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교회 지도자. 축일은 6월 11일. 바오로의 제1차 전도 여행 때 동행한 사도로 일찍이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다. 사도 행전
에 의하면 그는 키프로스(Cypus) 출신의 레위 사람으로서 본명은 요셉이고 바르나바는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붙여 준 별명이다. 바르나바는 아람어로 '위로의 아들' 이라는 뜻인데, 사도들은 그가 교우들을 격려하였던 데서 이런 별명을 붙였다(사도 4, 36 ; 11, 23). 그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밭을 팔아서 그 돈을 가져와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내놓았다(사도 4, 37).
바오로가 개종한 지 3년 만인 35년경에 예루살렘에 왔을 때 바르나바는 그를 사도들에게 소개하였으며(사도 9, 26-27), 예루살렘 사도들에 의해 파견되어 혼자서 안티오키아 교회 일을 돌보던 중 다르소에 있는 바오로를 초빙하여 함께 안티오키아 교회 일을 돌보았다(사도 11, 23. 25-26). 또 그는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모은 헌금을바오로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서 유대 지방의 굶주린 교우들에게 전달하였고(사도 11, 29-30), 49년경에는 바오로와 함께 예루살렘에서 열린 사도 회의에 참석하였다(갈라 2, 1-10). 사도 회의에서는 다음 세 가지를 의결 또는 약속하였다. 첫째,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다. 둘째,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이방인들에게 전도하고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유대인들에게 전도한다. 셋째,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예루살렘의 가난한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을 돕고자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모금하기로 약속한다. 사도 회의 후 베드로가 안티오키아 교회를 방문하였을 때 처음엔 이방인 교우들과 같이 회식하다가 나중에는 유대인 교우들하고만 회식을 했는데, 이때 바르나바도 베드로처럼 행동하였다(갈라 2, 11-14). 50~52년경에 실시한 제2차 전도 여행 때 바르나바는 요한 마르코와 함께 키프로스 섬에서 전도하였다(사도 15, 36-40). 1세기경의 사도들 중에서 교우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고 스스로 노동해서 생계비와 전도비를 번 사도는 바르나바와 바오로뿐이다(1고린 9, 6).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Clemens Alexandriae)와 에우세비오(Eusebius)는 바르나바가 루가 복음 10장 1-12절에 언급되어 있는 72명의 제자 중 하나라고 하였다. 그런데 바르나바가 언제 어떻게 사망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키프로스 섬에서 순교하여 묻혔다는 주장이 5세기의 위경 《바르나바의 전도 여행과 순교》 (Journeys and Martydom Barnabas)에 서술되어 있다. 그 후의 교회 전승에 의하면 바르나바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있었고, 《바르나바 편지》(Epistola Barnabae)를 썼다고도 한다. 488년에 바르나바의 것으로 보이는 무덤이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교회를 세운 살라미스의 키프로스시에 있는 성 바르나바 수도원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 안티오키아 ; 사도 행전)
※ 참고문헌 0. Odelain · R. Séguineau, Dictionaire des Noms propres de la Bible, Paris : Cerf, 1978, p. 63/ J.B. Daniels, (ABD) 1, pp. 610~611. 〔鄭良謨〕
바르나바 [그]Bapvaβis [라 · 영〕Barnab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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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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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나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