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뇨니, 알폰소 (156~1640)

Vagnoni, Alphon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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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 소속 중국 선교사. 세례명은 알풍소. 중국 이름은 처음에 왕풍숙(王豊肅) 또는 왕일원(王-元)이었으나, 후에 고일지(高-志)로 개명(改名)하였다. 자는 태온(泰穩) 또는 측성(則聖) 1566년에 이탈리아 토리노(Torino) 교구 트로파렐로(Trofarello)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성장한 뒤에는 수도 생활을 거쳐 약 5년 동안 고전 및 수사학을 공부하고 1584년 예수회에 입회했다. 이어 밀라노(Milano)에서 3년 동안 철학을 공부한 바뇨니는, 1603년 일본에서의 순교자 코스탄초(C. Costanzo) , 스리랑카의 순교자 메텔라(J. Metella) 등 여러 동료들과 함께 동양으로 파견되었는데, 곧 중국 선교사로 임명되어 1605년(만력 33) 마카오(Macao)를 거쳐 남경(南京)에 도착하였다. 중국에 입국한 처음 4년 동안은 중국어 연구에 몰두하였고, 1609년부터는 적극적인 전교 활동에 나서 많은 이들을 입교시켰다. 뿐만 아니라 1611년 5월 3일에는 남경 최초의 성당을 건립하였는데, 이는 중국에서 마테오 리치(M. Ricci, 利瑪竇)가 북경에 지은 남당(南堂)에 이어 건립된 두 번째 성당이었다.
그러나 바뇨니의 이런 활동에 힘입어 성장하게 된 천주교회는 오히려 지방의 지배 계층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요인이 되었고, 여기에 불교 세력까지 합세하게 되었다. 게다가 본래 천주교 세력을 좋아하지 않던 심각(沈淮)은1615년 남경의 예부 시랑(禮部侍郎)으로 임명되자 이듬해 5월 만력(萬曆) 황제에게 선교사 축출을 상소한 뒤 우선 남경 선교사를 체포하기 시작하였으니, 이것이 곧 '남경교난' (南京敎難)이다. 이때 봉교사인(奉敎士人) 서광계(徐光啓), 이지조(李之藻), 양정균(楊廷筠), 손원화(孫元化) 등은 천주교를 변호하는 상소를 황제에게 올렸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같은 해 8월 31일 심각은 바뇨니, 세메도(A. de Semedo, 曾德昭) 등 서양 선교사를 연금한 뒤 곤장을 쳐서 마카오로 추방하였으며, 북경에서도 황제의 명령에 따라 판토하(D. de Pantoja, 龐迪我), 우르시스(S. de Ursis, 熊三拔) 등이 체포되어 추방 명령을 받고 마카오로 이송되었다.
마카오로 추방된 바뇨니 신부는 그곳에서 저작 활동에몰두하는 한편, 틈틈이 신학을 강의하였다. 그러던 중 1624년에 이르러 박해가 어느 정도 평정되어 재입국의 길이 열리자 자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던 남경 대신 산서(山西) 지방으로 진출하면서 자신의 중국 이름을 왕풍숙에서 고일지로 개명하였다. 산서 지방의 강주(絳州)로 진출한 그는 이곳에서 전교하는 동안 한운(韓雲) · 한림(韓霖) 형제를 비롯하여 단곤(段袞) 등 유명한 학자들과 친교를 맺음으로써 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산서성 내의 포주부(蒲州府)에도 천주교를 전파하였다. 한편 1634년 강주에 대기근이 든데다 이자성(李自成)과 같은 무리들이 난무하여 백성들의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지게 되자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바뇨니는 솔선수범하여 여러 지방을 순회하며 구호 사업을 전개하였고, 이를 통하여 다시 많은 사람들을 입교시킬 수 있었다. 1637년 포주부의 신자수가 증가하자 코스타(IgnasedaCosta, 郭納爵) 신부를 초청하여 이곳의 사목을 맡겼는데, 강주 출신의 한광(韓爌)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결과 트리고(P. Nicolaus Trigault, 金尼閣) 신부가 1624년 산서에서 처음 천주교를 전파했을 때 겨우 25명에 지나지 않던 신자수가 바뇨니 사망시에는 8천 명으로 증가하였으며, 그중에는 이름있는 사대부도 200명이나 되었다. 이로써 바뇨니는 '산서성 개교의 사도' 라고 불리게 되었으나, 반면에 그 동안의 누적된 피로로 인해 병을 얻어 1640년 4월 19일 강주에서 사망, 항주(杭州) 남문 밖에 묻혔다.
바뇨니 신부가 남긴 한문 천주교 서적들은 《교요해략》(敎要解略, 일명 聖教解略, 2권, 1626), 《성모 행실》(聖母行實, 3권, 1631), 《천주 성교 성인 행실》(天主聖教聖, 行實, 7권, 1629), 《사말론》(四末論, 4권), <측성고언》(則聖古言), 《서학수신》(西學修身, 일명 修身西學, 10권, 1630) , 《서학치평》(西學治平, 4권), 《서학제가》(西學齊家, 5권), 《동유교육》(童幼敎育, 2권, 1620), <환우시말>寰宇始末, 2권), 《비록휘답》(斐錄彙答, 2권), 《비학경어》(譬警語, 2권), 《신귀정기》(神鬼正紀, 4권, 1633) , 《공제격치》(空際格致, 2권, 1633), , 《달도기언》(達道紀言, 2권), <추험정도론>(推驗正道論, 1권), 《측성십편》(則聖十篇, 1권, 1626), 《십위》(十慰, 1권), 《여학고언》(勵學古言, 1권) 등이다. 이 중에서 《서학수신》 · 《달도기언》 ·<동유교육> · <환우시말> · 《비록휘답》 · 《서학제가》 · 《여학고언》 등은 한국 천주교회 창설 이전에 이미 조선에 전래되었으며, 특히 성모 마리아의 생애와 덕행(德行), 무염 원죄 시잉태(無染原罪始孕胎)의 기적 등을 다룬《성모 행실》 중간본이 19세기 말에 전래되어 널리 보급되었다. 뿐만 아니라 산서의 강주에서 간행된 자연 과학서 《공제격치》 또한 일찍이 조선에 전래되어 1749년에 실학자 윤동규(尹東奎) · 안정복(安鼎福) 등이 그 내용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고, 훗날 최한기(崔漢綺) 같은 경우는 이 책의 내용에 따라 비 · 구름 · 번개 · 바람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 《성모 행실》 ; 한역 서학서 ; 중국)

※ 참고문헌  徐宗澤, 《明清間耶蘇會士譯著提要》, 臺灣, 中華書局, 1958, pp. 42~441 方豪, 中國天主教史人物傳》 第一冊, 香港公教真理學會, 1970, pp. 147~155/ Aloys Pfister, 馮承鈞 역, 《入華耶蘇會士列傳》, 商務印書館, 1938, pp. 102~1 12/ Louis Pfister, Notices Biographi-ques et Bibliographiques Ⅰ , Chang-hai, 1932, pp. 85~95. 〔李裕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