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

〔히〕בָּבֶל · 〔그〕Βαβυλών · 〔라〕Babylonia · 〔영〕Babyl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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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을 개축하고 왕조를 세운 함무라비 왕(왼쪽)과 이슈타르 신전의 사자상 부조( 루브르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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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을 개축하고 왕조를 세운 함무라비 왕(왼쪽)과 이슈타르 신전의 사자상 부조( 루브르 박물관 소장)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중요한 도시로 바빌로니아의 수도.
〔위치와 명칭〕 바빌론 도시는 시날 지방(창세 10, 10)의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위치해 있었는데, 바빌로니아의 북쪽 지역으로 아카드(Accad)라고 불리던 곳이다. 이 도시의 유적지는 오늘날 바그다드(Baghdad) 남쪽 50km, 힐라(Hillah) 북쪽 8km 지점에 890헥타르에 걸쳐 펼쳐져 있다. 바빌론의 이름은 표음 문자(表音文字)인 아카드어로 ‘바빌루’(babilu)인데, 드물게 음절로 나누어 ‘바-비-루’ (ba-bi-lu로 표기한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신(神)들의 문(門)’이란 뜻인 ‘밥-일리’(bāb-ili)로 의역하 표의 문자(表意文字, ideogram)인 수메르어로 '카-딘기르-라'(KA2. DINGIR.RA)라고 썼다.
〔역 사〕 기원전 19세기 말 메소포타미아의 서쪽에 살던 아모리족들이 메소포타미아 중앙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들 중 지도자가 된 함무라비 왕은 유프라테스 강 중류 강가에 도시 바빌론을 개축하고 왕조를 세웠다. 함무라비 왕의 업적으로 유명한 것은 루브르 박물관에 보장(寶藏)된 함무라비 법전을 기록한 비석이며, 그는 재위 기간 42년 동안 바빌론을 중심으로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도시 국가들을 정복하여 바빌로니아 제국을 형성하는 한편, 바빌론에 많은 학교들을 세우고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적 문화를 전수하고 학문의 중심지로 발전하도록 하였다. 또한 기원전 21세기 우르 제3 왕조 시대에 편집된 여러 백과 사전, 행정과 경제에 관한 용어 · 단어 사전 등을 재편집하였고, 정결례에 사용하는 주문(呪文)과 제의(祭儀)에 필요한 기도문 등을 정경화하였으며, 신화나 영웅전, 찬양시 등 문학 작품을 망라하여 열람표를 만들고 작품들을 도서관에 보관하였다. 메소포타미아의 북쪽 지역에 살았던 아시리아 사람들도 기원전 18세기에 이미 바빌론에 와서 전통적인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법과 문학과 종교 제의 등을 배워 갔다.
한편, 도시 국가 바빌론이 메소포타미아의 중심이 되면서 종교적으로 새로운 사건이 생겼다. 바빌론 사람들의 수호신인 마르둑(Mardk)이 그 당시까지 메소포타미 아의 최고신인 엔릴(Enlil)의 주권을 양도받아 바빌로니아의 최고신이 된 것이다.
그러나 소아시아 지역에서 한 왕국을 형성하였던 히타이트족들이 기원전 17세기 말 바빌론을 침략하면서 그 후 약 100년 동안 혼란 시대가 되었다. 기원전 14세기 중엽부터는 아시리아 왕국이 고대 근동의 패권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아시리아 왕들은 매년 새 영토를 정복하거나 그들의 통치력 아래 있는 도시로부터 공물(貢物)을 거두어들이기 위하여 출정하였다. 이때부터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우세한 세력이 된 아시리아 왕들의 여러 정책으로 인해 근동 전 지역은 후세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그들의 특기할 만한 정책 중 하나는 정복한 도시의 전 인구를 강제로 다른 곳에 이주시키고 그곳에 다른 종족의 사람들을 정착하게 하는 것이었다.
아시리아 왕 투쿨티 니누르타 1세(Tukulti Ninurta I 1244~1208)는 기원전 1200년경에 바빌론을 침략하여 토판들과 바빌론의 수호신인 마르둑의 신상(神像)을 아시리아의 수도 아슈르(Asshur)로 옮겨 갔는데, 그의 명성은 구약성서에서도 그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니므롯은 야훼 앞에도 알려진 용맹한 사냥꾼이었다. 그래서 '니므롯처럼 야훼 앞에도 알려진 용맹한 사냥꾼' 이라는 말이 생겼다. 그의 왕국은 시날 지방의 바벨(바빌론)과 에렉(우룩)과 아카드와 갈네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그 지방을 떠나 아시리아로 가서 10, 8-11)로 나오는데 니므롯은 투쿨티-니누르타를 줄여 부른 니누르타이다.
아슈르로 빼앗긴 마르둑의 신상을 메소포타미아 동쪽의 엘람 사람들이 그들의 수도 수사로 옮겨 갔다. 바빌론 사람들은 마르둑 신상 없이 거의 100년을 지낸 후에야 비로소 바빌로니아 왕 느부갓네살 1세(NebuchadnezzzarI)가 엘람족을 무찌르고 승리하여 마르둑 신상을 찾아왔다. 바빌론의 수호신이 바빌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시 그들에게 돌아온 것이었다. 바빌론의 사제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마르둑의 권능을 높이 찬양하고 바빌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천명하기 위해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던 메소포타미아의 전통적인 신화의 소재들을 내용으로 새로운 창조 서사시인 <에누마 엘리쉬>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일곱 개 토판에 쓰여진 <에누마 엘리쉬>는 약 1,100행이 조금 넘는데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태초에 지하수와 바닷물이 함께 섞여 있던 곳에서 신들이 생겨났으며 하늘 신이 지하수 신을 낳았을 때 바다를 상징하는 바다의 괴물인 티야마트는 신들을 괴롭혔다. 이때 지하수 신에게서 마르둑이 태어났으며 마르둑은 커 가면서 그의 형상은 모든 신들보다 훨씬 더 위대해졌다. 하늘신은 마르둑에게 사방의 바람을 일으키는 노리개를 주었으며 마르둑은 폭풍을 일으켜 티야마트와 싸워 결국 승리하고 그를 죽였다. 그리고 그의 몸을 반으로 나누어 윗부분을 창공으로 세워 별들과 태양과 달을 두고 나머지 반으로 땅을 만들어 온갖 것들을 만들도록 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들어 바빌론 신전을 짓게 하고 신들을 그곳에서 쉬게 하였다. 모든 신들이 모인 가운데 마르둑을 가장 높은 왕좌에 앉게 하고 하늘과 땅의 주권이 그에게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때에 마르둑에게 50개의 이름을 불러 주는 것으로 서사시는 끝맺는다. 바빌론에서는 매 신년 축제에 대사제가 방방곡곡에서 모인 순례자들 앞에서 <에누마 엘리쉬>를 낭독하여 마르둑이 모든 신들 중에 가장 위대하며 바빌론 신전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찬
양하였다.
그러나 빼앗긴 마르둑 신상을 되찾아온 느부갓네살 1세 이후부터 500여 년 후 신(新)바빌로니아 시대에 바빌론을 고대 근동에서 제일 웅대한 도시로 개축한 느부
갓네살 2세의 부왕(父王) 때까지 바빌로니아는 아시리아의 통치 아래에 있었다. 고대 근동 역사상 다른 어느 제국보다도 우수한 군사력으로 많은 민족을 지배했던 아 시리아 제국도 그 마지막 왕 이슈르바니팔(Ashurbanipal, 기원전 668~627)이 이집트의 일부분까지 포함한 광대한 지역을 점령하였으나, 그가 죽은 후 기원전 609년에 정치적 독립을 잃었다. 바빌로니아는 아시리아의 오랜 지배를 벗어나 기원전 625년에 독립된 왕조를 세웠으며 이를 신바빌로니아 혹은 칼데아 왕조라고 부른다. 기원전 597년과 587년 두 차례에 걸쳐 예루살렘과 유대 땅을 정복하였고, 이때 왕족과 지배층과 기술자들을 비롯한 상당한 인원을 바빌로니아로 유배시켰던 느부갓네살 2세(기원전 604~562)는 아시리아가 정복했던 대부분의 지역을 차지함으로써 바빌로니아를 한동안 근동 세계의 가장 막강한 제국으로 부상시켰다. 특히 느부갓네살 2세는 바빌론에 약 90㎡의 넓이에 약 90m 높이의 층계 탑인 지구라트, '에사길라' (Esagila, 머리를 들어 높인 신전)인 마르둑 신전, 화려한 궁전과 산처럼 높은 성벽 위의 정원 등을 만들었으며 바깥 성벽 위의 행로(行路)는 네 마리말이 끄는 전차도 쉽게 회전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기원전 538년에 페르시아 군대가 바빌론을 점령한 후에도 웅대한 바빌론의 명성은 여러 이야기에 남았다. 또한 칼데아 왕조 때의 바빌로니아는 천문학과 점성술 등이 매우 활발하여 '칼데아' 라는 단어가 별자리를 보는 사람이나 점성가에 대한 통칭이 되었다(다니 2, 2 참조).
기원전 1800년경에 함무라비 대왕이 세운 도시 국가 바빌론은 고대 근동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에 의해 바빌론이 점령된 후에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적 유산이 그 주변 문화인 히브리 성서나 고대 그리스 문학 등으로 전달되었다. (→ 바빌론유배 ; 바벨탑)
※ 참고문헌  안성림 · 조철수, 《사람이 없었다 神도 없었다》, 서운관, 1995, pp. 109~136/ B.R. Foster, Before the Muse. An Anthology of Akkadian Literature I~Ⅱ , Maryland, CDL Press, 1993/ W.W. Hallo·W.K. Simpson, The Ancient Near East : A History, New York, 1971/ J. Oates, Babylon, London, Thames & Hudson, 2nd ed., 1986/ J.C. Margu-eron · D.F. Watson, 《ABD》 1, pp. 563~566. 〔曹哲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