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뇌

〔프〕Banne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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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뇌의 성모가 원했던 '작은 경당'(왼쪽)과 성모 발현 광경을 그린 유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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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뇌의 성모가 원했던 '작은 경당'(왼쪽)과 성모 발현 광경을 그린 유리화.

벨기에 동부에 있는 리에주(Liège) 교구 소속의 성모 마리아 발현 성지. 바뇌는 아르덴느(Ardenne) 산맥에 있는 베스드르(Vesdre) , 앙블레브(Amblève), 에네(Hoegne) 등의 아름다운 골짜기들로 둘러싸인 높은 고지에 있는 작은 마을로 행정상으로는 루베네(Louveigne) 주 관할에 속한다. 1933년 1월 15일부터 3월 2일까지 이 마을에 사는 어린 소녀 마리에트(Mariette Beco)에게 여덟 번 발현하여 자신을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 라고 한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기 위한 성지가 조성되어 있는 바뇌는, 프랑스의 루르드(Lourdes)와 포르투갈의 파티마(Fatima)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성모 발현 성지 중 하나이다.
〔성모 발현과 교회 인준〕 바뇌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바뇌 성(城)으로 피난해 있던 주민들이 무사하게 된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성모에게 봉헌한 후 '바뇌 노트르담' (Banneux Note-Dame)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작은 마을의 중심에서 동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 거대한 전나무 숲이 있었는데, 그 외진 곳에 가난한 농부 베코(Beco-Wégimont)의 집이 있었고, 성모는 이 집의 작은 정원에서 장녀인 12세 소녀 마리에트에게 매번 같은 시간인 저녁 7시경에 여덟 번 발현하였다. 이 여덟 번의 발현은 3주간의 간격을 두고 전반부 4번의 발현과 후반부 4번의 발현으로 나뉘어진다. 마리에트의 증언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는 언제나 하얀 옷에 파란색 허리띠를 맨 아름다운 부인의 모습으로 어둠 속에서 밝은 광채를 발하며 하늘 먼 곳에서 전나무 위로 나타났고,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기울인 채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성모 발현 : 1933년 1월 15일 일요일 저녁 친구들과 놀러 나간 남동생을 기다리며 창 밖을 내다보고 있던 마리에트에게 처음 발현한 성모 마리아는, 사흘 후인 1월 18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마리에트를 작은 샘터로 인도하여 손을 담그라고 한 후 "이 샘물은 나를 위해 마련된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 다음날인 1월 19일 다시 나타난 성모는 자신이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 라고 밝히고, 마리에트를 전날처럼 샘터로 인도하여 그 샘물이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 "병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 주려고" 마련되었다고 말하면서 마리에트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전반부 발현에서 가장 짧았던 1월 20일 금요일 발현에서는 '작은 경당' 을 원한다고 말하고 소녀에게 강복한 후 떠나갔다.
이 네 번째 발현 후 마리에트의 간절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3주 정도 나타나지 않던 성모는 2월 11일 토요일 나타나 마리에트를 다시 샘터로 인도하면서 자신이 "고통을 덜어 주러 왔다" 고 발현의 이유를 밝혔다. 그로부터 4일 후인 2월 15일 발현 때는 그전에 본당 신부가 지시한 대로 표징을 요청한 마리에트에게 "나를 믿어라! 나는 너희를 믿겠다" 라는 응답과 함께 "기도를 많이 하여라!"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2월 20일 다시 발현한 성모 마리아는 마리에트를 다시 샘으로 인도한 뒤 "기도를 많이 하여라!" 라고 재차 권하였다. 후반부 발현에서 가장 짧았던 3월 2일의 마지막 발현에서는 예전과 달리 미소가 사라진 슬픈 모습으로 "나는 구세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말하고 기도를 많이 하라는 거듭된 부탁과 함께 작별 인사와 강복을 한 후 떠나갔다.
교회의 인준 : 어린 소녀 마리에트에게 일어났던 성모발현은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난 아주 단순하고 사소한 것이었다. 첫 번째 발현 때 마리에트의 어머니가 같은 장소에서 희미한 형체를 보았던 것을 제외한다면, 이 발현은처음부터 끝까지 어린 소녀의 진술과 발현시에 함께 있었던 40명 내외의 목격자들이 소녀의 행동에 대해 증언한 기록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한 소녀의 착각 또는 환상, 거짓말로 여겨 의심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는 사람들로 인해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하는 작은 발현"에 불과하였던 이 사건은, 처음엔 가난하고 단순한 사람들에 의하여 믿어지고 인정되었지만 차차 성직자·수도자 · 학자 등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신심으로 형성되어 매우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발현의 진실성에 대한 조사가 요청되었다.
성모 발현 사실을 본당 신부로부터 전해 듣고 처음에는 적대적이기까지 했던 교구장 케르크흡스(Louis-JosefKerkhofs) 주교는, 계속 이어지는 성모 발현과 관련되어 일어난 기적들(바뇌로의 성지 순례, 병자들의 치유, 냉담자들의 회개, 기도 모임들의 형성 등)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받고, 발현에 관한 확실성을 조사하기 위하여 1935년 3월 31일 '조사위원회' 를 구성하였다. 온갖 자료와 증인 조사 등을 통해 상세하게 심의한 이 위원회는 1937년 6월 "성모 마리아가 마리에트 베코에게 발현한 사실은 적어도 개연성이 있다" 고 조심스럽게 인정하였다. 이 모든 조사 서류들은 교황청에 보내졌고, 교황청에서는 1942년 1월 2일자 서한을 통하여 바뇌의 신빙성에 관한 결정을 교구장 주교에게 위임하였다. 그러자 케르크흡스 주교는 그 해 3월 19일자 사목 서한에서 발현 사실을 약간 유보적으로 인정하면서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 에 대한 공식적인 공경을 허락하였다. 1947년 3월 19일 바뇌를 모든 민족을 위한 성모 성지로 건설하겠다는 뜻과 함께 다시 한번 발현 사실을 개연적으로 인정한 케르크흡스 주교는, 1949년 8월 22일자 사목 서한에서 "성모 마리아가 마리에트 베코에게 1933년 1월 15일, 18일, 19일, 20일과 2월 11일, 15일, 20일 그리고 3월 2일에 걸쳐 여덟 번 발현하신 사실은 믿을 수 있는 것으로 아무런 제한 없이 완전히 인정한다" 발표함으로써 바뇌는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성모 발현 성지가 되었다.
〔메시지〕 바뇌의 메시지도 신자들을 참된 신앙 생활로이끌고자 한다는 점에서 다른 발현의 메시지와 마찬가지이지만, 종말에 대한 경고나 절박하고 극단적인 훈계를 통한 희생 · 보속 · 참회 등의 권고가 없이, 단순하고 간결한 몇 마디 말을 부드럽고 고요하게 되풀이하면서 기도를 권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구원을 강조한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복음과 가톨릭의 전통적 교리에 일치하는 가르침을 단순한 말과 행동으로 강조하고 확인시켜준 바뇌의 메시지는 다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호칭 : 루르드에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 이라는 절대적인 계시를 알려 주었던 것처럼, 바뇌에서는 '가난한이들의 동정녀' 라는 새로운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마리아의 노래(Magnificat, 루가 1, 46-55)에 나타난 마리아의 가난 · 소박 · 겸손을 알려 주었으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뇌의 메시지를 통하여 재확인되었다. 또한 스스로를 "구세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칭한 것은 마리아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과 일치하며, 이것은 바뇌의 모든 메
시지가 교회의 가르침과 일치함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샘물 : 샘물은 바뇌 성모 발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샘물에 관한 메시지는 루르드와 바뇌에만 있는 독특한 것이다. 자신의 발현이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임을 밝힌 바뇌의 성모는 여덟 번의 발현 중 4번이나 마리에트를 샘으로 인도하였고, 그 샘물이 "병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하여 마련되었다"라는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인간의 삶에 꼭 필요한 자연적인 물이 이제 마리아의 기도와 능력으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을 치유하는 기적의 샘물이 되었지만, 이러한 치유가 오직 그리스 가 생명의 원천임을 믿는 믿음과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므로, 샘물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마리에트를 샘으로 인도하고 그 물에 손을 담그라고 한것은 인류를 생명의 샘인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고 그리스도와 일치시키고자 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샘이 "나를 위해 마련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일치성과 아울러 마리아를 통하여 그리스도에
게로 나아가는 인류 구원에서의 마리아의 중재 역할을 말해 주며, 샘물이 "모든 민족을 위하여, 병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하여 마련되었다"는 메시지는 그리스 도교 복음의 핵심인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지니게 되는 우위성과 모든 민족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구원의 보편성을 전하는 것이다.
기도와 믿음 : 불신 때문에 기적과 표징을 요구하는사람들에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아무런 표징도 이 세대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12, 39 ; 16, 4)라고 한 예수의 말처럼, 바뇌의 성모는 "나를 믿어라. 나는 너희를 믿겠다"고 하며 표징의 요청이 믿음의 부족에서 오는 것임을 일깨워 주었으며, 자신이 우리를 믿는 다고 약속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고무시키고 있다. 항상 깨어 꾸준히 기도하라(마르 14, 37 ; 마태 26, 41)는 성서의 가르침같이 세 번씩이나 "기도를 많이 할 것"을 권하고, 기도를 위한 '작은 경당' 을 원하는 등 기도를 강조하였으며, 발현 때에는 마리에트와 함께 기도하였다. 또 "너를 위해 기도하겠다" 고 약속함으로써 '구원의 중재자' 로서 인간과 함께 전구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바뇌 성모 공경과 신심의 전파〕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 인 바뇌의 성모는 가난하고 단순한 사람들에 의하여발현 당시부터 공경되기 시작하였다. 1933년 5월 25일 바뇌의 성모가 원했던 '작은 경당' 의 초석이 놓여졌고, 성모 발현의 광경을 그린 유리화 창문과 벽을 은총에 대한 감사의 선물들로 장식한 그 지역 농가 특유의 형태를 띤 경당이 세워졌다. 발현 당시인 1933년부터 시작된 바뇌로의 성지 순례자는 차차 늘어나 20년이 지난 1953년에는 30만 명에 달하였으며, 이 숫자는 매년 늘어나고있다. 순례자들을 위하여 발현 장소에 10개의 제대가 신설되었고, 1947년 9월부터 대성당이 건립되기 시작하였으며, 수많은 치유 기적과 관련하여 널리 알려진 바뇌의 샘물은 1958년에 새로이 축성되었다. 또한 환자와 가난한 이들을 특별히 염려한 바뇌 성모의 뜻에 따라 환자 순례자들의 체류를 위한 무료 숙박 시설(hospitalie)과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의 집' 이 세 워졌다.
"기도할 것"을 요청한 성모의 권고에 따라 매일, 발현시간인 저녁 7시에 순례자들은 바뇌에서 묵주 기도를 바치는데, 세계의 50개 국 이상에서도 같은 시간에 기도함으로써 이들과 기도를 통하여 일치한다. 바뇌의 성모를 공경하고자 1934년 3월에 결성된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 기도 연맹' 이 같은 해 9월 24일 주교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1955년에 회원수가 200만 명이 넘어선 '국제기도 연맹' 은 회원들을 위한 잡지를 14개 언어로 발행하고 있다.
마리에트의 증언에 따라 론카라티(Roncarati)가 제작한 실물 크기의 성모상은 벨기에 주재 교황 대사에 의하여 1956년 8월 14일 '민족들의 여왕' 으로 현양되었으며, 리에주의 주교는 1958년 8월 15일 성모 발현 25주년 경축 사목 서한을 통하여 리에주 교구를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 에게 봉헌하였다. 바뇌 성모 발현에 관한 연구 조사서(Studien und Dokumente)의 발행과 관련하여 교황 비오 12세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 에 관한 공경을 인정하는 뜻을 몬티니(J.B. Montini) 추기경을 통하여 전달하였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5년 5월 25일 바뇌를 순례하였다.
바뇌 성모 신심은 놀랍도록 빨리 전파되어, 세계 여러 곳에 700개 이상의 바뇌 경당이 바뇌 성모상과 함께 봉헌되었고, 대구대교구의 구룡포 본당처럼 세계의 많은 성당들이 바뇌의 성모를 주보 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 성모 발현 ; 벨기에)
※ 참고문헌  Exz. Louis J. Kerkhofs, ULF von Banneux, Studien und Dokumente, 1954/ G. Jakob, Lexikon der Marienkunde, Bd. 1, Regensburg, 1967, pp. 550~551/ 一, Marienlexikon, Bd. 1, Regensburg, 1988, p. 3571 L.J. Kerkhofs, 박도식 편역, 《바느의 성모》, 가톨릭 출판사, 1979. 〔吳善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