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말경 이탈리아에서 등장하여 17~18세기 전반에 걸쳐 유럽의 가톨릭 국가 및 남아메리카의 식민지에까지 영향을 주었던 미술 양식. 양식적인 면에서 바로 크 미술의 특징은 혼합적이며, 심지어 반항적인 모습까지 보여 준다. 이성보다는 감각에 호소하여 감정적인 상태를 표출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강한 대비와 극적인 효과, 장려함, 생동감, 긴장감, 운동감 등으로 표현되었다.
'바로크' 라는 용어의 어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불규칙적이고 불완전한 모양의 진주를 의미하는 포르투갈어 '바르로코' (barroco)에서 나왔는데, 이 말은 원래 16세기 유럽을 지배한 고전주의 르네상스 뒤에 나타난 양식에 대하여 모멸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 즉 불규칙적이고 화려하거나 정형화된 규칙이나 비례로부터 벗어난 것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어 '바로코' (barroco)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다. 중세 철학자들이 구조 논리학에서 장애물을 묘사하는 데 사용한 이 말은, 그 후 '왜곡된 생각이나 사고의 복잡한 과정' 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19세기 후반까지 바로크는 비정상 · 기괴함 · 과장 ·과도한 장식 등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스위스의 예술사가 빌플린(H. Wölfflin)이 《르네상스와 바로크》(Renaissance und Barock, 1888)에서 바로크 양식의 특징들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이 용어를 하나의 양식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그 결과 20세기에 들어서 비로소 고전주의의 퇴폐 현상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벗어나 르네상스와는 이질적인 하나의 독립된 예술 양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바로크 예술에 영향을 준 세 가지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반종교 개혁 운동의 출현과 그 영토적 · 지적 지배 영역의 확장이다. 가톨릭 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의 결정에 따라 프로테스탄트의 세력 확산을 막기위해 미술이 신자들의 신앙을 격려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수단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원칙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교회는 예술 작품이 감동적이면서도 신자들에게 감각적으로 분명히 호소되어야 한다는 의식적인 예술 계획안을 채택하였다. 그래서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신자들에게 보다 이해하기 쉽고 극적인 효과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는 세력 있는 중산층의 등장과 절대 왕정의 강화이다. 이들이 예술의 중요한 후원자가 됨으로써 중산층의 미술 시장이 발달하였고, 베르사유 궁전과 같은 바로크 궁전은 중앙 집권 국가의 권력과 장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거대하고 넓은 규모로 세워졌다. 셋째는 과학의 발달과 세계 탐험에 의해 자극된 자연에 대한 관심과 지적 지평의 확대이다. 이로 인해 인간의 미천함을 깨닫게 됨으로써 인간 조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건 축〕 바로크 시대의 건축은 르네상스의 소재를 그대로 계승하여 사용하였으나 그 수법은 매우 자유롭고 대담하였다. 소재의 변형과 이상한 조합 등이 고안되었 고, 심한 요철(凹凸)에 의하여 생기는 음영으로 강한 동적인 감각이 생기도록 벽면의 장식을 풍부하고도 힘차게 만들었다. 또 건축을 바라보는 사람의 움직임의 차이에따라 점차적으로 전개되는 광경의 효과와 투시도적인 효과를 강조하는 수법이 사용되었으며, 궁극적으로는 강렬한 극적 효과로 보는 사람을 압도하고 현혹하게 하며 매혹하는 데 힘썼다. 성당의 평면은 중앙 집중형의 장방형 평면과 길게 늘어진 타원형 평면의 기본 유형들을 변형시킨 것인데 이러한 배치들로부터 공간적 통합이 특히 강조되었다. 바로크 건축의 특징은 공간의 자유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약속된 법칙과 관례와 기본 기하학및 부동성에 대한 반발이었으며 대칭으로부터의 해방이었고,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 사이의 반명제에 대한 자유였다. 바로크의 역동성은 16세기의 조소적이고 입체적인 경험에 따른 것으로 모든 벽이 파동하며 새로운 공간 개념을 창출하기 위해 굽어져 있다. 바로크의 움직임은 공간을 이루는 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공간과 입체와 장식적 요소가 함께 작용함을 의미한다. 중요한 건축물로는 이탈리아의 경우 마데르나(CarloMaderna, 1556~1629)의 성 베드로 대성전의 신랑(身廊, nave)과 정면, 베르니니(Lorenzo Bernini, 598~1680)의 성베드로 대성전 제대와 열주를 비롯하여 대성전과 바티칸 궁전을 연결하는 스칼라 레지아(Scala Regia), 보로미니(Francesco Boromini, 1599~1667)의 성 가롤로 성당 등이있고, 프랑스에는 망사르(Jules Hardouin Mansart, 1646~1708)의 파리 앵발리드 성당과 생 쉴피스 성당, 루메르시에(J. Lemercier) , 루이 르 보(Le Vau) , 노트르(André leNotre), 망사르 등이 참여한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 영국에는 렌(Christopher Wren, 1632~1723)의 성 바오로 주 교좌 성당, 밴브라(John Vanbrugh, 1664~1726)의 블랜하임 궁 등이 있다. 스페인은 언제나 과잉 장식의 경향이 강하
였는데 당시 스페인 최고의 건축가인 호세 데 추리게라(Jose de Churiguera, 1665~1725)의 건축물은 표면 텍스추어와 화려한 세부 묘사에 대한 스페인 특유의 관심을 보여 준다. 추리게라 양식(Churrigueresque Style)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건축 양식은 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 등으로 전파되었다. 독일에는 아잠(Asam) 형제의 성 요한 네포무크 성당이 있고, 오스트리아에는 피셔 폰 에를라흐(Johan Bernhard Fisher von Erlach, 1656~1723)의 성 가롤로 보로메오 성당이 유명하다.
〔조각 · 미술〕 바로크 조각은 동적이고 극적이며, 사실상 과장된 표현이 특징이다. 색깔 있는 대리석들을 조각에 사용하였고, 종종 겉모양을 보다 명백하게 하기 위해 흰색의 돌들로 도색하였다. 작품들은 거대하게 배열되었으며, 로마의 라테란 대성전, 시스티나 성당, 성 마리아 대성전, 그리고 성 안드레아 델라 발레(S. Andrea dellaValle)에 조각 작품들이 더해졌다.
바로크 미술은 북유럽, 특히 지금의 벨기에에서만 국한되어 전개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루벤스(P.P.Rubens, 1577~1640)이다.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날카로운 대각선 구성과 넓고 기운찬 형상들은 전형적인 바로크 화풍을 드러낸다. 또한, 수없이 다양한 양식들과 렘브란트(H. Van Rijn Rembrandt, 1606~1669)나 할스(F. Hals,+1666) 같은 시골 풍경 화가들의 그림은 바로크 양식의 독자성을 드러낸다.
〔음 악〕 17세기 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독창 성부를 강조하고 베이스 성부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며 표현적인 화성에 대한 관심이 특징인 '새로운 양식' (stile moderno)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이 음악 어법으로 성악과 기악의 차이뿐만 아니라 종교 음악과 세속 음악의 차이가 뚜렷해졌으며 국가간의 차이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 시대의 음악은 양식의 다양성이 특징이다. 오페라·오라토리오 · 칸타타가 새로 등장한 가장 중요한 성악 양식인 반면, 소나타 · 협주곡 · 서곡 등 새로운 기악 양식들이 생겨났다. 대표적인 음악가로는 이탈리아의 몬테베르디(C. Monteverdi, 1567?~1643)이며, 헨델(G.F. Händel,1685~1759)이 성악 음악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또 종교 음악에서는 독일의 바흐(K.P.E. Bach, 1714~1788)가 두드러졌다. (-> 가톨릭 건축 ; 회화)
※ 참고문헌 H.W. Janson, History of Art, New York, 1977(김윤수 외역, 《미술의 역사》, 삼성출판사, 1978)/ 윤장섭, 《서양 건축사》, 동명사, 1984/ S. Galigani, 《NCE》2, pp. 113~122. 〔金正新〕
바로크 예술
藝術
〔영〕Baroque Art · 〔독〕Ba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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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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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대성전 제대(왼쪽)와 140명의 성인상으로 장식된 열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