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 장 프랑수아 Millet, Jean-François(1814~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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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프랑수아 밀레(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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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프랑수아 밀레(자화상).

프랑스의 바르비종 (Barbizon)파를 주도 적으로 이끈 화가. 1814년 10월 4일 프 랑스 노르망디(Nor- mandie) 근처의 그뤼 시(Gruchy)에서 태어 나 어린 시절 농사를 지으며 보낸 밀레는, 19세 되던 1833년부 터 1837년까지 세르 부르(Cherbourg)에서 무셀(Mouchel)과 랑 글르와(L.T. Langlois) 에게서 그림을 배운
후 1837년에 받은 장학금으로 파리에 가서 들라로슈(P. Delaroche)에게서 개인 지도를 받았다. 1840년 파리 살 롱전에 출품한 작품들 중 하나가 낙선하자 세르부르로 돌아갔는데, 1846년까지는 초상화가 그의 주된 재정적 뒷받침이었다. 1844년에 <우유 짜는 여인>과 파스텔화 <승마 교습>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농부들 의 생활을 그린 그의 첫 대작 <곡식을 키질하는 사람> (Vanneur)이 1848년 파리 살롱전에서 입선하였다.
1849년 루소(T. Rousseau)를 따라 바르비종으로 이주 하였다. 프랑스와 프러시아 간의 전쟁 동안 잠시 세르부 르에 돌아간 것을 제외하고는 사망할 때까지 이곳에서 지냈는데, 이 무렵 도시의 소음을 떠나 조용한 자연을 찾 아 전원 풍경을 그리는 화가들을 '바르비종파' 라고 부르 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깊이를 직접 체험하면서 숲이나 강변의 사계절의 변화를 화폭에 담았 다. 종래의 프랑스 풍경화에 비교한다면, 이들의 작품들 은 현실의 풍경에 대한 직접적이고 치밀한 관찰을 기초 로 개인적인 감수성을 투영시킨 풍경화였다.
바르비종에서 밀레는 그 동안의 파리 생활과 노르망디 에서의 극빈 생활로 지친 화업을 농민 생활을 그리는 데
전념하였다. 바르비종에서의 그의 작품들은 초기 작품에 서 보이는 다듬어진 기법에서 벗어나 보다 사실적이고 단단하면서 거친 화풍을 보여 주고 있다. 1850년의 살 롱전에 출품한 <씨 뿌리는 사람>(Semeur)은 밀레의 서사 적인 사실주의를 보여 주는데, 이 작품으로 그는 점차 순 수한 풍경화로 작품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그려진 대표작으로는 <이삭 줍기>(Glaneuses, 1857), <만 종>(l' Angelus, 1859), <겨울, 장작>(L'Hiver, les bicheronnes, 1862)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만종>은 해질 무렵의 빛의 효과를 이용해 시적 정감이 넘치는 분위기를 창조한 작 품으로 유명하다. 밀레가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은 1867년의 전시회에 9점의 주요 작품을 출품한 이듬해인 1868년이었다. 이때부터 그의 작품을 소장하려는 사람 들이 늘어났다. 농부에 관한 주제를 주로 그린 밀레는 1875년 1월 20일 바르비종에서 사망하였다.
겸손한 신심을 지니고 종교적인 '감사하는 가난한 마 음' 을 표현함으로써 종교화의 방향을 전환시킨 밀레는, 대지에 깊이 뿌리내린 농민들의 생활에 깊은 애정을 가 지고 농민의 눈을 통해서 본 자연을 서정적으로 묘사하 였다. 이러한 밀레의 회화는 종래의 도시 사람들이 느끼 는 자연관에 대한 일종의 반발이자 한편으로는 복잡한 도시 생활로부터의 일종의 도피였다. 그러나 당시 일반 적이었던 고정된 격식에 따른 그림에 익숙해 있던 사람 들에게는 밀레의 그림은 너무나 평범하고 하찮은 것으로 보여 오랫동안 경시되었지만, 그의 말년에는 사회적인 인정을 받게 되었다. (→ 가톨릭 미술 ; 회화)
※ 참고문헌  The Illustrated Library ofArt, part 1, p. 841/ 《세계 미술 대사전, 서양 미술사》 1, 한국미술연감사, 1985, p. 4691 M. Laclotte · J.-P. Cuzin, Dictiomaire de la Peinture, Larousse, Paris, 1991, pp. 600~602/ L.A. Leite, 《NCE》 9, p. 855. 〔鄭泳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