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오 (329~379)

Bailius Mag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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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오 성인 .

바실리오 성인 .

주교. 성인. 교회 학자. 동방 교회 수도원 제도의 창시자. 동방 교회 전례의 아버지. 축일은 1월 2일. 그는 친동생인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335?-395?)와 자신의 친구인 나치안츠의 성 그레고리오(329/30-389/390)와 함께 가빠도기아의 3대 교부이며, 이들 사이에서 지도자 역할을 하였다. 아리우스 이단을 거슬러 제1차 니체아 공의회(325)의 결정 사항을 수호한 중요한 신학자이며, 동방교회의 4대 교부 중에서 첫 번째로 꼽힌다. 그의 이름 앞에는 흔히 '대' (Magnus)라는 별칭이 붙는다.
〔생 애〕 329년에 가빠도기아의 수도인 가이사리아(Caesaria)에서 유복한 신자 가정에서 아버지 바실리오와 어머니 에밀리아의 맏아들로 태어나 그곳에서 공부한 다음 콘스탄티노플과 아테네(351~356)에서 학업을 계속하였는데, 그때 아테네에서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를 만나게 되었다. 356년 고향에 돌아와 교사로 지내다가 곧 그만둔 다음 세례를 받고 복음의 정신에 따라 하느님께 전 생애를 바치기로 결심한 그는, 357년에 이집트, 팔레스티나, 시리아를 두루 여행하면서 훌륭한 수도승들을 만나 수도 생활에 대한 견문을 넓혔다. 358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다음 네오 체사리아(Neo Caesaria)의 이리스(Iris) 강변에서 수도생활을 하였고, 그의 누이동생 마크리나(Macina)는 강 맞은편에서 여자 수도 공동체를 지도하였다. 그의 영성이 널리 알려지자 많은 동조자들이 찾아와 수도 생활에 합류하였는데, 그중에는 아테네에서 사권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도 있었다. 바실리오는 오리제네스의 저서들에 심취하여 그와 함께 오리제네스 저서들 중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발췌한 《필로칼리아》(Philocalia)를 편집하였다. 가이사리아의 대주교 에우세비오의 설득에 못 이겨 365년에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신자들이 복음 정신에 따라 생활할 수 있는 지침을 제시하기 위하여 80개 항목으로된 《도덕집》(Moralia)을 저술하였다.
370년 에우세비오 주교가 죽자 그 후임으로 대주교가 된 바실리오는 병자들 특히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병원을 설립하였으며, 여행자와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를 짓고,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사목하여 신자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또한 교구 내의 수도원들을 자주 방문하였는데, 이때 수도자들이 그에게 수도 생활에 대한 질문을 하면 명쾌하게 대답해 주곤 하였다. 훗날 이러한 질의와 응답들을 모아 엮은 것이 《바실리오 규칙서》(Regula St. Basilii) 이다. 한편 제1차 니체아 공의회 이후에도 교회는 아리우스 이단과 논쟁을 거듭하였는데, 이들은 '반(半)아리우스주의' (Semiarianismus)로 양상을 달리하면서 당시 교회의 가장 큰 문젯거리가 되었다. 이러한 신학 논쟁들은 정치권의 개입 특히 황제의 성향에 따라 크게 좌우되었는데, 아리우스 이단에 기울어져 있던 발렌스(Valens, 364~378) 황제는 바실리오에게 모데스투스 집정관을 보내 온갖 협박과 회유로 아리우스 이단에 동조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바실리오는 황제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강론과 저서들을 통해 니체아 공의회의 정통 교리를 수호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바실리오의 또 다른 관심사는 교회 일치였다. 동방 교회는 철학 논쟁, 아리우스 이단 문제, 수도 생활 양식에 관한 논쟁 등으로 심하게 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안티오키아의 총대주교를 세우는 문제를 두고 374년부터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대립하게 되었는데, 바실리오와 안티오키아 교구민들은 멜레지오를 지지한 반면, 로마의 다마소 교황과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오 총대주교는 바울리노를 지지하였다. 바실리오는 로마 교회와의 일치 없이는 교회의 진정한 일치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신념에서 이 문제에 관해 교황과 여러 차례 서신을 주고받으며 오해를 풀려고 하였다. 378년 8월 9일 아리우스 이단자들을 지원하던 발렌스 황제가 사망하고 정통 교리를 따르는 테오도시우스(Theodosius, 379~395) 황제가 등극함으로써 교회 안에 평화가 정착되었다. 바실리오는 379년 1월 1일 사망하였지만, 381년에 개최된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멜레지오가 안티오키아 총대주교로 공인됨으로써 동서 교회는 서로 화해하였다.
〔저 서〕 교의 신학 저서 : 《에우노미우스 논박》(Adver-sus Eunomium)은 아리우스 이단의 열렬한 신봉자인 에우노미우스가 자기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쓴 《변호론》(Apologia)을 반박하기 위해 쓴 책이고, 375년에 쓴 《성령론》(De Spiritu Sancto)에서는 성령께서 성부와 성자와 함께 '동일한 신성' (ὁμοούσια)을 지닌다고 역설하면서 성령의 위격과 활동을 설명하였다.
수덕적 저서 : 80개 항목으로 된 질문과 응답의 모음집인 《도덕집》에는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어떻게 복음의 정신에 따라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다. 《바실리오 규칙서》는 체계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여러 수도원들을 방문하였을 때 수도자들의 질문에 대한 응답들이 속기사에 의해 기록된 것을 수집하였기 때문에, 수집과 편집 과정에 따라 세 가지 모음집으로 전해 오고 있다. 첫째, 203개 항목으로 된 규칙서는 그리스어 원본은 없고 대신 루피노에 의해 번역된 라틴어 역본이 《소(小)수덕집》(Pavum Asceticon)에 수록되어 있으며, 둘째와 셋째 모음집은 그리스어 원문으로 《대(大)수덕집》(Magnum Asceticon)에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전반부 55개 항목은 주로 수도 영성에 관한 포괄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는데, 각 항목마다 바실리오의 답변이 길기 때문에 '길게 거론된 규칙서' (Regulae fusiustractatae) 또는 '대규칙서' 라 불린다. 반면에 후반부의 313개 항목은 각 항목마다 답변이 짧기 때문에 '짧게 거론된 규칙서' (Regulae brevius tractatae) 또는 '소규칙서' 라 불리며 주로 수도 생활의 구체적인 실천 내용들로 되어있다.
교육적 저서 : 《청년들에게》(Ad Adolescentes)는 이교학교에 다니는 조카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 고전 문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또 무엇을 피 해야 하는지를 권고하면서 성서의 우월성을 역설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영적 아들을 위한 성 바실리오의 권고》 (Admonitio St. Basilii ad filium spiritualem)에는 수도 생활의 수덕 방법과 영적 권고들이 수록되어 있다.
강론 : 사순 시기에 행한 9개의 강론인 《6일 창조에 관한 강론》(Hexaemeron)은 창세기 1장 1-26절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에 대한 내용이고, 《시편 강론》(Homiliae in Psalmos)은 시편 1, 7, 14, 28, 32-34, 45, 48, 58, 61, 114편에 대한 18개의 강론이다. 이사야서 1-16장을 주석한 강론집인 《이사야서 주해》(Enarratio in prophetam Isaiam) 외에도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한 23편의 강론들이있다.
서간집 : 미뉴(J.-P. Migne)의 《그리스 교부 전집》(PG 32, pp. 220~1112)에 바실리오의 365개 서간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바실리오가 받은 서간도 포함되어 있다. 이 서간집은 세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서간 1~46은 주교 서품 전(357~370)이고, 서간 47~291은 주교 서품 후(370~378)의 것이며, 나머지 서간 292~356은 시대가 불분명하다. 내용은 우정과 위로, 교회 규범, 윤리와 수덕, 교의 신학, 전례, 역사 등 다양하다.
〔신학과 사상〕 성삼론과 성령론 : 바실리오의 신학은 시대적 특성 때문에 여러 형태의 아리우스 이단자들을 거슬러 니체아 공의회의 가르침을 지키고 변호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서간 258, 2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니체아 신경에 아무리 적은 것이라도 첨가시킬 수 없고, 다만 성령의 영광에 대한 것만 첨가시키니, 우리의 교부들이 이 점을 부차적으로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니체아 공의회 당시에는 성자의 신성 문제가 주된 관심사였으며, 성령에 대해서는 별로 거론되지 않았으나 아리우스 이단이 '반(半)아리우스주의' 로 변형되는 과정에서 성령의 신성 문제가 교회 안에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바실리오는 성자는 성부와 '비슷한 본성' (ὁμοίας) 지닌 것이 아니라 같은 본성을 지녔다고 역설하였고, 또 《성령론》을 통해서도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같은 '동일한 본성' (ὁμοούσιος) 즉 신성을 지니신다고 역설하면서 성삼 안에서의 성령의 역할을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바실리오 전례 : 나치안츠의 그레고리오는 바실리오의 장례식에서 행한 추모 강론(Orat. 43, 34)에서 그의 공적들을 열거하는 중에 가이사리아 교회의 전례 개혁에 관해 언급하였다. 사실 바실리오는 《성령론》 서두에서 새로운 영광송을 제시하였으며, 서간 207편에서는 새로운 전례 음악을 도입하였다. 그리고 《바실리오 규칙서》에 의하면, 그는 1시경(時經)' 과 '끝기도' 를 시간 전례에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동방 교회는 현재까지도 바실리오 전례와 요한 그리소스토모의 전례를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특히 성지 주일을 제외한 모든 사순 시기의 주일과 성목요일, 예수 부활 대축일의 성야, 예수 공현 대축일 전야, 1월 1일 그리고 성 바실리오 축일의 전례들은 바실리오 전례를 따른다. 바실리오 전례는 그의 규칙서를 지키는 수도원들을 통해 동방 교회뿐 아니라 시칠리아와 이탈리아에까지 널리 전파되었다. 그의 전례서는 9세기에 치릴로와 메토디오 형제에 의해 고대 슬라브어로 번역되었고, 987년에는 블라드미르 대공(大公)에 의해 러시아 정교회에도 도입되었다. 이 때문에 바실리오를 "동방 교회 전례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참회 절차 : 초대 교회에서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 공적 고백과 참회의 절차를 밟아야 하였다. 그래서 중죄인은 교회로부터 파문을 받아 일체의 전례에 참여할 수 없 었으며, 죄인이 자기 죄를 신자들 앞에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참회하려면 주교가 정해 준 절차에 따라 참회를 하여야 했다. 기적자 그레고리오(Gregorius Thaumaturgus, 213~270?)는 <법 규정 서간>에서 4단계의 참회 절차를 제시한 바 있는데, 바실리오는 서간 217편에서 4단계의 기간을 명시하였다. 첫 번째는 '체읍(涕泣)하는 자' 의 단계로서 참회자는 성당의 현관 밖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성당에 들어오는 신자들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청하여야 하며, 그 기간은 3년이다. 두 번째는 '듣는 자' 의 단계로서 성당에 들어와 성서 말씀과 강론을 들은 다음 나가야 하며, 기간은 3년이다. 세 번째는 무릎을 끓는 자' 의 단계로서, 성찬 전례에 참여할 수 있지만 무릎을 끓고 있어야 하며, 기간은 3년이다. 네 번째는 '서 있는 자' 의 단계로서, 서서 성찬 전례에 참여하지만 성체를 영할 수 없으며, 그 기간은 2년이다. 이렇게 총 11년의 참회 기간이 끝나야 참회자는 주교로부터 '화해선언' 을 듣고 성체를 영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소규칙서》 25-27장에는 수도자가 영적 지도자에게 자기 잘못과 은밀한 생각까지 고백하는 규정이 있지만, 이것은 고해성사가 아니라 수덕의 한 방법이었다. (-> 《바실리오규칙서》)
※ 참고문헌  (PG), pp. 29~321 7, p. 26/ J. Quasten, PatrologiaI Torino, 1969, pp. 206~238/ M.G. Murphy, St. Basil and Monasticism, Washington, 1930/ S. Giet, Les idées et l'action sociales de saint Basile le Grand, Paris, 1941/ E. Amand, L'Ascèse monastique de saint Basile, Maredsous, 1949/ J. Gribomont, Histoire du texte des Ascétiques de S. Basile, Louvain, 1953/ G.L. Prestige · H. Chadwick, St. Basil the Great and Apollinaris of Laodicea, London, 1956/ Y. Courtonne, Un témoin du IV siecle. Saint Basile et son temps d'après sa correspondance, Paris, 1973/P.J. Fedwick, The Church and the Charisma ofLeadership in BasilofCaesarea, Toronto, 1979/ J. Cazeaux, Les echos de la sophistique autour de Libanios, Paris, 1980/ P.J. Fedwick, Basil od Caesarea : Christian, Humanist, Ascetic, vol. 2, Toronto, 1981. 〔李瀅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