감정의 문제가 혼합되어 있기는 하지만, 밀 의 주된 관심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유익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또한, 그는 인간의 영혼은 죽지 않으 며, 이에 반대되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고 하였다. 나아 가 그리스도교는 믿음을 분발시키고 사람에게 유익하다 고 하였지만, 그렇다고 밀이 전능하고 자비하신 그리스 도교의 하느님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한 하 느님은 전능하지 않지만 실제 생활에서 하느님의 필요성 을 인정한 것이며, 사람은 하느님의 도움으로 교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 것뿐이다. (→ 공리주의 ; 벤담)
※ 참고문헌 J.S. Mill, Utilitarianism, 1863/ 一, The Subjection of Women, 1869/ 一, Autobiography, 1873/ 一, On Liberty, 1859(김형 철 역, 《자유론》, 서광사, 1992). 〔金亨哲〕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