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교 密教 〔영〕Esoteric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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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요가 수행법도 밀교의 삼밀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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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요가 수행법도 밀교의 삼밀 중 하나이다.

현교(顯敎, Exoteric Buddhism)에 대응하는 비밀교. 비 밀 불교. 흔히 밀장(密藏)이라 칭하기도 한다. 상징주의 적인 의례(儀禮) 내지 관수법(觀修法)에 의해 종교적인 이상을 달성하려는 점이 특징이다.
〔개 요〕 대승 불교의 한 분야로 인도에서 성립된 밀교 는 유가종(瑜伽宗), 비밀 대승(秘密大乘), 다라니교(陀 羅尼敎), 유가 상승(瑜伽上乘), , 비밀종(秘密宗), 금강승 (金剛乘) 등으로도 불리며, 산스크리트어로는 비밀승(秘 密乘)이라고 번역되는 구호야-야나(Guhya-yāna)에 해당 한다. 특히 근래에 들어 유럽 학자들에 의해 탄트라 불교 (Tantric Buddhism)라고 불리면서, 좌도(左道) 밀교적인 것이 밀교의 주내용인 것처럼 알려지게 되었다. 탄트라 (Tanta)라는 말은 비밀스러운 가르침을 담은 전적(典籍) 을 일컫는 용어로서, '주술적 · 신비적인 의궤(儀軌)를 가르치는 책들' 로 이해되며, 이에 나타나는 사상이나 신 념 체계는 인도 원주민인 드라비다인들의 주술적 요소와 아리아인들의 베다(Veda) 문화를 수용하고 있다. 초기 불교에서는 이러한 주술적 · 신비적 요소들을 극력 배제 하는 무아(無我) 사상이 핵심이 되고 있지만, 중생들의 기복적인 욕구를 긍정하는 대승 불교에서는 방편(方便) 적인 입장에서 많은 탄트라적 요소들을 수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탄트리즘은 힌두교적 탄트리즘과 불교적 탄트 리즘으로 대별할 수 있으며, 인도에서 불교적 메시지가 생명력을 잃어 가는 8~9세기경에는 힌두교적 탄트리즘 이 불교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에 삭티(sakti, 여성의 에너지, 性力) 숭배를 중심으로 하고, 남녀의 합일 을 주된 종교적 실천의 수단으로 여기는 좌도 밀교가 흥 성하게 되었다. 따라서 좌도 밀교는 인도 밀교 전개 과정 에서 최후를 장식하는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좌 도 밀교의 사상 근저는 화엄이나 중관 · 유식의 대승 사 상적인 동기를 몸으로 구현하려는 것이므로 이것은 대승 불교의 마지막 단계로 이해된다.
동아시아에 전래된 밀교는 7세기 이전의 주밀(呪密) 과 그 이후의 통밀(通密)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는데, 통밀은 《대일경》(大日經), 《금강정경》(金剛頂經)이 성립 되는 7세기를 전후하여 성립된 정통 밀교로 순밀(純密) 이라 하고, 주밀은 통밀 이전의 주술적인 밀교로 소승· 대승 경전에 산견된다는 의미에서 잡밀(雜密)이라고도 한다.
〔밀교의 내원 : 삼밀〕 밀교는 입으로 다라니를 외우고 〔口密〕, 몸으로 불교의 이상을 상징하는 인계(印契)를 짓고〔身密〕, 마음으로 삼매(三昧)를 실현하는〔意密〕 삼 밀(三密)의 실천 수행을 통해서 현생에서 성불(成佛)하 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의밀(意密) · 구밀(口密) · 신밀 (身密)을 뜻하는 삼밀은 부처의 삼밀과 중생의 삼밀로 나뉘어지며, 중생의 삼밀은 다시 유상(有相)의 삼밀과 무상(無相)의 삼밀로 구분된다. 유상의 삼밀에 의해서 중생이 부처와 교섭 관계를 갖고〔三密加持〕, 그것에 의 해서 부처의 삼밀과 중생의 삼밀이 서로 감응 일치함으 로써 즉신성불(卽身成佛)의 깨달음을 이루게 되는 것이
다.
의밀 : 석가모니가 성도할 때 행한 요가법에 근거하는 것으로, 인도 고래의 요가적인 수행법을 말한다. 우파니 샤드에서 마음을 범아일여(梵我一如)에 집중하는 방편 으로 행하는 유상방편관(有相方便觀)이나 원시 불교에 서 제법무아(諸法無我)의 도리를 관(觀)하도록 권하는 자골관(自骨觀) 등이 밀교의 여러 가지 관법(觀法) , 곧 아자관(阿字觀), 오자엄신관(五字嚴身觀), 월륜관(月輪 觀), 오상성신관(五相成身觀), 포자관(布字觀), 입아아 입관(入我我入觀) 등으로 발전한 것을 말한다. 근기(根 機)가 얕은 중생들은 형상이 없으면 진실에 가까이 가기 어려우므로 어떤 방편적 대상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런 유상삼매관(有相三昧觀)은 《대일경》에 자세히 설해지는 만다라(Mandala)의 실천으로 완성된다.
구밀 : 말로 나타나는 소리를 통해서 부처의 자리를 넘나들려는 것으로, 《리그 베다》에 나오는 많은 찬가(讚 歌)나, 성어(聖語)로 여겨지는 옴(Om)과 같은 진언(眞 言, mantra) · 주문(呪文)에 의지한다. 원시 교단에서 주 문으로 재앙을 없애려는 내용이 여기에 해당되는데, <칠 불팔보살소설대타라니신주경>(七佛八菩薩所說大陀羅尼 神呪經, 4세기 漢譯)에서 일곱 부처와 여덟 보살이 설하 는 주문으로 재앙을 없앤다는 것이 그 예이다. 또한 대승 불교의 《법화경》, 《열반경》, 《입능가경》, 《금광명경》 등 에서 다라니가 설해지고 있으며, 용수(龍樹)의 《대지도 론》(大智度論) 권58에도 "외도(外道)의 주(呪)는 중생 의 욕망을 채우기 때문에 이를 존중하지만, 반야 바라밀 의 주는 모든 집착을 멸하고 불지(佛智)를 얻게 한다. 그 러므로 같은 주라 하더라도 불교의 주는 대명주(大明呪) 요 무상주(無上呪)요 무등주(無等呪)이다" 설하고 있다. 이런 초기의 주밀이 통밀로 발달하면서 처음에는 뜻이 없는 단순히 소리였던 주문이 나중에는 의미가 담 긴 진언으로 경향을 달리하였다.
신밀 : 몸가짐으로서 부처의 세계와 계합(契合)하는 것으로 인계(印契, mudrā 또는 印, 印相)라고도 한다. 고대 산스크리트어인 '무드라' 는 반지 모양으로 만든 도장이 나 흔적을 뜻하는 표장(標章)의 의미인데, 이로부터 부 처의 깨달은 내용을 법인(法印)이라 하여 삼법인(三法 印)이 있게 되었고, 인장(印章)과 같이 진실한 것이요 허 망하지 않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인계라고 할 때 일차적으로는 수인(手印)을 말하지만, 나아가서는 수 인 외에 불상(佛像)이나 진언(眞言) 등을 가리키기도 한 다. 이러한 인계가 밀교에서 설해진 것은 6세기경에 번 역된 <모리만타라주경(牟梨曼陀羅呪經) 권1에 있으며, 간다라의 불상에서와 같이 시무외인(施無畏印) · 여원인 (與願印) · 설법인(說法印) · 촉지인(觸地印) · 법계정인 (法界定印) 등 불상의 수상(手相) 형식이 관법(觀法)의 방편으로 채용되었다.
〔경전의 성립과 분류〕 밀교는 '삼밀' 을 정비함으로써 크게 발전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밀교의 대표적 경전인 태장계(胎藏界)의 《대일경》과 금강계(金剛界)의 《금강 정경》이 성립되었다.
《대일경》 : 《대비로차나성불신변가지경》(大毗盧遮那 成佛神變加持經)의 약칭으로, 비로차나(vairocana)에 '해' 〔日〕라는 뜻이 있으므로 대일(大日)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이 경전은 산스크리트어본이 일실되었지만 대개 7세기경 서인도 지방에서 성립되었으며, 7세기 후반에 는 중인도로부터 북인도에까지 전파되어 8세기에는 북 인도의 산간 지방인 보로라에까지 유포되었다. 724년 선무외삼장(善無畏三藏)에 의해 한역(漢譯)이 이루어졌 고, 티베트에서는 9세기경 시렌드라보디와페첵에 의해 번역되었다. 《대일경》은 대일여래(大日如來)를 본존불 로 하며, 이 부처의 위대한 지혜의 빛이 태양과 같이 모 든 유정(有情)을 자비의 힘으로 보호하고 제도한다는 내 용이다. 비로차나불이 중생 제도한 결과를 묘사한 것이 《화엄경》과 《범망경》(梵網經)이라면, 《대일경》은 교화의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대일경》은 중관(中觀)과 《반야경》(般若經)의 세계를 이어받았다는 점에서 밀교 경전으로서만이 아니라 대승 불교 경전으로도 중요하다.
《금강정경》 : 《대일경》과 더불어 밀교의 최고 경전으 로 숭앙된다. 금강정(金剛頂)이라는 말은 견고한 것에 비유하여 불가사의하고 비밀스러운 진리는 괴멸되지 않 는다는 뜻과, 여래의 지혜는 능히 중생의 번뇌를 없애고 지극한 진리를 얻게 한다는 뜻을 취한 것으로, 정(頂)이 라 하여 여러 대승법 중에서 가장 으뜸임을 말하고 있다. 이 경전은 18회(會) 10만 송(頌)이나 되는 방대한 내용 인데, 지금 모두 전하지는 않는다. 중국에서 유포된 것으 로 불공(不空)이 번역한 《금강정일체여래진실섭대승현 증대교왕경》(金剛頂一切如來眞實攝大乘現證大教王 經) 3권과 시호(施護)가 번역한 《불설일체여래진실섭대승현
증삼매교왕경》(佛說一切如來眞實攝大乘現證三昧教王 經) 30권, 금강지(金剛智)가 번역한 《금강정유가중략출 념송경》(金剛頂瑜伽中略出念誦經) 4권이 전한다. 이들 《금강정경》은 모두 유가행(瑜伽行)과 유식(唯識)의 세계 를 계승하고 있다. 중국이나 한국, 일본 등에서는 중관과 유식의 계통을 잇고 있는 《대일경》과 《금강정경》이 최고 의 비밀 경전이다.
4단계 탄트라 : 인도와 티베트에서는 밀교 경전을 다 음과 같이 4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제1 단계의 밀교 경 전은 7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탄트라(kriya tantra)로, 제존 의 예배법 · 공양법 등의 종교 의례와 진언(眞言) · 다라 니 · 명주 · 찬(讚)의 독송 등 수행자가 행하는 외면적인 작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대승 · 소승 경전에 서 설해지고 있는 다라니나 의궤(儀軌)인 주밀의 경전이 다. 제2 단계의 밀교 경전은 행(行) 탄트라(carya tantra) 인 《대일경》이고(7세기 전반), 제3 단계에 나타나는 경전 은 유가(瑜伽) 탄트라(yoga tantra)라 불리는 초회(初會) 의 《금강정경》(남인도에서 성립된 것으로 추정)과 제6회의 《이취광경》(理趣廣經)다.(7세기 후반). 제4 단계의 것은 무상 유가(無上瑜伽) 탄트라(anutara-yoga tantra)라고 하여 《금강정경》 계통의 후기작인 제9회의 《일체불집회나길 니계망유가》(一切佛集會拏吉尼戒網瑜伽)와 제10회의 《무이평등최상비밀유가왕경》(無二平等最上秘密瑜伽王 經)을 말한다(8세기 이후). 이들은 《대일경》이 지니고 있 는 반야 · 공(空)의 중관 철학을 다시 구현하는 유식 · 유 가행의 실천을 가르치고 있다. 다시 말해 반야 · 공의 철 학을 실천적으로 지양한 단계가 유가 밀교의 경전이요, 유식 · 유가행의 철학을 실천적으로 지양하려고 한 것이 무상 유가 밀교라고 할 수 있다.
〔인도 밀교의 전개 과정〕 인도 불교는 4세기 말까지 대승 불교의 주요 개념인 중관, 유식, 여래장 등이 대부 분 완성되면서 높은 대승 교학 체계를 이룩하였다. 그 후 7세기에 들어서면서 대승 불교는 관념적인 논리 체계에 서 중생의 기복적인 욕구에 부응하는 실천적인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밀교 체계가 발 전하는 8세기경에는 밀교의 교리를 배경으로 중관 유가 행파(中觀瑜伽行派)와 중관 경량파(中觀經量派) 등 혼 성 학파가 활동하였고, 불교 논리학이 크게 발달했다. 이 시기가 지나면서 인도에서는 실질적으로 불교가 쇠퇴하 게 된다. 즉 《금강정경》이 쓰여진 남인도에서는 불교의 보호자인 파트라바(Patrava) 왕조가 멸망하고, 서북 · 서 남 인도에서는 이슬람교도의 압박이 심해지면서, 인도 밀 교는 북방의 오릿사(Orissa) 지방으로 피난하게 되었다.
신천지를 찾아 동쪽으로 이동한 불교도들이 본거지로 삼았던 골이나 오릿사 지방을 지배한 팔라(pāla) 왕조 는 불교 진흥책으로 비크라마시라(Vikramasila)에 학문의 전당인 대사원을 세워 금강승(金剛乘)의 근본 도량으로 삼았다. 그리고 여기에서 학문을 닦은 국내외의 학승들 은 후일 히말라야를 넘어 티베트, 네팔, 수마트라, 자바 등지로 인도의 밀교를 전파하였다. 그리하여 인도 밀교 는 1199년 팔라 왕조가 멸망하고 1203년 비크라마시라
사원이 파괴되면서, 힌두교가 그 자리를 대신할 때까지 크게 번영하였다.
한편 팔라 왕조의 후반기인 11세기에는 터키계의 이 슬람교도들이 인도 전역을 침략하였다. 이 혼란 속에서 불교도들은 비슈누파, 시바파 등 힌두교와 연합하여 이 슬람교도에게 대항하고자 하였다. 이런 배경에서 불교도 들은 그들의 비원을 시간(時間, kala)에 걸게 되는데, 시 간을 궁극적인 존재(輪, cakra)라고 생각하고, 현재 자기 가 가지고 있는 보리심의 무한성과 그 마음이 곧 부처임 을 깨닫는 반야 · 방편의 불이(不二) 사상을 시간의 존재 속에서 찾는 《시륜경》(時輪經)을 성립시켰다. 여기서는 이 몸 그대로가 본초불(本初佛, Ādi-Buddha)이요, 시륜불 (時輪佛, Kala-Buddha)이며, 금강신(金剛身, vajra kāya)이 된다. 이러한 인간 긍정의 철학은 '같이 산다' 는 구생(俱 生)을 목표로 내세우게 되고, 극도로 상징화된 실재(實 在)로서의 본능(本能)을 긍정하면서 남녀의 성욕(性慾) 을 수용한다.
반야 · 공을 여성적인 원리로 하고, 방편(方便)을 남성 적인 원리로 하여 이것을 조화 실천하려고 한 것이 초기 의 《금강정경》이 보여 주는 우도(右道) 밀교라면, 이 두 가지 원리를 마음속에서만 통일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써 체험하려고 시도하는 흐름이 후기 《금강정경》에서 나 타나는데, 이것이 성(性)을 통한 요가의 실천을 주장한 좌도(左道) 밀교이다. 이렇게 보면 인도 불교에서 최후 로 발달한 것은 좌도 밀교인데, 이 시기에 나타난 것이 바로 《시륜경》을 중심으로 교단을 조직한 구생승(俱生 乘, Sahaja-yāna)의 시륜교(時輪敎)이다. 시륜교는 과거 · 현재 · 미래의 미망(迷妄)에 싸인 현실 생활을 시간의 수 레바퀴에 비유하며, 본초불의 신앙으로 이 미망의 세계 로부터 탈출할 것을 가르친다. 여기에서 불교와 힌두교 가 서로 손잡게 되는데, 불교의 오불(五佛)은 물론 카리 (kāli 여신, 바이라바(vailava) , 헤루카(Heruka) 등이 모 습을 나타내서 모든 생물을 구제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좌도 밀교의 구생승 사상에는 종래 대승 불교의 여래장 사상이나 본성 청정설(本性清淨說) 혹은 화엄 철 학의 성기(性起) 사상이 깔려 있다.
이러한 밀교가 티베트로 전파되어 나중에 몽고에 의해 라마교로 발전하였으며, 12세기 말에는 캄보디아로 들 어가 앙코르톰(Angkr-Tom)을 건립하게 되었다. 이 사원 은 처음에는 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모셨으나, 후에는 시바신으로 바뀌는 등 밀교와 힌두교의 교체 과정을 보 여 준다. 중국 밀교는 인도와 티베트 밀교의 바탕 위에 3 세기 중앙 아시아의 안세고(安世高)가 《사두간경》(舍頭 諫經)을 번역한 것을 필두로 당대(唐代)의 전성기를 구 가하였고, 중국을 거친 밀교가 한국과 일본에 전파된 것 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적 이해와 전개〕 밀교가 한국에 수용된 것은 삼 국 시대로 잡밀(雜密) 계통의 중국 밀교가 수용되었다. 이 중 백제와 고구려의 경우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신 라의 경우는 7세기 초~8세기 사이에 잡밀 · 통밀 계통 이 전해져 본격적으로 발전하였다. 신라에 밀교를 전한
최초의 승려는 안홍(安弘)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진흥 왕대에 신라로 귀순한 고구려의 혜량(惠亮) 법사는 밀교 적 호국 경전인 《인왕반야바라밀다경》(仁王般若波羅密 多經)을 강설하고 백좌강회(百座講會) 및 팔관재법(八 關齋法)을 설치하여 국난을 퇴치하고 국가를 진호하는 밀교적 의궤를 마련하였다. 이것은 고구려와 신라가 모 두 주밀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좋은 예 이다. 그리고 8세기경에 이르러 《대일경》, 《금강정경》 등의 경전에 기초한 통밀적인 내용이 나타나는데, 원광 (圓光) · 안홍(安弘) · 밀본(密本) · 명랑(明朗) · 혜통(惠 通) 등은 신라 밀교 초기의 대표적인 승려들이다. 이 중 에서 명랑의 신인비법(神印秘法, mũdra, 즉 文豆累)과 혜 통의 진언지송(眞言持誦)은 각각 고려 시대의 신인종(神 印宗)과 총지종(摠持宗) 성립의 연원이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신라의 밀교 자료는 경주 신인사지(神 印寺址) , 금강계 대일여래상인 나발형비로자나여래상 (螺髮形毗盧遮那如來像, 9세기경), 불국사 대웅전의 본 존상으로 모신 금강계 대일여래의 비로자나불, 굴불사지 (掘佛寺址)의 십일면다비상(十一面多臂像) 등이 있다. 또 화엄교주인 비로자나불에 대한 신앙이 밀교와 융합되 어 오대산에 많은 비로자나불이 조상(造像)되는 예, 불 탑 건립을 발원하여 탑 속에 다라니경을 안치하는 다라 니 신앙, 절을 수호하는 사천왕상(四天王像) 등과 관련 되는 유물들은 모두 신라의 밀교적인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고려 시대 때는 밀교적 수행 의식이 호국 불교의 형태 를 띠면서,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어느 시대보다 도 융성한 밀교 문화를 남겼다. 신라 이래의 연등회와 팔
관회는 거국적인 행사로 확대되었으며, 밀교적인 법회 의식으로 문두루(文豆累) 도량, 인왕백고좌(仁王百高 座) 도량, 기우(祈雨) 도량, 소재(消災) 도량, 공작명왕 (孔雀明王) 도량, 마리지천(摩利支天) 도량, 약사(藥師) 도량, 사천왕(四天王) 도량, 무능승(無能勝) 도량, 금광 명(金光明) 도량, 대일왕(大日王) 도량, 공덕천(功德天) 도량, 관정(灌頂) 도량, 만타라(曼陀羅) 도량, 대불정오 성(大佛頂五星) 도량 등이 있었다. 그리고 지권인(智拳 印)을 한 비로자나불이 이 시대에도 많이 조성되었으며, 대몽(對蒙) 항쟁의 호국 정신으로 조판된 몇 차례의 대 장경에도 많은 밀교 경전이 수록되었다. 특히 고려 시대 에는 한국의 밀교 사상의 큰 조류라고 할 수 있는 신인 (神印) 작법 계통(作法系統)과 진언지송의 총지법(摠持 法)이 하나의 종파로 성립되어 신인종과 총지종을 형성 하기에 이르렀다.
조선 시대는 배불 정책하에서 전반적으로 불교가 쇠퇴 의 길로 들어섰다. 태종이나 세종대에 이루어진 불교 종 단의 통폐합 과정에서 신인종은 중신종(中神宗)이 되었 다가 교종(敎宗)으로 폐합되었고, 총지종은 총남종(摠南 宗)이 되었다가 선종(禪宗)으로 폐합됨으로써 밀교의 양 종은 그 명맥마저 없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 에도 불구하고 태종은 태조가 죽자 진언법석 · 화엄법석 을 빈전(殯殿)과 각 사찰에 개설하였으며, 세종은 공작 재(孔雀齋)를 개설하고, 《불정심다라니경》을 개판하여 널리 보급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실에서 밀교는 조 선 초기 왕실에서 꾸준히 신앙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조선 중후기에 《총집문》(摠集文, 1485), 《제 진언집》(諸真言集, 1569), 《진언집》(眞言集, 1658), 《천
수경》(千手經, 1716), 《비밀교》(秘密敎, 1784) 등 많은 밀교 진언집과 《불정심관세음보살대타라니경》(佛頂心觀 世音菩薩大陀羅尼經, 1644), 《불정심타라니경》(佛頂心陀 羅尼經, 1711), 《불정심관세음보살모타라니경》(佛頂心觀 世音菩薩娣陀羅尼經, 1876) 등의 밀교 경전, 《수륙무차 평등재의촬요》(水陸無遮平等齋儀撮要 1635), <영혼식> (靈魂式) · <설선식>(說禪式) · <칠성청>(七星請)을 합간 하여 서산대사 휴정(休靜)이 저작한 《운수단》(雲水壇, 1607),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에 대한 예참문(禮懺文) 등의 밀교 의궤서(儀軌書)가 간행된 것은 조선 시대 밀 교의 생명력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현재 한국의 불교 종단 중 밀교 계통으로는 총지종, 진 언종(眞言宗), 진각종(眞覺宗) 등이 있다. 이들 종단이 소의 경전으로 삼고 있는 것은 《대일경》, 《금강정경》, 《대승장엄보왕경》(大乘莊嚴寶王經), 《대승이취육파라밀 다경》(大乘理趣六波羅密多經) 등이며, 그 주된 신앙 대 상은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이다. 행법으로는 주 로 육자진언(六字眞言), 준제진언(准提真言) 등 여러 진 언을 지송(持誦)하는 삼밀관행(三密觀行)을 실천하며, 즉신성불(卽身成佛) · 현세정화(現世淨化)의 불국토 건 설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밀교 종단이 아닌 다른 모든 종단에서도 송주(誦呪)가 병행되며, 여러 위령제를 비롯 하여 49재 · 백일재 등을 시행하고 있어 불사(佛事)의 대부분이 밀교적인 의궤에 의해 진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한국의 밀교는 사상이나 교리적인 측면보 다는 진언 · 다라니의 염송과 의궤를 통한 개인적 · 국가 적 소망 성취라는 세속적 성격이 강하며, 교단 혹은 종파 적으로 뚜렷하게 정립된 밀교 개념보다는 밀교적 요소가 불교 사상과 의례 전반에 걸쳐 융해되어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 참고문헌  《大日經》/《金剛頂經》/ 鄭泰爀 《密敎》, 東國大學校 譯經院, 1980/ 高翊晋, 《韓國古代佛教思想史》, 동국대학교 출판부, 1989. 〔尹元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