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남서쪽 지중해변에 있던 항구 도시. 기원전 14세 기 이래 그리스의 식민 도시였고 기원전 6세기에는 소아
시아에서 가장 번창한 도시였다. 기원전 546년 페르시 아의 다리우스 대왕이 이끈 군대에 의해 밀레도스와 그 일대의 이오니아 지방이 점령되었다. 그 후 기원전 499 년 페르시아의 압제와 중과세에 시달리다 못한 밀레도스 시민들은 이오니아 지방 11개의 도시들과 동맹을 맺고 페르시아에 반기를 들었으나, 기원전 494년 패한 밀레 도스는 약탈당하고 초토화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450년 건축가 힙포다모스(Hippodamos)에 의해 도시 계획이 세 워져 바둑판 모양으로 신도시가 건설되었고, 알렉산더 대왕의 대군이 기원전 334년에 진군하자 밀레도스인들 은 그들을 동족이라 하여 환영하였다.
바오로가 전교하던 시대에는 번창한 항구였으나 멘데 레스(Menderes) 강에서 씻겨 내려온 토사가 퇴적하여 차 츰 항구의 기능을 잃었고 지금은 지중해에서 멀리 떨어 진 모래 벌판으로 변해 있다. 밀레도스의 유적으로는 입 구에 있는 반원형 극장, 파우스티나 공중 목욕탕, 항구 표석이 돋보인다. 밀레도스에는 아폴로 신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디디마(Didyma)에 있 는 아폴로 신전은 더욱 웅장하다. 디디마의 아폴로 신전 은 헬레니즘 세계에서 에페소의 아르테미스 신전, 쿠사 다시 항구 앞에 위치한 사모스 섬의 헤라 신전에 이어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신전이었다.
바오로는 제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58년 봄 그리스 의 북부 필립비에서 과월절을 보낸 다음 배를 타고 소아 시아의 트로아스(Troas)와 아쏘(Asso)를 거쳐 예루살렘 으로 갈 때, 밀레도스에 입항하여 에페소 교회 원로들을 불러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사도 20, 15. 17-38). 바오로 의 고별사는 실제로 채록한 것이 아니고 사도 행전의 필 자인 루가가 만들어 바오로가 행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매우 감동적이다. 그 후 두 번째로 밀레도스를 방문한 바 오로는 후에 병으로 죽은 에페소 출신의 트로피모(Trophi- mus)를 그곳에 두고 떠났다고 전해진다(2디모 4, 20)
※ 참고문헌 John Mcray, 《ABD》 4, pp. 825~826/ Edwin M.
Yamauchi, New Testament Cities in Western Asia Minor, Grand Rapids : Baker Book, 1980, pp. 115~133. 〔鄭良謨〕
밀레도스 〔그〕μίλητος 〔라 · 영〕Mile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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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밀레도스의 반원형 극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