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걸 (1904~1950)

康永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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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걸 신부.

강영걸 신부.

평양교구 소속 신부. 세례명은 바오로. 평양(平壤)에서 태어났다. 1931년 5월 30일 종현(鐘峴, 현 명동)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35년 7월 평남 중화(中和) 본당에 부임하여 전임 기본스(Gibbons, 盧) 신부가 추진하던 빈민 아동 교육 기관인 성심(聖心)학원을 개설하여 문맹 퇴치 사업에 앞장섰으며, 신자들과 지방민들의 성원으로 유치원 신설도 추진하였다. 1936년 9월에 유치원을 개원하고, 1937년에 유치원 건물을 신축하였다. 1937년 5월 김리신(金利信) 회장의 대지와 건축 자재 희사로 신흥면 삼응리(新興面 三鷹里) 공소에 30여 평의 강당을 신축하였다.
1939년 1월 재일 교포 신자들을 사목하기 위해 도일(渡日)하였고, 1942년 2월 평북 의주 본당에 부임하였는데 조선 총독부의 총동원령으로 착취가 가혹했지만 일본 고등계 형사들을 잘 무마시켜 의주 본당을 보호하였다. 무기 헌납 요구로 천주교와 프로테스탄트의 모든 교회가 종(鐘) 때문에 수난을 겪을 때 의주 본당만은 강영걸 신부의 노력과 높은 종각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1943년 6월 운향시(運餉市) 본당, 1944년 4월 정주(定州) 본당, 1944년 11월 평남 마산(馬山) 본당으로 전임되었다. 1949년 5월 북한 인민위원회에서 성모학원 건물의 양도를 명하자 거절하였고 이 때문에 미사 외에는 모든 활동을 정지당하였다.
1950년 6월 24일 아침, 자칭 성태면(星台面) 인민위원회 직원이라는 사람이 마산 본당을 찾아와 전부터 문제가 있었던 성모학원 교사(校舍)에 관해 의논할 것이있다며 강영걸 신부를 연행해 갔다. 소식을 들은 현용국(玄龍國, 비오) 회장이 성태면 인민위원회로 달려갔지만 미리 대기하고 있던 군 트럭에 실려 평양으로 압송된 후 였다. 강영걸 신부는 평양 형무소에 다른 사상범들과 같이 억류되어 있었는데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으로 진격할 때 1950년 9월 23일(?) 7명의 사상범과 함께 총살당했다고 한다. (→ 중화 본당 ; 의주 본당 ; 마산 본당)
※ 참고문헌  《天主教平壤教區史》 [尹善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