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 수도회

修道會

〔영〕Society of St. Paul · 〔이〕〕Società San Paolo (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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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0월에 신축한 초기의 수도원 건물(왼쪽)과 한국 진출 18년 만에 첫 사제된 유광수 신부의 첫 미사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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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0월에 신축한 초기의 수도원 건물(왼쪽)과 한국 진출 18년 만에 첫 사제된 유광수 신부의 첫 미사 봉헌.

알베리오네(Giacomo Alberione, 1884~1971) 신부가 사회 홍보 수단을 이용한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1914년 8월 20일 이탈리아 알바(Alba)시에 설립한 활동 수도회. 총 본부는 로마에 있으며, 한국 준관구는 서울시 강북구 미아9동 103-36번지에 있다. "길, 진리, 생명이신 스승 예수 그리스도를 살고 전한다"라는 하나의 정신으로 생활하는 바오로 가족으로는 바오로 수도회를 비롯하여 바오로 딸 수도회(1915), 스승 예수의 제자 수녀회(1924),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1938), 사도의 모후 수녀회(1957)등 5개의 수도회와 대천사 가브리엘회(1958) 지극히 거룩한 마리아 영보회(1958), 예수 사제회(1959) 성가정회(1960) 등 4개의 재속회, 그리고 이들을 후원하는 협력자회(1917)가 있다. 이 가운데 '사도의 모후 수녀회' 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에 진출해 있다.
〔설립과 성장〕 알베리오네는 1884년 4월 4일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ete) 주 쿠네오(Cuneo) 지방의 산 로렌조(San Lorenzo)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장래에 사제가 될 것이라고 포부를 밝힐 만큼 신심이 깊었는데, 이러한 그의 믿음으로 그는 당시의 관례를 깨고 8세 때 첫영성체를 하였다. 1896년 토리노(Torino) 교구 소속의 브라 소신학교에 입학하여 3년을 보낸 그는, 좋지 못한 독서의 영향으로 학교를 떠나야 하였으나, 이 사건은 알베리오네가 사제 성소를 더욱 갈망하는 계기가 되었고, 훗날 자신이 얻게 되는 사도직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여 준 좋은 경험이 되기도 하였다. 본당 신부의 덕택으로 1900년 10월 알바 신학교에서 철학과 신학 과정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는데, 그로부터 3개월이 채 못 된 12월 31일 자정에 교황 레오 13세의 지향에 따라 새로이 맞이하는 세기를 예수 그리스도께 봉헌하고자 모인 사람들로 가득 찬 알바의 주교좌 성당에서 그는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악한 출판물에 대항하기 위하여 같은 수단으로써 복음을 전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당시는 각종 출판물이 강력한 여론형성의 수단으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할 때였다.
1907년 사제로 서품된 알베리오네 신부는 나르촐레(Narzole) 본당에서 보좌 신부로 사목하다가 곧 주교의 신임을 얻어 알바 신학교에서 영적 지도를 담당하였고, 교회사, 전례학, 종교 예술사 등 강의까지 맡게 되었다.1913년 9월 8일에는 교구 주간(週刊) 신문 <가제타 달바>(Gazzetta d'Alba)의 주간(主幹)이 되었으며, 1914년 7월 13일에는 양서(良書)의 출판과 보급을 전담하게 될 기술자와 보급원들을 양성할 인쇄 학교의 설립을 주교에게 청하여 승낙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20일 바오로 수도회의 전신인 '작은 노동자' (Piccolo Operaio)라는 인쇄 학교를 개원하였는데, 이후 학생들 가운데에서 수도 성소자가 증가함으로써 수도회로 성장하였다.
《비타 파스토랄레》(Vita Pastoralé)를 통해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바오로 수도회는 이탈리아 남부 지방에서까지 젊은이들이 모여들면서 입회자가 급증하였다. 이에 사도직의 활동 범위를 전세계로 확장시키기 위해서 1926년 로마에 진출하여 이듬해 3월 12일 교구 관할 수도회로 인가를 받았다. 1931년 8월 20일 브라질에 진출하여 정치 · 종교 주간지 《라 스퀼라》(La Squilla)와 본당 사제들을 위한 《오 도밍고)(O Domingo)를 출간하면서 출판 사도직의 기반을 잡은 데 이어, 같은 해 10월에는 미국에 진출하여 뉴욕, 보스턴, 디어본, 버펄로, 영스타운에 분원을 설치하고 1960년대 들어 월간지 《가톨릭 홈 메신저》(Catholic Home Messenger)를 창간하여 6개 국어로 번역되는 등 많은 판매 부수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한편 프랑스(1932), 일본(1934), , 필리핀(1935) 등지로 진출하던 중, 1941년 5월 10일에 교황 비오 12세로부터 회헌인준과 더불어 교황 직속 수도회로 인가를 받은 바오로 수도회는, 비록 수도회 역사는 그리 길지 않지만 디모테오 쟈카르도 신부가 1989년 10월 2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마조리노 비고룽고(1988), 안드레아 보렐로(1990) 수사가 가경자로 선포되었다. 또 1971년 11월 26일 로마에서 사망한 설립자 알베리오네 신부도 1996년 6월 25일에 가경자로 선포되었다. 현재 바오로 수도회는 전세계 28개 국에서 1,120여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영 성〕 1914년에 인쇄 학교를 시작했던 알베리오네 신부는 "천사들을 지상으로 보내어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하게 한다면 천사는 바로 이 장소를 택할 것이다 ···이곳 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가치 있는 선을 행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라고 표현할 만큼 인쇄 학교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이 인쇄 학교가 수도회로 성장하게 되면서 회원들은 언제나 설립자의 이러한 가르침을 본받아 좋은 홍보 수단의 개발에 전념하게 되었다.
바오로 수도회의 영성은 회원들이 모든 일을 시작하고 끝낼 때마다 바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스승 예수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요한 14, 6 참조)라는 기 도문에도 나타나 있듯이 하느님께로 향하는 길이며, 알아야 할 진리이고,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섬기고 전함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영성을 깊게 하기 위하여 성 바오로와 마리아의 모범을 따른다. 성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삶을 온전히 살아감으로써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갈라 2, 20)라는 위치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고,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낳아 세상에 내어 줌으로써 하느님의 진정한 사도이자 모든 사도의 모후가 되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정신과 삶을 살고 전하기 위하여 회원들은 기도 · 공부 · 사도직 · 가난을 중심으로 균형 잡힌 현대의 바오로 사도로서 생활하고 있다.
〔한국 진출과 현황〕 1934년 일본 진출을 계기로 아시아에 대한 입지를 확고히 다진 바오로 수도회는 한국에서도 출판 문화 사도직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1961년 12월 2일, 일본에서 활동하던 마르철리노(P.Marcellino) 신부를 필두로 하여 이듬해 1월 또다시 2명의 신부가 입국함으로써 한국 진출이 이루어졌다. 이들
은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한국 순교 복자 성직 수도회의 수도원 건물을 빌려 한국어를 익히면서 사도직 활동을 준비하였다. 그러던 중 1962년 10월 서울 미아9동에 180여 평의 수도원을 신축하고 인쇄 시설을 갖추었는데, 진출 초기에는 한국인 수도자 양성에 주력하였기 때문에 대외적인 활동이 두드러지지는 못하였으나 어느 정도 인적 구성이 이루어진 1980년대부터는 본래의 사도직에 전념할 수 있었다. 1978년 1월 한국인 첫 종신 서원자로 이영춘(李榮春, 베르나르도) 수사를, 그리고 1980년 2월 25일에 첫 사제로 유광수(柳光洙, 야고보)신부를 배출하는 한편, 1991년 11월 29일에는 심재영(沈載榮, 예로니모) 수사를 나이지리아로 파견하여 선교 사업에도 헌신하고 있다. 1992년 8월에는 준관구로 승격되었다. 1997년 5월 현재 종신 서원자 15명(사제 7, 평수사 8), 유기 서원자 15명 등 총 30명의 회원이 있다.
바오로 수도회는 1962년 3월 바오로 딸 수도회와 공동 명의로 '성 바오로 출판사' 를 출판 등록하고 전례 · 철학 · 신학 · 성서 · 영성 · 문학 · 교육 · 심리학 관련 서 적 등을 출간하였다. 그리고 서적의 원활한 보급을 위하여 1983년 서울 논현동에 첫 번째 '성 바오로 서원'을 개원하였으며, 현재 천호동(1983), 저동, 울산, 마산 (1990), 강릉, 수원, 청주(1991), 영등포(1992), 부산(1993) 등 6개 교구에서 10개의 서원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1988년 10월 '성 바오로 다솜 미디어' 를 설립하여 각종 시청각 교재를 제작하는 한편, 1991년 1월에는 '도서 출판 다솜' 을 등록하여 만화 월간지 《내 친구들》을 발행함으로써 어린이들이 신앙에 쉽게 접할 수 있도 록 하였으며, 그 외에 만화를 비롯한 여러 단행본들을 제작하고 있다.
1994년 5월에는 그 동안 바오로 딸 수도회와 공동으로 운영해 오던 '성 바오로 출판사' 에서 분리 · 독립하여 '성 바오로' 를 새로 등록해서 운영하고 있으며, 1996년 4월부터는 성 바오로 북 클럽 제도를 운영하여 통신 판매를 통한 도서 보급을 촉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컴퓨터 통신이 일반화됨에 따라 1996년 6월에 성 바오로 선교 네트(The Missionary Net of St. Paul)라는 컴퓨터 통신 BBS를 설립하여 PC 통신과 인터넷(htp://caholic.paul.net)을 이용한 선교 사도직도 수행하고 있다. (→ 바오로 딸 수도회)
※ 참고문헌  《가톨릭 사전》《서울대교구 교구 총람》 부록, 가톨릭출판사, 1984/ S. Lamera, 박동옥 역, 《알베리오네 신부》, 성바오로 출판사, 1981/L. Rolfo , 박청 역, 《하느님의 사람 : G. 알베리오네 신부의 생애》, 성바오로출판사, 1985/ 《한국 천주교회 연감》, 한국천주교 중앙협의회, 1994/ Domenico Agasso, 김홍래 역, 《작은 이여, 그대 등불을 밝혀 라》, 성바오로출판사, 1994/ J. Dunn, 《NCE》 11, p. 271 《교 회와 역사》 251호(1996. 4) ; 253호(1996. 6). 〔金成喜〕